• 최종편집 2021-06-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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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설거지 영성
    • Mission
    • 옹달샘
    2021-06-14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6-끝)
    결 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신앙이 먼저냐? 애국이 먼저냐? 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여 애국을 하는 일이 다음이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김치선 박사는 그러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본다. 다음으로 신학과 신앙에 관한 질문에 있어 신학은 신앙과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분방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개혁파 신학은 신앙고백주의에 기초하는 학문적 서술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학과 신앙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의식이 없는 국가나 단체는 미래가 없다. 과거에 벌어졌던 대신의 신학적 변질과 교단적 변화를 목도한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재어 보고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세계 교회사는 우리에게 대신의 역사를 비춰주고 있다. 그 역사는 교의신학과 교단의 정치적 제도에 관한 교훈이다. 구미에서는 그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신학교의 경영진과 교단의 정치는 일정 거리를 두면서 신학적으로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20세기 초엽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갈라진 대신의 여러 교단들이 신학교 학위 문제로 신학의 본질을 따져 보지도 않고 정규 학위를 갖춘 타 신학교들을 기웃거리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신학의 정체성을 갖춘 교리학 훈련을 후예들에게 전수하면서 학위 문제는 우선 미국의 우수한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은 개혁파 신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정규 학위를 갖춘 신학교를 우리의 것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갈라진 대신의 영역 안에 있는 교단들이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재정적으로 조직적으로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을 보내면서 서로가 통합의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모두가 자기들의 기득권은 추호도 양보하지 않고 상대방의 희생만 강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왜 합동측은 극심하게 다투었던 과거를 씻고 다시 통합했는가를 교훈 삼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우려되는 것은 교리의 무용론 내지 신앙고백의 평가절하이다. 신앙고백서를 중요하게 생각한 한 사람이 부교역자로 교회를 봉사하고 있는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담임 목사가 그를 내 보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심장의 피가 거꾸로 도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서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도신조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에 관한 내용을 고치자는 신학이 돌출 되었다. 이를 반대하고 나온 소수의 교회들이 모여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교단을 설립하였다. 그 교단에서는 같은 교단임에도 불구하고 노회에서 다른 노회로 이명 할 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들고 나와 목사 고시를 다시 치르게 된다. 이 교단이 짧은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에서 가장 건전하고 급성장한 교단이 되었다. 지금은 1만교회 이상이 되었다. 동시에 자유주의 신학에 기반을 두고 1만 교회 이상을 자랑하던 PCUSA(미 합중국 장로교회) 교단은 지금 8천 교회 선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대신 교단은 역사교회가 남겨준 교단형성의 세 가지 요소를 영혼의 옷깃을 여미며, 가슴 속에 새기며, 그리고 재건의 발판을 놓아야 할 때이다. WCC와 같은 종교다원주의(pluralism) 개념의 교단 연합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1973년 교단 선언문에 나타난 대신교단의 세 가지 정체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신구약 성경을 유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생활의 규준으로 삼으며, 교회사적 공동신조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신앙고백의 표본으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 개혁파 교회가 걸어온 정통성을 지켜 나간다. 변질된 기독교회를 성경에 맞도록 개혁해 나가고 기독교회의 본질을 회복해 나간다. 2. 정치적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교리는 무질서하고 정치적 일치만을 주장하는 로마교조주의를 우리는 배격한다. 교단은 성경교리와 일치하는 정치적 단체이다. 특별히 장로교회는 교회의 자율적 원칙에 의존한 대표제 영역 주권을 주장하는 정교분리(Separation of the Church and State)에 의한 교회와 국가의 보조적 관계를 주장한다. 3.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율법주의나 무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신율주의(神律主義)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 의미는 기독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와 만물과의 관계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성경적 유신론주의 확립, 하나님 중심의 교회 확립, 땅 끝까지 복음전파,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문화 건설이다. *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우리의 후세대를 키우는 문제이다. 대신교단의 특징은 개척정신과 선교에 중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의 대를 이어갈 학자들이 거의 멸절된 상태이다. 또한 전문적 교회 행정가를 통해 교단을 운영해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후예들을 키워 국제적 수준의 학자와 행정가를 등원하기 위해 외국의 우수한 보수주의 신학교에 유학을 보내는 일이 시급하다. 교단에 법률문제가 생기면 법조인이 필요하고, 세금문제가 생기면 회계사가 필요하고, 그리고 부동산 문제는 물론 교단의 행정조직 등등 각처에 전문적 지식인이 필요하다. 특히 개혁파 신학자는 사상의 흐름을 교회사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스스로 개혁파 신학자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해서 객관적 검증에서 안전할 수 없다. 반드시 신앙고백적 검증이 필요하다. 사악한 인간은 삶이 부요해 질수록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과거의 고난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기독교 이질화 극복의 방안을 간구해야 한다. 향락문화를 퇴치하고, 번영주의 기독교 운동을 멀리하고, 그리고 청교도 신앙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항상 우리는 영혼의 옷깃을 여미고 가슴을 졸이는 회개를 통해 종교개혁자들의 심령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대신교단이 예수님의 재림이 임할 때까지 개혁파 신학, 선교, 그리고 교단의 무궁한 발전이 우후죽순처럼 번창하기를 고대한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획
