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8-1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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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찬송: 570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요한복음 10:4-5절 제목: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또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목자의 역할은 양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꼴을 먹이시고, 외부에 위험적인 요소를 제거해서 보호해주시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양들이 살찌우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이 목자의 임무지요. 반대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자의 보호 아래 거하는 것이지요. 목자의 음성을 분별력 있게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기억해야 하고,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하며,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음성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야지요. 행복할 수 있는 음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만의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기억하지 못하고 타인의 음성을 기억하여 나의 목자인 줄 알고 따라면 큰일 나는 겁니다. 나의 목자가 인간이냐 아니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냐에 따라서 그 인도하는 방법도 다른 것이고 그 보호하는 방법도 다르며 지키시는 방법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지요.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우리를 해칠 수가 없도록 지켜 주십니다. 현혹하고 착각하여 사이비 이단을 따라가는 순간 그 삶은 그때부터는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고로 나도 불안전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의지해요? 인간이 목자여요?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똑같지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사람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도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능력도 없는 그런 사람을 목자로 앞장세워 따라간다, 이건 굉장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차라리 목자가 없는게 났습니다. 그러니 교주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마세요! 그 목소리는 우리를 보장할 수 없는 목소리요, 그 목소리로 나의 재산과 나의 생명이 담보할 수 없는 음성입니다. 삯꾼 목자입니다. (요10:12)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음성은 나를 감동케 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범사가 잘되게 하시는 음성입니다. 이건 완전한 보장입니다. 이건 완전한 확정된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가정들은 마음에 새기고 인간이 나의 목자다.라고 하면 여러분들 자신이 한심한 거예요. 아니 여러분도 인간이고 그런데 인제 목자까지 인간으로 삼겠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지요. 생각해 보세요. 나는 인간이고 나는 불안전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데 미래도 볼 줄 모르는 인간에게 내 미래를 맡깁니까? 지금 복 받자는 거에요, 삶을 포기하자는 거에요?!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분을 나의 목자로 내가 의지하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미래를 볼 수 있고 사막길과 광야 길도 옥토 길로 만들 수 있으며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도 초원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예수님을 우리가 목자로 삼는 것이 복이지요?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 외 음성은 듣지도 말고 현혹되지도 맙시다. 다윗왕은 부족함이 없는 왕으로 살았습니다. 왕이기에 그랬던 건 아닙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시니, 어쩌면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로 섬기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시23:1)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올 때 수많은 가축을 몰고 왔습니다. 집을 떠날 때는 양 새끼 한 마리도 없이 갔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엄청난 가축이 생긴 것입니다. (창30:37-39) 우리 가정이 살길은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전 우리의 상태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5)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왔으니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무릎에 기대어 그분의 음성을 듣는 행복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목자가 될 때 나의 삶이 보장되고, 우리 가정의 재산과 생명이 보호를 받아 미래가 밝아지는 삶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시고 그분의 음성만 내 마음에 새기고 내 귀에 새겨서 예수님의 음성인지, 인간의 음성인지을 잘 구분하여 가정마다 형통하사기를 소망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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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26
  • [가정예배] 밭을 보라
    ▲찬송: 496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요한복음4:35절 ▲제목: 밭을 보라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냅시다. 지금 보는 세상은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자연의 순환에 의해서 변화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절기를 따라서 절기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 절기를 보니 이제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고, 이런 것은 세상이 늘 톱니바퀴처럼 돌아왔던 세상입니다. 해마다 그렇게 절기가 똑같고, 계절이 똑같고, 그래서 그러한 것을 보고 3월이 되니 꽃이 피겠구나! 뭐 이렇게 예측을 하듯이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항상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돌고 도는 세상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지금이 추수할 때라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경험적이고 상식적인 것과 통념적인 것을 뛰어넘어버린 말씀이지요? 지금은 추수할 때가 아닌데 아직 넉 달이 더 남아 있는데 예수님은 지금이 추수할 때라고 눈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막11:13절을 보시면 이와 유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주님은 열매를 얻기 위해 아직 때가 아니거늘 열매도 없는 그 무화과를 향에 가셨을까요? 이 말씀도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과 주님이 보시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찾으시는 시기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생각하는 시기와는 다르다 할지라도 내가 정한 때가 아닌 주님이 원하는 때가 정해진 시기입니다. 내가 보는 계절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계절입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지 주님의 생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이런 것을 우리 주님의 지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지혜로운 열 처녀와 같이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고 신랑 되신 주님의 시간에 맞춰 등불과 기름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25:6-7절) 주님은 우리의 경험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뛰어넘는 초연적인 것들을 원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주님이 그러시는 것 같아요. “너도 이제 밭을 보라!” 그 보라 하신 주님은 육적인 눈으로 보라는 것일까요? 