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8-10(토)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 대안학교의 명암
    칭다오에 거주할 때 후배 2명이 대안학교에 근무를 하게된 동기로 한국의 대안학교라는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가 2천년대 중반이었음에도 중고등과정 학생들의 부담금은 매월 1백만원대 였다는 점에 깜짝 놀랄 수 밖에. 당시 한국의 고등학교 3개월 수업료가 30만원대 였고 우리 아이가 재학하던 기숙형 특자 고교의 1기분 수업료가 90만원 미만이었던 사실과 비교해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비싼 수업료가 산출되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듣고보니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다. 당시 중국에도 재중한인 자녀를 위한 한국국제학교가 여러지역에 있었는데, 연변한국국제학교만이 한국과 동일한 수업료를 징수했고 나머지 한국학교들은 수익자 부담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과 비교할 때 사립학교 수준의 수업료를 부담해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일하게 연변한국학교만이 한국의 NGO가 설립한 덕분에 당시 연변과기대 소속의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한 덕분에 한국과 동일한 수업료로 운영이 가능했지만 나머지 교육부인가 한국학교들은 교과서이외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전액 수익자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안학교는 그마저도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정부에서 교과서를 지원하고 싶어도 중국정부가 "외국교과서 통관불허"의 원칙을 고집해 반입이 안되기 때문이었는데, 현재는 영사관을 통한 반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의 정부인가 초중고교들은 지자체에서 교사의 보수를 지급해준다. 하지만 해외의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그 어디로 부터도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 대안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내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대안학교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 대안학교의 목적은 두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기존 공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이고, 두번째는 특별한 목적의 교육을 위해서일 것이다. 한국에는 특목고로 표기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있지만 대다수 특목고는 "고급 입시전문학교"로 분류가 된다. 특목고는 아무나 입학하지 못하지만 특수목적의 대안학교는 재정부담의 능력만 된다면 아무나 입학이 가능하다. 10여년전 부터 기독교계 특히 대형교회를 중심으로한 특수목적 지향의 대안학교들이 많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도권의 교육이 편향된 경우가 많으니 나름 의미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특히 현정부와 같은 좌편향 시대의 공교육은 심각하기 그지없다.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세뇌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요즘 대안학교가 한국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연일 메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좋은 의미가 아닌, 매우 부정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생각하기에는 "비대면 정책이면 그 정책에 따라 휴교할 것이지!"라고 일단 그들을 탓하고 본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휴교하지 못하고 계속 기숙형 학교를 운영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속사정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재정은 몫돈이다 보니 매월 납부가 대다수 현실인데, 학교가 휴교상태에서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교육비를 받기가 힘들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암암리에 교육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속사정이 있다. 아무튼 정부로서는 그들이 왜 대안학교를 운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들은 "비인가학교"라는 점만을 부각하려 한다. 즉,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는 무법천지의 집단이라는 점을 은연중 세뇌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인들 역시 "기독교집단이 이 사회의 문제집단"이라고 공격하려 든다. 정부로서는 자신들의 방역실패에 대한 분풀이 대상으로 역이용하는 셈이다. 정부가 "좀 더"대안교육이 필요한 세대들을 위해 투자한다면 기독교단체들의 대안교육 기관은 굳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기독교기관이 설립한 교육기관에 대해 "설립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시간 배려"만 해준다하여도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대안학교들은 만들어지지 않아도 된다.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2-06-23
  • 목사와 자살
    현재 서울에는 죽은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있다.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는 목사도 목회가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이미 죽은지가 8년도 넘는 목사가 목회를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과학의 발달로 그가 생시에 녹화해둔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목사의 죽음에 대해 안다면 기절할 일이다. 평소에 "가고싶은 하늘나라"를 노래하던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의 목을 맸기 때문이다. 의사는 우울증 때문이라 진단하였다. 최근의 코로나 시국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특히 타격이 큰 업종이 관광업과 요식업 등등의 대면활동이 반듯이 필요한 업종들이다. 그중에는 교회도 포함이 된다. 그래도 기반이 잡힌 교회는 비대면 상황이라 할지라도 십일조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할테니 그나마 형편은 좋을 것이고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 입장에서는 "한가한 여가"를 즐기는 일종의 안식년 기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척교회를 비롯한 미자립 교회로서는 이보다 더한 타격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개척교회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합법적으로 주일예배를 비롯한 대면예배를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꾀돌이 신자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주일헌금을 비롯한 각종 헌금도 안해도 된다. 헌금을 안 한다고 어떤 형벌이 내려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안되는 교인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목사에게는 청천벽력이다. 임대료와 생활비를 조달할 길이 막연하다. 내 주변의 분들은 내가 신학교를 간다고 할 때 두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주로 친가와 주변의 분들은 "굳이 너까지?" 하는 반응이었고, 외가쪽 친지들의 반응은 "오 놀라운 결단이구나!"였다. 친가 쪽에는 이미 목회자들이 여러명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가쪽에는 목회자가 없다. 나의 외 증조부는 강화군 화도면 내리감리교회의 영수였는데, 별명이 "성신할아버지"였다고 하셨다. 아마도 성령충만 하셨기 때문이고 평신도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신 분이시지만 아쉽게도 자손중에 목회자는 없다. 오랫 만에 외손 중에 목회자가 나왔으니 신학교 진학을 굳이 반대할 이유도 비방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반드시 신학교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20대 초 고난의 시기에 돈을 벌기위해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할 때 폭풍우 속에 바다에 추락해 한시간 이상을 물속에서 사투를 벌일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도 신학교 재학 기간에는 저축해 놓은 돈으로 염려 없이 지냈지만 졸업 후 교회를 개척한 이후 부터는 말로 다 못할,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동생이 결혼식을 하는데 입고갈 양복이 변변치 못해 청년 시절 입던 10년도 넘은 양복은 얼마나 입었던지 옷깃이 헤어진 상태였지만 창피를 무릅쓰고 입고가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임대한 건물은 월세였지만 임대주는 계속 전세로 돌려 달라는데,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10개월 만에 쫒겨나고 말았다. 아쉬운대로 사택에서 몇 주간 예배를 드리던 중 반가운 제안이 들어와 경노당 부속건물을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만으로 임대해 염려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개척은 어렵다. 너무나 어렵다 보니 목회자는 때로는 탈법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한다. 생존의 몸부림이다. 목회자가 소속된 상급 단체나 선배들은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원칙만을 강조할 뿐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어느 개척 교회 사모가 자살을했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접하며 "어찌 이럴수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여 년의 목회를 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중국에서 20대 초 태풍 부는 밤바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하나님과의 약속이 떠올라 결국 목회를 사임하고 선교사로 떠나게 된 동기이다. 애당초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찾아간 선교이니 후원금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비만큼은 스스로 해결하는 원칙이었다. 그래도 지인들을 통해 월10만원씩 지원되는 후원금은 모두 선교비로 쓰여 졌다. 소유하던 아파트 매각대금은 자녀 교육비와 전세금을 제외하고 10여 년간 걱정 없이 지내게 해주었다. 이미 나이 먹어 시작한 선교사역 이다보니 언어 습득에 한계가 있었고 사역 역시 정보통신을 이용한 사역 이다보니 자연히 사역자들을 비롯한 현지 교민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과 정비를 통해 약간의 선교비를 조달을 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컴퓨터는 필요 없는 오로지 사무용으로만 밀려나면서 자연히 부업도 사라지고 말았다. 집을 팔아 저축했던 재정이 바닥나고 그렇다고 부업으로 소득을 올릴 상황이 안되다보니 심지어는 주택 임대료 조차도 조달할 길이 없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귀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것 저것 따질 여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35년을 남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바닥 생활이란 더이상 말할 수 없는 "광야로 쫒겨나 목동이 된 모세"이다. 비로서 왕자에서 하루 아침에 목동이 된 모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사는 벼슬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대리운전도 하고 공공근로도 해야 한다. 왜 자살을 생각해야 하는가? 자신을 너무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47년전 죽었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에 내가 감당 할수 만 있다면 그 어떤 노동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 살자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준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못될 것이다.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2-06-12
  • 단순한 교회, 단순한 목회
    본문 : 에베소서 4:11-14 ???? 이끌면서…! ???? 입맛이 매우 까다로운 맹구가 중국집에 갔다. 2000년 전의 한 마을인 베다니를 떠올려 본다. 이때 예수님은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신다. 단순함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 단순함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 사람들은 단순함에 목말라하고 있다. 애플사 구글 디자이너. 인테리어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파파존스 회사(papa john) 마케팅의 달인들 성장하는 교회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역대하 13장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80만 대군을 끌고 남유다와 맞선다. 유다는 40만이다. 여기서 정체성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한 교회의 특징(단순한 교회의 책에서) 1.명료함(목표. 사명) 2. 활동(목표를 이루는 과정) 3. 조정(유연성) 4. 집중(본질) 예수님은 단순함의 대가이다. ???? 교회란 무엇인가????? 리차드포스터의 Simple Life에서 1. 물건을 살 때에 실용성을 보라. 2. 탐닉(빠지게 하는 것)하게 하는 것을 물리치라. 3. 주는 습관을 기르라(버리지 말고). 4. 광고에 속지 말라. 5. 자연을 감상하라(부유함과 넉넉함과 평온함).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이야기 단순한 목회 철학 복음은 능력이 있다. 교역자에게 경쟁심이 무섭다. 단순 교회는 오직 복음이다. 단순한 목회를 위한 교리의 필요성 프로그램이 이끄는 교회(Program driven church)와 과정이 이끄는 교회(Process driven church) ???? 마무리하면서…!???? 단순한 설교의 방법 1. 명료함(charity) 2. 단순함(simplicty) 3. 열정(passion) 다른 불을 빌려다 쓰지 말라 레6:12-13 1. 교회의 기업화는 다름 불이다 2. 교회의 이벤트화는 다른 불이다 3. 교회의 사회복지화는 다른 불이다 4. 교회의 학교화는 다른 불이다 5. 교회의 유흥화는 다른 불이다 6. 교회의 율법화는 다른 불이다 ???? 여운-“계속하여 타오르게 하라!”???? 좋은 교회란? 우리 서로 좋은 교회, 단순한 교회 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2022-03-27
  • 언론의 신천지 띄우기가 지나치다
    언론의 신천지 띄우기가 지나치다 신천지 세미나 광고 계획 철회하라 신천지(신천지예수교회증거장막성전-이만희)가 코로나 때에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후, 또다시 포교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중요 일간지들이 그들의 (성경의)‘장별 계시 증거’를 강의하는 세미나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광고계획을 실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민들을 불안하고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나무위키’에 보면 이만희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1931년(92세)에 태어났으며, 기독교의 교회를 다녔다는 기록이 없다. 기독교에서 이단·사이비로 규정된 박태선의 전도관, 유재열의 장막성전, 문선명의 통일교 등을 전전하다 자신이 1984년 과천에 신천지교를 창설하였다. 이만희는 자신을 새요한, 대언자, 보혜사 성령, 약속의 목자, 재림 때의 예수와 같은 매우 참람(僭濫)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그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가 기독교를 잘 모른다는 증거이다. 신천지는 3월부터 6월까지 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신천지를 세운 이만희 씨는 기독교의 성경을 제대로 모르면서 성경을 강의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런 허황된 내용을 광고로 실어주겠다는 언론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언론에는 품격이 있고, 책임이 있고, 우리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진실성과 객관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단·사이비의 포교용 광고를 버젓이 실어준다면, 언론의 사명과 윤리를 크게 망각한 것이 된다. 신천지는 이미 알려진 대로 불법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여 탈세, 신도들에게 강제 헌금 및 가출 강요 등 부정부패 행위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2020년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도 방역 수칙과 어긋나는 종교활동과 조직적 은폐 등이 문제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신천지가 코로나 이후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함에, 언론들이 광고비 수입 때문에 이러한 사이비·이단의 광고를 게재한다면, 이는 반사회적, 반종교적 집단인 신천지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 세력을 키워주게 되고, 자연적으로 선량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각 언론들은 당장 신천지 광고계획을 중단하기 바라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언론 본연(本然)의 책무를 다해주기 바란다.
    • 오피니언
    2022-03-23
  • 제1회 목회자대회 둘째날 아침 예배 박선원 목사 설교
    제1회 목회자대회 둘째날 아침 예배 박선원 목사 설교
    • 오피니언
    2022-03-05
  • 다시 생각하는 삼일절 ... 봉건주의와 계급사회, 이념의 노예가 되려는가
    제103주년을 맞는 삼일절이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민족 절망의 시기에 우리 민족의 자주민임과 독립국임을 선포한 것이 “독립선언서”이다. 이는 그동안 겪어 보지 못했던 국가의 독립에 대한 기대의 벅찬 감격이었다. 이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또 이 삼일독립만세운동에는 우리 기독교가 중심역할을 감당하였고, 한국교회가 민족과 함께 하는 자랑스런 교회임을 잘 드러내었다. 삼일운동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일제는 1905년 한·일 협약 후 우리 토지를 강탈하기 위하여 토지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후에 토지조사국을 설치하고, 1912년 국유림과 확증 없는 사유지를 국유화하여 토지 침탈 계획을 착착 진행하였다. 그리고 1918년 이를 완료하였다. 이때 이미 일본인들 33만 명 이상이 조선에 들어와 정착하였으나, 조선인들은 토지를 잃고 24만 명 이상이 화전민 신세가 되고, 일부는 생계를 위해 만주로 간도로 떠나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일제는 1913년 의료 선교사들의 조선에서의 활동을 제재하는 법규를 개정하고, 1915년 모든 종교를 자신들 정권의 통제하에 두는 신규 법규를 만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금지하고, 일본어 학습을 의무화하는 등 노골적인 식민지 정책을 폈다. 그런 상황에서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선포되고, 1919년 1월 고종황제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 2월 8일에는 동경에서 유학생 600여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런 것들이 발단이 되고, 1919년 고종황제 국장(國葬) 이틀 전인 3월 1일 거국적인 만세운동을 촉발케 된다.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태화관에서 낭독되고,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시위 참가자는 연인원 200만 명을 넘었으며, 전국에서 만세 사건도 1,500건이 넘는다. 평화적 만세운동이었음에도 사상자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3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사망자 7,509명, 부상자 45,562명, 체포 49,811명이 있었으며, 민가 715채와 교회 47개소가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이 독립만세운동에는 신분과 직업, 종교 간에 차이를 두지 않았고, 한마음으로 민족 공동체적 외침을 분출한 것이다. 이는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이를 통하여 조선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것이 되었다. 다음 해에는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무단(武斷)정치가 문화(文化)정치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민족과 함께 한 기독교는 놀라운 성장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기독교는 복음, 교육, 의료, 문서, 선교사업의 확대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 이후에 러시아의 공산혁명에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의 대두와 이단들이 발흥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은 해방 후에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우리는 이런 삼일독립만세의 자랑스런 역사를 통하여 100여 년 전에 독립 의지를 불태우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되었는데, 현재의 자유 대한민국은 위태롭다.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고 권력층은 다시 조선의 봉건시대의 계급사회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것들로부터 새롭게 독립의 기치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심각한 ‘편가르기’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연료처럼 공급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오도된 이념과 이데올로기이다. 우리 사회는 상당 부분 편향된 이런 사상에 물들어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공정과 공의가 사라지고 정의도 힘을 잃고 있다.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정의를 대체하고 있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법의 가치는 무시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헌법을 뛰어넘는 오용된 권력도 남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함의(含意)인 배려나 대화, 타협이나 이해도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자유’를 말하면 꼴통 보수이고, ‘자유’를 빼면 넉넉한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기류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것은 헌법을 고치려는 시도에서도 나타났었다.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장점인, 도덕성과 책임성과 청렴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의 방향은 왜곡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모두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기독교는 103년 전에 가장 많은 참여와 희생을 치르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거리에서 장터에서 교회에서 목청껏 외쳤었다. 그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아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고, 다시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은 교정해야 한다. 이제도 독립적 의지는 재연되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일제가 아닌, 오염된 민주주의 사상과 오도된 사회주의 정치 이념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닌가! 그래야만 독립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2022-03-01
  • [논평] 회장의 정치적 편향으로 추락한 광복회
    우리나라에는 자랑스런 광복회(光復會)가 있다. 이 단체는 1965년 설립되어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으로 구성된 단체’로, 전국에 17개의 지부와 8,266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민족의 긍지를 이어오는 유족과 후손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 단체가 수년 사이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추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는 광복회 회장이라는 한 사람에 의하여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관변 단체에다가 친북·반미의 굴절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 단체는 정부로부터 연간 22억원(2021년 기준)과 민간으로부터도 거액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지난 10일 국가보훈처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회장이라는 사람이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국회 안에 있는 카페의 수익금을 부당하게 사용하였고, 골재 사업과 관련하여 광복회관을 민간기업에 임의로 사용하게 하는 등의 비위가 확인되어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회 카페에서 중간거래처를 통하여 허위 발주, 원가 과다 계상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였고, 그것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골재 사업 추진에서 공문이 위·변조되었다고 국가보훈처의 감사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어찌 독립유공자의 자존심을 이런 식으로 추락시키는가? 우리 사회에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상 찬스’까지 사용하는 것인가? 사정 당국은 광복회 회장의 이런 혐의에 대하여 철저하게 수사를 통해 사필귀정을 보여야 하며, 청와대와 정부도 일벌백계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 광복회장의 기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복회 정관 제9조에 보면 ‘본회는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반대하는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14조에도 ‘각 국가유공자 등 단체는 특정 정당의 정강을 지지·반대하거나 특정 공직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등의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감)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 회장은 2019년 3월 국가보훈처 산하 단체인 광복회 회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색을 강하게 띤다. 그는 2019년 10월에는 국가전복을 꾀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찬양하였고, 보수 정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다. 또 그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한국과 무역분쟁 중이던 일본을 싸잡아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찬양하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202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민족 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國歌)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고, 민족 반역자를 청산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라고 폄훼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창군한 국군의 육군참모총장들은 제1~21대까지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라는 허위 사실을 주장하였다. 또 같은 달, 보수 정당을 ‘토착 왜구와 한 몸’이라는 투박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2021년 광복절 경축식에서도 예외 없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등 보수 정권을 정통성 없는 친일정권으로,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친일 주구로 대놓고 폄하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광복회장이 되고 나서 갑자기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을 이용하여 상을 만들었는데, 2021년 독립운동 역사를 널리 알리는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재형상’을 만들고,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상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유족과 후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폐지하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시대 독립군 대상’을 만들어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설훈, 우원식, 안민석 의원에게 상을 수여하여, 정치 편향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망발에 가까운 발언은 계속된다. 우리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실종 피살된 사건을 두고 월북자로 단정하였고, 소련은 해방군이고,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태극기 부대로부터 ‘빨갱이’로 불리는 사람이 다음에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또 미국은 한국을 졸개로 본다는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말도 하였다. 역대 광복회장 가운데 이런 인물은 처음일 것이다. 자신은 과거 보수 정권(공화당, 민정당)에서 관료와 정치 활동을 18년 동안 했는데, 이것은 ‘생계형’이라고 하고, 일제 강점기 죽기 살기로 살았던 분들에게는 ‘친일 주구’의 굴레를 씌우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러나저러나 그 이름과 신뢰가 추락한 광복회가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긍지와 민족정기를 살린 명예를 살리는 길은, 현재 그 안에서 일부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정치•이념•역사 인식의 편중과 폄하, 폄훼와 지나친 쏠림의 ‘이념 적폐’를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본다. 광복회는 정치 집단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 편향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 선열들의 목숨을 내건 희생정신은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숭고함 때문이다. 그것을 특정 이념과 정파와 정강에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본다. 광복회가 국민들로부터 존중받는 정신적 지주가 되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2022-02-22
  • 돌풍의 오징어게임… ‘값싼 회개’ 더 이상 안 돼
    정부는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보여주는 황금만능과 살벌한 생존 투쟁의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회는 한국사회의 극한 경쟁과 압축성장의 그늘을 해결하기 위한 황금률을 실천하는 공동체 운동의 센터가 되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11월 3일 드라마와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넷플릭스 오늘 전세계 톱 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781점을 포인트로 1위를 기록했다. ‘강남스타일’의 싸이, 원더걸스, 소녀시대, 블랙핑크, BTS,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에 이어 <오징어 게임>의 등장은 한국 문화 컨텐츠의 우수성과 가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것인가를 입증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지금 ‘오징어 게임’의 열풍에 빠지고 있다. 허리케인의 돌풍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과는 달리 ‘오징어 게임’의 광풍을 피하기는커녕 여과없이 전세계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만드는 것인가? 화려한 색채와 자극적인 콘텐츠로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까지 게임의 회오리 속에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미국와 유럽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오징어 게임 복장을 따라 입지 말도록 금지령까지 내려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폭력적인 행동까지 받아들일 염려 등 많은 윤리적 문제로 인해 샬롬나비는 ‘오징어 게임’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아울러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배금주의 가치관과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생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9회 분량의 드라마이다. 오징어 게임’은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삶을 포기할 지경까지 몰린 사람들을 모아 거액의 상금을 걸고 게임을 진행하는 이야기이다. 오징어 게임 속에 나오는 무한 경쟁, 극한에 치닫는 치열함을 반영하는 스토리는 경제적 약자를 사회에서 배제 시키고 오히려 거액의 상금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살육(殺戮)하는 장면들로 넘쳐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식의 생각들이 만연한 가운데 우리들의 현주소는 황금만능주의 속에서 손만 대면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지려고 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고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빚어지는 탈락자는 목숨을 잃는 극한 생존 경쟁의 비극에서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스토리 또한 치열함 속에서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려는 배금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재물은 결코 인간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 없으며, 돈은 공동체의 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2. 증강현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오늘날 과학 기술의 발달로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일들이 팽배하다. 우리는 시공간이라는 현실의 매개에서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가상의 스토리를 현실에 가져오는 증강현실은 여러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시청자들은 게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스토리를 현실에 적용하여 가상과 현실의 이중적 태도에 빠져있고 동시에 도덕적 해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상의 보이지 않는 실제를 현실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생명 경시와 물질만능주의 스토리를 현실에 접목시켜 현실에서 그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할 경우, 현실 속에서 가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동시에 사회는 도덕의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유럽이나 외국에서는 이미 ‘오징어 게임’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학생들에게 ‘오징어 게임 의상’을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 그 이면에는 가상은 가상으로서의 세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스토리를 현실 그대로 반영하면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3. 지나친 폭력성과 생명 경시 사상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오징어 게임’은 패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고 오직 승자만 거액의 상금을 거머쥘 수 있는 게임이다. 이에 돈을 필요로 하는 빚에 찌들린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오직 승자만이 자본의 권력을 누릴 수 있고, 동시에 수많은 패자들이 목숨을 잃게되는 지나친 폭력으로 얼룩진 스토리는 패자에 대한 인정마저 찾기 힘든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게임의 참여자들에게 인간 생명의 가치는 상실되어 보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생명 경시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 말씀처럼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 Kant)는 “인간은 수단이 아닌 반드시 목적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생명과 가치는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불가능하고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한다. 칸트는 오직 인간의 생명만이 수단이 아닌 반드시 목적 그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인간 생명의 경시로 이어지는 비윤리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막 8:36-37)에 나온 말씀처럼 사람의 생명은 그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없고 천하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4. 생존게임 속에서 남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인간미의 상실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공동체 상실을 초래한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참가자들은 집단을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게임의 살벌함 속에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나만 살아 남으면 된다’는 식의 심리적 병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임의 스토리에서 남의 고통을 통해서라도 나만 행복하면 되는 식의 사회를 풍자하면서 공동체의 덕은 전적으로 상실되었다. 물론 게임에서 단지 몇 사람들을 통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과 희망의 빛을 던져주긴 하지만 여전히 돈이면 타인의 목숨까지 바꿀 수 있다는 배금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 인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은 누구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연고적 존재이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더더욱 공동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외연을 확장시켜 사회라는 연고적 존재로 살아간다. ‘오징어 게임’과는 달리, 인간은 타자의 삶과 존재를 무시해서 살 수 없다. 성경에서도 인간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짝을 지어주셨다. ‘오징어 게임’에서 본 인간미와 타자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상실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인간은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타자는 인간과 인간의 범주를 넘어 자연까지 확장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초월자까지도 타자로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여지없이 파고하고 있다. 5. 오늘날 한국인들은 국제사회에 비추어진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고 겸허한 태도로써 지구촌에 이바지하는 공생공영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는 한국 자체가 그 드라마의 주인공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오징어 게임’은 빚에 쪼들린 한국인들이 패배 형벌을 죽음으로 정해놓고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현실로 묘사된다. “한국은 무자비한 ‘지구촌 오징어 게임의 생존자다. 1960년대 초 한국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은 아이티 또는 가나와 비슷했다. 인구 40%가 절대 빈곤 속에 살았다 한국은 그때부터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인정사정없는 지구촌 경쟁의 참가자가 됐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하려 했다. 게임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규칙을 변칙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동안 민주주의와 수많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자유시간, 복지, 환경도 희생했고, 그 사이에 과로사(過勞死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교육이 생존전략이 됐다. 글을 아는 식자율이 1945년 22%였던 것이 1970년엔 90%가 됐다. 시골 농부들까지 논밭 팔고 빚을 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대면서 상아탑은 ‘우골탑’이 됐다. 이제 세계 선진국 위상에 오른 대한민국은 인간다운 삶, 국격을 갖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 남을 희생으로 하여 자신만이 살려는 이기주의, 황금만이 생존의 답이라는 졸부의 부끄러운 삶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이웃을 배려하고 내가 중요한 것 만큼 남도 중요하다는 공생의 가치관을 길러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내년 대선 경쟁에서 규칙을 지키고 우리 사회를 국격과 품격이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회가 아니라 진 자에게도 재기의 기회를 주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6. 오늘날 기독교는 약육강식, 황금만능주의와 생명경시 풍조를 극복할 진정한 사랑과 용서의 윤리를 실천하지 못했음에 대해 자성하고 회개, 공생, 황금률 윤리를 실천해야한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은 시시때때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기 위해 설정된 인물처럼 보인다. 아무 때나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면서도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임을 고집하는 모습 등에서는 기독교 참 모습이 왜곡되어 있다. 이는 목회자와 기독교인의 모습을 자기 중심성이 강한 이기적 집단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경고는 <밀양>이라는 영화에서도 있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반(反)기독교적 캐릭터의 등장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위선과 고집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 한 편으로 기독교 신앙 자체가 왜곡되거나 변질되어 설명될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인들은 대중 매체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왜곡하는 모습들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반응하며, 반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감독과 작가라고 비난하는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왜곡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우리 삶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기독교는 반성과 각성과 자성의 시간 없이 종교적 행위로만 드려졌던 회개와 용서의 기도가, 혹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파렴치하고 위선적인 목회자 상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평가를 세상에 맡길 필요는 없지만, 세상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며 인식하고 있는가에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미디어에서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의 태도가 거론될 때, 우리 신자들은 무조건 변명하려고 하지말고 이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신자들에게 ‘값싼 회개’가 아닌 책임감 있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지배력을 갖고 있는 약육강식, 황금만능주의와 생명경시 풍조를 극복할 진정한 회개, 공생, 용서, 사랑의 가치관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2021년 11월 22일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어게임’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 오피니언
    2021-12-02
  • 우리 총회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할렐루야! 총회장 김의철목사입니다. 이만팔천 곳에 우물을 파자는 김치선목사님의 비전과 함께 1961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신이 시작되어 오직성령, 오직기도, 오직말씀이라는 신앙정신으로 배움을 받은 선배님들의 희생과 노고로 한국 교계에서 건전하고 모범적인 교단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50회기에 들어와 백석교단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었고, 통합이 무산되고 대신 교단은 4갈래로 갈라지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저는 감사나 기쁨의 감정을 느낄 여유도 없이 깨어진 교단을 추스르고 상처 입은 목사님들을 위로하는 일에 매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가 총회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우리 총회에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희망을 말씀드리면서 인사의 말씀을 대신하려 합니다. 첫째 : 다시 연합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대신이 4갈래로 갈라진 이유는 신학이나 신념의 차이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지극히 지협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 갈라졌기 때문에 조금만 더 대화하고 양보하면 다시 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단으로 만들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자산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교단은 내일이 없습니다. 오래된 악습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가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셋째 : 후학을 길러 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안양대의 아픔을 안고 있는 우리를 위로라도 해 주듯이 보수적이고, 실력 있는 호서대신학대학원과 인준을 맺고 든든한 교단으로 세워 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지금부터 교단의 목사님들과 학교와 손을 잡고 김치선 목사님의 신앙정신을 계승하여 이만팔천 곳에 우물을 파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선후배 목사님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함께 해 주심에 목말라 한다면 우리 교단은 분명히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악습과 탐욕을 버리고, 성경적인 교단을 만들어 가는데 함께 해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 바입니다. 더욱 겸손하고 순수하게 순종하며 가겠습니다. 모든 지교회와 목사님들의 가정위에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총회장 김의철목사 드림
    • 오피니언
    2021-10-29
  • "다음 세대를 세우는 대신총회"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 두기 2주의 삶을 살아온 지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주만 기다리면 끝이 날까? 하는 기대감으로 텅빈 예배당을 바라보며 설교하는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그 2주가 2년이 되고 보니 그 2주가 우리에게 “희망고문”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들이 무너지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곳은 바로 교회일 것입니다. 교회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죄가 되고, 모든 소모임이 금지 된지 오래인 지금 우리 교회들을 돌아보면 “초토화” 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대신 교단은 백석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부족한 종이 대신호서 총회의 총회장을 맞대게 되었습니다. 전쟁중에도 아이는 태어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가듯이, 저는 또 다시 우리 대신교단이 하나되고, 더 나아가 한국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단이 되는 것을 꿈꾸어 봅니다. 금년 저희 교단 총회 주제가 “다음 세대를 세우는 총회”인데 여기에 맞게 금번 총회에서는 4가지 사업을 추진하며 교단의 초석을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첫째 신학교육의 활성화로 하나된 교단을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저희 교단은 호서신학대학원과 인준 관계를 맺은 바 있습니다. 여기서 배출되는 많은 신학생들을 교단에서 잘 훈련시켜 양질의 목회자를 배출시키는 일을 할 것이며, 아울러 교단내 있는 목회대학원을 통하여 목회자 재교육에 힘쓰므로 다음 세대를 세워 갈 수 있는 하나의 교단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두 번째 목회자 은급제도를 만들겠습니다. 총회가 해산되면 곧바로 총회 산하 은급복지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일을 추진하여 저희 교단 산하에 있는 목회자들이 은퇴 이후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꼭 실행하겠습니다. 셋째 교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힘쓰겠습니다. 저희 교단은 지금 사분오열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 문제부터 해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과 꿈을 같이 하는 좋은 다른 교단과 연합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여 교단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그리고 방송과 언론을 잘 활용하여 우리 교단을 널리 알려 다음 세대들이 몰려오는 교단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넷째 세계선교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는 세계선교에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현재 수 많은 선교사님들이 선교지를 떠나 귀국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이 있을 것입니다. 총회 세계선교회에서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 함께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워 효과적인 선교를 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일선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들과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토론하고 기도하면서 그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저를 총회장으로 뽑아주심면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오직 총회를 섬기고 교단의 발전만을 위하여 일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산하 교단의 모든 교회와 가정 위에 충만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총회장 김의철 목사
    2021-10-27
  • 대한민국은 처벌공화국으로 가는가?
