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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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성교회 이전 및 리모델링 감사예배 드려
    포성교회가 교회를 이전하고 리모델링한 후 6일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왕수권 목사의 사회로 박찬영 목사(꿈의교회 시무)의 기도, 신우회 일동의 특송후 강대석 목사(청운교회 시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란 제하로 설교했다. 이어진 순서는 박형보 목사(마전꿈교회 시무)의 봉헌기도, 양상모 목사(형통한교회 시무)의 축사, 부대장의 환영사, 이주찬.심하준군의 축가, 장영수 목사(인도네시아 선교사)의 교회소개후 류광규 목사(예광교회 시무)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포성교회 왕수권 목사는 “교회 이전 및 리모델링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며 “말씀을 전해주신 강대석 목사님과 순서를 맡아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서경노회, 군단 및 동역자 목사님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며 “포성교회를 통하여 군 복음화와 부대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 포성교회 연혁 1978. 8.27. - 성전건축 착공하다. 1978.10.28. - 성전준공 및 봉헌예배 드리다. 1980.10.28. - 포성 선교회 조직하다.(초대회장 장영수목사 선출하다.) 1997. 1. - 군 선교회에서 파송된 권성업목사 부임하다. 2008.10.28. - 포성교회 30년사 발간하다. 2013.10.28. - 포성교회 창립 35주년 기념 및 리모델링 감사예배 드리다. 2017. 1. - 군 선교회에서 파송된 정용훈목사 부임하다. 2018.10.28. - 포성교회 창립 40주년 감사예배 및 기념비 세우다. 2017.1. - 군 선교회에서 파송된 왕수권목사 벧엘교회 부임하다. 2022.10.19. - 포성교회와 벧엘교회가 부대 통합으로 합병되다. 2022.11.6. - 포성교회 창립 44주년 기념 및 리모델링 감사예배 드리다.
    • 교단소식
    2022-11-15
  • 청주 생명수교회 설립 감사예배드려
    청주에 드디어 생명수교회가 설립감사예배를 드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10월 15일 오전 11시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내수동로 170-1번지 예장 서경노회 생명수교회에는 발딛일 틈도 없이 많은 성도들이 모여 생명수교회의 설립감사예배를 드렸다. 서경노회는 지난 9월 교회설립 허락을 받았고 이날 많은 성도들이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사회 김홍식 목사 ▲기도 정덕화 목사 이날 설립감사예배는 서경노회 서기 김홍식 목사의 사회로 증경노회장인 정덕화 목사의 기도, 생명수교회 청년의 특송후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본문으로 노회장 류광규 목사가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설교 류광규 목사 류광규 목사는 설교를 통해 “내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며 “주의 힘을 빌려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 교회를 세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말씀의 반석 위에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축도 증경노회장 이종권 목사 이어진 예배는 증경노회장 이종권 목사가 축도로 마쳤다. ▲축사 양무리교회 곽종원 목사 ▲축사 바른복음생명교회 홍종갑 목사 ▲격려사 호서대학교연합신학전문대학원 원장 김동주목사 ▲권면 증경총회장 박근상 목사 2부 축하시간은 설립 과정을 영상으로 소개를 했고 양무리교회 곽종원 목사와 바른복음생명교회 홍종갑 목사가 축사를 전했다. 이어 호서대학교연합신학전문대학원 원장 김동주목사가 격려사, 증경총회장 박근상 목사가 권면을 했다. 이후 서경노회는 생명수교회 박희재 담임목사에게 교회설립 축하금을 전달했다. ▲담임 박희재 목사 박희재 목사는 교회설립 경과보고후 인사말을 통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며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종에게 개척의 마음을 주시고 여기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이곳 청주에서 터를 세우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가 사람을 살리고 세우듯 생명수교회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생명수교회는 교회 비전처럼 ‘말씀이 주인인 교회’, ‘종과 같이 섬기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교단소식
    2022-10-19
  • 제11회 한반도 통일 청소년 비전캠프 초교파 개최
    한반도벧엘기도원 주최 청소년 캠프가 8월8일부터 10일까지 2박3일간 화성시 반월동 소재 푸른동산교회서 개최된다. 이번 캠프는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청소년들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귀한 축복의 자리로 마련됐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제11회째 개최되는 캠프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란 주제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 및 청년까지 총 80명을 모집하며 영성훈련과 공동체 훈련, 찬양콘서트, 조별 장기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강사진에는 주강사 김권철 목사(푸른동산교회)를 비롯해 백석대신 경기남노회장 이형근 목사, 국제소수민족선교회 대표회장 조강연 목사, 청소년전문 사역자 주재홍 목사와 임우현 목사 등이 등단하며 찬양콘서트에는 하늘소리미션팀 대표, 번개탄TV 대표 허용석 목사, 김브라이언 CCM찬양사역자, 김선정 개그우먼 등이 함께 한다. 강의 주제는 ‘오컬트문화와 스마트폰에서 마을을 지켜라’, ‘청소년들이여 꿈을 가져라’로 주최측은 대중문화속에 숨겨진 오컬트 문화란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로 생기는 폐해와 문제점을 알게 해 청소년과 청년에게 믿음의 참된 소망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편, 이번 캠프는 한반도벧엘기도원이 주최하고 백석대신 경기남노회 교육부와 푸른동산교회 교육기관이 주관하며 ‘대부도33호 할머니 칼국수’, ‘행복한가게’, ‘굿모닝골프’, ‘국제소수민족선교회’ 등이 후원했다.
