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1.구원론
1. 구원론(救援論).
△주성 : 구원론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필자 : 허허 그럴게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실패로부터의 구원등 말이야.
그런데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단다.
‘죄로부터의 구원’이야.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속죄인 성화(성결)에 이르는 것을 구원이 라고 한단다.
△주성: 그런 상식은 저도 배워서 알아요.
그런데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 믿자마자 해결된 것 아닌 가요 ?
저는‘이신칭의’가 성경적 구원론이라고 배워서요.
믿기만 하면 다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성도(聖徒)’ 라고 부르쟎아요
▲필자 :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의 남용이란다.
우리가 올바른 구원론을 알기 위해서 종교개혁자 칼빈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구나.
△주성 ; 칼빈은 개신교 최고의 신학자 아닌가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칼빈은 책상에서 교리를 정립한 지적인 이론가가 아니라는 거야. 칼빈은 일상에서의 경건한 영성적 삶으로 구원의 전 과정을 체험했 고, 그 바탕에서 성경적 신학을 정립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단다.
대부분 그를 차가운 지적 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는 단순한 신학 자가 아니라 기독교 최고의 영성 인이요, 따스한 인격을 소유한 경건한 신 앙인이라는 거야.
넌 칼빈하면 뭐가 생각이나니?
△주성 : 튤립(TULIP)교리요.
▲필자 : 그렇지. 그런데 튤립교리에 대하여 자세히 아니?
△주성 : 사실 그 내용은 잘 몰라요. 쉽게 설명해 주세요.
▲필자 : 그래. 대부분 튤립교리가 장로교에만 한정된 지엽적 교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을 종합한 것으로, 기독교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거란다.
칼빈은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이신칭의’를 외친 루터보다 후시대 사람 이야.
루터가 ‘이신칭의’의 구원론으로 믿음과 은혜만을 강조하다보니,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어 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이원화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게 되었단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칼빈은 자신의 성경적 체험을 바탕으로 루터의‘이신 칭의’구원론을 성경적으로 수정 보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튤립교리야.
아들아!
종교개혁자들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 전체가 진리는 아니라는 거야. 그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맹신할 수는 없 어.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시금석이 되어야 한단다.
성경으로 충분히 검증하여 취사선택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칼빈의 구원론을 신뢰하는 이유는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론과 일치하기 때문이야.
지금부터 칼빈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정립한 ‘5단계 구원론’을 설명하마.
1).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전적부패는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단코 회생 불가능할 정도 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거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 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 다.”롬3:10-13.
혹시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하여 아니?
△주성 : 그럼요. 지구엔 중력이 있어서 지구상의 모든 물체에 작용하여 중심으로 잡 아 끈다는 이론 이쟎아요. 당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중력에서 자유롭지 않겠지요.
▲필자 ; 그래 잘 아는구나. 같은 이치로 우리 모든 인간에게도 이와 똑같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란다.
△주성 : 중력의 법칙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필자 : 바로 ‘죄의 법’이란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롬7:23.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성령이 떠나갔고, 그 자리에 7가지 성질을 띤 죄악성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7종 죄악성)이 있음이니라”잠26:25.
교만한 성질, 태만한 성질, 음란한 성질, 아집적인 성질, 질투하는 성질, 포악한 성질, 거짓된 성질 등 이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타락했다는 것은, 아담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악성이 유전되어, 그 죄의 강력한 법에 지배받는 다는 것이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 지라”롬7:11.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는 죄악성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탐욕만을 위한 품성으로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것이야.
△주성 :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생명과를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단순히 과일 먹는 것은 아니겠지요!
▲필자 : 당연히 일반적인 과일을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란다.
생명과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영생)으로,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한 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해와 같은 예수님으로 옷 입는다고도 표현하지.
“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계12:1
반면에 선악과는 사탄 루시퍼의 생명(사망)으로, 먹는다는 것은 사탄과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교만이요, 탐 욕 이란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최고최대의 헛된 망상이요, 오판이었지.