보라 하신 주님은 영적 눈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복 받을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 주님이 보여 주시니 내 삶에 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그때를, 복 있는 때를, 주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때를 언제 정하시고 언제 보여 주시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이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루어 지면 복 받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적으로 보는 계절은 넉 달이 남았지만, 하나님은 추운 혹한에서도 꽃이 피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눈을 들어서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지요. “너는 아직 멀었어.” “너는 아직 때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이 말에 우리도 수긍합니다. “아! 나는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도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복 받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까? 아무 근거도 없는 소리입니다. 복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너는 아직 때가 아니야 내가 봐도 나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여러분들이 복을 창조했습니까? 여러분들 주변 사람들이 복을 만들어 냅니까?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만들 때가 따로 있다는 건가요? 말이 안 되는 소리지요! 그러니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복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왜? 보라고 하셨을까요? 너 아직 때가 멀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한 번 봐라!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을 때는 곡식을 거둘 수 있는 그때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열매와 곡식을 맺는데 지금 눈을 들어 봐야 뭐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제 때가 됐다! 복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신 우리 주님이 복 받을 때가 됐다는 거예요. 이제 추수할 때가 되었으니 넉 달이 남았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의 삶에 복의 때가 무르익게 하시는 이가 보라고 할 때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육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아직 계절이 아닌데 아직 때가 아닌데 우리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그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니 정말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있는 것을 보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특별히 보여 주시는 복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 없는 육적인 눈으로는 아직 때가 일러요. 그러나 믿음이 있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내가 복 받을 때가 됐구나 하고 믿으세요. 가정예배로 그때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복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때를 주셨습니다. 곡식을 거둘 때, 복을 받을 때, 이때를 우리에게 주시고 오늘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주님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혹 아직 때가 아닙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주신 복의 때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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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19
  • [가정예배]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삽시다
    찬송: 455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빌립보서 3장 13-14절 제목: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삽시다. 오늘 아침도 희망찬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있으면서 썼던 옥중 서신서입니다. 다메섹 이후 사도 바울의 남은 생을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에 바칩니다. 사도 바울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도했던 것은 그의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믿음과 확신으로 복음을 증거함에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 인생 결말이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가진 믿음과 어떤 신념과 의지, 이러한 것은 확고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삶이 힘들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죽음 앞에서 흔들린다면 그 믿음은 의미가 없지요. 내가 가진 믿음이 물질 앞에서 흔들린다면 그 믿음은 의미가 없지요. 내가 가진 믿음이 내가 살면서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우리가 가진 믿음은 그런 모든 것들을 초월해 버릴 수 있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이런 믿음을 우리 가정들이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제일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확고함은 그의 고백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에게도 이만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살아가는 지금 현 시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사는 이 시간…. 이런 삶 속에서 내가 가진 믿음을 점검합시다. 사도 바울은 나를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어디서 부르셨나요?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공간은 위에서 부르셨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에는 내게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부르심의 결과물은 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셨다는 것은 상을 받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통보를 받지요. 몇 월 며칠에 어디에 참석해 주세요. 왜요? “아 그때 상 받기로 돼 있습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 하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상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럼 상이 뭐예요? 영원한 천국입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천국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 아니겠습니까? 이런 복을 준비해 놓고 나를 부르셨다고 하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다는 현재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상급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상을 준비하시고 부르신 지금이 더 유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상을 주신다는 그 확신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내 삶에 유익이라고 하는 소명과 믿음 말이죠. 우리도 과거에 연연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과거 것이 다시 살아서 돌아옵니까? 후회하고 회상한들 우리가 과거로 다시 회귀할 수 있으니까? 아니지요? 오늘부터 살아 갈 목적은 내가 이제 상 받기 위해서 살아야 하겠다는 믿음과 신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면 나는 상을 받는다는 확신과 믿음에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이 믿음이 확고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뜻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상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형통함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기 때문이고, 내가 범사가 잘 되는 비결은 그 부름의 뜻을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혹은 물질의 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환경적인 근심 걱정이 온다 할지라도, 부름의 상을 위한 믿음만큼은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그런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다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악조건이 물러가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결과물은 상급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믿음으로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남은 모든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에서 한 발짝도 뒤로 후퇴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가는 일에만 그 믿음이 확고해지시기를, 그래서 그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여 복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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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19