    • 교계소식
    2022-06-27
  • 국제소수민족선교회 제2대 이사장 및 대표회장 취임
    국제소수민족선교회(I.E.M.M)는 24일 화성시 반월동 소재 푸른동산교회(담임목사 김권철)에서 제2대 이형근 이사장 및 조강연 대표회장 취임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 1부 예배는 사무총장 김권철 목사의 사회로 이사 김현우 목사의 기도후 이형근 목사가 ‘어떤 취임식’(마 3:13~17)이란 제하로 설교했다. 이형근 목사는 설교를 통해 “교회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우선이고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주의 종 뜻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부 취임식은 이사장에 취임하는 이형근 목사와 대표회장에 취임하는 조강연 목사에게 취임패를 전달한 후 신임이사(정해성 목사) 임명식을 가졌다. 이사장 취임사에 나선 이형근 목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섬기고 겸손히 행하며 순종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며 “박수치는 자리가 함께 눈물 흘리는 자리를 가고자 한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받는 소수민족들에게 가는 선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조강연 대표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중책을 맡겨 주셨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이사진에 함께 해 주어서 감사드린다”며 “기쁨으로 섬기며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로 바란다. 맡은 사명 잘 감당하겠다”고 전했다. 축사에 나선 예장 순장총회 총회장 서정환 목사는 “취임하는 두 분을 통해 선교회가 하나될 것을 믿기에 축복한다”며 또 “땅의 복과 하늘의 복이 날마다 차고 넘치는 선교회가 될 것을 확신하고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역을 감당할 동안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믿고 축하한다”며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에는 창대할 것을 믿고 축하한다”고 축사했다. 이어진 취임감사예배는 오산대광교회 홍순예 권사의 축가, 이레교회 그레이스워십단의 워십과 푸른동산교회 박예진 학생의 태권무 축하공연후 조강연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국제소수민족선교회는 세계 열방에 있는 소수민족 복음화를 위한 선교단체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 복음을 전하며 선교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 교계소식
    2022-06-27
  •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선교사로 나가기 직전 한참 목회에 열중하고 있을 때 2천년대를 전후해 한국교회에 봄바람처럼 찾아온 열풍이 가정교회였다. 필자가 소속된 노회에서도 당시 가정교회에 대해 매우 권위있다고 자타로 부터 인정받는 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 했었다. 내 자신 그 때를 깃점으로 만 2년간 가정교회-목장교회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던중 그야말로 무엇엔가 이끌리듯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경험이 있다. 15년의 중국사역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산동성 칭다오에 있는 청도한인교회를 7년이상 출석을 했었다. 선교사 신분이다보니 소규모의 교회보다는 규모있는 교회라야 목회자에게 부담이 안된다고 판단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큰교회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2천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가정교회 바람이 2005년 부터는 중국의 한인교회에도 불어오게 되고 출석하던 교회도 2천년대 말부터 목장교회를 도입하였다. 사실 담임목사가 목장교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목회철학이 확실하다면 명칭이 가정이든 목장이든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회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청도한인교회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의 한인교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단체는 두날개였다. 두날개를 이끄는 대표는 청도한인 담임목사의 후배였는데, 아마도 후배가 이끄는 무브먼트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국 휴스턴한인교회 최영기목사의 가정교회에 교회 대표들을 보내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전 교회를 가정교회 체제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한인교회의 제직들은 대다수가 제조업체의 CEO아니면 무역회사 대표들이었는데, 전가족이 이주한 가정들도 있지만 30%정도는 남성만 사업차 현지에 상주하는 가정이었다. 카리스마가 강한 담임목사는 안수집사들을 모두 목자와 목녀로 세워 목장모임을 안수집사의 가정에서만 모이게 하였다. 문제는 매주 모임을 시작하기 전 전체 목원들이 모여 식사친교를 하는데 있었다. 보통 7~8명에서 많은 경우는 10명이상의 인원을 매주 식사대접 해야하는 안수집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담이었다. 목자를 맡고있는 안수집사회를 중심으로 목장모임에 대한 건의가 있었지만 담임목사는 자신의 넘치는 카리스마로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목장교회라는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만 끓이던 안수집사들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규정을 제정하는 규칙개정이었다. 