하지만 그 결과는 ‘전적 타락’일 뿐이야.
당연히 그 엄청난 책임을 우리 인간이 져야만 했단다.
사도 바울은 죄에 법에 지배받아 스스로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을 ‘곤고한 사람’‘사망의 몸’이라고 증거 했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주성 : 그런데 인간은 자력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철학과 종교와 윤리도 덕을 만들지 않았나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그 어떤 철학자도, 종교인도, 도덕군자도 인간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거룩함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인간이 없다는 거야.
최고의 윤리와 도덕을 주장하며 실천해온 공자도 말년에 ‘내 안에 탐심을 막을 길이 없구나!’라고 탄식했고,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강조하며 하나님 의 존재성과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그리스도를 강력하게 부인해온 볼테르도 죽기직전에‘나는 하나님의 저주로 지옥에 떨어진다. 예수를 부인했으니 누 가 날 구원해주랴!’탄식하며, 발악을 했다고 하쟎아.
△주성 : 결국은 역사가 인간의 전적타락을 증명해 주는 군요.
▲필자 : 그렇지. 전적 타락했다는 성경의 증거를 인류역사가 경험적으로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지.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주성 :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는 선한 사람들만 택하여 구원하시겠지요?
▲필자 :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질 않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갈1:15.
구원의 대상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이라는 거야.
칼빈은 성경과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고‘무조건적 선택’이라 고 정의한거야.
△주성 : 흠~ 저는요!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돼요. 어떻게 살인자나 강간범들이~~~구원을!
▲필자 : 사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하지만 구원은 인간의 이해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임을 알아야해.
마음을 비우고 잘 들어 보거라.
구원론의 1단계가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주성 : 당연히 기억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무조건적 선택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필자 : 밀접한 관계가 있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을 피할 수가 없 다는 거야. 만약에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하여 선한 자유의지가 조금이라 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상관없이 인간이 구원을 결정짓겠지.
그러나 죄악성을 가지고 그 죄의 법에 지배당하며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선한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는 거야.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2.
△주성 : 아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 모두가 악인이겠네요.
당연히 지옥 갈 운명이겠구요.
▲필자 : 그렇지.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셨 다는 거란다.
“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우리 모두가 다 지옥에 갈 운명이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 절대적인 은혜’라는 거야.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해서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거야. 하지만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의 여지 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구 원하신다는 거야. 이제 이해되지?
△주성 : 네!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왜 모두를 선택하지 않고, 일부분만 선택하여 구원하시는지 무척 궁금해요?
▲필자 : 글쎄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외면하시고, 이스라엘만 선 택하여 구원하셨는지~~~
아쉽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피조물이자 죄인인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 니듯 싶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그 깊으신 섭리를 알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 받았고, 구원의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거란다. 어찌 보면 구원은 철저히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거란다.
부모가 구원받았다고 자식도 더불어 구원되고, 아내가 구원받았다고 남편도 더불어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주성 : 예수님은 만인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오셨겠지요?
▲필자 : 아니란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오신 거란다.
그것이 성경의 증거이고, 칼빈은 그것을 ‘제한적 속죄’라고 정의 했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3:2.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 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레16:19.
△주성 : 주님의 대속 범위가 한정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요.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사람은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어도 거절 된 다는 것이쟎아요.
▲필자 : 이 문제 역시 구원론의 1단계인 ‘인간의 전적 타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 단다. 사실 속죄의 은혜라는 것은, 선택받아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거란다.
선택도 받지 않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죄 사함이 무슨 의미가 있 겠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것은 초대장도 받지 않고, 새 양복 입고 예식장에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거라구.
이렇듯이 천국 입성의 조건인 거룩함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고, 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인 거야.