  • [가정예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찬송: 510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히브리서11: 6절 제목: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점은 엄청나지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냥 인간의 본성대로, 여기서 본성이라고 하면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치란? 그 사람의 보화와 같은 것이지요. 삶의 가치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행복감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가치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란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러나 보편적인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에 과중을 논할 때 다릅니다.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인간의 가치를 논할 때는 믿는 자는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악하게 사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을 잘 속였다.” “도적질 해서 아주 그냥 기분이 좋다.” 이런 것을 또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더러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무가치한 것, 뭐 가치에 넣지도 않지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여러 형태로 분류합니다. 가령 분량의 비유로 할 수도 있고, 또는 온도에 비유로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믿음이 충만하냐 믿음이 적으냐 그런 뜻입니다. 또 믿음이 미지근하냐, 뜨겁냐, 믿음이 차갑냐 하는 형태들입니다. 어찌 보면 더 나아가서는 믿음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이렇게 분류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있어도 전혀 행하지 않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은 전혀 가치가 없지요. 성도들에게 믿음은 최고의 가치여야 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등급을 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죽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이 적다는 것은 믿음이 많다 하는 것과 같이 결부해서 말씀을 드리면 믿음이 많은 사람은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있어도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다 하지요. 또 믿음을 분류할 때 믿음이 뜨겁다 하든지 믿음이 차갑다고 합니다. 믿음이 차갑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었을 때 그 가치가 영적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소리만 해도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그냥 그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왠지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영적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기도하면서 하나님 은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하고는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런데 차가운 사람은 믿었어요. 그런데도 느낌이 오지를 않아요. 마음으로 이게 와 닿질 않아요. 그 와 닿는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믿음을 논해도 즐거움이 없고 믿음을 논해도 감동이었고 그렇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죽은 믿음, 미지근함 믿음, 식은 믿음, 적은 믿음, 이런 걸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그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살아있는 믿음, 이런 믿음을 오늘 우리가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을 때 우리에게 어떤 생활에 방식이 달라지느냐? 달라지지요! 아벨을 보세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그랬어요. 무엇으로요? 믿음으로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어떤 믿음이죠? 가인보다 더 나은 믿음입니다. 더 나은 믿음은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다고 그러면은 그 믿음을 가지고 아벨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벨처럼 살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또 믿음으로 노아를 보세요? 그 경고하던 시대에 아닙니까?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하는 자체가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잖아요? 살아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니까 방주를 짓는 거예요. 믿음으로 받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소리도 노아는 현실적인 소리로 듣는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그냥 뭐 터무니없는 소리로 그렇게 치부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니까 잘못을 따질 것도 없어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우습게 여기면 안 되지요. 그러나 노아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까 그 믿음으로 그 집만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니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까지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요. 그래서 약속의 땅을 언약으로 받습니다.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그냥 적은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미지근한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거의 반 죽어가는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 어떤 것도 쪼개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지시고 더 많은 본을 받으시려거든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가정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최상의 가치로 삼으시고 그 최상의 가치인 믿음으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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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2
  • [가정예배] 담대한 믿음으로 삽시다