    최근(9월 30일) 무소속의 윤미향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의 권인숙, 민형배, 송옥주, 안호영, 양이원영, 윤준병, 이수진, 임종성, 장철민 의원이 공동발의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 개인의 정보를 요구할 때,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규제만 강화해 혼란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게 나오고 있다. 이 법안에 의하면 구인자(求人者)는 구직자(求職者)에게 34가지의 차별적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성별, 용모, 키, 체중, 장애, 출신지역, 연령, 혼인여부, 혼인계획, 가족, 가족형태, 가족상황, 임신 및 출산, 학력, 출신학교,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언어, 성정체성, 성적지향, 종교, 정치적 견해, 사상, 노동조합에 대한 견해, 재산, 전과, 고용형태, 병력(病歷)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이다. 이에 반하면, 차별적 질문을 한 자에게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물론 구직자를 선별하는 가운데 불필요한 질문이나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런데 이 법률안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이점이 발견된다. 여러 가지 차별금지 조항 가운데, 성정체성과 성적지향이 들어간다. 즉 동성애 옹호와 동성애자 보호를 염두에 두고 있다. 또 이러한 것을 교육하는 특별한 단체를 두려는 목적이 보인다. 제3조 2항 2에 보면 채용절차에 관한 컨설팅이나 교육 등을 하는 경우, 그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누가 이런 교육을 하게 되겠는가? 그러나 제3조 2항에 보면 공무원을 채용하는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공무원 선발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민간 기업에서 구직자가 여러 가지 업무와 관련될 수도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면접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구직자를 선발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 외에도 소위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이 국회에 다수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런 법안의 말미에는 반드시 처벌 조항이 들어가 있다. 차별금지보다는 처벌이 목적인 듯하다. 지난해 6월 29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올해 6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법’에는 손해액의 3~5배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8월 9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법에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또 8월 31일 같은 당의 권인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에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명시하고 있다. 법을 위반할 시 물리력을 갖기도 하지만, 현재 국민들의 상당수가 우려하고 반대하는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을 국회의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 놓고, 여기에 엄청난 인신 억압과 금전적 손실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반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 공포 분위기를 주고, 벌금 공화국으로 만들어, 징벌적 분위기를 고조(高調)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차별 금지 조항에 들어간 내용들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중에 몇 가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조항들도 있다. 이는 천부적 인권이 아닌 것도 있고, 건강한 사회와 가정, 국가를 만드는 데도 저해요소가 되며, 특히 종교적·양심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법은 도덕과 양심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이를 제한하는 것이라면 좋은 법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부여한 국민대표로서의 입법 권한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은 국민 무시이며, 권력 남용으로 지탄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만큼 법안을 많이 만드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보통 선진국의 경우 연간 수십 개의 법안만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재까지 12,915개의 법안 발의가 있었고, 그 중에 1,051개의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그러한 법안들의 내용도 국민들은 잘 모른다. 정말 민생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법안 만들기 챔피언이 될지도 모르겠다. 법이 많다고 좋은 나라인가? 처벌을 많이 한다고 선진민주주의 국가인가? 경쟁적으로 남발하듯 만들어지는 법안 때문에 국민들은 ‘법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한국교회언론회>
    • 오피니언
    2021-10-22
  • [논평] 아직도 예배를 못 드리는 교회, 그 원인을 찾아야
    지난 5일 정부(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자가 격리자 관리 현황 및 사회적 거리두기 이행상황’을 조사한 것 가운데,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조사했는데, 그 중에 예배드리는 것을 실시하지 않는 교회가 16%가 나왔다고 한다. 충격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점검 인원 7,411명을 동원하여 종교시설(교회) 16,403개소에 대하여 지난 10월 3일, 주일 예배 실태에 대한 것을 조사했다. 그 중에 현장예배를 드리는 곳은 13,355개소로 82%였으며, 비대면예배를 시행하는 곳이 351개소로 2%이었고, 아예 예배를 실행하지 않는 곳이 2,693개소로 약 16%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직도 상당수의 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비율로 계산하면 한국교회 전체를 약 6만 개로 보았을 때, 9,600여 개의 교회들에서 예배가 중단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2월부터 ‘온라인 예배’와 7월부터 ‘비대면 예배’를 강조해 왔으며, 이를 위반할 시 무거운 처벌을 하겠다는 것으로 인하여, 한국교회의 예배가 초토화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나마 교계 일부에서 노력하여, 올해 7월에 법적인 판단을 받음으로, 비대면 예배가 문제가 되며, 비록 매우 제한적이지만 현장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일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존립에 문제가 있음이다. 이에 대하여 교계와 각 교단과 지역의 교회 연합회는 협력을 통하여 그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하며, 그것이 정부가 무리하게 교회의 예배를 제한한 것에 원인이 없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 가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도 또 교회를 타킷으로 예배 문제를 간섭할 수 있다고 본다. 각 교단의 가을 총회에 나타난 지표를 보면, 대부분의 교단들에서 교세가 지난해부터 현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도 정부의 교회 탄압에 의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코로나를 빌미로, 예배 문제에 대하여 더 이상 권력에 양보하거나 밀리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업장이나, 종교놀이를 하는 곳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전하는 신성한 곳이다. 또한 구원을 선포하고 이뤄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임재하시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 이유 가운데 중요한 예배 문제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해석하고, 비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따라가선 안 된다. 한국교회는 지난 2년간 예배 문제에 있어 상당수의 교회에서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일들을 계속해선 안 된다. 이미 연합기관들 가운데 이를 염려하여, 정부측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바, 더욱 강력하고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예배 문제를 누구에게 위임할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다. 또 기대할 수도 없다. 오직 한국교회 전체가 나서서 예배의 중요성을 확실히 해야 할 때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해 존재감을 상실한 교회들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애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언론회>
    • 오피니언
    2021-10-14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만들고, 한글 보급은 기독교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는 것은 ‘한글’이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하여 1989년 유엔의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상’을 만들어, 해마다 문맹률을 낮추는데 공을 세운 사람이나 단체에 상을 주고 있다. 또 1997년에는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한글의 우수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불과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11,000개 이상의 문자와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쉬운 문자가 세계에 다시 없다. 또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반포일과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려진 글은 한글이 유일하다. 1443년 세종대왕에 의하여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1446년에 반포되었으나 당시에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였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훈민정음을 낮춰 불렀다. 그래서 언문(諺文) 반절(反切) 혹은 여성들의 문자라고 ‘암클’이라고 했다. 이렇게 약 450년간 홀대를 받다가 19세기 말인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국문(國文)으로 인정을 받았고, 1910년대 초에 주시경 선생에 의하여 ‘한글’(큰 글)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한글과의 관계는 어떤가? 1876년 스코틀란드 출신의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는 만주에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7년 그는 중국 상해에서 「한글 문법서」를 간행하였고, 1882년 한글 성경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그로 인해 1885년 한국(조선)에 들어오는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아펜셀러(Henry G. Appenzeller) 선교사들이 한글을 배우고 들어오게 된다. 이어서 1887년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다. 1889년에는 주시경이 기독교에서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한글 문법 연구를 시작했다. 1890년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영사전」 「영·한사전」 「한글 문법서」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1892년 <장로교선교공의회>는 ‘모든 문서 활동에 있어서 한자의 구속을 벗어나, 순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후에 모든 기독교의 성경, 찬송가, 신문, 문서 등은 한글로만 사용하게 된다. 1896년 주시경은 한글 연구 단체인 <동문동식회>를 창설하고, 언더우드, 서재필 등 기독교계 지도자들은 한글 전용 <독립신문>을 창간한다. 1897년 게일(James S. Gale) 선교사는 「한·영사전」을 간행하고, 1907년 주시경은 상동 교회에서 국어강습소를 설립한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미션스쿨에서의 성경교육과 한글 교육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1921년 기독교인인 이상재, 윤치호, 이승훈 등은 기독교 출판사인 <기독교창문사>를 설립하고 「신생명」이란 잡지를 출간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도 1896년 윤치호가 쓴 한글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다. 그 후에도 1937년 지리산의 노고단에서는 선교사들이 모여 한글로 된 구약성경을 번역하는데, 이곳에서 예레미야서를 빼고 모두 번역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한글 사랑을 기독교가 감당하므로 오늘의 한글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록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지만, 사장(死藏)되어 있던 것을 널리 보급하고 사용한 것은 기독교에 의한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하여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Pearl S. Buck)은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자 훌륭한 글자’라고 칭찬하였고, 게일(Jams S. Gale) 선교사는 ‘세종대왕은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라고 하였다. “한글날”의 시작도 기독교인인 주시경 선생의 영향을 받은 15명의 제자들이 만든 <조선어연구회>에 의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6년 “가갸날”로 기념하여 시작되었다가, 1928년 “한글날”로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훈민정음 반포 575돌, 한글날 93주년을 맞으며, 한글을 사용함으로 나라 사랑을 크게 실천했던 우리 기독교가 이제는 거칠고, 저급한 문화 형태를 통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어 가는 문화 권력의 침탈 현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 오피니언
    2021-10-09
  • [논평] 법원의 지나친 진보주의가 국가 안보까지 위협한다
    지난 7일 대전지방법원 행정 2부(부장판사 오영교)는 고인이 된 모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본인은 고인이 되었고 유족)에게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성전환 수술을 통한 성별 전환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수술 후에는 원고 성별을 여성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남성으로 군에 입대한 사람이 군 생활 중 성전환을 했기 때문에 곧바로 여성으로 보아야 하고, 육군이 이를 고의 심신장애를 초래한 사유로 보고 전역을 명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모 하사는 지난 2019년 남성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계속하여 군인(여군)으로 복무하기를 원했지만, 육군은 이를 심신장애 판정을 통해 전역처분을 내렸으나, 당사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해 8월 대전지방법원에 육군의 전역 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본인은 올해 3월,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개인이 성 정체성으로 방황하여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잘못도 크다. 우선은 고인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데 관여한 사람들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진 군대의 사명과 그 구성원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과 불편함을 등한히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소송에 이르도록 부추겼다면, 과연 고인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태도이다. 이번 판결은 지나치게 진보적인 발상으로 우리 사회 공동체를 허무는 일이 된다. 이 내용을 KBS가 7일 오전에 보도한 후, 댓글을 쓴 사람들의 표현들이 국민들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8일 오후 2시까지 약 500여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거의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고 있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해 본다. ‘군 생활 중 성전환해도 동등하게 받아줘야 정답인거냐? 정신 빠진 법원아’ ‘군대는 싸우러 가는 곳이지 성 정체성 찾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 ‘다리가 다쳐도 보직변경 또는 전역이다’ ‘이런 판결을 내놓는 판사는 대체 어떤 가치관을 가진 거냐?’ ‘군대라는 곳이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다 보니 여군들과 샤워하고 밥 먹고 잠을 자는데...본인은 괜찮을지 몰라도, 얼마 전까지 남자였는데 갑자기 여자라고 하면...’ ‘당연히 전역 후 여군으로 시험 쳐서 다시 입대했어야지’ ‘판사가 XX같이 판결을 하네. 처음부터 성전환하고 여군으로 가는거랑 남군으로 들어온 뒤 성전환하는게 어찌 같은 취급을 받나? 그것 자체가 여군들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는데’ ‘...이러니 부모들이 자식들 군대를 안 보내려고 하지’ 등등 수많은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육군은 이 문제에 대하여 즉시 항소(抗訴)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안보에 관한 것이고,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장병들의 사기에 관한 것이고, 국민들의 정서에 관한 것이다. 또 법원도 국가 안위와 관련된 논쟁에 대하여 지나친 인권 감상주의나 진보적 접근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탱해 주는 법의 균형과 중심을 잡아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한번 잘못된 판결을 내리면, 수많은 불복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은 뻔한 일이며, 이것이 국가 안보에 엄청난 허점을 만들어 주게 된다.
    • 오피니언
    2021-10-08
  • [연재]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3.기독론(基督論)
    3. 기독론(基督論) △주성 : 기독론이 무엇인가요? ▲필자 :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단다. △주성 : 이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우리나라 만 해도 1000만명 이상이 기독교 인인데 다들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않을까요? ▲필자 : 흠 ~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에 대하여 대충 머리로 아는 것과, 전 인격적으 로 예수님 자체를 아는 것은 다르단다. 참된 신앙은 단순히 머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드려 신앙 의 대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되는 거야. 그래서 상대주의가 충만한 이 혼탁한 시대에는 더더욱 올바른 기독론 정립 이 중요한 거란다. 참! 예수님에 대한 너의 신앙심과 가치관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주성 : 글쎄요, 지금은 그리 큰 문제의식 없이 교회당에 출입하며 신앙 생활하지만 예수믿음 때문에 큰 위기를 만나면 잘 모르겠어요. ▲필자 : 그러니 잘 들어 보거라. 사실상 기독론은 교회사상 가장 큰 논쟁거리였고 사탄의 공격이 극심했던 분야란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 고자 노력했던 것이고 말이야. 너에게 예수님에 관한 두 가지 문제를 내마. 첫 번째는 과연 나사렛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 당사자가 맞는다고 생각 하니? 두 번째는 과연 나사렛 예수님께서 구속(속죄)의 사역을 온전하게 완성하셨 다고 생각하니? △주성 : 아멘! 저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필자 ; 역시 신학생다운 대답이구나. 네 말이 정답이란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대표적 이단인 니골라 당을 시초로 하여, 현대까지의 모든 이단들은 한결같이 영지주의 사상을 토대로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사 역의 완성을 부인해 왔단다.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청년 예수에게 임하여 구속 사역을 이루려 했는데, 중도에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실패했다고 주장한단다. 너무나 허무맹랑한 주장이지. 그러나 이들의 파급효과가 의외로 크다는 거야. 특히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논리와 합리를 강조하는 21세기엔 더욱더 그렇 단다. △주성 : 맞아요. 교회가 세속화 될수록 교회당의 규모와 교회 예식은 화려해지나 예수님의 정체성은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통합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쟎아요. ▲필자 : 너는 종교 통합을 위한 실질적 기구가 WCC라는 국제적 단체임을 알고 있지? 그런데 문제는 종교통합이 현실적으로 실현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정체성 이 부인되어져야 한다는 거야. △주성 : 어떻게 지난 2천년간 절대적 진리로 당연시되었던, 예수님의 신성과 구속성 이 부인 될 수가 있는 거지요? ▲필자 : 다행스럽게도 넌 아직도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간 2천년간 유지되어오던 모든 절대적인 진리들이 의심되고 공격받아 무너지고 있다는 거야. 이런 시대적 사조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한단다. 이미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조차도 사탄의 최대전략인 상대주의(가장 강력한 세속주의)에 물들어, 예수님의 절대성을 의심하거나 부인하기 시작했단다. △주성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부인되면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을요. ▲필자 : 그렇지. 그래서 지금 종말의 교회는 기독교역사상 최고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겉모양은 완벽한 소금이지만, 이미 맛을 잃어 버린거야. 초대교회는 로마의 공권력으로 육체적 박해를 받았다며는, 21세기 종말 교 회는 인본적인 자유주의 사상(종교다원주의)으로 정신적으로 미혹되어 무력 화 된다고 할 수 있지. △주성 : 이런 기독교의 세속화 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까요? ▲필자 : 글쎄다. 내 생각으로는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할 듯 싶구나. 하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은밀하게 역사하시어서, 끝까지 인내하며 충성하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익은 열매를 만드시고 추수 하실 것이라 믿는단다. △주성 : 제 생각인데요, 이렇게 기독교가 세속화되는 데는 교회 강단의 타협하는 인본적인 설교가 원인이 아닐까 싶어서요. 요사이 강단의 흔한 설교가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복음)을 강조하지 않고 기적과 이사, 세계의 평화, 부유한 삶과 장수, 윤리도덕적인 삶, 가정의 행 복과 형통만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말이에요, ▲필자 : 예리한 지적 같구나. 네 말대로 강단의 설교가 세속화되면, 결국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지. 결국 교회마저 예수님이 설 곳이 없어지는 거란다. 명심 하거라. 복음적 설교만이 심령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란다. 구원받은 모든 설교자는 반드시 예수님과 십자가만을 집중적으로 증거 해야 할 권리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교회의 강단 설교는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을 증거 할 방편으로만 활용 되 어야해.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수많은 대중을 울고 웃기며 감동시키는 명 설교라 하더라도, 이미 주님과 상관없는 공허한 외침이라는 거야. △주성 : 결국 예수와 십자가 빠진 설교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은 거군요. ▲필자 : 너는 영계의 모든 천사들과 악령들 그리고 물질계의 인간들과 동식물들과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주성 : 흠~~~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 아닌가요? ▲필자 : 정확히 맞단다. 그러니까 예수님만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곧 천상천하를 존재케 한 근원적인 창조주라는 뜻이야. △주성 : 아하~~ 이제야 확신이 들어요. 예수님은 단순히 기독교만의 지엽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의 총 체적인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이예요. 이런 진실이 있기에 예수님을 기독교의 교주로만 폄하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할 수가 없는 거군요. ▲필자 : 너에게 그런 깨달음이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꼭 명심 하거라. 기독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만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과 유일무이한 속죄 주라는 것을 말이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예수님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인간으로 성육 신할 수 밖에 없는 근본 이유가 바로‘속죄제사의 완성’때문이라는 거야. △주성 : 예수님의 신성이 속죄제사의 완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구요? ▲필자 ; 그렇구 말구. 잘 들어보렴.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에게 죄 사함을 위해 제시한 유일한 방법이 있어. 그것이 바로 속죄제사야. 속죄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속죄 제물인데, 그 조건이 흠이 전혀 없는 남자 이어야 한다는 거야. 넌‘흠이 전혀 없는 남자’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니? △주성 : 레위기 16장에 보니까 속죄 제물로 흠이 전혀 없는 수컷 염소로 속죄제물을 삼았는데 ~~ 그것은 모형인 것 같구요. 실제는 흠이 없는 거란 죄(죄악성+ 자범죄)가 전혀 없다는 것 아닐까요? ▲필자 : 옳지! 네가 정답을 이야기 했구나. 흠이 전혀 없는 숫염소라는 것은 모형적 상징이고, 실제적 의미는 죄악성이 전혀 없는 남성을 의미하는 거란다. △주성 : 죄악성이 전혀 없는 남성이 속죄제물이 된다구요? 저는 아담의 타락이후에 죄악성은 유전이 되기에, 죄악성 없이 태어난 사람 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배웠거든요. ▲필자 ; 그렇지. 그 말은 곧 죄악성을 가진 인간 중에는 속죄제물이 될 만한 자격을 가진 의인이 없다는 거야. △주성 : 어휴~~~ 그럼 속죄제물이 없어서 속죄제사가 불가능한 거쟎아요! 결국 죄 사함을 받고 생명과를 먹어 천국에 들어갈 길이 영원히 막히는 건가요? ▲필자 : 허허! 그렇다면 기독교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겠지. 기독교는 죄 사함을 받고, 생명과를 먹어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복음 을 가지고 탄생했기 때문이란다. △주성 ;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겠지요? ▲필자 : 맞단다. 그 말은 곧 예수님 자신이 속죄제물이 되셔서 속죄 제사를 완성했 다는 의미란다. △주성 : 예수님은 죄악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단순한 인간은 아니 실테고~~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아하! 이제 알겠어요. 예수님 자신이 죄악성이 전혀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쟎아요. ▲필자 : 성령의 감동이로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에게 죄악성이 전혀 없는 제물을 요구하신 분명 한 이유가 있단다. 그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시겠 다는 역설적 선포란다. 속죄제사의 시행명령은 인간에게 주어진 무거운 율 법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따스하신 은혜라는 거야. 곧 죄악된 인간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속죄 제사를 드려 주 시겠다는 거야. △주성 :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친히 남성인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것이군요. ▲필자 : 맞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악성의 유전을 피하시려고 성령으로 잉태되 셨고, 숫컷인 속죄제물의 조건을 충족시키시려고 남성으로 태어나신 거란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죄악성이 전혀 없는 인간으로 태어 나신 날을 기념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려고, 성탄절이라는 절기가 있는 거란 다. △주성 : 그렇다면 성탄절에는 인간의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 성이 반드시 강조 되어야 겠네요! 안타깝게도 성탄절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것 같아서요. 그런데요 성경에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내용이 있나요? ▲필자 : 당연히 있지. 먼저 스가랴서14장 4절-5절에 보면 “ 여호와의 날(대환란)에 여호와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라고 증거 한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환란 막바지에 이스라엘 감람산에 휴거된 거룩한 의인들 과 함께 재림하신다는 거야. 이 말씀의 짝이 되는 성경의 구절이 바로 요한계시록 19장 11절부터 14절이야. “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르더라” 이 말씀은 7년간의 대환란 막바지 때, 즉 4차 세계대전인 아마겟돈 전쟁이 절정에 이를 즈음에 예수님께서 휴거된 이긴 자들과 함께 지상으로 재림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야. △주성 : 와~~ 놀랍네요. 구약과 신약의 두 말씀이 짝이 정확히 맞쟎아요. 정말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과 재림하는 예수님을 동일화시키고 있네요. ▲필자 : 그렇구 말고. 성경은 명확하게 예수님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당사자임을 증거하고 있다구. △주성 : 그동안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확신은 없었던 거 같아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적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 확신이 없다면, 예수님을 반쪽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눈뜬장님 같은 것이죠. ▲필자 :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또 다른 증거들이 있단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믿지(I am that I am = 내가 여호와인줄)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으리라”라고 증거하고, 같은 28절에는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내가 그인줄(여호와 하나님 인줄) 알 것이다”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단다. 나사렛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당사자가 맞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거야. △주성 ; 아하! 바로 그 고백 때문에 ‘신성 모독죄’로 죽게 된 것이로군요. ▲필자 ; 맞단다. 유대인의‘노아의 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이라고 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시켜야 된다고 나오거든.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선포하는 이 고백이 결정적으로, 서기관이나 바 리새인 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거란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성경의 심장과도 같은 요한 계시록의 증거는 더 명확하단다. 요한계시록 1장8절에 보면 “주 하나님(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이 가라사대 나는 장차 재림할 자요 전능한 자니라” 라고 증거하고, 요한계시록 4장8절에도 보면, 3층천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4생물의 노래가 나온단다. 잘 들어 보거라. “ 거룩하다 주 하나님(보좌에 좌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이분은 장차 재림하실 분(예수그리스도)이시라.” 분명히 네 생물도 3층천 보좌에 앉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재림하실 분 이라고 고백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재림하실 분은 예수님이쟎니. 반대로 말하면 재림하실 예수님이 바로 보좌에 앉아계시니,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거야.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사도요한의 증거는 더욱더 단호해. 요한일서 4장 2절에서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님이 성육신한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삼위일체 여호와)임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모든 이는, 적그리스도의 영(악령)에 미혹된 자들 이라는 거야. △주성 ; 이단단체에 속한 이들은 당연한 듯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해 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미온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 네요. ▲필자 : 너도 그런 마음이구나. 나 역시 그렇단다. 한번 크게 외쳐 보거라. “ 예수님은 참 (여호와)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5:20. △주성 : 예수님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 아멘. ▲필자 :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만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유일한 속죄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순교적 각오로 이러한 예수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거란다. 아무리 외형이 화려하고 유명하다고 해도,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을 부인 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결국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와도 같단 다. 깨어서 그들을 멀리하고 경계해야만 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 저자 / 박공서 목사
    • 오피니언
    2021-09-27
  • [논평] 대통령 치적 위해 국익을 희생하나? 섣부른 종전선언(終戰宣言) 주장, 우려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청와대는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데서 신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이든 국제사회든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주체로 거명한 남·북·미·중 가운데 가장 신뢰할 수 없는 국가는 어디인가? 종전선언의 요체는 북한의 비핵화이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국제 사회에서 어떤 신뢰도 생기기가 어렵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도, 남북 정상이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공감하면서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가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비핵화’를 위하여 한 일은 무엇인가?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 주장을 하는 사이, 유엔의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북한은 플로토늄 분리, 우라늄 농축 및 다른 (핵)활동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한 마디로 국제 사회는 북한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지 않고, 북한은 또 그런 위반 행위들을 반복해 왔다. 그런데도 북한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한반도의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것은 국익(國益)을 희생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의 임기 동안 억지 치적(治績)을 만들자는 것인가? 종전선언은 이해 당사국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이를 외교적으로 먼저 어느 정도 해결을 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맞는데, 그런 토대도 없이 일방적으로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것은 외교력의 부족이며,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마저 신뢰를 잃어버리는 꼴이 된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종전선언이 선언되면, 북한은 당장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하는 유엔군 해체와 미군 철수를 주장할 것이다. 유엔군과 미군이 없는 한반도의 전력(戰力)은 그 균형이 심각하게 깨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방은 상당한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것을 누가 막고, 책임진단 말인가? 지금은 섣부르게 종전선언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비핵화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 구축은 선종전선언 후비핵화가 아니라, 선비핵화 후종전선언이 순서에 맞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에 상당한 영향을 줄 종전선언 문제를 문 대통령만이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휴전 이후 68년을 지내왔다. 매우 긴 시간이다. 왜 이런 시간들을 보냈는가? 한 마디로 북한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실재적인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것을 묵인하면서 종전선언만 되풀이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며, 북한 당국에 대하여 헛된 기대감만 더해주는 것이 된다. 북한이 확실히 비핵화를 실행하도록 하는 것이 종전선언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 오피니언
    2021-09-25
  • [논평]기독교에 대한 과과과(過撾課) 전문방송 KBS
    지난 14일 기독교계의 원로이며, 한국교회 지도자이며,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였던 여의도순복음교회 개척자였고 원로 목사인 고 조용기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애도하고, 각계에서 조문을 하는 상황에서, 유독 공영방송인 KBS는 그날 밤 뉴스를 통해, 기독교계를 욕보이고 고인(故人)을 비판하는 방송을 하였다. 14일 KBS가 뉴스를 통해 한 말을 들어보자. 우선 앵커의 멘트가 ‘한 때 순복음교회가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교인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큼 교회 성장을 이끌었지만, 끊임없는 이단 논쟁과 개인 비리, 정치 행보로 교회 권력의 상징이라는 비판도 함께 받아 왔습니다’로 시작된다. 이어서 기자는 ‘다른 대형교회들과 달리 담임 목사직을 세습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수백억 원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돼 유죄 판결을 받았고, 국가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 데 이어, 선거 참여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라고 보도한다. 이 보도만 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고 조용기 목사는 마치 반사회적 집단이고, 반종교적인 삶을 산 것으로 비춰진다. KBS는 기독교계의 저명한 지도자의 죽음을 통해, 사회적 통합이나 종교에 대한 예의나 슬픔 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달픔은 아예 염두에도 없다. 오직 기독교에 대한 지탄과 비난과 부정적인 것을 크게 부각시키려는 집착에 사로잡혀 있음을 본다. 과연, KBS는 기독교에 대하여 과과(過撾-잘못한 것만 골라서 때리는)의 전문 방송인가 묻고 싶다. 이에 비하여 다른 방송들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SBS는 고 조용기 목사가 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켜 기네스북에 올라갔으며, 국민일보도 설립하고, 비정부기구인 사단법인 ‘선한사람들’을 만들어 인권, 환경, 아동복지 등에도 힘썼다고 보도한다. MBC는 간단하게 사실보도만 했다. JTBC는 고 조용기 목사님의 별세 소식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보도한다. 이에 비하면 KBS의 보도 행태는 처음부터 고약한 의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우리 사회는 적어도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를 중시한다. 언제 KBS가 유명한 타종교인의 죽음에 앞서 이렇게 노골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는가? 고 조용기 목사는 1950년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희망을 준 목회자이다. 목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70여국에서 대형집회를 370여회 인도함으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여놓았다. 한국에 이런 인물이 얼마나 될까. 그런가 하면 무료 심장병 수술로 4,700여명에게 새 생명을 주었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헌혈을 하였고, 국내 500여개의 교회 개척, 670여명의 선교사 파송 및 지원 등 어느 누구도 쉽게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하였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KBS가 고인의 과(過)만을 부각시키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런 KBS의 작태는 한심하다 못해, 실망스럽다. KBS는 이제 공영방송이라고 하기 보다, 기독교 안티 방송이 맞지 않는가? 공영방송은 향방 없이 치고, 때리고, 깎아내리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65년간 헌신한 종교지도자의 죽음마저도 자신들의 반기독교적 색채를 드러내는 KBS라면, 스스로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비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사(亂射)하는 모습이 될 때, 잃어버리는 것은 방송의 신뢰와 언론 수용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잃게 될 것이다. 지금의 KBS라면 그런 유혹 가운데 깊이 빠져 있음에도 스스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공영방송 KBS, 절망의 길로 가지 말고 발전하는 길로 가라. 국민을 현혹하는 편파방송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민의 방송’이 되어야 한다.