통상 20년이상 연속으로 목회하고 은퇴를 할 때 결의를 통해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는다. 하지만 담임목사는 외국교회라는 점을 부각하여 15년이상 목회하고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추대해 줄 것을 요구했고, 평소 가정교회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절대반대"가 결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교회는 결국 그렇게 시험에 들어 1년이상을 목사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을 하게되고,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신자들도 한가정 두가정 교회를 떠나기 시작해 교회는 반토막나고 말았다. 가정교회-목장교회가 지향하는 목회는 "공동체결속"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재현하는 목회운동이다. 어쩌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꿈같은 목회방식이다. 중국 공산정권이 1949년 부터 1972년 까지 채택한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그들을 가난으로 부터 구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채택한 방식이 토지분배 정책이었다. 식구수대로 토지를 분배하여 마치 임대료를 지불하듯 일정액을 토지세로 납부하고 모두 자신들이 소유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장교회-가정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돌아보아 형편을 살피며 기도하자는 것이다. "서로 돌아본다"는 목회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지체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합심기도이다. "두세 사람이"마음을 모아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중국의 한인교회들 중에는 지역에 따라 중국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교회예배를 중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동기가 목회하는 광저우한인교회의 경우 거의 반년 가까이 예배모임이 중단된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목장교회가 정착된 덕분에 교회는 흔들림없이 목장별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교회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중국정부는 중국 전체에서 겨우 몇개의 한인교회에게만 모임을 허락해주고 그외의 교회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8일 모친상을 당했다. 코로나 시국이니 대다수는 계좌이체 부의금으로 문상하는 문화가 장착되다시피한 상황이다. 노회에서도 조위금으로 문상을 대체하고 있다. 더군다나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이다보니 문상객은 가까운 극소수의 친인척으로 한정되게 된다. 추천을 받은 근로복지 인천병원 장례식장에는 3개의 분향실이 있는데, 같은날 시차를 두고 안치하여 발인도 같은날 오전 6시반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을 하였다. 1층은 목회자 가정이라 각지의 목회자들이 동참해 거창한 발인을 하였고 우리 옆방도 외동딸 가정임에도 출석하는 교회가 주도하여 결코 외롭지않은 발인을 하였다. 문제는 바로 우리 모친이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하나에 손자하나! 결국 셋이서 조촐한 발인예배를 드렸고, 운구할 사람도 모자라 장례식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화장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신을 영구차에서 시신보관소에 안치한 후 순번이 왔을 때 다시 소각로로 이동하기 위한 운구에서도 화장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이보다 처량한 장례식도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공동체는 위대하다. 제아무리 코로나의 힘이 막대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공동체는 이기지 못한다. 문제는 담임목사의 공동체에 대한 목회철학이다. 공동체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과거처럼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동체라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초상집 문상을 꺼리는 사회관습 마저도 뛰어넘을 만큼의 결집력으로 뭉쳐진 공동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용회선교사> 대신35회 1986-2003 경안노회 중부교회 담임 1997 경안노회 3대 노회장역임 2003년 4월 주중선교사로 파송(만15년 사역) 환경책임보험 개선사항 알아보고 퀴즈 이벤트 참여하기 상담 신청하기 »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2-06-25
  • 커피와 종교
    오늘날 석유 다음으로 무역규모가 큰 품목이 커피라는 사실은 놀랍다. 석유는 인류의 모든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니 당연히 무역품목 1위라는 사실이 이해되지만,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치료하는 약품도 아닌 커피가 무역품목 2위라는 사실은 이해가 안 될 현실이다. 대개들 커피는 에티오피아가 발원지라고 말한다.커피의 효능을 발견한 사람은 유목민들이라는 설이 있다. 커피 열매를 먹은 양들이 예민한 반응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목동들이 맛을 보면서 발전했다는 그럴듯한 가설이다. 이슬람 율법에는 음식에 대한 규제가 많아 성직자에게 섭취가 가능한지를 의뢰하게 되고 커피를 다양한 방법으로 테스트한 성직자들을 통해 커피의 각성효과가 밝혀져 수도승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음용되었다고 그 기원을 추정한다. 