    찬송: 535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고후 5:7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제목: 담대한 믿음으로 삽시다. 오늘은 사도 바울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께서는 비록 율법주의자이었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가진 후 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가문으로 보나, 그의 학식으로 보나, 그의 신분으로 보나, 그 당시에 로마의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사도 바울은 그런 것과는 벗어난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후 고백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좋은 가문과 학식과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와 바꾼 것이지요. 이렇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담대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니 이전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당시 절대 권력의 로마 시민권도 예수님 안에서는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임을 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삶에 담대함이 생긴 것이지요. 지금 거처하고 있는 고린도는 사도 바울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기입니다. 고린도는 겐그레항과 붙어 있는 지금의 그리스의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인데 그 당시에는 상업과 은행 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시작하던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상당히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육신적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 중 제일 첫 번째는 “나는 믿음으로 산다.”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 “나의 행함은 오직 믿음이다.” 그래서 담대한 믿음에 대한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장래에 천국을 향한 소망에서 나오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육신을 벗어버릴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 것인데 그때 나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고 믿음에 행위로 살아감이 가장 고상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 통하여 담대함을 갖게 한 것입니다. 혹여 누군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할지라도 나는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릴 기회가 된다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죽음을 초월한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의 담대함은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어도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힘, 외로움과 육신의 고달픔, 이런 것들이 숱하게 밀려왔지만 그러한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겨 낼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믿음대로 행하니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천국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영원한 소망의 확신으로 믿음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행위가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한 불완전한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납니다.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상당히 괴로움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더 좋은 곳을 예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행하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1절로 6절까지 쭉 보면 사도 바울이 담대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 말씀 속에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도 이런 믿음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본받아 세상을 능이 이길 수 있는 믿음, 세상 것에 온갖 근심과 걱정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우리도 오늘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웬만한 것에서는 조금도 흔들리거나 마음고생 하지 마시고 웬만한 것은 다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그 담대한 믿음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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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22
  • [가정예배] 내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찬송: 418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잠언 19:8절 제목: 내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지 또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사는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나 됨을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사랑스럽고 내가 나여서 참 좋다! 내가 나에게 레질리언스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내가 나이어야 되고 내가 제일 소중해야 하며 내가 나이여서 감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내가 나였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줄 아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정리하자면 내가 나를 위해서 잘 되게끔 어떻게 살아왔는가! 진정으로 나 자신이 잘되기를 위해서 내가 무슨 노력을 했는가! 이런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에 대해서 답을 주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내가 내 영혼을 사랑할진대 그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잠언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지요.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잠언 19:8) 지혜를 얻는 자가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역순으로 말하면 내 영혼을 사랑한다면 내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 영혼에 지혜를 줘라! 이런 말씀이죠? 내 영혼에 지혜를 주어야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 자신이 잘 되는 것이 최고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도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잘 돼서 성공하는 것도 좋아요, 다 기쁜 일이지요.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이 잘되는 것의 우선적인 노력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사랑한다고 하면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넣어 줘라!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를 내 영혼을 진짜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잘되도록 심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지혜구나!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이렇게 이해를 해야죠? 내 영혼이 너무 사랑스럽고, 내 영혼이 정말 고맙고, 내 영혼이 너무 잘 되기를 바라기를 원한다면 그냥 생각으로 끝나지 마시고 내 영혼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급해 있는데 말로만 “내 영혼아 잘 돼라.” 이러면 내 영혼이 궁핍하잖아요? 여러분들 자신이 궁핍한 거예요! 지금 타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잘 되게 하려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지혜를 얻어라! 나 자신이 범사가 잘되고 나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나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이 뭐에요? 오늘 잠언이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 말씀은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했어요.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 복이 내 것이 된다.! 복이 온다.! 그런 말씀이잖아요. 난 지금도 복이 없는데…. 명철을 지키니 복을 얻었어요.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요. 명철을 지키니 주셨어요! 그럼 명절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영혼을 사랑하는 비결이 뭐라고 그랬어요? 지혜를 얻는 것이…. 지혜를 얻으면 내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은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죠? 우리 영혼은 제일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채워 주면 내 영혼이 좋아합니다. 내 영혼을 좋아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스러운 거잖아요? 