    • 오피니언
    2021-09-16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2. 신론(神觀)
    2. 신론(神觀) ▲필자 : 성경적 구원론에 대하여 공부했으니, 이제 신론에 대하여 알아볼까? △주성 : 신론이면 하나님에 대한 것 아닌가요? ▲필자 : 그렇지. 성경에서 증거 하는 하나님에 대한 거란다. △주성 : 하나님이란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는 거 아닌가요? ▲필자 : 그건 아니란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신(神)도 함께 한단다. 물론 진짜냐 가짜냐를 떠나서, 그들이 신이라고 믿는 대상이지만 말이야. 유일하게 만물 중에 인간만이 종교성을 가졌고, 신을 경배하고 섬기는 동물 이란다. 이것은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주성 : 맞아요. 저도 학교에서 인간의 역사는‘신을 찾고 경배하는 과정’이라 배웠어요. ▲필자 : 사실 세상 사람들은 증명되지 않는 수많은 신들을 믿고 경배하며 산단다. △주성 : 그렇다면 세상에는 소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이 많겠네요? ▲필자 : 많다 뿐이겠니? 지구상에 현존하는 공식적인 종교 수만 2천개가 넘는단다. 신을 섬기고 모방하는 비공식적인 종교까지 하면 세기가 힘 들 정도로 많 아. 인도의 힌두교에만도 3억 3천만의 신들이 있고, 일본에만도 8백만의 신들이 있다고 그래. 심지어 아프리카엔 동네마다 각기 다른 신들이 있을 정도니~~~ △주성 : 와우~~~ 전 신은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 한분 뿐 인줄 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많다니 놀랍네요. 당연히 모든 신이 다 진짜는 아니겠지요? 분명히 진짜는 하나일 텐데요. ▲필자 : 네 말이 맞단다. 진짜 신은 당연히 하나뿐이란다. 나머지 모든 신들은 짝퉁이라는 거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낸 아바타(Avatar)인 허상일 뿐이란다. △주성 : 그렇군요. 그럼 참된 신이 될 자격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필자 : 한국에만도 자칭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지만~~~ 우선적으로 신이 되려면 객관적인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거야.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신성을 주장한다고 신이 되는 것은 아니지. 우선 신이 되려면 완벽하며, 모든 것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며, 모든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체자가 되어야 하는 거란다. △주성 : 어떤 사람은 동물을, 어떤 사람은 강과 산을, 어떤 사람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을, 어떤 사람은 영웅적인 사람을 신이라고 섬기쟎아요. 도대체 현존하는 수억의 신들 중에 누가 참된 신일까요? ▲필자 : 참으로 합리적인 질문이구나. 잘 들어보렴. 일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모든 증거를 진리라고 믿는단다. 그래서 성경에서 증거 하는 신관을 진리로 받아드리는 것이지. 그 누구도 신의 전부를 정확히 본 사람이 없고, 창조 시에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란다. 성경은 유일 신관을 증거 한단다. 다신론을 전하는 대부분의 이방종교와는 다른 점이지.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전인격적인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한분만이 참 신이라고 단호하게 증거 한단다. 정통 기독교인은 이것을 당연시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유일신관은 다양한 신들을 주장하는 다신론과, 모든 피조물에 신이 내재되었 다고 증거 하는 범신론과는, 차별화 되는 성경적 사상이란다. △주성 ; 그런데 유일신관은 오직 기독교만 주장하는 신관인가요? ▲필자 : 그건 아니란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유일 신관을 가지고 있어. △주성 : 그럼 그들의 종교가 주장하는 신과,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이 동일한가요? ▲필자 : 결코 아니란다. 그들의 신관은 기독교의 신관과는 큰 차이점이 있어. 기독교의 유일 신관은 대단히 독특하단다. 바로‘삼위일체 신관’이라는 거야. △주성 :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요? ▲필자 : 그렇지.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론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4차원적 진리란다.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한분이지만, 사실은 세 분이라는거야. 즉 하나님으로서의 동일한 본성과 권위를 가졌지만, 각각의 자유의지적인 인격을 가지고, 서로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한 몸 안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세분하나님께서(성부, 성자, 성령)거한다는 신비이거든. 분명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완벽한 인격 체를 가지고 존재하시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호 유기적인 완벽한 사랑의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몸으로 존재한다는 거야. 기독교의 가장 신비스런 교리라고 할 수 있단다. △주성 : 사실 저는 삼위일체의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아요. 한분이지만, 세 분이시쟎아요! 그런 존재가 세상에는 없으니 말이예요. 그렇다면 서로간의 상하 질서는 있을 거 아녀요? 예를 들면 성부하나님이 제일 높고, 그 다음엔 성자 예수님, 마지막으로 성 령처럼 말이에요. ▲필자 :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로구나. 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단다. 세분의 하나님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서, 동일한 본성과 권위를 가지고 한 몸 안에 조화롭게 공생하신단다. △주성 :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은 성부 하나님은 태양의 본체이고, 성자 예수님은 밝게 빛나는 빛이고, 성령 하나님은 뜨겁게 느껴지는 열이라고 주장하던데 요. 이것이 맞는 비유인가요? ▲필자 : 아니란다. 그것은 양태론이라는 학설이란다. 삼위일체 신관에 어긋나는 이단적 학설이라고 이미 판정된 거야. 진실이 아니라는 의미이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 모두가 각각 태양본체와 빛과 열 이 되신다는 거야. 결코 하나님은 조각퍼즐 식으로 나눌 수 없는 거란다. 하나님은 통합된 한 인격체이시면서, 또한 독립된 세 인격체라는 삼위일 체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경적 진리라는 거란다. △주성 :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기독교적으로 성부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인가요? ▲필자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하더구나. 하지만 그것 또한 성경적 진리가 아니란다. 성경에서는 천지 만물(영계와 물질계)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표현하지. “태초에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그리고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구속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여호와’라고 표현하고 있단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성경에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결코 독립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단다. 삼위일체 신관이 없는 유대인들은 소위 성부 하나님만을 여호와라고 믿고 있 지만, 사실 여호와는 어느 한분의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칭’인 것이란다. △주성 : 그러면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라 고 불러야 겠네요. ▲필자 : 바로 그거야. 우리 모두를 인간이라고 통칭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통칭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다. 요한복음에 보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여호와’ 라고 할뿐 아니라, 성부하나님과도 하나라고 고백하시거든. 물론 이런 주님의 주장 때문에 결국 삼위일체를 전혀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신성 모독죄로 핍박과 죽임을 당했지만 말이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내가 여호와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내가 여호와 인줄)을 알고”요8:28. “나와 아버지는 하나(삼위일체)이니라”요10;30. △주성 : 하나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니, 신기하고도 놀랍네요. 만물을 초월하시어 존재하시고, 또한 만물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시며 다스리시고, 인격적 사랑을 나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영원한 신비일 것 같아요. ▲필자 : 그렇지. 어찌 인간의 이성과 지각으로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겠니? 하지만 우리에게 분명한 것이 있단다. 우리 인간들에게 성육신하여 보여 지고, 만져지고, 계시되어진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인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구원자 이시며, 유일한 숭배와 믿음의 대상이시라는 거야. “(예수 이외에)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저자 / 박공서 목사
    • 오피니언
    2021-07-24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1.구원론
    1. 구원론(救援論). △주성 : 구원론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필자 : 허허 그럴게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실패로부터의 구원등 말이야. 그런데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단다. ‘죄로부터의 구원’이야.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속죄인 성화(성결)에 이르는 것을 구원이 라고 한단다. △주성: 그런 상식은 저도 배워서 알아요. 그런데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 믿자마자 해결된 것 아닌 가요 ? 저는‘이신칭의’가 성경적 구원론이라고 배워서요. 믿기만 하면 다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성도(聖徒)’ 라고 부르쟎아요 ▲필자 :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의 남용이란다. 우리가 올바른 구원론을 알기 위해서 종교개혁자 칼빈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구나. △주성 ; 칼빈은 개신교 최고의 신학자 아닌가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칼빈은 책상에서 교리를 정립한 지적인 이론가가 아니라는 거야. 칼빈은 일상에서의 경건한 영성적 삶으로 구원의 전 과정을 체험했 고, 그 바탕에서 성경적 신학을 정립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단다. 대부분 그를 차가운 지적 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는 단순한 신학 자가 아니라 기독교 최고의 영성 인이요, 따스한 인격을 소유한 경건한 신 앙인이라는 거야. 넌 칼빈하면 뭐가 생각이나니? △주성 : 튤립(TULIP)교리요. ▲필자 : 그렇지. 그런데 튤립교리에 대하여 자세히 아니? △주성 : 사실 그 내용은 잘 몰라요. 쉽게 설명해 주세요. ▲필자 : 그래. 대부분 튤립교리가 장로교에만 한정된 지엽적 교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을 종합한 것으로, 기독교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거란다. 칼빈은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이신칭의’를 외친 루터보다 후시대 사람 이야. 루터가 ‘이신칭의’의 구원론으로 믿음과 은혜만을 강조하다보니,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어 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이원화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게 되었단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칼빈은 자신의 성경적 체험을 바탕으로 루터의‘이신 칭의’구원론을 성경적으로 수정 보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튤립교리야. 아들아! 종교개혁자들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 전체가 진리는 아니라는 거야. 그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맹신할 수는 없 어.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시금석이 되어야 한단다. 성경으로 충분히 검증하여 취사선택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칼빈의 구원론을 신뢰하는 이유는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론과 일치하기 때문이야. 지금부터 칼빈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정립한 ‘5단계 구원론’을 설명하마. 1).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전적부패는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단코 회생 불가능할 정도 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거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 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 다.”롬3:10-13. 혹시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하여 아니? △주성 : 그럼요. 지구엔 중력이 있어서 지구상의 모든 물체에 작용하여 중심으로 잡 아 끈다는 이론 이쟎아요. 당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중력에서 자유롭지 않겠지요. ▲필자 ; 그래 잘 아는구나. 같은 이치로 우리 모든 인간에게도 이와 똑같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란다. △주성 : 중력의 법칙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필자 : 바로 ‘죄의 법’이란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롬7:23.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성령이 떠나갔고, 그 자리에 7가지 성질을 띤 죄악성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7종 죄악성)이 있음이니라”잠26:25. 교만한 성질, 태만한 성질, 음란한 성질, 아집적인 성질, 질투하는 성질, 포악한 성질, 거짓된 성질 등 이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타락했다는 것은, 아담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악성이 유전되어, 그 죄의 강력한 법에 지배받는 다는 것이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 지라”롬7:11.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는 죄악성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탐욕만을 위한 품성으로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것이야. △주성 :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생명과를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단순히 과일 먹는 것은 아니겠지요! ▲필자 : 당연히 일반적인 과일을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란다. 생명과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영생)으로,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한 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해와 같은 예수님으로 옷 입는다고도 표현하지. “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계12:1 반면에 선악과는 사탄 루시퍼의 생명(사망)으로, 먹는다는 것은 사탄과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교만이요, 탐 욕 이란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최고최대의 헛된 망상이요, 오판이었지. 하지만 그 결과는 ‘전적 타락’일 뿐이야. 당연히 그 엄청난 책임을 우리 인간이 져야만 했단다. 사도 바울은 죄에 법에 지배받아 스스로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을 ‘곤고한 사람’‘사망의 몸’이라고 증거 했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주성 : 그런데 인간은 자력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철학과 종교와 윤리도 덕을 만들지 않았나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그 어떤 철학자도, 종교인도, 도덕군자도 인간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거룩함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인간이 없다는 거야. 최고의 윤리와 도덕을 주장하며 실천해온 공자도 말년에 ‘내 안에 탐심을 막을 길이 없구나!’라고 탄식했고,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강조하며 하나님 의 존재성과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그리스도를 강력하게 부인해온 볼테르도 죽기직전에‘나는 하나님의 저주로 지옥에 떨어진다. 예수를 부인했으니 누 가 날 구원해주랴!’탄식하며, 발악을 했다고 하쟎아. △주성 : 결국은 역사가 인간의 전적타락을 증명해 주는 군요. ▲필자 : 그렇지. 전적 타락했다는 성경의 증거를 인류역사가 경험적으로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지.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주성 :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는 선한 사람들만 택하여 구원하시겠지요? ▲필자 :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질 않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갈1:15. 구원의 대상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이라는 거야. 칼빈은 성경과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고‘무조건적 선택’이라 고 정의한거야. △주성 : 흠~ 저는요!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돼요. 어떻게 살인자나 강간범들이~~~구원을! ▲필자 : 사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하지만 구원은 인간의 이해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임을 알아야해. 마음을 비우고 잘 들어 보거라. 구원론의 1단계가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주성 : 당연히 기억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무조건적 선택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필자 : 밀접한 관계가 있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을 피할 수가 없 다는 거야. 만약에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하여 선한 자유의지가 조금이라 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상관없이 인간이 구원을 결정짓겠지. 그러나 죄악성을 가지고 그 죄의 법에 지배당하며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선한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는 거야.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2. △주성 : 아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 모두가 악인이겠네요. 당연히 지옥 갈 운명이겠구요. ▲필자 : 그렇지.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셨 다는 거란다. “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우리 모두가 다 지옥에 갈 운명이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 절대적인 은혜’라는 거야.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해서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거야. 하지만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의 여지 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구 원하신다는 거야. 이제 이해되지? △주성 : 네!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왜 모두를 선택하지 않고, 일부분만 선택하여 구원하시는지 무척 궁금해요? ▲필자 : 글쎄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외면하시고, 이스라엘만 선 택하여 구원하셨는지~~~ 아쉽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피조물이자 죄인인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 니듯 싶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그 깊으신 섭리를 알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 받았고, 구원의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거란다. 어찌 보면 구원은 철저히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거란다. 부모가 구원받았다고 자식도 더불어 구원되고, 아내가 구원받았다고 남편도 더불어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주성 : 예수님은 만인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오셨겠지요? ▲필자 : 아니란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오신 거란다. 그것이 성경의 증거이고, 칼빈은 그것을 ‘제한적 속죄’라고 정의 했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3:2.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 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레16:19. △주성 : 주님의 대속 범위가 한정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요.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사람은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어도 거절 된 다는 것이쟎아요. ▲필자 : 이 문제 역시 구원론의 1단계인 ‘인간의 전적 타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 단다. 사실 속죄의 은혜라는 것은, 선택받아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거란다. 선택도 받지 않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죄 사함이 무슨 의미가 있 겠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것은 초대장도 받지 않고, 새 양복 입고 예식장에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거라구. 이렇듯이 천국 입성의 조건인 거룩함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고, 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인 거야. △주성 : 그렇다면 누가 선택받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필자 : 그것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증거 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선택받을 사람들의 적정 규모를 밝히고 있지.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 이 시험할 것이라”슥13:8-9.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으로 아담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태어난 사 람들 중에서 삼분의 일만을 선택하여 구원하신다는 거야.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같은 광야 여정을 통하여 연단하여, 속죄 은총을 적용시켜 거룩 케 한다는 거란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바울은 ‘십자가의 도’라고 증거 했단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무조건적 선택과, 선택한 백성들만을 위한 제한적 속죄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원리란다. △주성 : 그렇다면 선택받지 못한 불신자들의 그 어떤 영웅적 선행과 극기고행으로도 속죄되어 거룩케 될 수는 없겠네요? ▲필자 : 당연하지. 예수님의 속죄은총이 적용될 때만이 전적 부패한 인간의 죄악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고 거룩해 질 수 있는 거야. 성경에서는 예수님이외에 그 어떤 구원자도 선택하지 않았음을 알아야해.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각종 종교 나 철학이나 윤리 도덕으로는, 전적 타락한 인간이 죄 사함 받아 천국에 들 어갈 수 없는 이유란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주성 : 불가항력적인 은혜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 같은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필자 : 이것의 의미를 알기 전에 질문하나 하자꾸나. 넌 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주성 : 은혜란 좋은 것 아닌가요? 병 낳고, 건강해지고, 기도응답 받아 형통해지고, 귀신도 쫒겨 나가서 평안 해지는 거구요. 대부분 은혜를 육신적으로 축복받는 것이라고 알쟎아요. ▲필자 : 사실상 네가 말한 것은 정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은혜야.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증거 하는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단다. “이것(고난, 시련)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5: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겪는‘일상의 모든 고난이 참된 은 혜’라고 증거하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와 전혀 다른 개념이지. 다시 한번 질문해볼게.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생활하면서, 기름진 땅 애굽에서 누리게 되 는 쾌락적 문화와 산해진미 같은 음식들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자유 인이 되어 척박한 땅 광야에서 더위와 추위 속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도움을 받으며 율법을 지키는 공동체 훈련을 받고, 매일 천상의 음식인 만 나를 먹는 삶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주성 : 흠 ~~ 저는 힘들더라도 광야의 삶이 은혜라고 생각해요. ▲필자 ; 왜 애굽의 정욕적인 삶보다, 힘들고 인내해야 하는 광야의 삶이 은혜일까? △주성 : 애굽에서는 아무리 고기와 술을 먹고, 춤과 오락이 있어도, 자유가 없고 소망이 없쟎아요. 하지만 광야에서는 단순한 음식 만나와 단조로운 일상만 있지만, 자유가 있고 가나안땅에 들어간다는 소망이 있쟎아요. 그러니 그것이 참된 은혜인 것이지요. ▲필자 : 옳거니. 바로 그거야. 이런 이유로 출애굽 즉시,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갔던 광야가 은혜라고 하 는 거란다. 광야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 은혜인지, 대표적인 성경인 모세오경의 대부분 이 광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거야. △주성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다면, 광야를 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요? ▲필자 : 당연히 있지. 얼마든지 해안가로 가면, 광야를 거치지 않고도 가나안 땅에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지. 하지만 광야 길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뜻이었다는 거야. 지도자였던 모세도 자신이 직접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광야의 영적 효 과’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기에,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 로 인도했던 것이란다. 광야의 좁은 길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거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광야(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14:22.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직후에 들어가는 광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거야. △주성 : 아하! 그렇다면 영적 선민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애굽 땅과도 같은 죄악 세상을 떠나자마자, 영적 광야로 들어가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겠네 요? ▲필자 : 당연하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는 광야라는 것을 명심해야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즉시로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 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으로 의아해하며, 신앙 적 회의감을 갖곤 하지. 이것은 예수 믿으면서, 모든 환경이 가나안땅처럼 평화롭고 풍성하게 바뀌길 소망했기 때문이야. 복음의 왜곡이지.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한단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벧전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광야 여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불가항력 적인 은혜이니 크게 기뻐하라는 거야. △주성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척박한 땅 광야에 대하여 잘 모르는데, 광야 과정 이 꼭 필요한 건가요? ▲필자 : 성경은 분명하게 광야가 은혜라고 증거 한다고 했지? 그 말은 곧 광야를 통하여 엄청난 복이 주어진다는 거야. 그게 바로 ‘연단’을 통하여 생명과를 먹는 거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약1;3-4. 광야의 연단은 우리의 나약한 자유의지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강하게 하고, 죄 악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는 효과가 있다는 거야. “이는 큰 환난(영적광야)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연단 받음)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고난의 광야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을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속죄함의 결과로 받는 영생이 없다)”요6:53. △주성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광야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광야와 같은 궁핍과 질병의 거친 환경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폄하하 고, 죄악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정죄하구요. ▲필자 : 맞단다. 특히 한국교회는 기복적인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환란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성향이 강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인본 적이고 정욕적인 사상을 경계해야 해.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 라(광야 과정을 면제 받으리라) 하는 모든 죄인(거짓 선지자)은 칼에 죽으 리라”암9:10.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영적 광야과정인 대환란이 없다고)하는 선지자들 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렘14:15. 복음에서 십자가를 뺄 수 없듯이, 구원의 여정에서 광야를 뺄 수 없는 거란 다. 광야란 이 땅에서 천국으로 연결된 유일한 사닥다리야. 자 이제 간단하게 종합해볼게. ‘구원 그 이후’에 있게 되는 십자가의 고난 과정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산물이라는 거란다. 즉 애굽 → 광야→ 가나안땅은 구원의 절대적인 설계도란다. 암! 광야를 빼고 우리의 구원을 논할 수는 없지. 광야의 도는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해.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주성 : 성도의 견인 교리는 소위‘절대 예정론’아닌가요?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된다는 학설이요. ▲필자 ; 맞단다. 이 교리에서‘예정론’이 나온 거란다. △주성 : 그럼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도 결코 타락하지 않고, 구원이 보장되는 거란 말이지요? ▲필자 : 아쉽지만 그건 아니란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세력인 니골라 당도 너와 같은 주장을 했단다. 한번 은혜로 구원받으면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되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 도 상관없이 은혜로 다 해결된다는 달콤한 교리였지. 하지만 주님은 이런 주장을 하며, 정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니골라 당을 대 단히 싫어 하셨어.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주성 : 그렇다면 이 교리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필자 : 먼저 칼빈의 5단계 구원론은 수평적으로 보지 말고, 수직적으로 보아야 해. 즉 튤립 교리는 ‘영적 성장의 측면에서 증거 된 경험적 진리’라는 거야. 성도의 견인은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보적 교인이 아닌, 광야연단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 죄의 문제를 해결한 장성한 성도(Saint)에게만 적 용되는 한정적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해. 그래서 성도의 견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다. “이기는 자(광야 연단과정을 마친자]는 이와 같이 흰 옷(생명과)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이긴자가 된 성도는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도록 견인하리라)”계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성도의 견인)”계3:12. △주성 :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견인되기 전, 광야 여정 중에는 얼마든지 타락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겠네요? ▲필자 : 그렇지. 성경의 증거는 아주 단호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고 말이야.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32:32-33.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성경에서는 구원받아 광야에 들어갔지만, 그 여정 중에 정욕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여 음행한 이들을‘가라지, 음녀, 적그리스도, 불법을 행한 자’라고 증거 한단다. 소위 이단 교주들인 니골라 당의 니골라,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유다, 예수님 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 천부교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등이 그런 자들이란다. △주성 : 아! 이제 알겠어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견인교리는 광야 여정중의 익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광야 연단 과정을 마치고 다 익어져 성화된 성도(Saint)만 영원히 구원이 보장(견인)된다는 것이잖아요. 이제야 예정론의 성경적 진실을 알 것 같아요. 저자 / 박공서 목사
    • 오피니언
    2021-07-17
  • 지금 그대로 행복 하라(2)
    1억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에게 정말 1억이 생기면 정말 그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게 될까? 소망하던 1억을 갖게 된 사람은 그 후로 항상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일이 이루어진다고 현실이 꿈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꿈은 이루어져도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사람이 기대하는 꿈은 아무런 부작용과 변칙적인 상황 없는 희망이지만, 꿈을 이룬 현실은 희망에 포함 되지 않은 변수와 부작용으로 가득 차있다. 1억을 바라던 사람이 1억을 얻은 후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결코 1억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액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1억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1억을 가진 후에 10억을 바랄 것이고, 10억을 가진 후엔 100억을 바랄 것이다. 사람을 행복 하게 하는 것은 1억도, 100억도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단 돈 만원 이라면 그 만원으로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중학교를 나온 사람이, 중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더 행복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듯하다. 자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반듯이 명문대학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부모, 판사나 검사, 의사나 교수 정도는 돼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행복은 많이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행복할 특권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철학가나 농부나 타고난 가치는 동일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가치는 세상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의 가치이다. 경찰이나 도둑이나, 판사나 죄인이나, 박사나 바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살면서 아주 조금 더 가치를 추가하게 된다. 세상에서 얻는 후천적 가치는 타고난 생명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갈 때는 살면서 얻은 모든 가치를 남겨두고 떠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가지고 태어난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 할 수 있고, 불행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하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후천적 습득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누구처럼 돼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잘나고 똑똑해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행복 할 수 없다. 오늘 지금 그대로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도 행복 할 수 없다. 무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 가족이 달콤한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이 막힐지도 모르기에 아버지는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전날 저녁에 미리 짐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고, 새벽에 잠이 깨면 대충 아침을 때운 후에 바로 출발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었다. 다음 날 일찍 깬 아버지는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곤히 잠든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고 일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운전 하는 동안 차에서 더 잘 수 있으니 빨리 일어나서 소지품을 챙기라고 하였다. 아빠가 전날 정리한 짐을 차에 싣고 있는 동안 끝나가는 휴가가 아쉬운 지 아이들은 호숫가로 달려 나갔다. 짐을 다 옮기고 간단한 아침을 먹기 위해 엄마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아빠는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호숫가로 나갔다. 풀잎에는 보석처럼 이슬이 맺혀있고 백사장의 모래는 아침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반짝였으며 호수는 물안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아이들은 천사처럼 반짝이는 백사장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아빠의 눈에 휴가 내내 발견하지 못했던 호숫가의 아름다운 정경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이미 휴가는 끝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피곤하지 않은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숫가를 그림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향해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려는 순간 아빠의 가슴 속에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저렇게 행복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지금 불러들여야만 하나?” / “인생의 행복은 바로 이런 순간인데 막히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 당장 떠나야만 하나?” / “행복의 한 가운데 빠져 있는 아이들을 냉정한 현실로 끌어 올려야만 하나?” / “새벽에 떠나야 한다고 누가 결정한 것인가?” / “정말 새벽에 떠나야만 하나?” / “지금 이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데.” 호숫가를 달리며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향해 아이들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아빠는 아침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대신 아이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어린 천사들 사이에서 함께 뛰는 어른 천사가 되었다. 물가를 한참 뛰고 있는 사이 아침 준비를 마친 엄마가 아이들과 아빠를 부르기 위해 호숫가로 나왔다. 엄마를 발견한 아빠는 달려와서 아침은 천천히 먹고 호숫가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였고, 온 가족은 아침을 식탁위에 차려놓은 채 호숫가에서 휴가의 마지막을 장식 하였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 온 가족들은 그 후로 오랫동안 아니, 평생 동안 호숫가의 행복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도 행복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물고 싶은 자리에서 무언가를 위해 일어서야 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떠나야만 하는가?” <김홍식 목사> -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 14권 출판. - 부부행복학교 대표. www.booboohappy.co.kr. - 시온LED 대표. http://m.onejin.kr.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1-06-21
  • [논평] 이상민 의원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철회하라
    지난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10822)을 대표 발의하였다(발의자 24명-이상민, 박주민, 남인순, 윤미향, 진선미, 김용민 등 더불어민주당 22명, 최강욱 열린민주당 1명, 김홍걸 무소속 1명) 이 의원은 그 동안 지역민들과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대를 해 왔지만, 끝내 입법발의를 강행한 것이다.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소위 ‘평등법’은 과거의 “차별금지법”의 다른 이름인데, 국민들의 저항을 피하기 위하여 ‘평등’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과거의 차별금지법과 비슷하지만 오히려 독하게 강화시킨 내용이 눈에 띈다. 그 특색을 살펴보면,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예외 조항 없이 철저하게 ‘차별’을 막겠다는 것이다. 전에는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 문제’(성적지향, 성정체성)와 ‘종교의 문제’를 빼야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이번에 발의한 소위 평등법에서는 그런 부당함의 반대 입장을 해소하려는 최소한의 의견청취 모습도 전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하지 말고 불평등하게 대하지 말자고 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차별 사항이나 불평등 조항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항목들이다. 이번에 이상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내용에도 들어 있는 것인데 ‘가족형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은 쉽게 말해서 동성애나 사회적 성인 ‘젠더’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것은 가정의 질서와 가치, 윤리적 파괴는 물론 우리나라를 동성애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다. 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인데,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헌법체계를 바꾸어야 하고 국가를 전복하는 세력이 있어도 이를 제어할 방어막이 사라진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다른 체제를 주장해도 막을 길이 없어 국가의 혼란이 가중된다. ‘종교’의 부분도 있는데, 종교에는 고등종교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으며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혹세무민하는 세력도 있다. 이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면 그들의 기행(奇行)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또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는 잘못된 타종교의 교리나 행위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는데, 이런 것들에 대하여도 함구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 법안의 주요내용 설명 ‘라’항에 보면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도 차별로 본다’고 하여 ‘표현의 자유’까지도 막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전 국민의 눈과 양심의 소리를 초헌법적인 독재 체제로 막으려는 것인가? 거기에다 ‘타’항에 보면 ‘발생한 손해의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하는 ‘악법’이 된다. 가령, 목회자가 강단에서 성경적인 가르침대로 동성애의 문제에 대하여 설교했는데, 이에 손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와서 자신들이 명예와 정신적인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동성애와 젠더를 인정하는 사회가 된다면 가정과 사회는 무너질 것이며,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참된 삶을 위한 종교의 가르침이나 역할이 사라져 우리 사회는 원시적이고 미개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의 참된 삶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들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차별과 평등을 빌미로 억지 법률로써 모든 자유를 얽어매겠다는 발상이 무섭다. 의원들은 입법 활동에 앞서 양심과 윤리, 종교, 가정, 사회 성숙함의 가치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소위 평등이란 명목으로 ‘악법’이 만들어져 우리 사회를 반지성적, 반양심적, 비인간적이고 혼잡한 집단으로 만들게 될 것이란 생각은 왜 못하는가? 법이란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야만 사회를 만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백번 양보하여 ‘평등’이란 이름으로 이런 악법을 만들었을 때, 우리 사회에서 역차별을 당하고 인간의 참다운 가치를 상실해도 법률 때문이라는 거대한 댐에 갇혀, 인간의 진솔함과 생명을 잃어가는 수많은 국민들은 누가 보호하며 그 피해를 보상한단 말인가? 국민들도 차별금지법(평등법)의 문제점을 이제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입법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라도 더불어민주당이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즉각 이 법안을 철회함이 마땅하다.