성직자를 비롯한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커피가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되면서 커피는 "잠을 쫒는 각성제"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수도를 목적으로 하는 수도자는 자신의 묵상활동의 적인 잠을 쫒아야 했기에 커피의 힘이 필요했을 뿐이다. 잠을 쫒는 카페인 성분은 궂이 비싼 커피가 아니어도 된다. 로스팅 과정을 위해 오늘날과 같은 수천만원대의 로스팅기도 필요치 않다. 싸구려 프라이팬에 주걱으로 저으며 볶으면 되고 1대에 수백만원 하는 말코닉 그라인더가 굳이 필요치 않다. 절구에 넣고 빻아 가루를 내도 카페인 성분이 구현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분쇄된 원두 가루를 액체로 추출하기 위해 수백~수천만원하는 추출기가 없어도 카페인은 추출이 가능하다. 분쇄된 가루를 자루에 담아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족하다. 수도자들은 오로지 커피 섭취의 목적인 카페인만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수도자들로부터 신자들에게 전래가 되고 귀족들에게 전파된 커피는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탈바꿈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수도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굳이 커피로부터 각성용 카페인 성분을 보급받을 필요가 없다. 커피가 수도자들에게는 잠을 쫒아주는 각성제였다면 그들로부터 커피를 소개받은 일반인들에게는 취미 생활용 음료일 뿐이다. 돈이 없는 수도자들은 최소한의 과정을 거쳐 추출된 커피액이 필요했다면, 돈 많은 귀족들은 좀 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보다 더 향상된 커피음료가 필요했다. 기왕이면 더 좋은 맛을 구현해줄 품종이 필요했기에 다양한 커피의 종자가 필요했고 좀 더 훌륭한 맛을 구현해줄 가공방식이 개발되게 된다. 나무에서 채취한 열매를 햇빛에 말려 가공한 것과 즉시 껍질을 벗겨 씨앗만 건조해 가공한 커피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다양한 방식을 거쳐 확보된 생두를 어떤 방식으로 가열해 볶느냐에 따라 전혀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볶아진 원두도 분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구현한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500백여만원에 판매되는 말코닉과 같은 그라인더가 개발된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길을 통해 각종 추출기가 개발되었다. 커피는 최초의 발견을 통해 오랜 기간 수도자들의 잠을 쫒고 각성효과를 제공하는 음료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커피가 돈많은 귀족들에게 주어졌을 때 그들은 커피의 용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커피의 발전은 득일까 낭비일까?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커피 열풍은 수많은 중년 직장인들에게 창업의 꿈을 심어줬다고 하였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카페들은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만 배를 불려 줬지만 결국은 모두를 빈 털털이로 만들게 된다. 커피가 종교인의 수도활동을 보조하는 착한 친구로만 존재했다면 오늘날처럼 커피가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양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와 결합을 통해 커피는 모든 인류로 부터 사랑받는 음료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좋은 맛을 추구하는 욕망은 커피의 본래 목적을 벗어나 낭비라는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가장 먼저 커피를 음용했다는 이슬람 수도자이던 카토릭의 수도자이던 불교의 승려이던 그들이 원하는 카페인 성분은 다소 싸구려로 취급받는 브라질커피이든 베트남 커피이든 상관이 없다. 스타벅스 커피처럼 쓴맛만 강해도 상관 없다. 굳이 비싼 루왁커피가 아니어도 되고 세계 3대 커피라는 자메이카 마운틴, 하와이 코나, 파나마 게이샤가 아니어도 된다. 오로지 먹고난 다음에 잠을 쫒아주고 정신을 맑게해주는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하면 된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공통의 "구원"이라는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커피를 세계무역 2위 품목으로 확대시키듯 종교산업으로 확대한 탓에 종교는 일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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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칼럼
    2022-06-25
  • 자본가로 성공하려면
    근래에 인상 깊게 읽은 컬럼이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 관한 글이다. [세상에서 자본가로 성공하려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반면 사회주의자로 성공하려면 사람들을 협박하는 데 능숙해야 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물론 첫 번째 명제는 자본가가 자기 자본을 투자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소비자 효용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본래의 뜻이다. 자본가와 이재명 간에 차이가 있다면, 이 지사는 자기 자본이 아닌 남의 돈, 즉 재정을 흩뿌려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준다는 점 뿐이다.] 눅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불의의 재물"이란 무슨 의미일까? 주님은 청지기 비유를 통해 불의 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를 예화로 드셨고 그가 비록 주인의 재물을 함부로 사용한 행동은 불의 하지만 그 재물을 혼자 사용하지 않고 타인과 나눈 점은 칭찬 받을만 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반대로 자기 자신은 불의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힌 청지기는 "악한 자"로 정의하셨다. 