내 영혼이 좋아하는 것이 뭐라고요?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거라고요? 걱정을 심어주는 거라고요? 이것은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주는 것이 내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거라 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채웠을 때 내 영혼이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내 영혼이 그냥 자기만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내가 이제 지혜의 말씀을 들었고 나는 내가 지혜의 말씀으로 채웠으니 이 지혜의 말씀이 내 마음에 풍부하구나!” 하고 그 지혜의 말씀들이 반응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를 복되게 만들어 줘야 하겠다.” “내가 나를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채웠으니 이제 내가 나를 복되게 해 줘야 하겠다.” 그래서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명철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누가요? 지혜가! 지혜가 들어와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기쁘게 한 지혜가 내 마음속에서 막 명철을 만들어 내는 거에요. 명철을 왜 만들어 냅니까? 나를 복 받게 하려고 그렇습니다. 그럼 명철이 뭐예요? 내 영혼에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니 “오! 그래” “아! 그래!” “말씀대로 살면 그렇게 되는 거야!” 그 지혜의 말씀을 깨달아서 그렇게 살고 싶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 명절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사기 치는 지혜를 막 갔다가 부어 줬어 봐요? 그러면은 내 마음이 그 사기 치는 지혜를 얻어서 무엇을 드러냅니까? 사기 칠 수 있도록 명철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사기꾼이 되지요. 그러면 그게 영혼을 사랑한 거예요? 사기 치는 지혜를 막 집어넣어 준 것이 내 영혼을 잘되게 하는 거예요? 영혼은 무엇을 갔다가 채워 주었느냐, 어떤 말씀을 들려주었냐에 따라서 그 말씀을 명철로 바꿔 버린다는 말입니다. 시방 이해가 갑니까? 그러니 못된 말을 많이 들으면 못되게 살아야 하겠구나 하고 못된 놈으로 만들지요. 그 못되게 하는 것으로 명철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못된 놈이지요? 내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려주고 그 말씀을 들었던 내 영혼이 “아! 그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아! 야곱이 그렇게 살아서 복을 받았구나!”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깨닫고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것이 명철입니다.!“ 그래서 그 들었던 지혜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여 주는 것이 명철이에요. “아! 맞아!“ ”하나님의 말씀이 맞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은 이유가 아! 여기에 있어서.“ 이렇게 하고 그 말씀을 딱! 깨닫는 것이 명철입니다. 그 명철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입니다. 왜요? 그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결론으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칩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내 영혼에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채워 주세요. 나를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심비에 새겨졌을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중요한 결론은 명철입니다. 명절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내 영혼이 말하기를 나를 사랑했으니 내가 나를 위해서 복 받는 것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도록 영혼에게 명철을 만들어 주자는 원리입니다. 그 명철로 지켜 살면 복을 얻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가정들이 기억하시고 오늘부터 내 영혼에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채워진 것들이 결국은 명철로 나타나서 복을 얻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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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7
  • [가정예배]귀한열매를 보고 참읍시다
    찬송: 549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야고보서 5:7-8절 제목: 귀한 열매 오늘의 말씀은 주의 강림을 준비하며 읽겠습니다. 바라보라! 그리고 참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바라봐야 할 것은 주님의 강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아야 할 것은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과정에서 혹여 소망을 잃어버릴 수 있고 또 주님이 강림하실 때 재림의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안 되잖아요? 범죄와 타락이 세상에 넘치더라도 유혹에 빠지지 말고 참아라! 참는 것이 사실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참아내는 것에 대한 충분한 가치와 보상은 있습니다. 참아야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죠. 우리가 뭘 하더라도 주의 강림을 바라보고 그날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금 세상의 욕심과 유혹이 와도 참으면 영원한 기쁨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참아야 할 그 가치와 인내를 해야 할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보상 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경쟁할 것도 없고, 애통할 것도 없고, 욕심부릴 것도 없으며 유혹에 빠질 일도 없는 완전한 곳을 보상받습니다. 슬픔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한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참는 자의 엄청난 축복이 준비되어 있고 그 축복을 받을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축복 받을 날이 뭐예요? 주님이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이 가까이 왔으니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귀한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이 농부를 비유로 했습니다. 농부가 오래 참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은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는 중에 힘든 고비가 많이 찾아옵니다. 힘든 고비가 찾아올 때 “에라! 나 일 안 해” “옆집 개똥이는 부모 잘 만나 일도 안 하고 그냥 놀고먹고 저렇게 신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죽어라고 일만 해야 해” 그래서 개똥이처럼 그냥 놀아 버렸다. 밭에 씨를 뿌려 놓고 관리도 안 했다. 씨를 뿌려 놓고는 고생한다고 하는 것이 억울해서 “내가 고생하면서 사네! 아 억울하네!” 이래서 일을 놓아 버렸다면, 가을에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할 수 없지요. 우리가 밭에서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 수고와 노력이 거기에 개입이 되었기 때문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영원한 삶이 보장된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면 이후로는 고생하라고 해도 고생할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고 눈물 흘리라고 해도 눈물 흘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쁘고 즐겁게 때문입니다. 일 열심히 하면 복 받는다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할 일거리도 없고, 특별히 소망하는 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 자체가 모든 복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그 들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셨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르셨고, 성령으로 인처 주셨는데 좀 더 참지 못하고 막살다가 귀한 천국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서죄짓는 것이 더 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더 즐겁고, 신앙생활 슬렁슬렁하는 것이 더 편한 것 같거든요. 우리 생각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봄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일종에 유혹이고 죄지요? 