△주성 : 그렇다면 누가 선택받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필자 : 그것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증거 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선택받을 사람들의 적정 규모를 밝히고 있지.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 이 시험할 것이라”슥13:8-9.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으로 아담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태어난 사 람들 중에서 삼분의 일만을 선택하여 구원하신다는 거야.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같은 광야 여정을 통하여 연단하여, 속죄 은총을 적용시켜 거룩 케 한다는 거란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바울은 ‘십자가의 도’라고 증거 했단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무조건적 선택과, 선택한 백성들만을 위한 제한적 속죄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원리란다.
△주성 : 그렇다면 선택받지 못한 불신자들의 그 어떤 영웅적 선행과 극기고행으로도 속죄되어 거룩케 될 수는 없겠네요?
▲필자 : 당연하지. 예수님의 속죄은총이 적용될 때만이 전적 부패한 인간의 죄악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고 거룩해 질 수 있는 거야.
성경에서는 예수님이외에 그 어떤 구원자도 선택하지 않았음을 알아야해.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각종 종교 나 철학이나 윤리 도덕으로는, 전적 타락한 인간이 죄 사함 받아 천국에 들 어갈 수 없는 이유란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주성 : 불가항력적인 은혜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 같은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필자 : 이것의 의미를 알기 전에 질문하나 하자꾸나. 넌 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주성 : 은혜란 좋은 것 아닌가요?
병 낳고, 건강해지고, 기도응답 받아 형통해지고, 귀신도 쫒겨 나가서 평안 해지는 거구요. 대부분 은혜를 육신적으로 축복받는 것이라고 알쟎아요.
▲필자 : 사실상 네가 말한 것은 정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은혜야.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증거 하는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단다.
“이것(고난, 시련)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5: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겪는‘일상의 모든 고난이 참된 은 혜’라고 증거하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와 전혀 다른 개념이지.
다시 한번 질문해볼게.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생활하면서, 기름진 땅 애굽에서 누리게 되 는 쾌락적 문화와 산해진미 같은 음식들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자유 인이 되어 척박한 땅 광야에서 더위와 추위 속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도움을 받으며 율법을 지키는 공동체 훈련을 받고, 매일 천상의 음식인 만 나를 먹는 삶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주성 : 흠 ~~ 저는 힘들더라도 광야의 삶이 은혜라고 생각해요.
▲필자 ; 왜 애굽의 정욕적인 삶보다, 힘들고 인내해야 하는 광야의 삶이 은혜일까?
△주성 : 애굽에서는 아무리 고기와 술을 먹고, 춤과 오락이 있어도, 자유가 없고 소망이 없쟎아요. 하지만 광야에서는 단순한 음식 만나와 단조로운 일상만 있지만, 자유가 있고 가나안땅에 들어간다는 소망이 있쟎아요.
그러니 그것이 참된 은혜인 것이지요.
▲필자 : 옳거니. 바로 그거야.
이런 이유로 출애굽 즉시,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갔던 광야가 은혜라고 하 는 거란다.
광야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 은혜인지, 대표적인 성경인 모세오경의 대부분 이 광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거야.
△주성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다면, 광야를 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요?
▲필자 : 당연히 있지. 얼마든지 해안가로 가면, 광야를 거치지 않고도 가나안 땅에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지. 하지만 광야 길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뜻이었다는 거야.
지도자였던 모세도 자신이 직접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광야의 영적 효 과’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기에,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 로 인도했던 것이란다. 광야의 좁은 길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거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광야(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14:22.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직후에 들어가는 광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거야.
△주성 : 아하! 그렇다면 영적 선민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애굽 땅과도 같은 죄악 세상을 떠나자마자, 영적 광야로 들어가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겠네 요?
▲필자 : 당연하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는 광야라는 것을 명심해야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즉시로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 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으로 의아해하며, 신앙 적 회의감을 갖곤 하지. 이것은 예수 믿으면서, 모든 환경이 가나안땅처럼 평화롭고 풍성하게 바뀌길 소망했기 때문이야. 복음의 왜곡이지.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한단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벧전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광야 여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불가항력 적인 은혜이니 크게 기뻐하라는 거야.