한국 속담에 "욕하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답습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구호는 "정의"이다. 즉 자신들은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정의한 정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고 평한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빙자해 재난 지원금 이라는 현금을 살포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일이다. 그것이 현금이든, 상품권이든 어떻든 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치의 재화를 아무 수고도 없이 거저 주겠다는데 누가 마다할 것인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업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의 계층이 있다. 주로 자영업자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가들 일 것이다. 집합 금지 규정 때문에 피해를 본 대중 집합 업종의 종사자들은 당연히 국가의 능력 범위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피해를 경험하지 아니한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까지 준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다. 더군다나 배포의 싯점이 선거를 전후했다는 것은 타락 중의 타락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활동을 한다. 운이 좋아 든든한 파송 교회를 둔 선교사는 그야말로 아무 근심 걱정이 없다. 파송교회가 약해도 인맥이 튼튼한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욕만 앞서는"무모한 선교사들의 경우는 그 고생이 이루 말로다 못할 정도에 이른다. 그야말로 선교사들 간의 빈인빈 부익부 현상은 이해가 안될 만큼 극심하다. 후원자가 선교사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그의 활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확신하기 떄문이다. 보이지 않는 후원자는 자신의 재정이 "선한 용도"로 쓰인다면 만족한다. 그 선한 용도는 꼭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사역에만 한정될 수는 없다. 때로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 선교사를 돕는 일에 쓰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의 "넉넉한 형편"의 선교사들은 절대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동료"에게 냉정하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목회자는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의 부흥회 강사로 "3부자 목사"를 초대했다. 첫날은 아버지가 맡고 둘째 날은 큰 아들 목사가 셋째 날은 둘째 아들 목사가 강사를 맡는 획기적인 아이디어 였다. 초대 받은 3부자 목사는 자신들을 초청해준 목사가 너무나 고마웠을 것이다. 집회를 하고 몇 년이 지난 후 그들을 초대해줬던 목사가 담임 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무임 목사가 됐을 때, 초대 받았던 큰아들 목사가 자신의 교회 협력 목사로 채용해 주었다. 그야말로 자신들을 인정해주고 초대해준 은혜를 갚는 아름다운 결단일 것이다. 주님은 재물을 땅에 쌓아 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생일이 빨라 나보다 먼저 기초 연금 30만원을 수령하는 아내는 한 푼도 안 쓰고 모두 모아 두었다. 한 푼 두 푼 쌓이는 현금에 재미를 느꼈는지 월 얼마씩 지급하는 생활비가 2~3주 지나면 "돈 떨어졌으니 돈을 더 달라"고 요구를 한다. 그러면 "카드가 있고, 꼭 필요한 재래시장에서만 사용하는 현금인데 왜 그리 빨리 떨어졌냐"고 물으면 어떻든 돈이 떨어졌다고 요구를 하니 또 주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현금 쌓이는 재미에 빠진 아내는 그 돈을 저금해 버렸던 것.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금년 초 모친의 장례식을 마친 날 화장장에서 소각로 앞에서 대기하는 시간에 아들이 "제가 부모님께 고백할게 있습니다"라며 무겁게 입을 뗀다. 내용 인즉, 투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던 아들이 투자 실수로 빚을 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은행에 이자를 주느니 부모님께 드리겠습니다"하는 것이다. 물론 살다보면 투자에 실패를 할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치는 못하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아마 네가 진 빚은 그보다 2~3배는 되겠구나"싶은 마음이 들어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그 대신 꼭 갚아야 한다"로 마무리 했다. 할머니가 남겨준 현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요청했을 것인데, 다행히 아내는 "내가 널 잘 못 키운 죄이니 내가 갚아주마"로 마무리해 주어 나로서는 내심 고맙게 생각을 했다. 그토록 내가 필요할 때 "당신 갖고 있는 돈 좀 줘봐!"하면 그토록 냉정하게 뿌리치던 아내였는데, 자식 앞에서는 무참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그토록 내 돈을 빼앗더니 결국은 이렇게 됐구만!" 해 봅니다. 아내의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지만 어떻든 또 다른 형태의 마태복음 6:19말씀의 실현이 된 셈이다. 요즘 불의한 재물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새삼 묵상을 하면서 재물을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의 역할이 결코 쉽지않음 을 고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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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 동네 힘쎈 형