그런 상황이 올 때, 그때 참아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서 금덩이가 반짝여도 금덩이 보지 마시고 주님 바라보세요. 마귀가 돌덩이로 떡이 되게 해 준다 해도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일 한 번 지키지 못한다 해서 괜찮겠지 하는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서 참아라! 참으라! 그리하면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원한 복을 받습니다. 명예와 부와 귀천이 귀한 열매는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잠깐 보기에는 엄청 화려하고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죠. 근데 그런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때도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금덩이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권력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아니지요? 길이 참고 바라보면 내 것이 되는 것이 있어요. 주님 강림 때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의 삶의 복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됩니다. 근데 주님 바라보는 걸 싫어하고 주님 바라봄을 포기하면 복 받을 입구까지 왔다가 그 한 발자국 앞에서 그냥 복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버립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귀한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이 귀한 열매를 바라보라고 그랬습니다.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면서 길이 참으라고 했습니다. 잠깐만 참아라 가 아니고 길이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 주면 반드시 귀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 귀한 열매가 예수님이고,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에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달하고 내 생명하고 바꾸자! 그렇다고 “오! 달! 저 달이 내 것이네!” 그렇다고 달이 내 것이 됩니까? 달과 내 생명을 바꾸는 순간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옥 갔어요. 그달이 지옥까지 따라와요? 지옥에서 달이 내 것이라 우길 수 있어요? 세상 이치가 똑같습니다. 그런 게 유혹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것을 말이 되게끔 꾸미는 것을 유혹이라 합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시기를 바라보고 참으면 때가 이르매 귀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봄에 장애물이 없도록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시고 길이 참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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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09
  • [가정예배] 감정대로 살지 맙시다.
    찬송: 301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창세기 32:20절 코로나가 언제 극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극복은 된다는 희망적인 환경들이 많이 조성된 것 같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야곱이 하란의 외삼촌 라반 집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있어 연단과 훈련으로 지내다가 때가 이르매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대로 다 이루어 아버지 집으로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축복의 땅으로 봅니다. 얍복강만 건너면 고향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과 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은 야곱을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형의 모습을 야곱은 어떻게 잘 대처했을까요? 형 에서는 어찌 보면 20여년 전에 자신을 속인 야곱이 장자권과 아버지로부터 모든 축복을 다 뺏어 갔다는 피해의식으로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한이 맺히게 살아왔을 형 에서는 감정이 복받쳐 야곱을 죽이려고 얍복강에서 기다립니다. 물론 팥죽 사건과 양을 잡아다가 이삭으로부터 싹쓸이 축복을 받았던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특별히 형의 눈으로 보면 사기일 수도 있고,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자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서의 행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잖아요? 이방 여인과 결혼도 하고, 부모의 마음에 근심까지 끼칩니다. (창26:34, 27:46, 28:6-9)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브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둘째 아이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창25:22-23) 리브가에게 야곱의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게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어쨌든 에서로써는 억울한 일입니다.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이제 얍복강에서 금이한양 하는 야곱을 죽이려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도 있지요. “나를 20년 동안 그렇게 훈련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고 고향으로 오게 하시더니 고향 문 앞까지 와서 결정적으로 나를 죽이십니까?” 이렇게 원망 할 수도 있을 텐데 야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형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형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솟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형의 감정만 달래면 이 상황은 그냥 끝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죽일 만큼 군사를 이끌고는 왔지만 내가 형의 감정을 진정시키면 감정적으로 나오는 형을 이해시키고, 야곱의 마음과 정성을 보이면 형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형제애의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느낌대로 시도해 봅니다. (창32:4-5)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기에 감정을 푸는 일을 야곱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악화시키는 최악의 선택은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싶을 때 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야곱을 통해서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모세는 자기의 감정을 순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감정적으로 수행했을 때 감정적으로 처리한 일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욥을 보세요! 욥은 엄청난 고난을 겪습니다. 그 고난의 상황에서 위로한다고 친구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부인마저도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차라리 죽으라고 합니다. (욥2:9)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질 안 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께 자기의 감정적 언사를 사용하지 안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연속 속에서도 절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살지 않았고, 오직 은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단련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하루 아침에 다 망해버렸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고 나 죽겠네! 나 죽었네! 이제 나는 끝났네!” 뭐 이럴 수도 있잖아요? “요놈의 망할 놈의 세상 막 하면서….” 어쨌든 그런 별의별 원망의 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지만,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자의 복입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욥의 감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래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결국은 에서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에서가 더 긍휼히 여겨 입 맞추고, 껴안아 줍니다. 