    • 오피니언
    2021-06-19
  • [칼럼] 힘과 짐
    역사학자 A. J. 토인비는 ‘중용’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자기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만한 짐을 말한다. 그런데 힘에 부치는 짐도 자주 지다보면 어느새 없던 힘이 생기고 또 힘을 많이 쓰지 않아도 질 수 있는 요령이 늘기도 한다. 노력 여하에 따라 힘은 커지기 마련이다.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힘을 키우는 과정이다. 어린 아이가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다 보니 지적 힘, 육체적 힘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인 요령도 익히는 것이다. 이렇게 힘을 키운 결과 세상을 짊어지고 또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짐을 지려면 힘이 필요하다. 짐이 무겁다면 더욱 큰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누구든 자기 힘에 맞는 적당한 짐을 져야 한다. 과도한 짐은 힘을 써볼 새도 없이 짐 진 자를 무너지게도 한다. 짐을 잘 지는 요령 중 하나는 함께 지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못하던 것을 둘, 셋의 힘을 모으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내게 된다. 또 무조건 모든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질만한 짐을 선별할 수 있는 분별력도 필요하다. 아무 짐이나 지지 않는다. 내게 적절한 짐을 감당하고 맡은 짐이라면 책임지는 자세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좀 과하다고 싶어도 반드시 짊어져야 할 것이라면 지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내 짐조차 제대로 지지 못하면 나는 세상의 짐이 돼버린다. 주변에 감당도 못 하면서 과도한 짐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다. 질 만한 짐을 져야 하는데 욕심만 앞세워 오히려 일은 망치고 짐은 깨져버린다. 또는 져야 할 짐을 회피하여 모두에게 민폐를 만드는 스스로 짐이 되는 부류도 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든지, 짐이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내게 힘이 되고 또 다른 이는 내게 짐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주님은 내게 감당할 수 있는 짐만 지우신다. 그리고 짐을 맡길 때는 필요한 힘을 주시고, 또 내가 버거워할 땐 짐을 대신 져주시기도 하신다. 주님께서 주신 짐이 있다. 사명으로 여겨야 할 그것은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한다. 그러기에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지만 결코 싫지않다. 오히려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다. 주님께서 맡기신 짐이라면 지혜롭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혹 그 짐을 망가트리지나 않을까 조심하며 잘 지고 가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짐을 잘 지는 것이 힘이다. 난 주님께 짐일까? 아니면 힘일까?
    • 오피니언
    2021-06-16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서론
    필자는 신학교에 다닐 때, 조직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배웠다. 배우면서 느낀 것이지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왜 조직신학처럼 어려운 학문을 하는지 의문이 갔다. 성경과 가까이 하게 도와줄 신학이 도리어 성경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었다. 왜 기독교를 분명하게 대변할 조직신학이, 인본 적이고 생명력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실 시중에 나온 많은 종류의 조직신학 책들이 학문적으로 연구하기엔 적합할지 모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적용하기엔 다소 어렵고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에는 대단히 방대한 책이다. 백화점처럼 종류별로 잘 정돈되어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장구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시가서와 사도들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엄청난 성경의 땅에 산발적으로 묻혀진 신론, 기독론, 교회론, 성령론, 종말론등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돈해야만 한다. 그것이 조직신학이 태동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마땅히 조직신학은 쉬워야 하고, 성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활력을 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누가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읽는가?신학생들이다.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잘 읽질 않는다. 읽어야 할 문제의식조차 없다. 하지만 신학생들은 리포트를 써야하기에, 논문을 써야 하기에 학문적 연구용으로 읽는다. 이것은 넌센스이다. 조직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중요한 분야이다. 특정인에게만 국한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알게 해야만 한다. 중세 때 성경이 어려운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어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부들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이 일반 대중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책이 되어 버렸다. 광야 훈련매뉴얼인 성경이 정작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게 된 것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심각성을 느낀 마르틴 루터는,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보급했다. 쉬운 독일어로 성경을 읽은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케톨릭의 종교적 의식으로 화석화 되었던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획기적인 개혁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통한 진정한 종교개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귀족들의 정치적 개혁이 아닌,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개혁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현대시대에도 화석화된 그리스도인의 일상에 성경을 통한 개혁이 절실하다. 성경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고, 사랑하게 해줄 수 있는 일상 적용형 생활 조직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이 쓰여 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글이 그런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이글은 학문을 위해 쓰여진 논문이 아니다. 일종의 담화식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편하게 읽고 삶에 적용하여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쓰여 졌다. 필자는 신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기독교적 교리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아 늘상 질문을 한다. 본 글은 아들의 질문과 필자의 답변을 쉽게 정리한 것이다. 먼저 이 글을 쓰는 내내 영감을 주신 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직한 아들들에게 감사한다.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그 외의 모든 분들과 새부천 교회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저자 / 박공서 목사
    • 오피니언
    2021-06-16
  • [논평] 기독대학에서의 예배는 기독교적 소양으로써 중요하다
    지난 5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이하 인권위)에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기독 정신과 국가의 교육이념에 따라 교육하던 대학에서의 채플(예배)를 문제 삼아, 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하여 종교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게 하라는 권고를 내렸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해당 학교에서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한 목적에 따라 채플에 2분의 1이상을 참석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바, 이에 대하여 진정(陳情)한 학생의 주장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인권위의 결정을 보면, ‘대학이 종교적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채플을 필수교양과목으로 지정하고 그 이수를 졸업조건으로 하면서도 대체과목이 없는 것은 개인의 종교의 자유와 신앙고백의 자유를 침해하며,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헌법 제31조 제1항)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가 학생들이 주장하는 바만 강조하면, 엄정한 국가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를 따져 보자. 첫째, 국민의 교육과 대학설립은 헌법에 보장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인 헌법 제31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고, 또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여 대학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종립학교는 처음부터 특정 종교의 정신에 따라 설립되는 것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 종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예배)을 문제 삼는 것인가? 두 번째, 예배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며, 기독교 소양으로써도 필요한 대목이다. 국가인권위는 기독교학교에서의 채플(예배)을 기존 교회의 예배 행위와 다름없다면서, 기독교 소양(素養)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교리 공부나 성경 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 예배이다. 그 예배에는 기존의 신앙을 가진 사람도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다. 즉 예배는 기독교 교육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국가인권위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세 번째, 이 학교가 비록 채플 참석이 졸업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만, 그것을 학점이나 성적으로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Pass로 했다. 그것도 전체에서 2분의 1 참석이면 ‘통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마저 문제 삼는 것은 종립대학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네 번째, 대학은 본인의 선택이며, 이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이 대학은 학생 본인이 선택할 때 이미 기독교 학교이며, 그에 따른 종교 행위가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귀착(歸着) 사유가 아닌가? 그 책임을 학교에 전가시키는데 국가 기관이 앞장서는 것은 잘못이다. 개개인의 의견이나 주장도 존경해야 하지만, 제도적으로 합의되고 편성된 교육과정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학칙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국가 기관이 개인의 소극적 종교의 자유(거부권)만을 강조한다면, 오히려 헌법에 명시된 진정한 ‘종교의 자유’마저 침해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인권위는 이런 권고를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국가인권위가 ‘인권’을 중시하여 만들어진 국가기관이라지만 편협 되고 편파적인 인권에 치중한다면, 누가 이를 공정하게 받아들이며, 그 결정에 순복하겠다는 마음이 들겠는가?
    • 오피니언
    2021-06-16
  • [칼럼] 신영지주의를 경계하라
    이 시대의 교회나 크리스천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의 간단한 정의는 타락한 형태의 교의를 가진 한 이단사상으로만 판단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우리는 구원을 믿음(faith)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영지주의는 앎(Gnosis)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한다면 앎으로, 사람의 기원이 신성에 있음을 알고, 이 깨달음을 통해 사람의 구성 중 영적요소인 영혼은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영향으로 기독론에서 있어서도 정통진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는데 예수는 단순한 메시아로 화신하여 나타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대해 우리는 엄격하게 정죄 또는 배격 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영지주의의 현상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우려된다. 영지주의 사상의 적용은 이렇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악은 물질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은 물질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산물이 이원론적 사고가 나오게 되어 구원도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킨 결과 금욕주의 아니면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주의 사상이 영지주의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영적지형도를 볼 때에 신 영지주의(新 靈智主義)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다. 구원은 분명 믿음을 통해서만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기에 다른 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이 절대 진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절대 진리를 적용하여 요구되는 믿음의 현상과 열매와는 사뭇 괴리감이 있게 되어버린 현실이 영지주의 현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신 영지주의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안타까운 영적 현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유방종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 마약, 동성애, 폭력, 범법 등 기타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점점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갈 5:13) 둘째, 행함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신앙행위를 우리는 목숨처럼 알고 지켜왔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십일조 생활이나 헌신의 삶을 한국교회가 강조하며 지켜왔다. 이제는 어떤 것이든 강조를 하면 율법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하셨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약 2:22). 셋째, 천국에서의 부활영생을 잊고 산다. 막연한 천국이 아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신 성자이셨으며, 그 육체가 부활의 육체가 되셔서 승천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절대 소망은 우리의 부활 이후의 영원한 천국의 삶 즉 부활영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나 교계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가치관과 행위들이 오로지 이 땅이 절대 영원한 소망인 것처럼 보이는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무후무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자. 반대로 냉정하게 하나님께서 교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를 깊이 묵상하며 회개하자. 부디 신 영지주의 현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오피니언
    2021-06-11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5)
    5. 개혁파 신학의 확립 시대 왜 갑자기 김치선 박사의 역사를 말하면서 개혁파 신학을 들고 나오느냐? 라고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안양대학과 교단의 정체성에 대한 아주 중대한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역사를 되돌아 볼 때 대신교단이 그 역사를 여지없이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파 신학은 몸으로 비유할 때 가장 중요한 뼈대와 뇌의 조직에 해당한다. 겉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지만 몸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신학은 현실 적용에 있어 전혀 무용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교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신학이 비성경적이면 그 교회는 반드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마의 소굴이 되어버리게 된다. 오직 개혁파 신학만이 교회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교회의 역사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300여 년간 극심한 박해를 받은 교회는 사도신조를 중심하여 니케아 신조, 칼케돈 신조, 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정통신학으로 확립한 후 중세를 지배하는 조직체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중세교회의 타락이 수많은 순교자들을 양산해 낸 후 종교개혁 신조를 탄생시키고 복음이 유럽을 기점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교단의 신학으로 지정한 것에 대하여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신이라는 이름으로 교단의 신학과 총회의 정치를 확립하신 분은 최순직 목사이시다. 1972년 제 7회 총회를 통하여 최순직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고 그 총회장을 통해 1973년도에 이르러 교단 선언문을 작성하여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최순직 목사와 조석만 목사 두 분이 함께 그 문장을 수없이 고쳐가며 다시 첨가하고 또 삭제하는 것을 반복 또 반복하였다. 그 내용의 전문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 서론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우리 교단의 헌법은 장로회신조 및 정치원리를 따라 교회를 치리함에 있어 준용하여야 할 규범이다. 그런고로 우리 장로회 총회는 역사적 표준을 따라 헌법을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우리 총회는 개혁주의 노선으로 교리체계를 확립하여 교회선언문을 채택하여 전국 교회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개정 헌법이 교역자와 성도들에게 마땅히 승인되고 준행케 할 법이 되기 바라며 또한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표준 법규가 될 줄 알아 이를 공포 발간하는 바이다.” 대신교단의 모든 신학과 정치체계를 구성해 놓고 최순직 교수는 1975년 연구차 임시 2년간만 체류하기로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 후에 김세창 박사를 옹호하는 가족들은 최순직 교수로 하여금 아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해를 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방배동 장종현 박사가 운영하는 신학교 교수로 청빙되어 가는 일까지 방해한 사실을 필자가 옆에서 볼 때 심히도 가슴이 아팠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최순직 교수는 꿈에라도 대신을 잊을 수가 없어 언제인가 돌아갈 생각을 품고 계셨다. 필자가 대한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로 청빙을 받아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안양 석수동 대한신학교 특강 초청을 받아 한국에 들렀을 때 최순직 교수댁을 방문하였다. 어떻게 하면 대신으로 다시 합류할 수 없을까? 하는 문제를 숙의하기 위해서였다. 최순직 교수께서 기회만 되면 대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대신의 중요한 인사들의 의견을 개진해 보았다. 이상하게도 모두 반대 의견을 내 놓았다. 알고 보니 최순직 교수가 돌아오게 되면 비 개혁파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총회에서도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게 됨으로 안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기서 대한신학교의 교리적 성장과 교단의 양적 성장은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순직 목사의 사모 되시는 김동화 선생의 증언을 그대로 옮기면 “김세창 목사는 우리 가족을 미국으로 이민 가게 한 것은 사실상 대한신학교에서 최목사를 밀어내기 위한 공작이었다. 학교를 김세창 목사의 원대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최목사를 내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2년이 지나도 최목사를 다시 초청하지 않고 김세창 목사의 측근들을 학교의 교직원으로 배치해 버리고 말았다.” 라는 것이다. 김세창 목사의 아버지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신학으로 이어져 근본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신앙화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최순직 교수는 교회사적 객관주의적 신앙고백주의에 기초한 개혁파 신학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 두 분의 신학적 대립은 대신의 신학적 혼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김치선 박사의 선교적 개척정신과 최순직 교수의 개혁파 신학이 공존 했으면 아마 한국에서 최고의 신학교와 교단으로 성장했다고 생각되어진다. 김치선 박사의 신학은 비록 근본주의적이라고 하지만 그분의 설교와 저서를 탐독해 보면 개혁파 신학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물론 당시에는 강한 세대주의적 요소를 주장하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지만,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수학한 경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영향을 받은 김치선 박사는 강한 민족주의가 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김치선 박사의 선교정신과 최순직 교수의 개혁파 신학이 한세대가 지난 아들 대에 들어와서 접목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양대의 신학적 좌경화는 교단의 신학적 미래를 예측하게 만들었고 대한신학대학원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은 교단의 신학적 미래와 교단정치의 미래를 예측하게 만들었다. 작금에 와서 교단이 여러 갈래로 찢어진 결과는 누구를 탓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어떻게 하면 다시 개혁파 신학을 정립하고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합동측은 헤어졌다가 다시 합한 경험이 있고 통합측은 신학이 자유분방해도 정치적 공통분포를 잘 형성하여 전통을 유지해 나오고 있는 점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타 교단의 우수한 신학교에 위탁교육을 보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개혁파 정신을 물려줄 수 있는 우리의 후예들을 키워야 한다. 같은 집안에서 자란 아들이라도 양자와 자신의 피를 받아 태어난 아들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개혁파 신학을 후예들에게 전수 시키는 방법은 우리의 힘으로 교단신학을 형성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영구적인 개혁파 신학과 교단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학위를 위해서는 미국의 우수한 개혁파 신학교와 연관을 가지는 길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6-07
  • [논평] ‘국민의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논평] ‘국민의 시간’은 누가 보상하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자신의 회고록을 6월 1일 내고 판매에 들어갔다고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회고록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검찰개혁 등 정치적인 현안들에 대하여 깊이 관여하였으나, 그의 공•사 간에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소송이 걸려 있고, 교수였던 부인도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1심 재판에서 4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이때 부인 정 모 교수에게 적용된 법적 판단은 총 11가지인데, 자녀입시 관련 혐의 전부 유죄, 사모펀드 관련 혐의 일부 유죄, 증거인멸 관련 혐의 일부 유죄 등이다. 조국 전 장관도 12가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조국 회고록 발간에 대하여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어제 교육바로세우기운동, 행동하는자유시민 등의 단체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국의 시간은 부정과 부패의 시간, 불공정의 시간, 법치 파괴의 시간, 내로남불의 시간, 국민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성토하였다. 그러면서 ‘불공정에 분노하는 학부모들과 청년들이 명령한다! 피고인 조국은 싸구려 감성팔이 중단하고 재판에 성실히 임하라’고 일갈하였다. 조국 전 장관에 관한 것들을 소위 ‘조국 대란’이라고 하는데 지난 2019년 8월부터 시작된 문제이며, 조국 전 장관은 이번에 회고록을 내면서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또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이었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황당하다. 조국 전 장관은 자신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적용하여, 일정한 목적을 위한 것이 되겠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최고의 권력을 가졌었고, 그 권력으로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피해자로 나선 것인가? 국민들이 생각하기로는 검찰개혁은 ‘검수완박’을 통한 검찰장악이었고(이는 법치 유린) 조국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하여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도, 진정으로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는 후안무치의 모습을 보였다. ‘조국 대란’은 많은 국민들이 현 정권 지지를 철회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난 4•7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로 여실히 증명되었다. 국민들은 이 정권의 반민주 행태의 민낯을 보게 되었고, 현 정권을 ‘내로남불’로 규정하기에 서슴지 않는다. 거기에 대표적인 인물이요,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자신을 검찰과 언론과 보수 야당에 의한 피해자로 억울해 한다면, 국민들의 시간은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 의식이다. 조국 전 장관은 우리나라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청와대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2년 2개월간 민정수석으로 있었고, 법무부장관으로 35일간 재임하였다. 적어도 공직자 의식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은 알아야 되지 않는가? 그에게도 가족은 소중하고, 가족들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아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을 남 탓하는 것은 졸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민주화운동을 하거나 촛불을 들고 있는 쪽이 아니다. 모든 것을 장악한 최대의 권력 집단이다. 행정, 사법, 입법, 경찰, 언론, 시민단체, 지자체, 교육기관 등 모든 것을 한 손에 장악하고 있고, 조국 전 장관은 핵심 중에 핵심이었다. 그런데 누구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우리 국민들은 정말 국가를 위한 진정한 정치 지도자를 보고 싶다. 자신들의 잘못도 남에게 돌리고, 그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적반하장으로 국민들을 선동하려는 지도자는 현 정권과 그 권력자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조국의 시간’이 그리도 소중하고 억울하다면, 수천만 명의 국민들에게 빼앗아 간 아까운 시간들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간 것을 조금이라도 기억하여 작은 위로를 삼기 바라며, 부디 자기성찰을 하기 바란다.