    명절 때가 되면 역시나 가장 명절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릴 때 성장한 강화도 마니산 밑동네 화도면 내리는 족히 백여가구 이상의 비교적 큰 시골동네 였는데, 또래의 아이들을 비롯해 위 아래로 3~4살 터울의 개구장이들이 좀 많이 있었다. 수십명의 동네 개구장이들을 통솔하는 5년 선배가 있었는데, 막강한 카리스마로 늘 동생들의 막강한 대장이었다. 대장 형님이 동네의 개구장이들을 확실히 통제하다보니 요즘같은 왕따니 뭐니 하는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힘쎈 미국이 국제경찰 노릇을 하는 격이라고 할까? 더러는 미국을 비판하기도 한다마는 힘쎈 형님이 모두를 확실히 통제한다면 오히려 균형잡힌 평화가 유지될 수 있기에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의심받는 중국 후난성 우한을 방문해 역학조사를 벌였다고 하였다. 그동안 중국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하여 "어림 없는 소리"라고 거부했었다. 더군다나 WHO사무총장은 친중파 인사이다. 거듭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하여 떠밀리듯 조사단을 받아줬지만 이미 그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초의 발원지가 아닌, 발견장소로 알려진 우한의 화난시장이라는 장소의 가금류에서 "일부 흔적은 발견이 됐지만" 그것이 발원지라 단정할 단서는 아니고, 다만 "외부로 부터 그 시장으로 유입된 것은 틀림이 없다"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발표를 하면서 중국정부에게는 면죄부를 제공한 셈이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을 못해 14억 중국인들은 수십년 동안 아침에는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어야 했다. 지금도 2/3의 인구들은 습관대로 꽈배기처럼 생긴 밀가루 튀김과 콩죽, 그리고 좁쌀죽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적어도 먹고 싶은 음식은 원하는 만큼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단순히 싸구려 물건을 만들어 해외로 수출만하던 국가에서 이제는 필요한 물건들을 외국으로 부터 사들이는 큰 손이 되었다. 중국에게 잘못 보인 국가는 그들의 무력 시위에 시달려야 한다. 프랑스 수상의 말 한마디로 그들은 중국내에 진출해 있는 대형 마트 까르푸는 불매운동에 시달려야 했고, 섬의 영유권문제로 일본과 다툴 때 중국내 일본차량들은 엄청난 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인들의 무력행사가 절정을 이룬 것은 바로 한국정부의 사드배치와 관련된 롯데마트 불매운동이었다. 앞서 있었던 프랑스 까르푸나 일본차 불매운동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가혹한 보복이 가해졌다. 중국정부는 아예 소방법위반이라는 말도 안되는 구실로 영업정지를 시켜버렸다. 처음에는 소방법 점검으로 3개월씩 몇번의 연장으로 결국 롯데마트로 하여금 엄청난 손실을 떠안고 중국을 떠나게 만들었다. 한국은 프랑스나 일본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는 동네 머저리로 취급을 받은 탓이다. 프랑스는 그래도 자기들이 "더 얻어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였고, 일본역시 자기들이 보유하지 못한 기술력이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어느정도" 분풀이가 됐다고 생각될 때 "슬그머니"없던 일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한국에 대한 분풀이는 그야말로 끝장을 보자는,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식 이었다. 중국인들은 한국에 대하여 "과거 머슴"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소학교부터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은 우리에게 조공을 바친 국가"라고 배운다. 시진핑이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에게 고려시대부터 조선말기 까지 천여년에 걸친 중국과 한국의 과거사를 설명했고, 그 설명을 들은 트럼프 역시 "수긍할 수 밖에 없도록"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점은 변함이 없다. 중국정부와 잘 지내야 한다는 친중파 권력자 들의 속셈은 도대체 무엇일까? 정말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상대라서일까?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증국에는 한국기업이 상당히 많이 진출해 있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은 제조업에 필요한 상당한 자재들을 한국에서 수입한다는 점이다. 어떻든 국제관계 이다보니 중국내 한국기업은 중국업체로 분류가 되고 수입으로 분류가 된다. 중국내 진출한 국내기업들이 수입하는 금액을 제외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무역규모는 절반이하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단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중국산 물건을 구매해 중국으로 하여금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도록 협력을 했다. 중국이 한국기업인 롯데를 단지 자신들이 반대하는 사드기지를 협력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살을 냈어도 한국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 상관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롯데는 아무 죄가 없다. 군사적으로 필요한 위치가 하필 롯데소유의 토지였기 때문에 다른 땅과 교환에 동의해준 것 뿐이다. 