    2021-06-14
  •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l 김의철 목사(송도가나안교회) l 2021-06-06 주일설교
    2021-06-13
  • [간증/목회는 영권이다(4)] 교회도 돈도 빼앗기고 절망뿐이던 눈물의 2년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재정 집사가 나 몰래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는 잔금을 내게 주지 않고 재정 집사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게 훗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교회 담보대출로 수표를 받고 등기 이전을 해주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넘긴 뒤 수표를 받았는데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가 입을 열었다. "수표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보여줬는데, 그만 수표를 받아 채더니 문 앞에 대기시켜 놓은 차를 타고 도망쳐 버렸다. '아니, 목회자라는 사람이 지금 무슨 해괴한 짓을 한 거야.' 법무사 사무실의 등기 이전 절차를 중단했다. 그리고 서류를 가져왔다. 이런 사실을 노회에 보고했다. "김 목사, 당장 고소를 하시오." 며칠 후 수표를 뺏어간 목사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수표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노회도 문제를 잘 풀어보자며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빌려주지 않아 불만을 품은 재정 집사를 접촉한 것이다. 그 후부터 수표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회도 중재한다고 했지만, 재산 욕심 때문인지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노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목사, 교회를 매입한 목사와 이야기가 다 됐소. 수표와 교회 이전 서류를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 테니 수원 모 대학 주차장으로 오시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니 법무사 사무실이나 은행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러면 일 처리가 복잡해져요. 나만 믿고 나오시오." "그럼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갈 테니 뺏어간 수표를 꼭 가져오라고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서류와 열쇠만 가져오시오." 주차장에 도착하니 노회 임원들이 한쪽에 서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다가왔다.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왔소?" "네, 여기 있습니다. 이제 뺏어간 수표를 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돈은 주지 않고 숲 쪽으로 갔다. 또다시 당할 순 없었다. "다 드렸으니 돈을 주셔야 할 게 아닙니까. 세상에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내게 돈을 요구했던 재정 집사와 불만을 품고 교회를 이탈한 몇몇 신도가 뛰쳐 나왔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꺼냈다. "자, 김 목사. 돈 여기 있소." 재정 집사가 나를 향해 돌을 들고 위협하더니 돈을 낚아챘다. 그리고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도, 재정 집사도 황급히 사라졌다. 혼자 나오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다리가 풀렸다. '아, 도대체 이게 무슨 망조란 말인가. 교회 건물과 열쇠는 저 사람에게 넘어갔고 돈은 재정 집사가 가져갔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목사가 됐다.' 수치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때부터 빈털터리 상태에서 2년간 눈물 흘리며 경찰서와 검찰청을 오갔다. 속이 타들어 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돈을 사랑하며 안정된 삶을 위해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말이다. 내 잘못을 절대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주님께 항의했다. "주님, 왜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제가 잘못한 게 있단 말입니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정말 제게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어둠의 터널이 계속됐다. 한 달이면 끝나겠지 하며 보낸 시간이 2년이나 흘렀다. 내가 경멸스러웠다. 사방이 온통 어두움뿐이었다. 모든 게 싫었다. 빨리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광야에 던져진 존재처럼 모든 희망을 잃은 상황에서 마음 한구석에서 그럴싸한 생각이 떠올랐다. '2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죽자.' 경기도 수원 칠보산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정말 죽으려고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마음의 분노 때문에 기도는 뒷전이었다. 혓바닥이 갈라지더니 기력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몸이 축 처졌다. 금식 17일째 되던 날이었다. 얼굴을 찡그린 채 힘없이 소나무길을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 목사, 네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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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2
  • [가정예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히브리서11: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제목: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점은 엄청나지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냥 인간의 본성대로, 여기서 본성이라고 하면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치란? 그 사람의 보화와 같은 것이지요. 삶의 가치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행복감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가치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란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러나 보편적인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에 과중을 논할 때 다릅니다.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인간의 가치를 논할 때는 믿는 자는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악하게 사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을 잘 속였다.” “도적질 해서 아주 그냥 기분이 좋다.” 이런 것을 또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더러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무가치한 것, 뭐 가치에 넣지도 않지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여러 형태로 분류합니다. 가령 분량의 비유로 할 수도 있고, 또는 온도에 비유로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믿음이 충만하냐 믿음이 적으냐 그런 뜻입니다. 또 믿음이 미지근하냐, 뜨겁냐, 믿음이 차갑냐 하는 형태들입니다. 어찌 보면 더 나아가서는 믿음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이렇게 분류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있어도 전혀 행하지 않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은 전혀 가치가 없지요. 