    • 오피니언
    2021-06-02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4)
    4.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 사실상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은 깊은 관계가 없다. 교단 형성의 기초를 제공하신 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 국가의 시책인 한 교단에 한 신학교를 원칙으로 운영하라는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ICCC와 관계하여 성경장로회의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교단을 탈퇴하기를 원치 아니했다. 여러 선교 단체에서 유혹의 손길을 내 밀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교회의 목사로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대한신학교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다시 반복되고 말았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신학교의 기득권은 필연적으로 교단의 전통으로부터 빗나가는 역사를 반복했다. 교회역사는 신학적 문제로 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정치적 문제로 신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중에 한 가지 사건이 바로 김치선 박사를 정치적으로 몰아 교단을 떠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후에 대한신학교는 ICCC와 결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치선 박사와 ICCC와의 선교적 방법론의 대립이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신학교 중심으로 선교를 하려는 의도였으나 ICCC는 지방이나 개체적 단체를 통해 선교정책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1968년 김치선 박사는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 대한신학교를 중심하여 독자적으로 교단을 건설해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대신교단을 설립하기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만든 분이 김치선 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목사이시다. 당시 김세창 박사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대한신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대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총회장이 되신 분은 최순직 목사이다. 1972년 4월 제 7차 총회에서 “성경장로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측”으로 명칭을 개정하고 최순직 목사께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본교단의 명칭과 사명” 이란 제하의 선언문을 신문지상에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는 교단직영신학교라는 경영체제에 강박관념화 되어 있을 정도의 교단신학에 집착되어 있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신학교가 교단의 정치제도아래 운영되는 교단직영 신학교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구미에서는 신학교들이 교단의 배경을 두고 운영하기보다 신학에 기초를 둔 사설학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교단들과 인준관계를 형성하여 교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리폼드(Reformed), 탈봇(Talbot), 카버넌트(Covenant), 그리고 비블리칼(Biblical) 신학교 등이 교단의 정치적 지배를 받지 않은 즉 사설 신학교들이다. 그 이유는 교단 정치에 의해 신학적 변질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과거에 보수주의를 지향했던 하버드,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들이 교단과 관계를 가지고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 왔었다. 그러나 교단 정치가 들어옴으로 정치적 술수에 의해 몰래 물밑작업을 통해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을 학교에서 몰아낼 수 없는 지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신학교는 교단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1920년대 메이첸(Machen)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으나 결국 교단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의 역사가 어쩌면 그와 비슷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김치선 박사는 신학교와 교단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시대를 앞서가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시간적으로 교단설립보다 바른 신학교 설립이 우선되어야 그에 따라오는 교단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대한신학교는 그러한 역사를 김치선 박사에 의해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던 대한신학교가 김치선 박사의 아들 대에 이르러 벧엘 기도원 땅을 판 대가를 가지고 종합대학을 세우려 하다가 오히려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어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에게 학교가 넘어가 버리고 이제는 타 종교의 재단에 학교를 인수 하느냐? 마느냐? 의 수치스러운 현상에 처해 있다. 대한신학교를 거쳐 온 사람으로서 대신출신이라는 신학의 명암을 내놓기가 부끄러운 형편이 되어버렸다. 1970년대 이후 대신교단은 장족의 발전을 하여 한국에서 장로교 교단으로서 5대 교단의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짧은 역사를 가진 교단이 이렇게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 신학적 원인, 선교적 개척정신,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다시 대신교단이 여러 교단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문제는 차후에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5-31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3)
    왜 하나님께서는 유능한 설교가만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으실까? 혹 유능한 설교가에게 설교를 들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받아야 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요나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기에 문제의 선지자로 생각한다. 이 문제의 선지자가 니느웨라는 대도시에서 설교를 했다. 당시 니느웨는 세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도시였고, 또한 우상의 도시이며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40일 후에 무너지게 되어 있을 만큼 강퍅한 곳이었다. 이러한 곳으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곳에서는 설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요나는 니느웨가 모두 회개하여 구원을 받는 큰 은혜를 끼치는 설교를 했다. 심지어 강대국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지닌 왕도 회개했다. 그렇다면 단번에 니느웨 성을 회개시킨 선지자 요나는 설교를 잘하는 선지자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는가? 진정 니느웨 성에서 요나가 한 설교는 잘한 설교였을까? 그리고 잘하는 설교만이 이러한 권능이 있는 것인가? 요나의 니느웨 성에서의 설교가 훌륭했다고 볼 수 없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향했다. 다시스는 지리상 발견 이전인 당시로서는 땅끝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요나는 땅끝으로 도망을 한 것이다. 그는 니느웨를 피해서 가장 먼 곳,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으로 향했다. 만약 다시스 보다 더 먼 곳이 있었다면 요나는 그리로 도망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니느웨가 싫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잔인한 점령국가로서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했다기보다는 니느웨를 피한 것이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들의 믿음과 헌신은 열정적이었으며 진실했다. 요나도 마찬가지였다. 요나가 원래부터 불순종의 사람은 아니었다. 요나는 단지 니느웨가 싫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으면 곧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요나는 오히려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될 것을 기대하였다. 요나는 반 니느웨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들만이 특별하다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자인 요나는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쳐들어가서라도 니느웨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사람이다. 회개만 하지 않으면 멸망을 하신다는 메시지는 요나에게는 복음이었다. 이 기회야말로 원수의 나라를 제거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자신이 니느웨로 가기만 하면 어쩌면 니느웨가 구원받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더 멀리 도망을 치려한 것이다. 요나가 선택한 다시스는 땅끝이었을 것이다. 그가 바란 것은 하나님을 피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오로지 니느웨의 멸망하기를 바란 것이다. 도망치던 요나는 엄청난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제비에 뽑힌 요나의 모습을 보면 선지자다운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풍랑은 "나로 인한 연고이니 나를 바다로 던지라" 그러면 풍랑이 잔잔해져 배가 무사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요나의 죽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돌이켜 니느웨로 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나가 죽음의 결단을 한 것은 니느웨를 멸망과 자신의 목숨을 바꾸려는 의도일 수 있다. 배 안의 사람들을 구원코자 바다에 던져지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니느웨의 멸망을 끝까지 원한 것을 아니었을까? 이후에 니느웨 성의 멸망이 지나간 후에, 요나는 니느웨 성이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 분하였다. 그럴 줄 알고 빨리 도망했었노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한다.(욘4:1,2).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원통해서 죽는 것이 나으니 죽여 달라고 몸부림친다. 그후에 요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니느웨의 멸망을 기다리며 성의 동편에 초막을 치고 머물렀다. 요나가 니느웨의 구원을 꿈꾸며 은혜로운 선포를 하였을까?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해서 말씀을 준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지자이기전에 자신의 몸을 던져서 니느웨를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설교자는 아니었다. 오직 멸망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구원 보다는 멸망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니느웨 성 사람들은 그런 요나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았다. 선지자라고 하면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였을 것이다. 오늘 성도들은 능력있는 훌륭한 설교자를 원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인정하신 선지자들이 다 뛰어난 설교자는 아니었다.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아주 불쾌하게 하는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분노를 가지게 했다. 예레미야의 40년 사역은 그의 간절함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하였고 죽이려고 했다. 특히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은 반정부 운동가의 리스트 1위에 예레미야를 올렸다. 성도들은 자신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설교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은혜받는데 설교는 매우 중요하다. 설교자는 마땅히 은혜로운 설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무시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접 말씀하셔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가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법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받기는커녕 오히려 분을 냈고,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서 좋은 선지자들을 계속하여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겼고 그들이 살던 땅에서 쫒겨나야만 했다. 신자가 바울과 같은 설교가의 설교를 듣는 것은 복일 것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훌륭한 설교에도 은혜를 받지 못하였으며, 니느웨 성 사람들은 유능한 설교가 아니라도 생명의 은혜를 받았다. 성경을 보면 망할 청중이 있고, 은혜 받을 청중이 있다. 그러므로 청중은 말씀을 잘 듣는 능력이 필요하다. 신자들은 잘 짜여진 설교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공감을 한다든지 좋은 감정을 갖는다고 하여서 은혜를 받고 능력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에 뜨거운 감동과 은혜가 있었다고 그것이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도들은 은혜 받는 것을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은혜 받았다는 감사의 말도 건네는 것이다. 은혜를 끼치는 설교자를 존경하고 귀히 여기고 크게 여긴다. 그렇지만 감동되고 감정상에 시원함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능력을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뛰어난 설교자에게만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설교자에게서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청중은 결코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꼭 기억할 것은 지금 나의 앞에 세우신 설교자는 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하여 설교자를 잘못 부르시는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셨지만 실패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어느 설교자를 세우시든지 듣는 일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항상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만 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중요한 때에 요나와 같은 선지자가 말씀을 가지고 올 때도 있다. 훌륭한 설교만 훌륭한 신앙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설교자는 예레미야 같고 바울과 같아야 할 것이지만, 듣는 이들은 니느웨 성 사람들 같아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2021-05-31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4) / 잘 듣기 위한 준비
    충분한 잠 설교에 대해 빈번히 쏟아지는 비난 가운데 하나는 "설교자들이 졸리게 만듭니다"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듣는 사람이 스스로 잠에 빠진다. 그 전날 충분히 잠을 잔 사람들은 주일에 거의 조는 법이 없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것과 같은 아주 단순한 문제들에 몹시 신경을 쓰셨다. 그분은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경계하라" 문자적으로는 "깨어 있으라"이다. (마24:42, 25:13 등)고 말씀하셨다. 깨어 있는 것은 중요하다. 구약 식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이 창조될 때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었다(창1:5). 창조의 일주일이 모두 동일했다. 이 측정법에 따르면 하루는 저녁에 시작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해질 무렵부터 안식일을 지킨다. 우리도 그와 같이 주일을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토요일 저녁을 외식하는 시간, 밤 늦은 시간까지 영상을 보는 시간으로 여기기보다는, 주님의 날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저녁부터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토요일 저녁은 주말의 여가를 정리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편히 쉬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가 아무리 유익하고 도전적이었을지라도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은 졸 수 밖에 없다. 토요일 밤 잠자리에 늦게 드는 것만큼 졸음이 가까이 찾아온다. 농부, 건축 노동자, 그리고 일주일 내내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문제에 약하다. 좁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쉽게 나른해지고 졸리게 된다. 이 현상은 불가에 있으면 나른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이 타면서산소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잠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정된 장소에서 졸음에 빠져들기 쉽다. 아침을 먹은 후 향기가 좋고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조금 도움이 될것이다. 언젠가 너무 졸려서 설교하다가 깜박 존 적도 있다. 한 주일 내내 매일 밤 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여러 곳을 방문했다. 설교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결론을 어디에 맺어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차 운전 도중에 깜박 졸다가 깨보니 차가 도로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공포의 순간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설교자가 졸면서 설교할 수 있다면, 듣는 청중들은 더 그러하였을 것이다. 충분히 잠을 자두라.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청중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제 시간에 교회 가기 허둥대며 허겁지겁 교회에 간다면 설교를 들을 마음 자세가 갖추어질 리가 없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 예배 직전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다면 가족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없음은 너무나 뻔한 이치이다. 게다가 누가 꾸물거렸다느니 누구 때문에 늦게 되었다느니 하면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나면, 그날 예배를 망칠 수 있는 밖에 없게 된다. 남편은 화가 치밀어서 식구들보다 앞서 차로 간다. 그리고 가족들이 나타날 때까지 경적을 울려댐으로써 사방팔방에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린다. 꾸물거리다가 늦게 출발하니까 교회까지 거의 자동차 경주를 하듯이 달려 온적이 있지 않는가. 부부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버릇을 길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다음날 조금 더 일찍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일 아침 식사를 손도 덜 가고 먹는 데도 시간이 덜 걸리는 가벼운 것으로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집어 말하자면 시리얼(cercal)이나 토스트 같은 것으로 말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챙겨 줄 수 있다. 아내는 미리미리 준비하고 노력할 수 있다. 출발 직전까지 허겁지겁 해야 할 잔 일들은 토요일 밤에 다 처리해 놓아야 한다. 교회에 입고 갈 옷들도토요일 밤에 미리 다 손질해 놓을 수 있다. 그리고 큰 아이들은 동생들을 준비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한 아침 식사 필자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주일 아침조반을 준비하는 수고를 과감히 철회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먹는 것이 이롭다. 빈 속, 혹은 거의 빈속으로 교회에 오게 되면 괜스레 짜증과 조바심만 날 뿐이다. 독자는 집에 달려가서 무얼 좀 먹으려고 얼른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배고픈 청중은 형편없는 청중이다. 짜증이나 조바심 등 그 어느 것도 온전하게 듣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특히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 아마 주일 아침만큼은 꼭 챙겨 먹고 넉넉한 기분으로 교회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피니언
    2021-05-28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5)
    기도하기 설교자나 청중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토요일 밤에 이런 기도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설교와 관련된 구절들을 미리 공부하는 시간에 해도 좋을 것이다. 청중은 설교자가 설교 자료를 모으는 일주일 내내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 설교를 위한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주일 아침, 저녁에 그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하나의 강좌를 베푸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와 비교될 수 없다. 설교는 아주 독특하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자를 통해서 그분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방법으로 거기 모인사람들 가운데 임하시며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 모인 청중들이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구하기를 원하신다. 설교자와 회중을 위한 기도가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설교와 따분한 설교를 구별 짓는다. 1859년 웨일즈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 설교자가 친구 목사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존스턴(Johnston)목사, 요즘 목사들이 예전에 비해 설교를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네." 그러자 존스턴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설교를 잘 듣는게지" 그러자 그 설교자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설교자들이 훨씬 더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모두 목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거든." 이 두 사람은 모두 옳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청중과 설교자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설교자는 더 잘 설교할 수 있고 청중은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오늘 교회에 이런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에 설교자가 더 잘 설교하게 되고 청중이 더 잘 들으므로 교회를 엄청난 변화와 부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듣기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눅4:16).교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여 빠짐없이 설교를 들을 때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청중들이 들쭉날쭉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 때마다 교회도 설교자에 대해서도 어색하다면 은혜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예배 드리기 전에 벌써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익숙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느낌으로 설교를 들게 될 것이다. 교회에 가면서 이미 걱정하기를 "사람들은 그 동안 어디 갔다 왔는지 물을까“라고 물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설교가 귀에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또 설교자가 강해설교나 주제별이나 교리들을 연속적으로 설교할 경우에, 나오다 말다 하게 되면 연속성이 깨져 잘 들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연결되어지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듣지 못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교회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예배 참석이 들쭉날쭉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히10:25)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규칙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다 찾아야 한다.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기본적인 것을 기억하면서 이행하려고 힘쓰신다면 반드시 영적인 충만함과 특벽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듣을 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의 설교가 들을 것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물에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기를 원한다면 깨끗하고 빈 물동이를 가지고 가야 한다. 대장균이 우글거리는 액체가 담긴 물동이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우물 물을 하나 가득히 담았다면 오염된 물밖에는 얻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 혹은 그 설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교회에 간다면,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흠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설교를통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부어버린 것이다. 또한 그런 마음에 설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오염된 것을 얻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설교자를 인정하라. 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 쓰려고 펜을 들고 있을 때에 쓰지 말고 받아먹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에 씹어서 삼킬 때에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통째로 비우거나 머리에 편견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말씀을 듣는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청중은 설교자를 있는 모습대로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대해야 한다. 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그분으로부터 온) 사람"(딤후3:17)이었다. 바울은 "그의 사명" 때문에 자신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다.(살전5:12-13 참조)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그의 사명에 대하여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탁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를 경멸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경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사람들이 설교자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소행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청중의 의무는 하나님의 위임받은 심부름꾼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청중은 하나님과 그분의 심부름꾼이 전하는 말씀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메시지에 다가가야 한다. 그럼 그 심부름꾼이 형편없는 설교자일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경우에는 귀를 돌려도 괜찮은가?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고, 그 예배의 중요한 한 부분이 설교를 듣는 시간이다. 만일 당신에게 보낸 대통령의 특사의 말을 듣고 있다떤 그의 말에 있는 힘껏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설사 그 특사가 매우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가 하려는 말에 귀를 세워 들을 것이다. 특사가 어떤 사람이든 대통령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볍게 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하나님이 사자가 아침에 찾아온 다면 어쩌겠는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최고로 조심스럽게 듣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의 직임 때문에 그를 존경할 것이고, 따라서 그가 보낸 특사에게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분에게 불만이 있을지라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와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부름꾼에 대한 편견이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편견으로 연결시키지 말라. 만일 당신이 설교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런 감정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설교자와 그의 가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꾼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보며 나에게 그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설교자의 말은 참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설교자의 책임에 대해서 대해 말하고 있지 않겠다. 설교자는 거룩한 삶으로써 복음을 돋보이게 해야 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교에게서 무엇인가 꺼림칙한 것이 있으면 집중하여 설교를 들을 수 없다. 청중은 설교자가 심부름꾼이 아닌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자임을 시억해야 한다.
    • 오피니언
    2021-05-28
  • [연재] 기독교에서 효란?
    기독교에서 효란? 기록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난 효를 가르치는 개념이다. - 기독교의 효의 정의 성경에 나타난 효의 계명에 시발점은 창세기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하나님은 창조 6째 날에 사람을 창조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복을 주시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어 행복한 가정을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시며 서로 사랑으로 가정에 효의 계명을 주셨다. 즉 하나님을 닮고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효”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 이전에 창조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뜻대로)모든 것이 되어 진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 만족 하시고 기뻐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 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장29절) 즉“효”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말씀하시고 그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효도하는 것이요 예수님은 본을 보여주시는 삶을 통하여 효를 실천하셨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할 때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孝)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셨다. “조금 나아가자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며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장39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효심을 가지고 늘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심과 함께 효심은 항상 동전 양면과 같아서 뛸래야 뛸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고 같은 것이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다”(요14장31절) 효(孝)는 마음속에서부터 사랑으로 공경하는 것이 효심이고 효행은 곧 주신 말씀(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孝)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장23절) < 신앙과 효심은 바늘과 실과 같다 > 기독교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쓰신 것이 아니다.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선지자나 제자 등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다. 그런데 성경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친히 기록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직접 쓰셨을까? 여기서 십계명 중 제5계명인 “네 부모들 공경 하라”는 명령의 신앙적 중요성을 가늠해 볼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효란 무엇인가? 위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요약하면 성경적 효(孝)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대인관계에서 의 계명은 즉, 십계명 전체 중에서 “부모공경” 계명만을 가리키며 광의의 성경적 효(孝)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아버지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며 나아가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공동체에서 신앙심과 효심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며...
    • 오피니언
    • 성경의효
    2021-05-27
  • [칼럼] 지금 그대로 행복 하라(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한 순간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국회의원? 회의장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한 사람들이 주먹을 휘두를 리는 없으니까? 대통령?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대통령은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장면은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도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꼭대기에 오른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할까? 많은 사람들이 소박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기 위해 평범한 삶을 조명하고 일상 속의 행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는 슬픔과 불행도 함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순간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항상 행복한 사람이란 없다. 어떠한 위치에 있든 사람은 행복과 불행 사이를 왕래하는 존재이다. 행복했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행복해진다. 사람은 왜 이렇게 행복과 불행 사이를 방황하는 것일까? 외적인 조건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어느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불행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와 상황을 거부할 때는 불행하게 된다. 행복은 사람이 처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그 위치를 즐겁게 생각하지 못하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 중에“대통령 못 해먹겠다!”라고 말한 분이 있다. 그 분의 일상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성공한 후에도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사람은 어떤 자리에 오를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즐기지 못하면 불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위치, 신분과 역할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10년만 젊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가끔씩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한다. “내가 몇 년 만 젊었어도!” 하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탄식한다. 이런 사람들이 10년 젊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젊어진다고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나이든 사람은 불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늙은 사람은 불행한가?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행복에 대한 개념은 차이가 없다. 젊어서 행복한 것도 늙어서 불행 한 것도 아니다. 젊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젊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늙어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국한 된 특권이 아니다. 삶의 모든 시기에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자신의 현재를 인생의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행복은 가치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50대 끝을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젊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침착해진 지금이 좋고, 철없을 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에 대한 깨우침, 청년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세상을 보는 시각, 사람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여유 만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정말 좋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철없고 소심 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도리어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지금의 내가 너무 마음에 들고 나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행복 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오늘의 내 모습이 가장 멋진 모습이다. 지나간 날의 추억에 빠지지 말라. 그러면 오늘이 불행하게 된다. 오늘을 버리고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미래에 매달리지도 말라.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내일도 불행할 확률이 높다. 행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오늘이 행복이다. 지금 나의 모습 이대로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모습이다. 김홍식 목사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 14권 출판. 부부행복학교 대표. www.booboohappy.co.kr. 시온LED 대표. http://m.onejin.kr.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1-05-25
  • [연재] “효가 살아야 나라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해진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해진다.” 성경은 기독교 효의 근본이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내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엡6장1절-3절) 이조시대에 유교문화에 젖어 있을 그 당시 기독교가 서양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에 전파 되었으나 조상에 대한 제사 풍습과 제도 방식 등의 차이와 오해로 기독교는 부모나 조상들도 모르는 불효의 종교로 잘 못 받아 드려져서 많은 박해와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인 효의 가르침과 기독교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과 잘못된 선입관에서 오는 결과이다. 삼국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유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BC 551-478)나 불교의 석가모니(BC 563년 출생) 가 태어나기 전 약 천 년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모세(BC 1530년)를 통하여 시내 산 에서 십계명을 주셨고 제 5계명인 대인관계에서 첫 번째로 부모를 공경 하라고 “효” 의 명령을 내리셨다.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은 성경이요 또한 교리와 생활 교본도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다. “효”에 관한 기독교적 근거는 하나님께서 직접 두 돌판 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에 포함된 것으로 모세오경 중 출애굽기와 신명기 등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효의 원조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며 또한 성경은 성 효경(聖 梟獍)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BC 551-478) 효(孝)란 백행지본, 백행지원이라 했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창조주요 인간의 조물주이신 참 신이신 절대 주권자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 상호간 지켜야할 십계명의 첫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효를 행하는 절대 명령으로 주셨다.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에베소서 6장2절)이다. 즉 기독교의 효(孝 )는 그 근본이나 시작이 인간의 이성이나 관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만세 전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따라서 하나님 중심이 인간의 도리이며 권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효는 역사적으로나 정체성과 권위 면에서 타 종교와 다른 이성적 추구 집단에서 강조하고 있는 효(孝)와 는 차별 되었고 다른 종교의 효 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강화된 효(孝)라고 특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공경 즉 효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취사선택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기독교인 들은 반드시 효를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명령) 이요 사랑의 메시지이다.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시고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가르치시고 성장시켜주신 부모님께 드리는 보은의 삶이다. 기독교적인 효 는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 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는 절대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계명을 주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요 피조물인 인간을 특별한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대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약속하신 말씀이요 약속이다. * 딤.후 3:15-16절 : -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 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가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kcorakd과 바르게 함과 의 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요 5:39절 :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요 20:31절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나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 라... Rev. 한요한 D.Min. E –mail : hany77777@hanmail.net Cell phone : (010-9079-0049) - 국제신학대학교 졸업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신학대학원) M.Div졸업 - 개혁신학연구원 목회학석사(M.Div)졸업 - 미국, 쉐퍼드대학교 신학대학 목회학박사(D.Min)졸업 - 미국, 코헨대학신학박사, 객원교수 - 21세기 지구촌복음화 부흥협의회 총재 - 교회본질 회복운동본부 총재 - 부패방지 국민운동본부 연합회장 - 원주충만교회 담임목사 - 저서 : 기독교 효 신앙 교육 - 칼럼 : 기독교신문 외 다수 고정칼럼 연재 - 강연 : 국내외 1,000회 이상