중국의 횡포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들은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려 서해바다를 야금 야금 침범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학수준이 열악한 중국에서 코로나백신이 만들어진 사실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전문가의 진단은 간단하다. "자신들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구조를 분석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한의 연구소에서 실험용으로 쓰여진 가금류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돼 시장에 판매되면서 급속도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는 전문가의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금번 WHO조산단 역시 "사실대로 발표할 수 없는"애로가 있다. 어떤 보복이 닥칠지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가장 그들의 횡포에 시달릴 나라는 한국이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 백년 이상" 지배해온 한국의 발전이 배아프기 때문이다. 김치가 자기들의 문화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는 그런 밑바닥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주장이다. 그들은 심지어 "한글의 원조는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족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조선도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섬겼으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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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 노래 경연에서 배우는 지혜
    나는 노래를 잘 모른다. 트롯과 발라드의 구분을 못한다. 째즈나 국악이야 쟝르가 워낙 차이가 나니 구분이 되지만. 요즘 한국인들의 트롯열풍이 방송사마다 트롯 경연이 집중된 느낌이다. 한국의 크리스챤들은 보수적인 세뇌교육을 받은 탓에 일반 세속적인 노래를 별로 가까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세상도 바뀌고 더군다나 코로나 시국이다보니 방송을 가까이 하게 되지만 딱히 눈길을 사로잡는 방송 프로가 없다보니 자연히 인기있다는 트롯 방송을 보게 된다. 대박을 꿈꾸는 가수지망생들 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노래에는 변할수 없는 기본원칙이 있다. 바로 전달력이다. 가수의 천부적인 목소리에 작사 작곡가의 의도를 담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노래의 목적이다.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외국가사의 곡 즁에도 특유의 멜로디나 전달하는 가수의 음성 덕분에 감미롭게 전달되는 노래도 보게된다. 가수는 자신의 재능이전에 작사 작곡가의 의도를 분석해야 한다. 분석되어진 의도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자신만의 창법에 실어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야말로 곡의 해석이다. 해석을 잘하는 가수가 목소리좋은 가수보다 훨씬 유능한 가수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만 믿고 전혀 곡의 해석에는 관심이 없는 가수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가수들은 선택을 받지 못한다.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을 뿐이다. 심사위원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야 한다. 전문가는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부분을 알고 있다. 가수가 지식없는 일반인의 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는 속이지 못한다. 전문가는 원칙에 충실한 경연자를 선택해 준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따금 부흥사들이 말도 안되고 원칙에도 맞지않는 적당한 사탕발림으로 청중을 현혹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불법이다. 그야말로 어리석은 인도자일 뿐이다. 설교자는 자신이 전달하고자하는 본문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수가 자신의 음성이라는 악기를 이용해 전달하듯 설교자역시 자신의 표현력이라는 수단에 실어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아무리 본문해석을 잘하고 내용이 풍부하다 할지라도 청증을 지루하게 한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될 수 없다. 그러기에 설교자들은 요즘 유행하는 음악경연을 보면서 타산지석을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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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 가치 있는 비전을 위하여(롬 9장1-5절)
    가치 있는 비전을 위하여 롬 9:1-5 로마서 9장의 시작은 이전 1-8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바울의 급격한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에서 “누가 우리를 고발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으리요.” 이렇게 기쁨이 넘친 바울이 갑자기 로마서 9장에 들어와서 “나에게는 큰 근심이 있다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 말합니다(1-2절). 바울이 왜 갑자기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고백합니까? 