△주성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척박한 땅 광야에 대하여 잘 모르는데, 광야 과정 이 꼭 필요한 건가요?
▲필자 : 성경은 분명하게 광야가 은혜라고 증거 한다고 했지?
그 말은 곧 광야를 통하여 엄청난 복이 주어진다는 거야.
그게 바로 ‘연단’을 통하여 생명과를 먹는 거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약1;3-4.
광야의 연단은 우리의 나약한 자유의지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강하게 하고, 죄 악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는 효과가 있다는 거야.
“이는 큰 환난(영적광야)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연단 받음)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고난의 광야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을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속죄함의 결과로 받는 영생이 없다)”요6:53.
△주성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광야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광야와 같은 궁핍과 질병의 거친 환경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폄하하 고, 죄악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정죄하구요.
▲필자 : 맞단다. 특히 한국교회는 기복적인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환란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성향이 강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인본 적이고 정욕적인 사상을 경계해야 해.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 라(광야 과정을 면제 받으리라) 하는 모든 죄인(거짓 선지자)은 칼에 죽으 리라”암9:10.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영적 광야과정인 대환란이 없다고)하는 선지자들 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렘14:15.
복음에서 십자가를 뺄 수 없듯이, 구원의 여정에서 광야를 뺄 수 없는 거란 다. 광야란 이 땅에서 천국으로 연결된 유일한 사닥다리야.
자 이제 간단하게 종합해볼게.
‘구원 그 이후’에 있게 되는 십자가의 고난 과정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산물이라는 거란다.
즉 애굽 → 광야→ 가나안땅은 구원의 절대적인 설계도란다.
암! 광야를 빼고 우리의 구원을 논할 수는 없지.
광야의 도는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해.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주성 : 성도의 견인 교리는 소위‘절대 예정론’아닌가요?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된다는 학설이요.
▲필자 ; 맞단다. 이 교리에서‘예정론’이 나온 거란다.
△주성 : 그럼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도 결코 타락하지 않고, 구원이 보장되는 거란 말이지요?
▲필자 : 아쉽지만 그건 아니란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세력인 니골라 당도 너와 같은 주장을 했단다.
한번 은혜로 구원받으면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되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 도 상관없이 은혜로 다 해결된다는 달콤한 교리였지.
하지만 주님은 이런 주장을 하며, 정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니골라 당을 대 단히 싫어 하셨어.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주성 : 그렇다면 이 교리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필자 : 먼저 칼빈의 5단계 구원론은 수평적으로 보지 말고, 수직적으로 보아야 해. 즉 튤립 교리는 ‘영적 성장의 측면에서 증거 된 경험적 진리’라는 거야.
성도의 견인은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보적 교인이 아닌, 광야연단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 죄의 문제를 해결한 장성한 성도(Saint)에게만 적 용되는 한정적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해.
그래서 성도의 견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다.
“이기는 자(광야 연단과정을 마친자]는 이와 같이 흰 옷(생명과)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이긴자가 된 성도는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도록 견인하리라)”계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성도의 견인)”계3:12.
△주성 :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견인되기 전, 광야 여정 중에는 얼마든지 타락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겠네요?
▲필자 : 그렇지. 성경의 증거는 아주 단호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고 말이야.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32:32-33.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성경에서는 구원받아 광야에 들어갔지만, 그 여정 중에 정욕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여 음행한 이들을‘가라지, 음녀, 적그리스도, 불법을 행한 자’라고 증거 한단다.
소위 이단 교주들인 니골라 당의 니골라,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유다, 예수님 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 천부교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등이 그런 자들이란다.
△주성 : 아! 이제 알겠어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견인교리는 광야 여정중의 익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광야 연단 과정을 마치고 다 익어져 성화된 성도(Saint)만 영원히 구원이 보장(견인)된다는 것이잖아요.
이제야 예정론의 성경적 진실을 알 것 같아요.
저자 / 박공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