성도들에게 믿음은 최고의 가치여야 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등급을 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죽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이 적다는 것은 믿음이 많다 하는 것과 같이 결부해서 말씀을 드리면 믿음이 많은 사람은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있어도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다 하지요. 또 믿음을 분류할 때 믿음이 뜨겁다 하든지 믿음이 차갑다고 합니다. 믿음이 차갑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었을 때 그 가치가 영적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소리만 해도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그냥 그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왠지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영적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기도하면서 하나님 은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하고는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런데 차가운 사람은 믿었어요. 그런데도 느낌이 오지를 않아요. 마음으로 이게 와 닿질 않아요. 그 와 닿는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믿음을 논해도 즐거움이 없고 믿음을 논해도 감동이었고 그렇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죽은 믿음, 미지근함 믿음, 식은 믿음, 적은 믿음, 이런 걸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그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살아있는 믿음, 이런 믿음을 오늘 우리가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을 때 우리에게 어떤 생활에 방식이 달라지느냐? 달라지지요! 아벨을 보세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그랬어요. 무엇으로요? 믿음으로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어떤 믿음이죠? 가인보다 더 나은 믿음입니다. 더 나은 믿음은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다고 그러면은 그 믿음을 가지고 아벨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벨처럼 살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또 믿음으로 노아를 보세요? 그 경고하던 시대에 아닙니까?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하는 자체가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잖아요? 살아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니까 방주를 짓는 거예요. 믿음으로 받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소리도 노아는 현실적인 소리로 듣는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그냥 뭐 터무니없는 소리로 그렇게 치부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니까 잘못을 따질 것도 없어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우습게 여기면 안 되지요. 그러나 노아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까 그 믿음으로 그 집만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니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까지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요. 그래서 약속의 땅을 언약으로 받습니다.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그냥 적은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미지근한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거의 반 죽어가는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 어떤 것도 쪼개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지시고 더 많은 본을 받으시려거든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가정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최상의 가치로 삼으시고 그 최상의 가치인 믿음으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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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11
  • [옹달샘] 너는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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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6-11
  • [칼럼] 신영지주의를 경계하라
    이 시대의 교회나 크리스천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의 간단한 정의는 타락한 형태의 교의를 가진 한 이단사상으로만 판단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우리는 구원을 믿음(faith)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영지주의는 앎(Gnosis)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한다면 앎으로, 사람의 기원이 신성에 있음을 알고, 이 깨달음을 통해 사람의 구성 중 영적요소인 영혼은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영향으로 기독론에서 있어서도 정통진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는데 예수는 단순한 메시아로 화신하여 나타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대해 우리는 엄격하게 정죄 또는 배격 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영지주의의 현상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우려된다. 영지주의 사상의 적용은 이렇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악은 물질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은 물질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산물이 이원론적 사고가 나오게 되어 구원도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킨 결과 금욕주의 아니면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주의 사상이 영지주의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영적지형도를 볼 때에 신 영지주의(新 靈智主義)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다. 구원은 분명 믿음을 통해서만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기에 다른 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이 절대 진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절대 진리를 적용하여 요구되는 믿음의 현상과 열매와는 사뭇 괴리감이 있게 되어버린 현실이 영지주의 현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신 영지주의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안타까운 영적 현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유방종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 마약, 동성애, 폭력, 범법 등 기타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점점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갈 5:13) 둘째, 행함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신앙행위를 우리는 목숨처럼 알고 지켜왔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십일조 생활이나 헌신의 삶을 한국교회가 강조하며 지켜왔다. 