죽이려고 했던 감정을 껴안고 입 맞추는 사랑의 감정으로 만들어 버린 야곱! 물론 배후에는 간밤에 씨름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왔다 할지라도 나는 선으로 그 사람을 대하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상대편을 대하십시오.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감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때 한 번 더 참으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도와주실 믿고, 일이 좀 잘 안 풀리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사랑으로 이겨냅시다. 모든 사람을 감정대로 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면 우리 자신도 자존감이 높아져서 좋고 여러모로 좋은 것입니다. 얍복강의 죽음 앞에서도 야곱은 형의 감정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침착함.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과의 씨름하는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에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강점 억제력을 우리 가정도 야곱을 통해서 더불어 욥의 인내까지 함께 본받아서 절대로 감정대로 살지 마시고 극한 상황이 올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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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5-24
  • [가정예배]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 찬송: 309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한복음 2장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아멘 제목: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있었던 기적의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이제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친척 집에 혼인이 있어 그 전통 전례에 따라서 가족 친지 애경사에 참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혼인 잔치에 가셨지만, 혼인집에 큰 관심은 두시질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간청에 따라 가나 혼인집에 갈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냥 혼인 잔칫집이려니 하고 가셨지만, 마리아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가나에서의 혼인집과 마리아와의 관계는 상당히 특수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혼인 집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자기 일처럼, 또는 자기 집 일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관심을 가지셨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가운데에 이제 혼인은 진행이 되었고 또 잔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되어 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오셨기에 준비되었던 포도주가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마리아가 발견한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고 또 그 혼가에 있어서 어찌 보면 자존심이고 얼굴인데, 포도주가 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한창 무르익어가는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초대된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그렇게 준비성도 없는 가정이라고 하는 낙인이 걱정으로 밀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어디에서 준비해 올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때, 마리아는 해결책을 생각하고 그 즉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기치 않는 일을 만났을 때나 혹은 난처한 일들을 만났을 때,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잖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힘에 겨울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내가 풀려고 하면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찾아서 주님께 부탁하면 쉽게 해결이 되지요. 이런 경우를 우리가 경험적으로 나타날 때, “아! 이럴 때 주님이 내게 계셔서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시고 나로 순탄한 길을 가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하는 그 경험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힘든 시간은 길어지지요.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마리아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예수님을 찾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별 그렇게 반응이 없습니다. “아직 내 때가 아닌데 뭘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시는 반응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기에 하인들을 불러서 “너희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다짐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셨고, 하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기적의 현장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본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 상황대로만 된다면 오늘 이 혼인 잔치에 기적이 일어난다.!! 하는 그 믿음! 예수님을 보면서 그 기적을 내다본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내 삶에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내 삶이 변화되는 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을 때 한 가지 다짐은 오직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는데 주님을 찾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고, 하인들에게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지요? 마리아의 생각은 이게 잘 어우러지게 되면은 그다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나 혼인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그냥 채운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것은 더는 채울 수 없을 만큼 다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하인들 보세요! 이왕에 물을 채우라 하셨으니 가득 채워 버린 것이지요. 순종은 그렇게 통 크게 해야 큰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열심히 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보는 땅, 밟은 땅을 내가 다 너에게 줄 것이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밟았고 헤브론까지 올라가서 엄청나게 바라봤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한 발 더 앞서 이행을 해야 합니다. 가령 하인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어요. 그런데 반만 채웠다면 기적은 그 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충만하게 채웠을 때는 그 기적은 충만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적을 적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크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을 바에는 그 말씀을 따라서 충만하게 순종하세요. 충만하게 순종을 하시면 충만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 잔칫집을 통해서 본받는 교훈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혼인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혼인집에 초대됐던 사람들이 그 가정을 칭찬하고 그 가정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가정에도 이런 역사가,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 주기도문
    • Mission
    • 가정예배
    2021-05-17
  • [가정예배]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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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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