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2(화)
 


 

현재 서울에는 죽은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가 있다.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는 목사도 목회가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이미 죽은지가 8년도 넘는 목사가 목회를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과학의 발달로 그가 생시에 녹화해둔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목사의 죽음에 대해 안다면 기절할 일이다. 평소에 "가고싶은 하늘나라"를 노래하던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의 목을 맸기 때문이다. 의사는 우울증 때문이라 진단하였다.

 

최근의 코로나 시국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특히 타격이 큰 업종이 관광업과 요식업 등등의 대면활동이 반듯이 필요한 업종들이다. 그중에는 교회도 포함이 된다. 그래도 기반이 잡힌 교회는 비대면 상황이라 할지라도 십일조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를 감당할테니 그나마 형편은 좋을 것이고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 입장에서는 "한가한 여가"를 즐기는 일종의 안식년 기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척교회를 비롯한 미자립 교회로서는 이보다 더한 타격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개척교회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합법적으로 주일예배를 비롯한 대면예배를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꾀돌이 신자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주일헌금을 비롯한 각종 헌금도 안해도 된다. 헌금을 안 한다고 어떤 형벌이 내려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몇 안되는 교인들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목사에게는 청천벽력이다. 임대료와 생활비를 조달할 길이 막연하다.

 

내 주변의 분들은 내가 신학교를 간다고 할 때 두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주로 친가와 주변의 분들은 "굳이 너까지?" 하는 반응이었고, 외가쪽 친지들의 반응은 "오 놀라운 결단이구나!"였다. 친가 쪽에는 이미 목회자들이 여러명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가쪽에는 목회자가 없다. 나의 외 증조부는 강화군 화도면 내리감리교회의 영수였는데, 별명이 "성신할아버지"였다고 하셨다. 아마도 성령충만 하셨기 때문이고 평신도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신 분이시지만 아쉽게도 자손중에 목회자는 없다. 오랫 만에 외손 중에 목회자가 나왔으니 신학교 진학을 굳이 반대할 이유도 비방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반드시 신학교를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20대 초 고난의 시기에 돈을 벌기위해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할 때 폭풍우 속에 바다에 추락해 한시간 이상을 물속에서 사투를 벌일 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도 신학교 재학 기간에는 저축해 놓은 돈으로 염려 없이 지냈지만 졸업 후 교회를 개척한 이후 부터는 말로 다 못할,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동생이 결혼식을 하는데 입고갈 양복이 변변치 못해 청년 시절 입던 10년도 넘은 양복은 얼마나 입었던지 옷깃이 헤어진 상태였지만 창피를 무릅쓰고 입고가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임대한 건물은 월세였지만 임대주는 계속 전세로 돌려 달라는데,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10개월 만에 쫒겨나고 말았다. 아쉬운대로 사택에서 몇 주간 예배를 드리던 중 반가운 제안이 들어와 경노당 부속건물을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만으로 임대해 염려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개척은 어렵다. 너무나 어렵다 보니 목회자는 때로는 탈법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한다. 생존의 몸부림이다. 목회자가 소속된 상급 단체나 선배들은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원칙만을 강조할 뿐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어느 개척 교회 사모가 자살을했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접하며 "어찌 이럴수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여 년의 목회를 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중국에서 20대 초 태풍 부는 밤바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하나님과의 약속이 떠올라 결국 목회를 사임하고 선교사로 떠나게 된 동기이다. 애당초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찾아간 선교이니 후원금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비만큼은 스스로 해결하는 원칙이었다. 그래도 지인들을 통해 월10만원씩 지원되는 후원금은 모두 선교비로 쓰여 졌다.

 

소유하던 아파트 매각대금은 자녀 교육비와 전세금을 제외하고 10여 년간 걱정 없이 지내게 해주었다. 이미 나이 먹어 시작한 선교사역 이다보니 언어 습득에 한계가 있었고 사역 역시 정보통신을 이용한 사역 이다보니 자연히 사역자들을 비롯한 현지 교민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과 정비를 통해 약간의 선교비를 조달을 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컴퓨터는 필요 없는 오로지 사무용으로만 밀려나면서 자연히 부업도 사라지고 말았다.

 

집을 팔아 저축했던 재정이 바닥나고 그렇다고 부업으로 소득을 올릴 상황이 안되다보니 심지어는 주택 임대료 조차도 조달할 길이 없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귀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것 저것 따질 여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35년을 남 밑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바닥 생활이란 더이상 말할 수 없는 "광야로 쫒겨나 목동이 된 모세"이다. 비로서 왕자에서 하루 아침에 목동이 된 모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사는 벼슬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대리운전도 하고 공공근로도 해야 한다. 왜 자살을 생각해야 하는가? 자신을 너무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47년전 죽었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에 내가 감당 할수 만 있다면 그 어떤 노동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 살자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준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못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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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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