    • 오피니언
    • 성경의효
    2021-05-25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친목회 회원이 된다거나 새로운 취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규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리 설교를 들어 보아도 그것은 무익할 뿐이다. 아무리 설교가 훌륭하더라도, 따분하고 화나게 하며, 혼란스럽고 외면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말씀이 말씀이 결코 달고 오묘하지 않다. 바울이 이 점을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바울은 같은 장에서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것을 받을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죄로 가득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완전히 무지하고 불감한 상태이 때문에 설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니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서 외면해 버리고 만다. 필자는 고1학년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친척집에 있었는데 그 집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 다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시간은 설교시간이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도 교감도 없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에는 창세기 1:1절부터 다 믿어질 뿐 아니라 어느 말씀을 들어도 꿀송이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에 끌려 나온 사람의 처지가 그러할 것이다. 사회적인 또는 사업상의 이유로 자주 교회에 출석하고 얼핏 보기에 진실 된 것처럼 보이는 신앙고백을 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고 성경적인 설교에 대하여 약간의 관심을 갖거나 아니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눈에 띄지 않게 잘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거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설교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은 항상 말씀으로 소통하는 것을 방해한다. 소망교회 원로 목사이신 곽선희 목사님은 ”듣지 않으려는 사람과 행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의뢰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다면 설교에서 유익을 얻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교에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기 위해서 듣는 자는 먼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의 등급이 아니고 성령을 모신 사람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하셨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 : 9, 10, 15, 16). 이미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듯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없이는 진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성령은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시고 삶의 모든 거승ㄹ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주신다. 성령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갖게 해주신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났는가 하는 증거 가운데 하나는 말씀의 선포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 본다면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복된 소식을 선포하도록 어디에나 설교자들을 보내셨다.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당장 성경을 진실 되게 전파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씨가 뿌려지고 나면 모든 것이 땅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밭에 관한 비유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씨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문제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설교가 단순히 고막을 때리는 파장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믿음으로 합해져야 한다. 좋은 씨가 좋은 밭에 뿌려지기 전에 먼저 좋은 밭을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곡식을 잘 가꾸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비유에 따르면 좋은 밭이라도 서로 다른 소출을 낸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13:8).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영혼에 풍작을 거두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과실을 많이 맺는 신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씨를 뿌리시고 과실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매우 방법이다. 설교는 이미 심겨진 곡식에 물과 거름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들고 지친 영혼이 힘을 얻고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의 역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영혼에 쌓인 딱딱한 흙 덩어리들을 뒤엎고 잡초들을 뽑아냄으로 좋은 씨앗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 준비와 선포하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못지 않게 듣는 사람도 잘 준비를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준비도 설교자의 준비 만큼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면, 설교자의 준비는 헛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2021-05-25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3)
    3. 김치선 박사와 대한신학교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300만 전도운동의 전초기지를 각 지역에 마련하기 위해서는 “2,800여 동네에 우물을 파라.” 는 지상명령을 수행해야 이 민족과 국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기치를 들고 나왔다. 이일을 위해서는 중심을 잡고 일하는 사역자가 요구되었다. 우선 70인의 전도 목사를 선정하여 전국에 파송하는 사역이었다. 이를 위해 신학교육을 받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은 사역자가 필요했다. 1948년 8월 서울 남대문 교회에서 야간 신학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은 그 야간신학교가 대한신학교로 그리고 안양대학으로 전이되기 이전의 연역을 요약한 것이다. 1948년 8월, 남대문 교회에서 야간 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윤필성 목사 취임. 1949년 1월, 서대문구 서소문의 새 건물로 이전하고 2대 교장에 김치선 박사 취임. 1950년 1월, 대한신학교로 개명. 1950년 5월, 제 1회 졸업생 18명을 배출. 1952년 9월, 4년제 각종 대학교로 인가 받음. 1956년 9월, 서울 중구 남산동 소재 교사로 이전. 1962년 3월, 서울 용산구 서계동(현 청파중앙교회) 교사로 이전. 1964년 4월, 학교법인 대한기독학원 인가 받음. 1966년 9월, 4대 교장에 김세창 박사 취임. 1968년 2월, 김치선 박사 별세(69세). 1969년 7월, 군종장교 후보생 지정학교로 인정 받음. 1977년 11월, 안양시에 15,000평 교지매입. 1980년 10월, 5대 교장에 이의완 박사 취임. 1985년 6월, 최순직 박사 학교 재단 이사장 권한대행 취임. 1985년 7월, 이형룡박사 교장 직무대행 시작. 이후에 학교는 빚에 시달리다가 채권단들에게 학교를 넘겨주게 되고 김세창 박사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채권단들은 당시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당시의 천문학적인 빚 25억원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학교를 넘겨주고 말았다. 당시 최순직 교수와 그분의 아내 되시는 김치선 박사의 둘째 딸 김동화 사모께서는 소나기처럼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께서 세우신 신학교를 자유주의 영역에 넘겨주다니... 하시며 넋을 잃고 우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한신학교를 중심으로 대신교단이 설립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과정이 있다. 원래 대한신학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야간신학교로 출발하였다. 1948년은 한국교회사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신학교들에 관한 사건들이 일어난 해이다. 해방 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정한 김재준 박사와 동정녀 탄생을 옹호한 박형룡 박사 사이에 일어난 두 신학자들의 갈등은 신학교의 분리는 물론 교단의 분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서울 창동 교회에서는 1948년 5월 박형룡 박사를 중심으로 총회신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같은 해 대한신학교 모체인 총회신학교 야간신학교가 개설되었다. 김재준 박사를 중심으로 설립된 조선신학교는 한국신학대학의 모체가 되었고 기독교장로회 교단의 신학교가 되었다. 신학이란 이름으로 성경의존사상을 신앙하는 신학을 거역하는 묘하고 잡다한 단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대한신학교가 자유주의자의 손에 넘어간 가장 기초적인 원인은 교회사적 정통주의 개혁파 신학을 강조한 최순직 교수를 대한신학교에서 배제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세창 박사는 대한신학교의 신학적 노선이 제기 될 때마다 항상 그분은 개혁파 신학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개진하였다. 개혁이란 말을 꼭 근본주의에다 대입시켜 다른 견해를 첨가하였다. 같은 보수주의 노선인데 왜 개혁신학만을 강조 하느냐? 는 주장을 내세웠다. 최순직 교수는 가장 객관적인 교회사적 신앙고백에 의존하지 않고 김세창 박사가 무조건 부친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일방적인 근본주의에서 떠날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최순직 교수는 김치선 박사의 공로와 당시의 김치선 박사가 처한 시대 상황을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개혁파 신학으로 대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정 시키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김세창 박사는 무조건 아버지의 사상에만 집착하는 경향성을 보여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고 강의 시간마다 개혁주의라는 말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였다. 다시 해방 후의 역사로 돌아가 보자. 1948년 5월 20일 조선신학교와의 갈등으로 창동교회에서는 박형룡 박사를 중심으로 총회 장로회 신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즉 자유주의와 절연하고 참다운 성경중심의 신학교를 세우자는 취지였다. 이 사건은 신학이 단순한 신학의 개념만을 의미하는 역사가 아니었다. 신학은 교회의 앞날을 결정하는 기준이며 교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다. 당시의 교수들은 박형룡, 김치선, 계일승, 권세열, 겸임으로 한경직, 명신홍, 그리고 이자익 목사 등이었다. 그런데 1948년 같은 해 야간 신학교를 개설하게 된 것은 이미 대한신학교와 대신교단의 독립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총신과의 갈등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간으로 운영하던 대한신학교는 김치선 박사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여 총신 본교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이고 있었다. 졸업생들도 교회개척의 앞잡이가 되어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구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1957년을 계기로 하여 장로회 총회에서는 대한신학교를 장로회 총회신학교 야간부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에서 김치선 박사는 “지금까지 여러 교파에서 보조를 조건으로 자기들의 교단신학교로 운영하자는 수많은 제안을 거절해 왔는데 이제 와서 총회신학교 야간부로 편입할 수 없다.” 고 생각하고 1957년 여름에 4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대한신학교는 김치선 박사의 생명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한신학교와 총회신학교의 갈등이 증폭되어 갈 때 총회측에서 김치선 박사의 신학을 시비 걸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것은 개혁파 신학이 아니고 근본주의 신학이라는 점이다. 당시 총신측에서도 다수의 목사들이 근본주의 사상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타인을 흠집 내기 위하여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고 타인의 흠집만을 들추어내는 사악한 일을 행한 것이다. 결국 대한신학교는 독립적으로 운영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교단적 배경도 없고 졸업생들은 총회에 가서 안수를 받고 사역지를 구할 수 있는 길이 막막했다. 더구나 당시 정부의 방침이 하달되었는데 하나의 신학교는 하나의 교단을 배경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근본주의를 강하게 추종하는 ICCC 총재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와 연관을 맺어 성경장로회라는 교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1961년 6월 21일 제 1회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 총회장에 김치선 박사를 선출하게 되었다. 이후에 김치선 박사와 대한신학교는 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한신학교와 한양교회와의 갈등에 더하여 정부와의 소송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한양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던 김치선 박사는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2,500평의 땅을 취득하여 대한신학교를 같은 장소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는 교회대로 땅을 많이 차지하려고 하고 학교는 땅을 분할하여 양쪽이 똑 같이 차지하겠다는 충돌이 일어났다. 더불어 당시 정부의 방침은 그 땅에 KBS 서울 중앙방송국을 세우려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당시 공보부 장관이었던 오재경씨는 기독교 장로로서, 그의 부친이 김치선 박사와 절친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정부의 편을 들어 방송국을 세우겠다고 통보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국가에서 이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정부를 상대로 송사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양교회와 대한신학교는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하지도 못한 채 9년에 걸친 정부와의 소송에 일방적으로 밀려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 ICCC 총재 맥킨다이어 박사의 도움으로 용산구 서계동 33-2, 구 쏘련 영사관 자리인 현재 청파 중앙교회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한 가지의 작은 인간적 갈등은 후에 극심한 분열을 일으킨 인류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신학적 사상은 더욱 그렇게 되어 온 교회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근본주의냐? 개혁파 신학이냐? 의 신학적 이슈는 대신교단과 대한신학교에 있어 1970년대 이전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신학적 이식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1970년대 이전에는 한국교회가 근본주의냐? 개혁파 신학이냐? 의 갈등이 없었고 서로의 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에 한국교회 안에 개혁파 신학이 점점 확대되어 가면서 무천년주의가 확산되고 언약론이 확대되고 또 다른 세력인 번영신앙이 기성 교외의 틀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신학적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제도는 장로교회로 신학은 개혁파로 교단의 정치와 대한신학교의 교리를 정립하려는 기치를 들고 나온 분이 최순직 목사였다. 이러한 기치를 정립하기위해 한 가지 정리해야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찾아온 ICCC와의 결별이었다. 최순직 목사는, 그분의 식구들은 물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계동33-2의 땅을 마련해 준 ICCC로부터 파송된 마두원(馬斗元, P.R. Malsbury) 선교사를 찾아가 그 땅의 원금을 갚았다. 그 돈은 학교를 잘 운영하여 조금씩 저축한 것이었다. 마두원 선교사는 그 원금을 받아들고 너무 기뻐하면서 “평생에 한국에 와서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이제 대한신학교는 홀로 서는 길이 남아 있었다. 피눈물을 쏟아 대한신학교를 건설해온 김치선 박사, 최순직 교수, 그리고 그 주위의 인물들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대신의 신학이 좌경화 되어 안양대학으로 변질된 현 상황을 보고 땅을 치며 숨이 넘어갈 입장일 것이다. 우리는 개혁파 신학을 주장하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교수들의 견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신학의 변질을 막아야 한다. 그 신학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신학교는 절대 성경의존주의 신학만을 중심으로 학교를 경영해야 한다. 신학 이외의 일반대학을 유치할 경우 신학이 좌경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 미국의 하버드,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가 처음에는 아주 건실한 복음주의 신학을 기초로 하여 학교를 운영했다. 그러나 일반대학의 유치로 말미암아 신학이 좌경 되었다.” 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또 강조하기를 “그래서 지금 모든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교들이 일반대학을 배제하고 신학대학원(Theological Seminary) 제도와 성경 대학(Bible College) 제도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절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고, 교단의 정치를 배제하고, 그리고 일반대학 유치를 배제해야 올바른 신학을 유지할 수 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돌이켜 보면 안양대학이 과거 유럽과 미국의 자유화 된 신학교의 전철을 밟아왔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신학의 변질은 보통 80년을 넘지 못하고 보수주의 신학이 퇴락되어 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20기에 들어오면서 미국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인 오번 선언(Auburn Affirmation)으로 인하여 곤욕을 치룬 후 미국의 보수주의 신학교들은 거의 모두가 교단의 정치적, 재정적, 그리고 연합이라는 명분을 버리고 단독적인 사설 신학의 경영을 유지해 오고 있다. 오직 신학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미국의 보수주의 개혁파 신학교들은 100년이 넘어서는 현 시점에서도 신학의 정통성을 고수하고 있으며 교회는 복고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순직 교수는 70년대 들어와 이제 대신은 대신의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 대신의 황금시대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교단의 명칭도 대신으로 정정하여 명명했다. 이제 대신의 김치선 박사와 교단과의 문제를 잠간 언급해야 할 차례이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5-25
  • 신학이 없으면 교단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혜과 평강이 한국교회와 교단을 위해 헌신을 다하셨던 원로목사님들과 애쓰시는 노회장님과 상임부서장님, 총회임원과 교단의 회원 목사님들 한 분, 한 분 위에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코로나가 여전히 위협적이고 힘들게 합니다. 더 힘내시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큰 은혜로 회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몇 가지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2월 27일 11시에 본 교단과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과 인준을 맺었습니다. 신학이 없으면 교단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총회는 호서대학과 인준을 마치고 대학원 커리쿨럼중 교단사, 헌법, 정치, 신조 등을 우리 총회에서 위임하여 교육을 통해 후배를 양성할 수 있도록 위임받았습니다. 그 외 다른 대학과의 MOU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 총회는 우리 신학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4-5년 후에는 알차고 멋지게 다져져서 대한민국에 교단을 이끄는 대단한 총회가 될 것입니다. 총회 실행위원회를 마치고 준비된 교회규칙과 헌법이 탈고를 했습니다. 2005년에 개정된 후 십여년 만입니다. 수고하신 법규위원장닙과 위원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단명칭을 대신호서로 정했습니다. 호서대학과 인준을 통해 극대화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인준협약서에도 몇 년후 변경할 수 있는 단서 조항도 있습니다. 마음의 서움함도 많으실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세대를 세워가는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기위한 방편으로 기억해주시고 잠시 묻어두고 미래를 보고 나가시지요, 봄 정기 노회에서 설명할 기회를 주시면 수립된 교단 발전계획을 참석해 직접 보고드리겠습니다. 교단 로고도 참신하게 제작되었습니다. 보시고 의견을 개진해주세요. 노회장 연석회의에서 결정하겠습니다. 교단 신문인 기독연합신보가 창간됩니다. 인터넷신문은 20일 지문신문은 23일 첫 창간호가 나옵니다. 많이 애독하시고, 기도해주시고 축하해주시길 바랍니다. 정오의 기도를 선포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교단과 한국교회와 이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대신 교단을 세우신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정오에 모든 일정을 미루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만 팔천 동리에 우물을 파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정과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고, 복음으로 세워 영적 부흥을 이루는 일들을 이제는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총회 산하 모든 노회와 교회와 성도님들은 매일 정오 시간에 모든 일손을 놓고 5분간 같이 기도합시다. 이제 우리 교단은 이 위기를 넘어서 회복과 부흥을 향해 매진할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교단의 동역자 목사님과 온 성도는 회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달려갑시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합시다. 반드시 하나님은 회복과 부흥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울 한해 우리 총회는 예수 정신이 가득한 온전한 공동체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정신으로 한 교회라도 더 개척하고, 미자립교회를 자립교회로 만들고, 교단의 교회들이 초대교회와 같이 부흥, 성장케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합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보고드리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강건하시어 더욱 진액이 풍족하시어 감람나무와 같은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 3. 12. 대한에수교장로회총회 총회장 강대석목사 드림.
    • 오피니언
    2021-03-21
  • [간증] 김의철 목사의 '목회는 영권이다'(1)
    목회는 고난의 연속이다. 많은 목회자가 바윗덩이처럼 묵직한 고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주저앉는다.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잘못을 성도나 외부 탓으로 돌린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원수를 갚으려 하면 목회는 더욱 어렵게 된다. 지난 35년간 목회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험난한 가시밭길에서 길어 올린 진리는, 고난의 압력을 이겨낼 힘은 오직 무릎 꿇고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목회자가 영권(靈權)을 가지려면 인본주의를 멀리하고 자신의 야망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2009년 인천 송도에 교회를 개척한 지 10년 만에 2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였다. 11차례 ‘50일의 기적’ 기도회를 진행하며 전국 중소형교회에 영적 활력을 불어넣고 목회 희망을 제시하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1960년 경남 거제도 송진포리에서 태어나 7남 2녀, 9남매 중 일곱째로 자랐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보건소장을 지냈다. 광복 후엔 미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통역을 했고 6·25전쟁 때는 야전병원 원장으로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아버지는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고향 거제도에 정착했지만 가정적이지 못했다. 신앙생활도 게을리 했다. 어머니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신 마산 문창교회에서 훈련받았다. 매일 밤을 기도로 지새우곤 했다. 어린 나는 매일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내가 출석한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거제 송진교회였다. 초등학생 때 밤이 되면 교회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과 별빛을 보며 세상을 비추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목중학교 2학년 다닐 때 갑자기 교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반주자가 도시로 떠난 것이다. “철아, 니가 반주해라.” 풍금을 만지고 놀던 나는 “예”하고 무조건 순종했다. 쉬운 찬송가 3곡을 골라 열심히 연습하니 기적같이 4부로 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주일날 발생했다. 어설프지만 연주가 가능한 3곡을 목사님께 드렸는데, 그만 다른 찬송을 부르시는 게 아닌가.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매일 풍금 연습을 했다. 1개월간 열심히 기도하며 연습했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찬송가를 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주일학교와 학생회 예배, 대예배 풍금연주를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외지로 나가시고 후임자로 당시 부산 고신대 신학생이었던 김철봉 전도사님이 주말마다 오셨다. 그분은 난생처음 보는 세계지도를 펼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철아, 니는 지금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 살고 있지만 봐라, 세상 넓데이. 저 바다를 건너면 큰 도시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다른 나라도 있데이. 너는 세계를 꿈꾸며 살아야 한데이.” 그때부터 나는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김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마친 뒤로는 거제도에 오시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청소년 시절 산과 바다밖에 없는 그곳에서 매일 밤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감 가운데 울며 기도했다. 그곳에선 중·고등학교를 마치면 어부나 농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19세가 될 때까지 거제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다. 공부를 마치면 산에 소를 풀어 놓고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 맘대로 영어설교를 한다고 외쳤다. 비가 오는 날엔 한 손에 소고삐와 우산을 잡고, 한 손엔 영어단어장을 들고 공부했다. 그러나 내게 신학교에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 어떻게 하면 신학교에 갈 수 있을까.’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면 풀밭에 주저앉아 주르르 눈물만 흘렸다. “하나님, 이 작은 자를 기억해 주이소. 목사가 되고 싶은데 길이 없다 아임미꺼.”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는데 나를 찾는 방송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오피니언
    2021-03-20
  • [특별기고]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선교사로 나가기 직전 한참 목회에 열중하고 있을 때 2천년대를 전후해 한국교회에 봄바람처럼 찾아온 열풍이 가정교회였다. 필자가 소속된 노회에서도 당시 가정교회에 대해 매우 권위있다고 자타로 부터 인정받는 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 했었다. 내 자신 그 때를 깃점으로 만 2년간 가정교회-목장교회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던중 그야말로 무엇엔가 이끌리듯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경험이 있다. 15년의 중국사역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산동성 칭다오에 있는 청도한인교회를 7년이상 출석을 했었다. 선교사 신분이다보니 소규모의 교회보다는 규모있는 교회라야 목회자에게 부담이 안된다고 판단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큰교회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2천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가정교회 바람이 2005년 부터는 중국의 한인교회에도 불어오게 되고 출석하던 교회도 2천년대 말부터 목장교회를 도입하였다. 사실 담임목사가 목장교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목회철학이 확실하다면 명칭이 가정이든 목장이든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회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청도한인교회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의 한인교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단체는 두날개였다. 두날개를 이끄는 대표는 청도한인 담임목사의 후배였는데, 아마도 후배가 이끄는 무브먼트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국 휴스턴한인교회 최영기목사의 가정교회에 교회 대표들을 보내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전 교회를 가정교회 체제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한인교회의 제직들은 대다수가 제조업체의 CEO아니면 무역회사 대표들이었는데, 전가족이 이주한 가정들도 있지만 30%정도는 남성만 사업차 현지에 상주하는 가정이었다. 카리스마가 강한 담임목사는 안수집사들을 모두 목자와 목녀로 세워 목장모임을 안수집사의 가정에서만 모이게 하였다. 문제는 매주 모임을 시작하기 전 전체 목원들이 모여 식사친교를 하는데 있었다. 보통 7~8명에서 많은 경우는 10명이상의 인원을 매주 식사대접 해야하는 안수집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담이었다. 목자를 맡고있는 안수집사회를 중심으로 목장모임에 대한 건의가 있었지만 담임목사는 자신의 넘치는 카리스마로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목장교회라는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만 끓이던 안수집사들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규정을 제정하는 규칙개정이었다. 통상 20년이상 연속으로 목회하고 은퇴를 할 때 결의를 통해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는다. 하지만 담임목사는 외국교회라는 점을 부각하여 15년이상 목회하고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추대해 줄 것을 요구했고, 평소 가정교회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절대반대"가 결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교회는 결국 그렇게 시험에 들어 1년이상을 목사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을 하게되고,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신자들도 한가정 두가정 교회를 떠나기 시작해 교회는 반토막나고 말았다. 가정교회-목장교회가 지향하는 목회는 "공동체결속"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재현하는 목회운동이다. 어쩌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꿈같은 목회방식이다. 중국 공산정권이 1949년 부터 1972년 까지 채택한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그들을 가난으로 부터 구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채택한 방식이 토지분배 정책이었다. 식구수대로 토지를 분배하여 마치 임대료를 지불하듯 일정액을 토지세로 납부하고 모두 자신들이 소유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장교회-가정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돌아보아 형편을 살피며 기도하자는 것이다. "서로 돌아본다"는 목회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지체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합심기도이다. "두세 사람이"마음을 모아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중국의 한인교회들 중에는 지역에 따라 중국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교회예배를 중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동기가 목회하는 광저우한인교회의 경우 거의 반년 가까이 예배모임이 중단된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목장교회가 정착된 덕분에 교회는 흔들림없이 목장별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교회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중국정부는 중국 전체에서 겨우 몇개의 한인교회에게만 모임을 허락해주고 그외의 교회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8일 모친상을 당했다. 코로나 시국이니 대다수는 계좌이체 부의금으로 문상하는 문화가 장착되다시피한 상황이다. 노회에서도 조위금으로 문상을 대체하고 있다. 더군다나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이다보니 문상객은 가까운 극소수의 친인척으로 한정되게 된다. 추천을 받은 근로복지 인천병원 장례식장에는 3개의 분향실이 있는데, 같은날 시차를 두고 안치하여 발인도 같은날 오전 6시반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을 하였다. 1층은 목회자 가정이라 각지의 목회자들이 동참해 거창한 발인을 하였고 우리 옆방도 외동딸 가정임에도 출석하는 교회가 주도하여 결코 외롭지않은 발인을 하였다. 문제는 바로 우리 모친이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하나에 손자하나! 결국 셋이서 조촐한 발인예배를 드렸고, 운구할 사람도 모자라 장례식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화장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신을 영구차에서 시신보관소에 안치한 후 순번이 왔을 때 다시 소각로로 이동하기 위한 운구에서도 화장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이보다 처량한 장례식도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공동체는 위대하다. 제아무리 코로나의 힘이 막대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공동체는 이기지 못한다. 문제는 담임목사의 공동체에 대한 목회철학이다. 공동체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과거처럼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동체라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초상집 문상을 꺼리는 사회관습 마저도 뛰어넘을 만큼의 결집력으로 뭉쳐진 공동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용회선교사> - 대신35회 - 1986-2003 경안노회 중부교회 담임 - 1997 경안노회 3대 노회장역임 - 2003년 4월 주중선교사로 파송(만15년 사역)
    • 오피니언
    2021-03-20
  • [논평] 서울광장에서의 동성애 퀴어 행사는 중단되어야 한다
    서울시공무원 17인, 4.7 서울시장 후보자 입장 밝히라 성명 서울광장은 서울시민 모두의 것이며, 이를 사용함에는 서울광장 사용의 규칙에 반하여 논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2015년부터(당시 박원순 시장) 동성애 퀴어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퀴어 행사를 하도록 꾸준히 장소 사용을 허락하였다. 이에 시민들의 공복(公僕)인 서울시 공무원 17인은 지난 2019년 5월 서울광장에서의 퀴어 행사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하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공직 사회에서 공직자로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데도 의견을 냈다는 점, 또 하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담아서 분명한 공직자의 목소리를 낸 점이다. 그런데 2020년 4월 서울시 인권담당관 산하의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이하 서울시 인권위)에서는 의견을 낸 공직자들을 ‘성소수자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고 성소수자를 예외적 존재로 취급하도록 해서 차별·혐오 표현을 한 것으로 판단 한다’는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서울시장에게 <서울특별시 공무원 복무 조례>까지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해당 공무원들은 이 결정에 대하여 서울시장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청구한 상태이다. 이들은 누구를 혐오하고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퀴어 행사는 음란한 행위였고, 이런 모습은 서울광장 사용의 규칙에 위반된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 인권위가 이들을 혐오와 차별자로 몰아간 것은 언어도단이다. 한마디로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이다.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것을 현장에서 가장 잘 알고, 그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이런 식으로 차별과 혐오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 인권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을 위한다기보다 이미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시민들의 보편적인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차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함에도 서울시 인권위가 이런 결정과 압력을 넣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본다. 행정소송에 대한 변론기일은 4월 1일로 잡혀 있는데, 이번 결정에 따라 공직자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이 제대로 반영되느냐, 아니면 차별에 관한 법률도 없는데, 우격다짐 식으로 동성애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들 17인의 공직자들은 이번 4.7 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이 될 후보자들도 객관적, 보편적, 건전성이 떨어져 논란이 많은 동성애 퀴어 행사를 서울광장에서 행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고, 악한 문화 권력들이 선량하고 건전한 것을 원하는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관을 몰아내고 있는 고약한 형국이다. 차기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지, 국민들의 정서와 가치관에 맞는 시정(市政)을 펼쳐야 한다. 직전의 고 박원순 시장처럼, 대다수 시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동성애 퀴어 행사를 허락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 오피니언
    2021-03-20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2)