이제는 어떤 것이든 강조를 하면 율법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하셨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약 2:22). 셋째, 천국에서의 부활영생을 잊고 산다. 막연한 천국이 아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신 성자이셨으며, 그 육체가 부활의 육체가 되셔서 승천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절대 소망은 우리의 부활 이후의 영원한 천국의 삶 즉 부활영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나 교계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가치관과 행위들이 오로지 이 땅이 절대 영원한 소망인 것처럼 보이는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무후무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자. 반대로 냉정하게 하나님께서 교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를 깊이 묵상하며 회개하자. 부디 신 영지주의 현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오피니언
    2021-06-11
  • [간증/목회는 영권이다(3)] 무리하게 결정한 교회 건축으로 엄청난 시련
    목사였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빨리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다. 아들과 딸 두 아이가 있지만, 인형 하나 사 주지 못하고 키웠다. '이러다가 아이들 대학이나 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빨리 성공해 그 힘으로 선교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교회를 건축하고 싶어 부지를 달라고 기도하며 땅을 찾아다녔다. 교회개척 8년 차인 1996년 경기도 수원 영통에 991㎡(300평)을 매입하고 교회 건축에 들어갔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509㎡(154평)짜리 건물이었다. "수없이 이사했는데 이젠 내 교회가 생겼으니 이사 안 가도 된다. 세를 올려 주지 않아도 된다!" 매일 교회 주변을 돌았다. 성도도 100여명 모이고 번듯한 교회건물을 가졌다. 하지만 내 영은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해되지 않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가 되질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불안하고 초초했다. '아, 내가 이걸 얻으려고 교회를 세웠나.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이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마음이 드니 영성이 점점 흐릿해졌다. 교회 건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토지 잔금을 치렀지만, 토지주가 근저당을 풀어주지 않았다. 땅을 분할해 우리 교회와 빌라건축업자에게 매매했기 때문이었다. 잔금을 받아 다른 곳에 쓰느라 근저당을 못 풀어 준다고 했다. 교회도 교회지만 빌라건축업자는 근저당에 걸려 빌라를 팔지를 못하고 부도가 날 상황이었다. 그래서 빌라건축업자와 땅주인이 찾아와 애원했다. "목사님, 교회 옆에 붙어있는 땅까지 사 주시면 근저당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싸게 팔게요." 돈이 없었지만, 그 방법 외에는 근저당을 풀 길이 없었다. 싸게 준다는 말에 땅 욕심도 생겼다. 성도의 집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495㎡(150평)를 당시 9000만원에 매입했다. 기도도 깊이 못 하고 영적으로 바닥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훗날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왔다. 교회 재정이 부족해 은행 이자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런 차에 성도들이 시험에 빠졌다. 교회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인의 선행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목사님, 제가 돌침대 대리점을 하는 사람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돈을 갚지 않아 돌침대 3개를 가져왔습니다. 허리도 안 좋으신 것 같은데 하나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미안해 사양했지만, 허리가 많이 아픈 차에 반복해서 권유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여집사 한 분이 교회 옆 사택에 왔다가 돌침대를 보고는 시험에 들었다. "교회가 어려운데도 목사님이 비싼 돌침대를 사고 재정을 흥청망청 쓴대." 성도들도 그때부터 시험에 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담보를 내준 성도들은 불안하니까 담보를 풀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믿음 없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갔고 교회 내에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정말 그곳이 싫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교회를 매각해 부채를 갚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성도들과 의논해 교회건물을 매각하기로 했다. 아는 목사님께 이런 사실을 이야기했다. "오, 김 목사. 마침 내가 아는 목사님이 교회건물을 사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그분을 소개시켜주지." 얼마 후 그 목회자와 교회 건물 매매계약을 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만 받고 잔금은 교회 땅과 건물을 담보로 돈을 빌린 뒤 받는 것이었다. 부채는 건물에 들어올 목회자가 책임지기로 했다. 계약이 체결된 뒤 재정을 맡고 있던 모 집사가 찾아왔다. "목사님, 저한테 돈 좀 빌려주십시오. 제 형편이 무척 어렵습니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안타까운 심정에 계약금 중 일부를 빌려줬다. 그랬더니 며칠 후 그 집사가 또다시 찾아왔다. "목사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집사님,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이 돈은 하나님의 성전을 내놓고 받은 돈입니다. 부채를 갚고 남은 돈으로 다른 성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돈은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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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0
  • 청운교회 설립 31주년 기념 및 중직자 138명 세워
    청운교회는 6월13일 주일 오후3시 대예배실에서 교회설립 31주년 기념 및 임직감사예배를 드린다. 이날 임직식에는 시무장로 5명, 명예장로 3명, 안수집사 41명, 시무권사 77명, 명예권사 10명 등 138명의 일꾼을 세운다. 강대석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셨던 청운교회가 인천에 세워진지 31주년 맞이했다"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더욱 부흥할 수 있도록 기도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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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0
  • [옹달샘] 세 종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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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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