자기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이 구원의 감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이 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를 만나 그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죄로부터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족들은 여전히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치지 않는 고통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보다도 복을 많이 받았던 사람입니다(4-5절). “양자됨,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 믿음의 조상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 이런 8가지의 복을 받은 그들은 정말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인을 의인되게 하고 구원받게 하는 이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오셨어도 그 예수님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를 다 핍박하는 자들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이 그토록 아픈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는 예수 믿어 의인되어서 너무 좋은데 자기 동족들은 예수님을 오히려 핍박하는 자들이 되었으니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기는 저주를 받더라도 자기 동족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가족, 내 친척, 내 동족들을 어떻게 예수 믿게 하겠습니까? 첫째,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영혼구원의 첫 번째 비결은 사랑에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을 지라도 그들이 다 예수님께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사랑하는 이 동족들은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줬던 자들입니다. 바울을 돌로 쳐 그를 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닙니다. 엘리 위제르는 말하기를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교육의 반대말은 무지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죽음 모두에 대한 무관심이다.”고 했습니다. 가족에게 복음전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분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들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관심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찾아가 시간을 드리세요. 돈을 투자하세요. 그게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그리할 때 그들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복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응답이 있으나 없으나 가족을 위해 친척을 위해 조국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6C 영국의 영적 거장 존 낙스는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 아니면 제 목숨을 거두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가나안 농촌 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는 “조국이며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나를 넘어, 내 가족을 넘어,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사람의 크기는 기도의 크기입니다. 여러분은 나만을 위하여 내 가족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이만큼의 사람입니다. 내 교회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이 만큼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민족만한 큰 인물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나는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바울은 자기 동족들이 주께로 돌아온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 없어져도 좋겠다. 내 목숨이 끊어져도 우리 민족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고 외쳤고 부르짖었습니다. C.C.C 창시자 김준곤 목사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여 이 민족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피묻은 계절이 오게 하옵소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한국의 영적 거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요? 우리가 정말 붙잡아야 할 소중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바울의 큰 고민과 근심 그 치지 않는 고통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인생을 삽니다. 모세는 우리의 인생이 화살같이 날아간다고 말하였습니다. 걷히는 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한번 밖에 없는 곧 없어진 인생을 정말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파송된 하나님의 대사요 사자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시간과 돈과 물질과 재능과 모든 은사를 복음전도를 위해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치 있는 일에 불을 붙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열정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절대후회하지 않을 가치에 비전을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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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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