    2. 김치선 박사의 신학적 배경 김치선 박사의 신학을 정의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감지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객관적 배경을 무시하고 상당히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첸 박사의 수제자, 정통 개혁파 신학자,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신학의 근본주의자. 등등의 평가이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신학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분은 1970년대 대한신학교의 개혁파 신학의 흐름을 주도한 김치선 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교수와 그의 아들 김세창 박사의 견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분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김치선 박사를 모셨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김치선 박사가 근본주의 신학을 표방하였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개혁파 신학을 부분 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두 분들이 그러한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또 다른 갈등의 요소를 표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무조건 부친의 근본주의 신학을 수용하려는 김세창 박사와 교회사적 개혁파 신학을 수용해야 지속적이며 객관적인 신학을 수립할 수 있다는 최순직 교수와의 신학적 갈등이 저변에 숨어 있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중요한 언급이 있다. 안양대학의 신학적 변질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1975년 최순직 교수가 연구차 미국에 들렀을 때를 이용하여 김세창 박사는 비개혁파 교직원들을 대한신학교에 배치하여 버렸다. 그 후로 신학교 내에서의 갈등은 심화되어 각 주장하는 부류마다 자기들만 옳다 하여 잠잠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김세창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한국 최고의 종합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대한 꿈을 외치고 다녔다. 어느 국가이든 또는 단체이든 내부에서 혼란스런 일이 발생할 때는 힘을 발휘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게 되어있다. 그 힘의 원천은 사람들의 조직, 경제적 실권, 그리고 정치적 우위 등이다. 결국 대한신학교는 경제적 힘과 교육부의 배경을 바탕으로 종합대학이 되어 안양대학으로 변해 버렸고 보수주의 신학은 자취를 감추어 가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어떤 분은 개혁파 신학도 근본주의 신학도 보수주의 신학인데 서로가 공통분포를 형성할 수 없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두 부류의 신학은 보수주의 신학으로 명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적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주의 신학은 너무나 단순하고 지엽적인 신학에 한정되어 있다. 그 신학의 주제는 성경의 무오성,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그리고 육체적 재림이다. 이 5가지 신학의 주제는 19세기 유럽의 고등비평주의와 종교혼합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교리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다섯 가지를 따로 분류하여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신학적으로 절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이 주장하는 신론, 인간론, 교회론, 그리고 종말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엽적인 신학을 강조하게 될 때 그 신학이 불원간에 주관화 되어 자유주의로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세기 초엽 근본주의 운동의 뿌리가 되었던 5가지 교리는 1930년대 들어와 절정을 이룬 후 1950년대에 들어와 신근본주의(Neo Fundamentalism) 운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신근본주의 운동이란 강한 주관적인 입장과 더불어 성경의 문자주의를 내세우며 분리주의에 열을 올리는 운동이었다. 근본주의의 극단적인 주관주의 신학운동은 1948년에 WCC를 강력 대항하기 위해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를 중심으로 ICCC를 조직함으로 시작되었다. WCC를 대항하는 운동은 잘 한 일이나 ICCC 단체 이외의 어떤 보수주의 신학은 물론 개혁파 신학까지도 정죄해 버리는 분리적인 일에만 피켓을 들고 나온 운동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지엽적인 신학 운동은 결국 신복음주의로 떨어져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학계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근본주의의 두 가지 신학적 문제점을 발췌해 보면세대주의적 요소와 일반은총론의 배격이다. 세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달비(John Darby)와 20세기 초 스코필드(Cyrus Scofield)에 의해 시한부적 전천년주의를 강하게 강조하는 역사적 종말론의 신학이다. 계시록 20장의 천년 기간을 문자적으로 보고 일반 역사와 구별된 획기적인 기간으로 인정하는 신학적 입장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신학적 입장은 일반은총의 배격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그리고 과학 분야를 세상의 일로 취급하고 죄악시 하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 사상이다. 즉 만물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을 대립적인 관계로만 취급한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탄의 영역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응용하시는 허용적 섭리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1920년대 당시의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웨슬리안적 보수주의, 개혁파적 보수주의, 그리고 기타 복음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총 집합체를 형성하여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그 대항의 원인은 자유주의자들이 제공했다. 그 자유주의자들은 당시 말도 되지 않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고 나왔다. 상식 이하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신학을 주장하며 성경을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극단적인 성경 배타주의를 역공하기 위해 미국의 복음적 요소를 소유하고 있는 교회들이 하나의 집합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응전략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신학적 입장인데 하나는, 종말론에 대한 강렬한 신학적 입장과 또 하나는, 합리적이며 과학적 입장을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반은총에 대한 배격이 발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많은 신학자들과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이었다. 너구나 이러한 근본주의 사상이 가장 활발하게 성행하였던 1930년대 김치선 박사께서 미국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하나의 비화를 소개하면 김치선 박사는 그분의 딸이 교회 행사에 참여하여 율동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너는 잡년이다.” 라는 말을 하셨다는 사건은 그분이 얼마나 일반은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김치선 박사가 병중에 눕게 되어 오래 동안 침대의 신제를 면치 못하게 되었을 때 온 가족들에게도 TV를 시청하지 못하게 하시다가 너무 무료한 나머지 TV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일화는 그분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이 저술한 구약사기(The History of the Old Testament)를 살펴보면 구약 역사의 시대적 분류법이 언약론이나 하나님의 주권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 세대주의적인 요소가 깊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나타난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의 발췌는 구약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신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물론 처음 신앙의 세계에 들어온 초 신자라도 그 깊이와 넓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유효한 저서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시대의 아들임을 벗어날 수 없다. 1920년대 이후 당시 미국에서는 개혁파 신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자들은 물론 웨슬리안주의적 복음주의 자들까지 합세하여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교리적 전쟁을 하는 시기였다. 5가지 신학적 이슈(성경의 오류 주장, 동정녀 탄생 부정, 대속적 죽음 부정, 부활 부정, 그리고 육체적 재림 부정)를 들고 나온 자유주의자들과 교리적 전쟁을 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이 때 김치선 박사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당시의 사상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 1914년 이후 30년 어간에 세계 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치렀던 세계는 온통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피안을 세계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천년왕국설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특히 당시 한국교회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거의 근본주의적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사경회에 참석하면 거의 모든 강사들이 역사적 종말론에 있어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를 설파하는 설교를 들었다. 오늘날의 신학적 입장을 고려해 볼 때 보수주의 영역 안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후천년주의적 육체적 재림론, 그리고 무천년주의적 재림론 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시대적 아들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교회론에 있어 당시의 로마 캐톨릭과 제왕들의 관계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정교하게 정립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대입해 보면 너무나 원시적인 신학의 피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칼빈의 신학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 당시 엄두도 낼 수 없는 정교분리를 주창하고 나선 일은 그 천재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가 남김 업적은 너무나 지대하다. 당시의 근본주의 운동과 한국의 정세로 볼 때 하나님을 신앙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실행하는 운동이었다. 매 맞고, 투옥되고, 그리고 가족이 흩어짐을 당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운동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치선 박사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개혁파 신학의 정통성을 유지해야 미래의 후손들에게 올바른 신앙적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성장에 있어 월등한 방법론이나 특별한 사회적 이슈를 적용하면 일시적 부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남겨놓은 교회사적 신앙고백의 노선을 버리게 되면 언제인가는 교회가 타락의 길을 면지 못하다는 것이 역사의 증명이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3-20
  • [칼럼] 설교 100배로 잘 듣기
    교회가 되려면 두가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 설교자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설교를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가 있어야 한다. 교회로서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설교자, 설교자의 말은 사람의 말로 듣는 청중이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 : 9)고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각 말미에서 반복하신 것(2-3장)은, 자기 백성들이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기대하신다. 말씀을 들으므로 "복있도다"라고 확신시켜 주신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반대로 그분의 말씀 전하는 설교자를 배척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짓이다. "전파하는 자가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왜 설교를 듣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써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듣지 않는다거나 그 말씀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불경건이다. 인류를 죄와 비참에 떨어지게 한 것도 말씀을 구체적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 대신 사탄의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면 사탄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과가 결정된다. 회개와 믿음 그리고 순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다.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아니었다. 듣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8).절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좇아 자기 길을 걸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든지 완악하게 하든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모든 사람은 말씀이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주목하게 하고자 하실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신5:1; 6:4; 9:1)고 외치셨다. 죄인들은 듣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설교자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가 자기는 설교하는 은사를 받았지만 회중들은 듣는 은사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한 말은 사실이다. 설교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큼 중요하다면, 설교를 가볍게 생각하고 경멸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신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기를 배우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1-03-20
  • [특별기고] 교단의 정체성
    우리 교단은 자생적 교단이다. 설립하신 김치선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신학정신이 한국교회 교계 속에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남겨진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든 틀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세워나가기를 소원한다. 1. 개척정신: 가서 우물을 파라 김치선 박사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게 ‘2만8천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 수는 3,000 교회가 안 되었다. 더욱이 한 교단에 하나씩만 신학교를 허용했기 때문에 총회에서는 떳떳한 총회신학교가 있다며 대한신학교를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해도 마땅히 사역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김치선박사는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게 일할 수 있는 교회가 없으면 도리어 전국 방방곡곡에 나아가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라고 가르쳤다. 전국 2만8천 동네에 교회를 세워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는 이 민족의 십 분의 일이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고 결심하여 삼백만 부흥전도회를 결성하였다. 70인의 전도목사들을 전국에 파송하여 큰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그 중에는 박재봉목사, 이성봉목사, 손양원목사등이 있었다. 이 운동은 6·25전쟁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렇듯 구령의 열정 그리고 개척과 도전정신으로 대신 교단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교단 등이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그 이전에 있던 교회들의 분열을 통하여 교단이 구성되었던 반면에 교단은 순전히 졸업생들이 개척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 설립하고 그 교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힘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진 자생교단이다. 이러한 개척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 편한 길을 쫓는 시대적 상황을 따를 것이 아니라 주님 부르신 그곳이라면 영적 야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대신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발자취를 보여주었던 믿음의 선배들과 달리 현재 교회들마다 믿음의 야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다. 무엇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야성을 사라지게 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영혼구원에 대한 무관심이 신앙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영혼구원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우리의 관심과 생각을 변질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과 생각이 주님과 멀어지고 있다. 교회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영혼을 향한 갈망이 있는가? 외적 풍요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내적으로는 빈곤함을 호소하는 주변의 영혼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외적 자유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내적으로는 결박된 채로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주변의 영혼들의 영적 상태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의 본질은 영혼구원에 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교회의 비전이며 목적이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영혼구원이라는 목적에 기반 되어져야 한다. 희망도 소망도 없던 이 땅 가운데 구령의 열정과 개척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하여 우리 교단은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지금 우리를 통하여 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고대한다. 다시 우리 대신인의 중심 가운데 ‘2만8천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간절한 구령의 열정과 개척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이 샘솟기를 바란다. 믿음의 야성을 가지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데에 앞장서는 교단이 되기를 고대한다. 2. 애국정신: 한국의 예레미야 김치선박사는 당시 한국의 예레미야로 불리셨다. 설교와 강의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항상 눈물로 호소하셨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나라가 망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앞장섰다. 21살에 학생대표로 함흥의 영생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3·1운동을 준비하다 일본경찰에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에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유학을 마치고 일본 동경에서 신숙중앙교회 사역을 할 때에 일본이 조선인을 내선일체라 하면서 조선인교회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조선사람도 내선일체이니 교회에서는 일본말로 설교해야한다는 것이었는데, 교회의 중직자중 한사람이 김치선박사가 조선말로 설교했다고 신고를 하여 수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남대문교회로 부임하셨을 때에 그 무섭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매일 새벽마다 강단에 엎드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없이 우셨다. 그리고 해방되었을 때에 신앙의 자유로 인하여 강단에 설 때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는 일제하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서러움으로 우셨고 해방 후에는 기뻐서 우셨고 망해가는 심령을 위해서 우셨다. 그는 새벽마다 해방의 기쁨과 우리 민족을 향한 구원의 문제, 특히 한국이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부르짖었다. 그는 민족과 나라 사랑의 길은 복음전파를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한국을 복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3천만명이었는데 우리 민족의 십 분의 일인 3백만명을 하나님께 바치자는,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기 위하여 2만8천동네에 교회를 세워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셨다. 김치선 박사가 보여주었던 들끓는 나라 사랑은 우리 대신인들이 품어야 할 고귀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이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때로는 적극적인 신앙고백을 통하여 나아가야 한다. 정교(政敎)분리라는 용어의 왜곡은 거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무관심이 곧 경건이라는 등식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정교분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원칙은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신대륙으로 건너가 국가를 세운 청교도들이 이런 종교 박해가 신대륙에서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원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상당수의 교회와 교단들이 민족과 나라 문제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너무나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비난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경에도 끊임없이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통치자들에게 그 시대 시대마다 영적지도자들이 통치자와 권세자,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이 올바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한다. 하지만, 목사에게는 제사장직도 있지만 선지자직도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시대적 상황을 읽으며 때로는 하나님 주권을 훼손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들에 대해서는 기도를 넘어서 신앙고백을 통하여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 영적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만 하지 않았다. 학생대표로서 참여했던 김치선박사 뿐만 아니라 3.1운동을 주도한 지도자의 상당수가 목사였으며, 그리스도인이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일제의 만행에 맞선 분명한 목소리와 구별된 믿음의 행동을 보였다. 그런데 그 비슷한 시기 독일 내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나라를 향하여 그 어떤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독일의 그리스도인들과 영적지도자들은 히틀러의 만행 앞에 침묵했다. 그들이 분명 기도했을지 모르지만, 기도에 따른 분명한 목소리와 구별된 믿음의 행동 등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한 역사를 남겼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의 한구석 구석에서 빛을 내고 맛을 내어야 한다. 사회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신앙고백을 통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의 위험성에 대하여 알려줄 사명이 있다. 세상 가운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명이다. 지금 우리는 유럽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게 된다. 그 나라 안에 하나님 주권이 완전히 무너지고 국민 주권의 목소리가 대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성경적 가치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할 때 교회지도자들은 아무런 반대도 할 수 없었고 지지해버렸다. 그로 인해 유럽에서는 부부가 아이에게 동성애가 잘못되었다는 교육을 했다가 양육권을 박탈당하거나, 노방전도를 했다고 고발당해 체포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할 가슴 아픈 일들이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가고 있음에도 그 누구 하나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각 영역에서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참여를 반드시 해야 한다. 국가가 본래의 목적인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선한 도구가 되도록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이다. 이 성경을 통해 나의 생각,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정치에 참여하는 태도 등이 결정되어야 한다. 작은 부분부터 민감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기준은 성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와 신앙이 이원론적이라는데 있다. 우리 안에 신앙과 정치를 각각 개별적으로 가져가려는 모순점이 있다. 올바른 성경해석을 통한 기독교 세계관과 그 관점으로 해석된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영향받은 가정, 지역, 학연 등에서 파생된 생각들로 여전히 정치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지향하는 정당의 목소리 가운데 분명 성경적이지 않은 목소리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신앙과 별개로 무조건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지지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명백히 금하고 있는 낙태, 간음, 동성애, 무신론, 유물론 등을 지지하거나 정책적으로 실행하려는 정당과 정치인은,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했던 자라고 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세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평소에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라고 해도 그가 명백하게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그 정당과 정치인을 따를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도리어 그에게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비판적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목회자는 때로는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줄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해도 그것이 성경적 가르침에 부합한다면 바른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소신 있게 성경적 가르침을 분명히 말씀해주는 목회자가 목회자지, 사람의 눈치를 보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바른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목회자이겠는가? 정치는 중요하다. 내가 선택하고 다수가 선택한 통치자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한쪽으로만 편향된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통치자들을 끊임없이 예의주시하여 그들의 하고자 하는 정책들과 방향들이 하나님 주권과 상충된다면 때로는 한 목소리를 내어서 하나님의 눈치는 보지 않을지언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교회 공동체의 눈치라도 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대신인이 가져야 할 나라와 민족을 향한 애국정신이라 하겠다. 3. 기도운동: 이 민족 삼천만 김치선목사는 남대문교회에 부임하면서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는데 기도 때마다 ‘이 민족 삼천만’이라고 외치면서 민족을 향한 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대문교회로부터 시작한 이 새벽기도의 물결은 전국교회로 확산하게 되었고,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의 독특한 예배양식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전쟁 후 삼각산에 기도원만 있던 시절에 성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기도원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현재 서울대 기숙사 자리에 벧엘기도원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대형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다가 산을 깎고 기도원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이 강에서 돌을 운반하여 하나하나 쌓아 올려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예배당 건축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모였고, 많은 성도들이 밤을 새면서 기도함으로 산에는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밤새 울려 퍼졌다. 그 기도의 흐름이 우리 신학교 다닐때도 주경야독하며 매주 목요일 저녁 강의가 끝나면 가짜 제일교회에서 내어준 버스를 타고 삼각산에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지 않았던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물려주었던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등의 기도에 힘쓰던 모습들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알리었던 모습들이 상당부분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시대가 바뀌었는데 꼭 그렇게 티 나고 유별나게 기도에 힘쓸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들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조용하고 고상하게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는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보이게는 과도하다고 생각이 드는 그 행위들이 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위대한 믿음의 액션들이 되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기도에 힘썼던 과도하고도 무모한 그 행위가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많은 영혼을 건지는 한 획을 그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풍요로운 삶과 달리 빈곤한 기도로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할 때에 다시 기도의 풍요가 우리 교단을 통하여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치선박사가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 세우기 위하여 눈물 흘렸던 그 기도가 바로 우리를 통하여 다시 시작되기를 바란다. 4. 대신이 나아갈 길: 회복과 화합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기독교인들이 밀려오고 있었고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들도 있었다. 이 때에 김치선박사는 신학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게 되고 1948년 남대문교회에서 야간 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대한신학교의 전신이다. 그 후 장로교 총회신학교에 파벌싸움이 일기 시작할 때에 1961년 김치선박사는 세계 기독교 보수계인 I.C.C.C의 메킨 타이어와 손을 잡고 성경장로회를 조직하여,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대신 교단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러던 중 1968년 김치선박사가 소천 후 신학교운영문제와 성경장로회가 분리되어 나가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남은 40여개 교회를 필두로 대신교단은 도약하게 되었다. 그랬던 우리 교단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분열과 반목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예장백석과 추진했던 통합이 끝없는 갈등 속에 실패로 돌아간 이후 현재 대신수호측, 백석대신측, 예장대신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자랑스런 자생교단으로서 대신교단이 가졌던 정체성과 가치들이 훼손되는 시점에 와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다시 우리 교단은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잘못되었던 병폐와 폐단을 회복하고 변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대신이라는 이름보다 김치선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신학정신이 한국교회 교계 속에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남겨진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든 틀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세워나가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2021-03-20
  • [기획특집] 신영지주의를 경계하라
    이 시대의 교회나 크리스천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이다. 영지주의의 간단한 정의는 타락한 형태의 교의를 가진 한 이단사상으로만 판단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우리는 구원을 믿음(faith)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영지주의는 앎(Gnosis)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접근한다면 앎으로, 사람의 기원이 신성에 있음을 알고, 이 깨달음을 통해 사람의 구성 중 영적요소인 영혼은 물질세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영향으로 기독론에서 있어서도 정통진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주장하는데 예수는 단순한 메시아로 화신하여 나타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대해 우리는 엄격하게 정죄 또는 배격 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영지주의의 현상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 우려된다. 영지주의 사상의 적용은 이렇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하나님은 물질세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며 악은 물질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은 물질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존재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 산물이 이원론적 사고가 나오게 되어 구원도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킨 결과 금욕주의 아니면 자유방임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주의 사상이 영지주의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영적지형도를 볼 때에 신 영지주의(新 靈智主義)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많다. 구원은 분명 믿음을 통해서만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구원을 가져오기에 다른 조건을 첨가하게 되면 다른 복음이 된다는 것이 절대 진리가 된다. 그런데 이런 절대 진리를 적용하여 요구되는 믿음의 현상과 열매와는 사뭇 괴리감이 있게 되어버린 현실이 영지주의 현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두렵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신 영지주의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안타까운 영적 현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자유방종이다. 음주나 흡연, 도박, 마약, 동성애, 폭력, 범법 등 기타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개인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점점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갈 5:13) 둘째, 행함의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신앙행위를 우리는 목숨처럼 알고 지켜왔다. 주일성수를 비롯한 십일조 생활이나 헌신의 삶을 한국교회가 강조하며 지켜왔다. 이제는 어떤 것이든 강조를 하면 율법주의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고 하셨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약 2:22). 셋째, 천국에서의 부활영생을 잊고 산다. 막연한 천국이 아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신 성자이셨으며, 그 육체가 부활의 육체가 되셔서 승천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절대 소망은 우리의 부활 이후의 영원한 천국의 삶 즉 부활영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나 교계도,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가치관과 행위들이 오로지 이 땅이 절대 영원한 소망인 것처럼 보이는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모습들이 두렵다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전무후무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말자. 반대로 냉정하게 하나님께서 교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를 깊이 묵상하며 회개하자. 부디 신 영지주의 현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오피니언
    2021-03-20
  • [기획특집] 고봉 김치선
    김치선 박사는 1899년 8월 10일 김영준씨와 최현숙 여사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68년 2월 24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김치선 박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쉼을 누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치선이 남대문교회에서 어떠한 사역을 하였으며,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김치선이 선택했던 결정과 복음운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박태선과의 관계를 갖게 되는 과정과, 김치선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 재일교포를 위하여 어떠한 선교사역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려한다. 제 1장 남대문교회와 김치선 목사1944년 5월 일본에서 돌아온 김치선 목사는 서울에 있는 남대문교회의 제 6 대 목사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 당시 남대문 교회는 교통이 원활한 서울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갈리기 전에 전국에서 영락교회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다.이승만 대통령과 김구선생이 자주 출석하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고 300만 구령운동을 남대문 교회를 중심으로 일으켰다. 김치선 목사님은 부임하면서부터 새벽기도회를 계속하였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였다. 김치선 목사는 이 교회에 부임한 뒤부터 새벽 기도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은 1944년 당신의 상황에서는 무척이나 위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교회들에서는 새벽기도회를 쉬고 있었는데 김치선 목사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벽기도회를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이 서울에서는 처음 시작된 새벽기도회였다.김치선 목사는 그 암담하고 어수선한 시기에 매일 새벽제단을 쌓으며 강단에서 엎드려 민족을 위하여 한 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매 새벽기도 때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그리고 이 민족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때부터 그를 조국을 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렀다.김구 선생은, 김치선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던 남대문 교회의 교인이었다. 따라서 김구 선생과 김치선 박사는 각별한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김구 선생은 매 주 한 번씩 김치선 박사를 집으로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고 김치선 목사와 신앙적인 교제를 나누었다. 또 그의 아들 김신(金信)씨의 결혼식 때에도 그 주례를 김치선 목사에게 부탁하였다. 열심 있는 기도와 은혜로운 설교로 인하여 남대문 교회는 점점 그 교세가 확장되었고 마침내 남한에서는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해방된 기쁨의 눈물, 자기 과거에 대한 회개의 눈물, 우리 민족을 향한 구원의 문제, 한국이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남대문교회는 귀환 동포들의 안식처이자 소식이 끊어진 친지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서울역에서 내려 찾아드는 그들에게 교회는 뜨락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김치선 목사가 남대문교회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삼백만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이만팔천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다. 그의 남대문교회에서 목회하는 동안 박태선장로와의 관계는 그의 지도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하였다. 1. 삼백만 부흥운동의 전개 1907년 대부흥의 물결이 2-3년 지나자, 부흥의 열기가 차차 식기 시작하면서 교인들의 열성이 기울기 시작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일제가 기왕에 시작하였던 한국 식민지화를 가속화하더니, 급기야 1910년 8월 한국을 강점 병합하여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따른 사회의 불안과 모든 사람들의 좌절을 보면서, 교회는 이런 때에 낙담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사명을 일깨우면서 교회의 부흥운동을 재개하게 되었는데, 이 운동이 곧 100만명 구령운동이었다. 1909년부터 1910년간에 백만명 구령운동 (Million Souls Movement)이 전개된 일이 있었다. 백만명 구령운동은 1909년에 개성에서 감리교 선교사 스톡스 (M. B. Stokes), 갬불 (F. K. Gamble), 리이드 (Miss W. T. Reid) 등 3인이 다시 한국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당기기 위해 사경회와 기도회를 한 주간 동안 갖기도 하고, 한국 교인 몇 사람과 함께 산상기도회를 개최한 데서 비롯되었다. 기도회에 참석했던 선교사들은 1909년 9월에 개최되었던 남감리교회 연차대회에 참석하여 “20만 명의 심령을 그리스도에게”하는 표어를 채택하도록 요청하여, 이 표어가 채택되었다. 이 연차대회가 폐회한 후 바로 열렸던 복음주의 선교연합공의회 (The General Council of the Evangelical Missions)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 참석한 위의 3인 선교사들은 이 공의회의 전도 목표를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이것이 “백만명 심령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100만명 구령운동”이 정식으로 출범을 하게 된 것이다. 1910년 선천에서 모인 장로회 제 4회 독노회에서도 100만명 구령운동에 적극 참여키로 의결하고, 7대리회에서 특별위원을 선정하여 이 일을 추진하게 하였으니, 이날이 한국이 일제에 병합된 지 꼭 20일이 지난 때였다. 이 운동은 한국에서 전도를 위해 남녀노소, 신자들과 학생, 평신도와 교역자들이 전심전력하여 이 표어의 구현에 노력한 전국적인 운동이었다. 전국의 각 교회가 연합하여 백만명전도회를 조직하고 각 지역 교회의 유력한 교역자들이 먼저 서울에 모여 1개월간 시내 전역에 축호전도를 함으로써 귀도자가 많았고 이로부터 전국 각지를 분담하여 계속 전도함으로써 많은 수확을 얻었다. 김치선 목사가 백만명전도운동에 영향을 받아서 삼백만 부흥 운동을 일으키던 때는 1946년이었다. 해방 이후의 정치적인 혼돈기였다. 당시 남북한 전체인의 인구가 3천만이었으므로 십일조에 해당하는 3백만이라도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 아래 삼백만 부흥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한 달에 한번씩 초청 강사의 부흥회를 가졌는데 박재봉, 손양원, 배은희, 김인서 등을 강사로 하여 금식과 철야기도 운동을 벌였다 (배명준 목사와의 대담, 1978년 8월 19일 재인용). 삼백만 부흥운동을 시작할 때 세 가지 중점목표를 가지고 진행되었는데 첫째 성령운동, 둘째 말씀운동, 셋째 회개운동이다. 당시 남대문교회 주일 학교는 교사 김성섭, 이의환, 김영정, 박동윤 등이 인도하였는데, 어린이 전도대원들은 북을 치고 나발을 불며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가 서울역 앞과 공원에 모인 군중들에게 복음을 외치면서 전도지를 배포하였다. 청년들로 구성된 전도대원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공창지역인 묵정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공창 폐지를 외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 곳 사람들에게 매를 맞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1950년 5월 중순 6.25가 나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남대문교회 청년들의 대다수를 차지하였던 대한신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삼 백만 부흥운동의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약 70여명의 전도대원들은 당시 공산당들의 출몰이 잦았던 38선 접경지대와 여수, 순천 반란사건으로 인하여 패잔병 공비들이 있던 지리산 지역과 제주도 한라산 일대에 복음전파의 사명감을 갖고 전도의 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전도대원들은 6.25로 인하여 대부분 선교지에서 순교를 당해야 했고 지금도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이들 결사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의환 목사의 경우 6월 상순경에 38선 지구에 파송을 받았다. 개성지구, 연백지구, 옹진지구로 3조가 파송되었는데 마지막에 옹진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그는 개성으로 가서 전도집회를 일주일간 갖게 되었다. 낮에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며 노방전도를 하였는데 시장에 가서 전도지를 뿌리면서 전도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전방 참호 속에 들어가서 대북방송을 하기도 하였는데 전도 설교를 하면서 찬송을 부르기도 하면서 흘러간 노래들을 불러주기도 하였다. 또한 군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위로하며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이의환 목사의 증언, 기독교 방송 “한국의 교회”에서 방송, 1979년 1월 28일). 이들 전도대원의 가슴속에는 같은 민족이 분단되어 서로 반목질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으며 어서 속히 복음을 하나가 되어야 되겠다는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후 1962년에 이르러 삼백만 부흥운동의 결사대로 공비들이 출몰하던 지리산 지역에 파송받았던 대원 중 정관백 전도사가 공산군에 의하여 순교하였음이 밝혀져 남대문교회가 지리산 지역인 구례군 산동면에 비석을 세워 그를 기념하였다. (1962년 11월 21일 당회록). 산동교회의 사연은 너무나 처절한데 일명 과부교회로 불리우리 만치 동란을 겪는 동안 교회의 남자는 모두 목숨을 잃어 버렸다. 그리하여 여자의 손으로 나무를 찍어다가 예배당을 지었는데 남자라고는 60세가 넘은 영수 한 사람 마저 건축자재를 사서 싣고 가다가 소달구지가 뒤집혀 죽고 말았다. 이곳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산불’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여인들만이 사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이 곳에서 염명수 목사가 고아원과 자모원을 하였다. (배명준 목사와의 면담, 1979년 8월 19일). 채기은은 삼백만 부흥운동에 대하여 평가하기를 해방 후 민족 전체가 국가발전에 열중하고 있었느니 만큼 삼백만 부흥운동은 크게 호응을 보지 못하였었다고 하였다. 사실 이 운동이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대중집회를 한다든지 초교파적인 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려는 강한 도전을 받고 사명감에 충만한 사람들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는 한국교회사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2. 2만 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 삼백만 부흥운동과 더불어 또 하나의 사역은 2만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사명이었다. 증경총회장인(12대) 신현기 목사는 말하길 2만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것은 개척자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정신이 대한신학교와 대신교단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실에 신학교를 졸업 한 후 부교역자나, 교회청빙을 기다리기보다는 나아가서 교회를 개척하며, 특히 교회를 개척할 때는 다른사람이 가지 않는 벽고지나 농촌, 어촌, 등으로 가도록 권장하였다. 이어서 말하길 김치선 목사야말로 개척자의 삶은 살아 온 증인이었기에 이와같은 부르짖음이 가능하였다. 대한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당연히 교회개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심지어 학교에 재학중에도 개척교회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신현기 목사와 대담 2001년 5월 17일) 1950년대에 우리 민족은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수난과 궁핍과 처절한 생활고를 해결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다시 번영할 수 있는 비결을 영적 운동에서 찾았다. 김세창 박사는 그의 책 빛을 향하여에서 이 우물파기 운동이 영적으로 전개되어 김치선 목사 생애에 3천여 명의 제자를 내고 목숨까지 바친 마지막 운동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다시 말해서 동네마다 우물을 파는 운동이니 대한민국을 통틀어 2만8천여 동네였다. 마당에 우물을 파고 이 우물로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다. 동네마다 우물인 교회가 세워지니 심령이 변화되어 예수 믿고 변화 받아 영생의 자리에 들어가고, 마음이 깨끗해져 부정과 사리사욕이 멀어지고, 예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니 우리 나라는 천국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는 부강한 나라가 되어 세계선진으로서 불쌍한 나라를 도와줄 수 있는 근원이 될 것이다. 이 때에 “교회 세우러 가자”는 표현 대신 표어로 내세운 것이 바로 “우물 파러 가자!”였다. 이것은 구약에서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서, 생수를 받아 영적으로 육적으로 축복받는 특별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신약에 있어서는 사도 바울이 우물을 파는 일을 했으니 동네마다 나라마다 지방마다 나아가서 교회를 세우고 천막을 기웠으니 영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 축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창 12:1-3). 김치선 목사는 대한신학교 학우회지인 우물 창간사에서 말하길,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우물을 파는 것이다. 신학도들은 금년으로 우물 하나씩을 팔 결심을 하여 그대로 실현하기를 바란다.”(1955. 12. 13)라고 하면서 교회개척을 강조하였다. 3. 김치선 목사와 박태선 김치선 목사에게도 간과할 수 없는 실수가 있었다. 그것은 박태선과의 관계에서였다. 정성구 박사는 “김치선 박사는 1950년부터 총신교수로 9년간 봉사했다. 그리고 그는 1960년 성경장로회 총회를 조직하고 또 대한신학교 교장으로 평생 일하였다. 한때 박태선 장로와 더불어 부흥운동에 참여했던 것이 그의 생애 가운데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연세대학교 민경배 교수는 김치선 박사와 박태선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박태선 장로의 철저한 섹트(sect)적 사회 윤리의 감람나무, 곧 한국 ‘예수교 전도관 부흥 협회’는 6.25 사변 후의 교계와 일반 민중 사이에 불길처럼 확대해 갔다. 김치선 목사 창동교회에서 장로안수를 받은 그는 1955년 3월 하순, 남산 광장에서 김목사와 미국의 스완슨 부흥사를 초빙하여 함께 대대적인 연일 연속의 부흥회를 개최하였다. 그는 신구약의 예언된 ‘감람나무’를 차저하면서, 토착적 민간 신앙에서 흔히 쓰는 심정의 광란 상태를 일으키는 술수(박수, 발장단, 몸 흔들기, 고성방가, 통곡기도)를 팔 다리로 삼아 전란 후의 신앙 심리의 행방을 포착, 거기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남산 부흥회에서는 난데없이 썩은 뼈 타는 냄새가 나더니, 그 악취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백합화 향기가 나기 시작하고 이슬비 내리고, 기이한 광채가 그 분위기 속에 자욱했다는 이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며칠 사이에 서울 가두마다, 부흥회 천막의 들보나 밧줄에 신비한 광채가 찬란한 사지 복사판들이 나붙기 시작했다. 병자의 기적적 치료와 성신의 효험있는 임재가 부흥 군상들의 대화 속에서 놀라움으로 전달되어갔다. 이들은 결국 일단의 성도적 공동사회-천년성-를 형성하여, 경기도 소사, 덕소, 그리고 경남의 기장에 신앙촌을 건설하고 자급자족의 종교적 경제 공영사회를 이룩했다. 대한민국이 해방을 맞이하면서 김치선 목사는 남대문교회에 시무하게 되었고, 일본에서부터 알게되었던 박태선 집사는 남대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김치선 목사가 남대문교회를 나와서 창동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을 때도 함께 행동을 했다. 박태선은 서울 창동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였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하여 뭇성도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교회의 모범으로 봉사하던 박태선 집사가 창동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되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치선 목사는 그가 은혜를 받았다고 교만하여 탈선할까봐 걱정하여 그에게 대한신학교를 다녀서 신학공부를 해야 탈선하지 않는다고 늘 권고했다. 그래서 그는 신학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바쁜 생활에 미루어 오다 결국은 김치선 목사의 우려대로 신학의 바탕이 없이 은혜를 받아서 그만 탈선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박태선 장로가 김치선 목사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목사님! 앞으로 내가 집회하여 얻은 이익은 반드시 대한신학교를 위해 쓰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이 말에 감동받은 김치선 목사는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그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했다. 김치선 목사는 1954년 발행된 복음세계 제3호 “실업청년과 복음운동”이라는 글에서 말하길 박태선씨를 김치선 목사가 추진하고 있는 복음운동의 취지를 잘 알고있는 분으로 소개하면서, 기성교회에 불합당한 행동을 하는 자가 없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인들 가는 것을 막기만 하지 말고 교회의 지도자가 그 집회에 참석해보고 바른 비판을 하여 교인을 선히 인도하여야 할 것을 말하였다. 1955년 3우러 28일부터 시작된 남산고원(조선 신궁터 광장)에서 열린 집회는 대 성황을 이루었고,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적을 체험한 신자들을 자신의 모든 귀금속과 재산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헌금했다. 집회가 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박태선 장로의 생각은 김치선 목사와는 달랐다. 박태선 장로는 자신의 약속대로 집회의 헌금을 대한신학교를 세우는 데 쓰기보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도관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치선 목사는 대한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하여 재정이 필요하였고 이것을 충당하기 위하여 박태선과 모정의 약속을 하고 집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으나 박태선이 약속을 이행하지 아니하므로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김치선 목사는 지도자로서 사람을 잘못 선택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박태선 장로의 탈선은 급기야 한국의 목사님들이라도 자기에 와서 안수 받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성령이 없는 사람이요, 구원받는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목사 자격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김치선 목사도 자기를 순종하고, 따라야 참 사람이 되고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악령에 속한 사람이니까, 자기에게 와서 회개하고 생수를 마시라고 했다. 이로 인해 김치선 목사는 그와 결별을 하게 된다. 김치선 목사가 박태선 장로와 함께 집회를 했던 것은 대한신학교를 사랑하고,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동기의 협력이 결국 집회의 성공에 따른 박태선 장로의 탈선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있어 크나큰 오점으로 남고 말았다. 박태선 장로가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교계의 원로였던 권연호, 김치선 목사 같은 이들과 윤치영씨 등 정계 요인의 후원이 컸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다른 김치선 목사의 실수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공산군이 남한을 침략함으로 전쟁이 발발하였다. 공산군이 삼일만에 서울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김치선 목사는 이소식을 듣고 교회를 떠나 삼각산으로 피신하였다. 얼마 후 남대문교회에서는 김치선 목사가 삼각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대표로 한상기 장로가 삼각산에 갔다. 배명준 목사가 남대문교회의 부목사로 시무하였는데 그는 숨지 않고 서울에 있었다. 한상기 장로는 김치선 목사를 설득하여 교회로 내려 갈 것을 요구하였으나 한상기 장로는 김치선 목사에 의하여 거절당하고 삼각산을 내려갔다. 그후 삼각산에서 내려온 김치선 목사는 삼개월동안 지하에 숨어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옥오열 선교사의 도움으로 한경직 목사 가족과 김치선 목사 가족, 그리고 총회장 권연호 목사 가족이 피난을 가게 되엇다. 박용규는 지적하기를 ‘6.25동란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보다 먼저 피난을 갔던 것이다. 그러나 교육목사로 있던 배명준 목사는 교인을 다 피난 보내고 그 후에 떠난 고로 6.25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된 후 남대문교회에 담임목사로 계속 시무하게 되었으나, 김박사는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박사는 학자이지 목회자는 아니였다’라고 하였다. 당시의 상황이 김치선 목사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교회를 지켜야하는 목사의 사명과 어려운 상황를 피해 피난을 가야하느냐의 선택의 기로에서 김치선 목사는 후자를 택함으로 말미암아 전쟁이 끝난 후 동사목사이었던 배명준 목사에게 남대문교회의 담임목사직을 인계하고 자신은 창동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상의 사건들이 김치선 목사가 남대문교회를 시무하면서 일어났던 중요한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삼백만 부흥운동’과 ‘이만 팔천동네에 우물을 파라’고 하는 운동은 1940년대 후반의 한국교회상황이 복음을 증거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치선 목사의 중대한 업적으로 평가 할 수 있지만, 이 운동들을 조직하고 진행하는 행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열약한면을 보여주어 나아가자는 구호는 외쳤지만 한국교회를 움직일 만한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더욱이 박태선과의 관계에 있어서 김치선 목사가 박태선을 바로 알지 못함으로 한국교계에 엄청남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치선 목사는 그 누구보다도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였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척했으며, 개척정신을 부르짖었다. 김치선이 한국과 일본에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였지만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어서 한국교회에 대형교회로 자리잡은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대한신학교와 대신교단에 지금까지도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 2 절 일본선교 : 선교사로서 김치선 카나다 장로교회 소속인 영재영 선교사가 일본으로 파송 받게 되었을 때 김치선은 영재영 선교사와 함께 가서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일본에서 신학교육을 마쳤고 일본에 대한 체험에 있었으며, 당시 일본 안에 있었던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선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안양대학교 신학부 약사를 저술한 최정인 목사는 김치선 목사에 대하여 말하길 김치선은 1930년 2월 23일에 일본 신호중앙신학교를 졸업했다. 김치선의 나이 31세였다. 미국유학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재일교포를 위한 순회목사로 취임하였다. 그의 사역지는 쓰시마, 큐슈우, 훗가이도, 아모리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일본 관서지방의 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939년에는 동경 잇지신학교에서 강의도 하셨다. 김치선 목사는 영재영 선교사의 후원으로 동경 YMCA 대강당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특히 김치선 목사는 1939년부터 1944년 까지 재일교포를 위하여 니시노마아교회, 혼요고교회, 아까시교회, 대판 동부이 와까야마교회, 모리베교회, 메구로교회, 이께부르교회등을 개척하였다.(2000년 10월 20일 최정인 목사와 대담) 또한 신호중앙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였고, 동경신숙중앙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에는 대단한 부흥을 일으키기도 했다. 동경신숙중앙교회에 가면 조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일요일이 되면 믿지 않는 유학생들도 자기 친지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교회로 나왔다. 그래서 늦게 가면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그 교회의 제직이나 성가대원들은 후일에 한국을 위해 공헌한 유명한 분들이다. 또 일반 교인들도 후일에 귀국하여 국회의원, 공직자,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교육가, 사업가, 과학자, 유명한 목사들로 활약하게 되었다. 일제시대부터 유명했던 음악가 고 이인범선생은 성가대를 지휘하였고, 와싱턴 D.C.에서 ‘한국의 소리’에서 일하시다가 작고하신 고 황제경 목사는 성가대원의 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의 조선인의 유학은 일본이었다. 그러므로 김치선 목사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어서 동경안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도자의 위치가 상승함에 따라 모든 행동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일본이 한국교회에 대하여 강압정책을 펴고있었고 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교회에 대하여 예배전에 신사참배를 강요하였고, 목회자에게 일본어로 설교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런데 1940년 김치선 목사는 경찰에 구속되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중직가운데 한사람이 김치선 목사가 한국어로 설교했다고 경찰에 신고하였기 때문이었다. 김치선 목사에게는 약 일년간의 감옥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김치선이 수감생활을 하게 됨으로 인하여 본인뿐 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일로 인하여 김치선 자신의 사명을 더욱더 확고히 했으며,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 있지만 이 일이 오히려 김치선 목사 민족의식을 새롭게 고취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김치선 목사는 과거의 자신의 화려한 생활을 잊어버리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함으로 오히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고, 또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디면 현실에 따라 안주하기 쉽고, 반면에 조그만 어려움이 닥쳐 올 때에 실망하고 낙심하며 또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쉬운데, 김치선 목사는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절대 미워하지 않았고,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향하여 불평하지도 않은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절제함으로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 전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일본에 있는 한국인 교포를 상대로 한 전도 및 선교활동을 의미한다. 1911년 도쿄에 있던 감리교 출신 유학생들이 따라 감리교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에 같은 지역에 장로교, 감리교가 따로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 하여 일본에서만큼은 초교파적 연합교회를 세우기로 했다. 또한 장로교측으로서는 중국 산동지방에 현지인을 위한 선교를 계획하고 있어 일본 선교까지 단독으로 추진하기엔 벅찬 감도 있었다. 그 결과 장로교 독노회와 미감리회, 남감리회가 동의하고 재한 복음주의선교부 연합공의회에서 실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교회명칭은 ‘재일본동경조선 예수교연합교회’로 하였으며 교역자는 장로교, 감리교에서 2-3년 교대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장로교에서 주공삼 목사가 연합교회 초대목사로 파송되었고 1-3년 주기로 장로교, 감리교에서 교대로 파송했는데 김치선 목사는 1935년부터 1944년까지 목회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 교단 소속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김치선 목사의 열정을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를 이끌고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정신 세계를 움직이려고 하면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뜨거운 가슴의 열기만이 보이지 않는 신앙 세계를 이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자기의 아성을 쌓아 놓고 자기 위주로 교단을 이끌어 가기도 하고 목회를 하기도 한다. 때문에 오늘 한국의 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전체 공동체보다 개교회주의로 흘러가 그곳에서 안주하려고만 한다. 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김치선 목사는 어느 곳에 가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여러번 사역지를 옮겼지만,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는 어려운 상황을 만났지만 굴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사명인 영혼구원을 위하여 맡겨진 일들을 잘 감당하였음을 볼 수 있다. 김치선 목사야 말고 대신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 있기 전에 최초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달. 김동화는 말하길 ‘구슈와 시모노세기에서 북쪽 훗가이도까지, 조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복음 전했다. 가는 곳마다 믿는 자가 생기고 그 곳에 교회를 세웠다.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예배를 보았으나, 그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갔다.’라고 하였다. 이상에서 김치선 박사의 남대문교회에서의 목회활동을 통하여 열정적인 목회자의 모습을 보았고, 일본에서의 선교활동을 통하여 헌신적인 선교사로서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후대에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겸손한 자세로 대하면서도 자신의 신앙과 신학에는 추호도 양보가 없었던 그 확고부동한 신념과 강인한 성품은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목회자중의 한사람으로, 또한 선교사중의 한사람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오피니언
    2021-03-20
  • 총회의 카페가 오픈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일상으로 고통받는 동역자를 볼 때 아픈 가슴이 저며 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승리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반드시 회복되고 우뚝 서리라 믿습니다. 그간 교단의 통합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는데 안타까운 심정으로 머뭇거리던 마음을 비우고 교단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 후배님들의 고견을 경청하고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 수 있는 교단으로 세워갈 것입니다. 연말에 상임부서와 노회장님과 총회 임원과의 상견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깊어가는 코로나로 보류하고 있습니다. 신년에는 총회 상임 부서장님들과 우리 총회의 기둥인 노회의 임원 목사님과 총회 임원이 함께 신년을 하례하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어 실행위원회를 통해 우리 총회의 나갈 길을 열어가려고 합니다. 신학이 없으면 교단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총회는 호서대학과 인준을 준비를 마치고 대학원 커리쿨럼을 우리 총회에서 위임하여 교육을 통해 후배를 양성할 수 있도록 위임받았습니다. 그 외 다른 대학과의 MOU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회는 우리 신학으로 후배를 양성하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4-5년 후에는 알차고 멋지게 다져져서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단한 총회가 될 것입니다. 총회도 슬림한 총회로 모든 권한을 노회에 위임할 것입니다. 상임위 및 부서장과 총회 임원은 카페에 공지하겠습니다. 드릴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이 만나고 싶었습니다. 총회의 카페가 오픈을 했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가입하셔서 함께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대신총회] http://naver.me/GfZhCoAn 추후에는 카페에서 소통하기로 하고 이만 줄입니다. “다시 복음 앞으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목양 이루세요. 기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0년 12월 19일 총회장 강대석 목사 드림.
    • 오피니언
    2021-03-20
  • 성지순례의 참 의미
    한국교회의 대표적 성지 중 하나인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에는 해마다 5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오간다. 전주교구 치명자산, 수원교구 미리내성지, 원주교구 배론성지 등에도 한 해 수십만 명의 순례 발걸음이 이어진다. 특히 9월 순교자 성월이면 각 성지들은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순례객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성지가 순교성지인 덕분이다.성지순례.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신심행위의 하나로 꼽힌다. 한국교회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이끈 대표적 신심행위라는 수식어도 늘 붙어 다닌다.하지만 한국교회 성지순례 실태를 되짚어보면 쇄신, 보완해야할 과제들이 산재해 있다. 국내 순교성지를 순례하는 여정은 한국교회 고유의 순교영성을 매개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성지관광’식의 순례를 비롯해 무엇보다 한국교회 고유의 순교영성을 체득하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모든 종교인들은 ‘순례’라는 이름으로 성스러운 종교여행을 한다. 순례는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본질적인 현상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지순례는 단순히 진리를 추구하고, 정신적 풍요를 체험하고자 나서는 여정이 아니다.성지순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깊은 신앙의 표현이다. 이러한 참뜻을 올바로 알고 실천할 때, 한국교회의 가장 오래되고 이상적인 영성인 순교영성을 바탕으로 하느님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성지순례의 기원지구촌 곳곳에서 성지순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성지순례’라는 표현으로 시작됐는지 그 기원이 뚜렷하게 증명되진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유다교인들이 해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에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가 수확한 곡식을 바치던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진다.신약 시대에 들어서서는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진 로마 순례가 보편화됐다. 또 8세기 즈음에는 성지순례가 신자들의 의무로 인식될 만큼 관습화돼 순례단이 조직되기도 했다.성서학자들은 교회 안에서 순례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닐 뿐 아니라, 동시에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영감을 받아 진행된 것이 많다고 설명한다. 또한 성지순례는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생활의 쇄신과 내적 변화를 제공하는 기회로써 꾸준히 발전돼 왔다.■ 왜 순례를 하는가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자체가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의 여정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하느님과 상의하기 위해, 축복받기 위해 순례를 이어갔다. 신약에 들어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들에 동참하기 위해 그 사건들이 일어났던 근원적인 장소들을 찾아가고자 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후로는 속죄 차원에서 진행하는 순례가 일종의 신심 형태로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아울러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회개의 행위, 성인에 대한 존경, 영적 은총을 받기 위한 실천 방법 등으로 성지순례의 폭을 넓혀왔다. 이러한 순례 역사는 그리스도교 영성 발전에도 풍요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왔다.특히 그리스도교의 경우 전통적으로 순례는 ‘회심의 여정’이라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순례는 깊은 영적 변화를 갈망하면서 자신의 내적 불완전함을 돌아보고,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포함내역 *왕복항공권/유류할증료*전일정 숙박비/차량비*여행지입장료/인천공항세/현지공항세*1억원 여행자보험*관광진흥개발기금(10,000원)/전쟁 보험료 불포함내역 1 인당 전 일정 70 USD의 가이드/기사 경비를 현지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15명 미만시 20~30달러의 추가 가이드/기사 경비 발생합니다.*개인적인 음료비용*호텔 객실 TIP 및 포터 이용시 포터비용*객실 TIP : 1$ 10~12장 준비하시면 편리합니다.☞ 환전안내 : 요르단 / 이스라엘 USD 달러 통용 됩니다. 매너팁은 소비자의 자율적 선택으로 지불여부에 따른 불이익은 없습니다. 상품소개 ☞ 2,000년 전 예수님이 계셨던 그 곳.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쉬는【이스라엘】◈ 신비로운 바다 사해에서 부영 체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신 갈릴리 순례- 가버나움, 베드로 수위권교회, 오병이어기적교회, 팔복교회◈ 예수님이 첫번째로 기적을 베푸신 가나와 나사렛 순례-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 기독교 최고의 성지 예루살렘 순례- 감람산과 감람산 주변의 기념교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신 십자가의 길과 골고다 언덕, 예수님 무덤교회
    • 오피니언
    2021-03-20
  • 목회자 건강상식과 의료선교
    목회자 건강상식과 의료선교 최초의 목회자 건강 보고서 저자 서광수 출판 쿰란출판사 페이지수 404 사이즈 152*223mm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질병이 걸렸을 때 대부분 기도하고 믿음으로 고치려고 하고 병원을 다니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비쳐지는 선입견 때문에 공개적으로 치료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목회자들은 병원을 찾는 것을 더더욱 꺼려 왔다. 이 책은 그동안 선교회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치료해 오면서 의학적인 기본 상식만 알아도 예방할 수 있었던 질병들에 대한 정보와 관리치료 방법, 건강 상식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스스로 건강을 체크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병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목차 추천사_ 아름다운 교회 김의철 목사 산성교회 이천수 목사 책을 내면서 A. 가정의학, 내과적 상식 B. 노화 방지 클리닉 C. 정형외과적 상식 D. 목회자의 건강 관리 부록 1. 의료 선교와 병원 전도 2. 예수님 보혈의 의학적인 고찰
    • 오피니언
    • 건강상식
    2021-03-20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1)
    서 언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와 대신교단의 원조가 되신 분이다. 그분의 역사를 탐구하고 되새겨 보는 일은 앞으로 대신의 역사를 가름하는 중대한 지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는 시공간의 사건에 기반을 두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해석이 적용될 때 올바른 역사관을 소유하게 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재산이 된다. 일방적 자기주장을 단편적으로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교회가 걸어온 역사에는 교리적 배경이 시대적으로 나열되어 왔다. 그것이 교회사적 신학이다. 교회사를 뒤돌아보면 역사의 아이러니(Irony)가 지속되어 온 것처럼 느껴진다. 대신의 역사를 되새겨 볼 때 교회사의 한 단편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다. 교단의 역사는 교회사적 신학에 기초한 교리교육이라는 반석 위에 정치적 제도를 튼튼하게 세워갈 때 지속적으로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게 된다. 그것이 교회사가 증명한 역사였다. 대신교단이 그 교리교육에 기초하여 교단을 형성해 왔는가? 김치선 박사의 노고를 뒤돌아보고, 당시의 역사를 가감 없이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대신의 역사를 정립하는 작업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절대 단편적으로 그분의 애국운동과 그분의 보수적 신학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신구약의 교회사적 기준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해석하고 미래 지향적인 신학적 그리고 정치적 역사관을 형성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1. 김치선 박사의 생애 김치선 박사는 1899년 8월 10일 김영준씨와 최현숙 여사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그를 가르쳐 준 김응보 선생이 영수로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 선생으로부터 전도를 받았고 또한 같은 서당에 다니던 영특한 이홍순이라는 여자 학생 역시 전도를 받고 함께 성경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치선 학생은 후에 이홍순 학생과 결혼하게 되었다. 김치선의 부친 김영준씨는 어업을 경영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그 가족에 고난의 회오리가 닥친 것은 배가 풍랑을 만나 좌초되고 부터였다. 40여척의 배와 함께 배에 탄 어부들은 폭풍으로 말미암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치선의 할아버지는 생명을 잃은 가족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김치선의 가족들을 오막살이 집에 남겨놓고, 영흥으로 돈벌이를 위해 떠났다. 그러나 그는 3년 후 극심한 고생으로 세상을 떠나고 치선의 아버지 영준씨는 1916년 온 가족과 함께 함경도 장진의 화전민으로 들어가 산지를 일구며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함흥에 카나다장로교 선교사 영재영(L. L. Young) 목사가 화전민들이 살고 있는 서호리에 복음을 전하려 왔다. 영재영 선교사는 영특한 소년 김치선을 보고 자신이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말했다.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치선을 데리고 와서 가정의 일을 시키며 학교를 다니게 했다. 당시 카나다 선교사들은 다수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독일의 문서설을 지지하는 신학을 함경도에 거점을 두고 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어 김치선에게 전파된 복음은 보수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정통주의 신학이었다. 그것은 김치선을 미국에서 보수주의 신학을 공부하도록 주선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영 선교사는 후에 김치선에게 공부할 신학교를 추천할 때 개혁파 신학을 추구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추천해 준 것을 보면 그의 신학적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치선은 1933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치선 박사가 영생중학교를 다닐 때, 지금의 학제로 고등학교 3학년 나이에, 1919년 3.1 운동일 일어났다. 그도 그 운동에 가담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당했다. 그리고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했다. 아마 김치선 박사의 강한 민족주의 애국운동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생을 12시 고동소리와 함께 기도하고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수시로 눈물을 흘린 삶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그의 심정이 어떠했느냐를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목회할 때 내선일체에 맞도록 한국말로 설교하지 말고 일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정책에 반항했다는 죄목으로 1940년 왜인들의 경찰에 체포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가끔 김치선 박사의 설교 녹음을 듣게 될 때 긴장되는 것은 그분의 한국민족을 향한 애절한 외침과 눈물이 언제 터져 나오느냐? 이었다. 그 같은 느낌이 들자마자 목소리가 높아지며 눈물로 호소하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설교가 시작되고 약 5분이 지나면 목이메인 외침이 시작되었다. 왜인들에게 당한 한국 민족의 한이 깃들어 있었던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아마 2만 8천여 동네에 우물을 파라고 제자들에게 호소하면서 국민의 11조 300 만 성도를 달라고 기도한 신념이 여기서부터 나온 것이다. 복음화 운동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분이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절친하게 지냈던 일도 미루어 보면 민족 사상이 깊이 깃들어 있었던 연고로 생각되어 진다. 손양원 목사와 300만 전도운동을 함께 한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비화를 언급할 것이 있다. 김치선 박사는 손양원 목사를 모시고 남대문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열게 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총살한 안00이라는 살인자를 아들로 삼아 부흥회에 데리고 오셨다. 남대문 교회 앞에 세계의 성자 손양원 목사 라는 포스터를 크게 써서 매달았다. 그때 손양원 목사는 그 포스터를 떼지 않으면 부흥회를 인도할 수 없다고 우겼다. 하는 수 없이 그 포스터를 걷어내고 부흥회를 열게 되었다. 지금도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인 여수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와 김치선 박사 두 분이 다정하게 앉아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김치선 박사가 한국에서 활동한 거점은 남대문 교회와 대한신학교이다. 당시 남대문 교회는 교통이 원활한 서울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갈라지기 전에 전국에서 영락교회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선생이 자주 출석하기도 했다. 1948년 8월에 야간에 공부하는 대한신학교를 남대문 교회에 창설하였다. 초대 원장에 윤필성 목사가 취임하였고 뒤이어 1년 후에 김치선 박사가 취임하였다. 북에서 남으로 넘어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신학교였다. 이 학교가 대신교단을 설립하는 모체가 된 것이다. 교단은 신학과 정치적 일치를 통해 형성된다. 그 신학을 형성하는 모체가 신학교이다. 신학교의 노선은 교단의 신학을 결정하는 뿌리이다. 구미의 역사가 그랬다. 신학교의 자유주의화는 교단의 멸망을 촉진하는 원인이다. 교회의 문제는 신학교의 문제로 연결된다. 신학교의 문제는 이사진과 교수들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사진과 교수들이 돈과 자신의 영예만을 위해 정치를 일삼을 때 신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럴 때 학생들은 성경에 기초한 신학을 배울 수 없다. 후에 그들이 남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에 매진하게 된다. 6.25 전쟁이 휴전됨에 따라 서울에 평화가 깃들고 대한신학교를 다시 개강하게 되자 학생들이 날로 늘어가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다시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대한신학교 7회와 8회에 학생 수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때 졸업한 학생들이 졸업 후 교계의 각계각층에서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1954년 김치선 박사는 기도에 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원 자리를 찾아 나섰다. 지금의 서울대 자리에 벧엘 기도원을 세웠다. 당시 많은 대한신학교 학생들이 시간이 나는 대로 관악산 벧엘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에 몰두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더불어 김치선 박사에게 닥친 환란은 겹치고 또 겹친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대한신학교 건물과 한양교회(창동교회를 개명)의 화재로 전소된 사건,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수양회에 가서 7명이나 익사한 사건, 그리고 대한신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법적 다툼 등이었다. 6.25 남침으로 인하여 피난 중에 남대문 교회는 다른 목사가 와서 목회하게 되자 김치선 박사는 한양교회를 새로 설립하고 남산 2,500평의 땅위에 세워진 일제 때의 신사(神社) 건물을 매입하여 교회와 학교로 사용하던 중 1956년 어느 날 새벽에 신학교와 한양교회가 전소된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김치선 박사는 충격을 받아 병중에 눕게 되었다.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건물은 전소되고 땅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폐허된 땅에 임시로 대형 콘세트를 세워 신학교와 교회를 함께 사용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속적으로 일어난 마찰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부가 대한신학교와 한양교회가 사용하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결과 벌어진 소송과 더불어 정부의 시책이 발표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의 신학교는 하나의 교단을 배경으로 하여 운영하라는” 것이었다. 대한신학교는 1952년 4년제 각종 대학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의 교단과 관계를 가져야 할 형편이었다. 당시 대한신학교는 합동측 총회의 야간 신학교로 운영을 해 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단독 교단을 만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김치선 박사는 당시 근본주의의 선두주자였던 ICCC(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의 총재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와 연관을 맺고 1960년 성경장로회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1966년 김치선 박사는 암스텔담에서 열린 ICCC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연설을 했다. 그것이 국제대회에서의 마지막 강단이었다. 잠시 미국에 들러 필라델피아 페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쉬고 귀국하려던 참이었다. 거기서 갑자기 쓰러져 전신을 쓰지 못한다는 통보가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언어도 쉽게 구사할 수 없었고 대소변도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에 혹이 생겨 미국에서 8시간이란 긴 수술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져 갔다.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던 최순직 목사를 귀국하도록 하여 신학교를 돕게 하였다. 최목사는 어느 정도 학교의 급한 일을 수습한 후에 다시 학업을 마치기 위해 일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급하게 25세의 젊은 나이로 김치선 박사의 외아들 김세창 박사가 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1967년 12월 21일 이사 최용찬 장로와 김세창 교장을 불러 마지막 회의를 주관했다. 1968년 2월 24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김치선 박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쉼을 누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3-19
  • [총회장 목회서신] “기도를 선포합니다”
    2021년 신축년에는 COVID19가 소멸되고 여러분의 삶터에 평온한 일상의 삶이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라는 역사적인 재난으로 인해 삶과 사회의 모든 것이 멈춰 엉망이 되고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활동이 중단되어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로부터 신뢰 상실과 교세 감소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특히 우리 교단은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한 어려움을 견디며 왔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은 이 위기를 넘어서 회복과 부흥을 향해 매진할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교단의 동역자 목사님과 온 성도는 회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달려갑시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합시다. 반드시 하나님은 회복과 부흥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대신 교단을 세우신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정오에 모든 일정을 미루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만 팔천 동리에 우물을 파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정과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고, 복음으로 세워 영적 부흥을 이루는 일들을 이제는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본 교단은 ”주여!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기도를 선포합니다. 총회 산하 모든 노회와 교회는 매일 정오 시간에 모든 일손을 놓고 5분간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제목 코로나19의 소멸과 예배와 사역회복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총회 및 노회와 교회의 역할 감당을 위해 감사드립니다. 2021. 1. 25 총회장 강대석 목사
    • 오피니언
    2021-03-1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