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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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귀한열매를 보고 참읍시다
    찬송: 549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야고보서 5:7-8절 제목: 귀한 열매 오늘의 말씀은 주의 강림을 준비하며 읽겠습니다. 바라보라! 그리고 참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바라봐야 할 것은 주님의 강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아야 할 것은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과정에서 혹여 소망을 잃어버릴 수 있고 또 주님이 강림하실 때 재림의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안 되잖아요? 범죄와 타락이 세상에 넘치더라도 유혹에 빠지지 말고 참아라! 참는 것이 사실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참아내는 것에 대한 충분한 가치와 보상은 있습니다. 참아야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죠. 우리가 뭘 하더라도 주의 강림을 바라보고 그날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금 세상의 욕심과 유혹이 와도 참으면 영원한 기쁨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참아야 할 그 가치와 인내를 해야 할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보상 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경쟁할 것도 없고, 애통할 것도 없고, 욕심부릴 것도 없으며 유혹에 빠질 일도 없는 완전한 곳을 보상받습니다. 슬픔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한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참는 자의 엄청난 축복이 준비되어 있고 그 축복을 받을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축복 받을 날이 뭐예요? 주님이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이 가까이 왔으니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귀한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이 농부를 비유로 했습니다. 농부가 오래 참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은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는 중에 힘든 고비가 많이 찾아옵니다. 힘든 고비가 찾아올 때 “에라! 나 일 안 해” “옆집 개똥이는 부모 잘 만나 일도 안 하고 그냥 놀고먹고 저렇게 신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죽어라고 일만 해야 해” 그래서 개똥이처럼 그냥 놀아 버렸다. 밭에 씨를 뿌려 놓고 관리도 안 했다. 씨를 뿌려 놓고는 고생한다고 하는 것이 억울해서 “내가 고생하면서 사네! 아 억울하네!” 이래서 일을 놓아 버렸다면, 가을에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할 수 없지요. 우리가 밭에서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 수고와 노력이 거기에 개입이 되었기 때문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영원한 삶이 보장된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면 이후로는 고생하라고 해도 고생할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고 눈물 흘리라고 해도 눈물 흘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쁘고 즐겁게 때문입니다. 일 열심히 하면 복 받는다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할 일거리도 없고, 특별히 소망하는 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 자체가 모든 복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그 들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셨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르셨고, 성령으로 인처 주셨는데 좀 더 참지 못하고 막살다가 귀한 천국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서죄짓는 것이 더 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더 즐겁고, 신앙생활 슬렁슬렁하는 것이 더 편한 것 같거든요. 우리 생각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봄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일종에 유혹이고 죄지요? 그런 상황이 올 때, 그때 참아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서 금덩이가 반짝여도 금덩이 보지 마시고 주님 바라보세요. 마귀가 돌덩이로 떡이 되게 해 준다 해도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일 한 번 지키지 못한다 해서 괜찮겠지 하는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서 참아라! 참으라! 그리하면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원한 복을 받습니다. 명예와 부와 귀천이 귀한 열매는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잠깐 보기에는 엄청 화려하고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죠. 근데 그런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때도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금덩이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권력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아니지요? 길이 참고 바라보면 내 것이 되는 것이 있어요. 주님 강림 때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의 삶의 복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됩니다. 근데 주님 바라보는 걸 싫어하고 주님 바라봄을 포기하면 복 받을 입구까지 왔다가 그 한 발자국 앞에서 그냥 복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버립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귀한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이 귀한 열매를 바라보라고 그랬습니다.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면서 길이 참으라고 했습니다. 잠깐만 참아라 가 아니고 길이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 주면 반드시 귀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 귀한 열매가 예수님이고,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에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달하고 내 생명하고 바꾸자! 그렇다고 “오! 달! 저 달이 내 것이네!” 그렇다고 달이 내 것이 됩니까? 달과 내 생명을 바꾸는 순간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옥 갔어요. 그달이 지옥까지 따라와요? 지옥에서 달이 내 것이라 우길 수 있어요? 세상 이치가 똑같습니다. 그런 게 유혹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것을 말이 되게끔 꾸미는 것을 유혹이라 합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시기를 바라보고 참으면 때가 이르매 귀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봄에 장애물이 없도록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시고 길이 참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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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09
  • [가정예배] 감정대로 살지 맙시다.
    찬송: 301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창세기 32:20절 코로나가 언제 극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극복은 된다는 희망적인 환경들이 많이 조성된 것 같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야곱이 하란의 외삼촌 라반 집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있어 연단과 훈련으로 지내다가 때가 이르매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대로 다 이루어 아버지 집으로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축복의 땅으로 봅니다. 얍복강만 건너면 고향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과 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은 야곱을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형의 모습을 야곱은 어떻게 잘 대처했을까요? 형 에서는 어찌 보면 20여년 전에 자신을 속인 야곱이 장자권과 아버지로부터 모든 축복을 다 뺏어 갔다는 피해의식으로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한이 맺히게 살아왔을 형 에서는 감정이 복받쳐 야곱을 죽이려고 얍복강에서 기다립니다. 물론 팥죽 사건과 양을 잡아다가 이삭으로부터 싹쓸이 축복을 받았던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특별히 형의 눈으로 보면 사기일 수도 있고,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자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서의 행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잖아요? 이방 여인과 결혼도 하고, 부모의 마음에 근심까지 끼칩니다. (창26:34, 27:46, 28:6-9)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브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둘째 아이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창25:22-23) 리브가에게 야곱의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게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어쨌든 에서로써는 억울한 일입니다.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이제 얍복강에서 금이한양 하는 야곱을 죽이려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도 있지요. “나를 20년 동안 그렇게 훈련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고 고향으로 오게 하시더니 고향 문 앞까지 와서 결정적으로 나를 죽이십니까?” 이렇게 원망 할 수도 있을 텐데 야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형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형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솟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형의 감정만 달래면 이 상황은 그냥 끝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죽일 만큼 군사를 이끌고는 왔지만 내가 형의 감정을 진정시키면 감정적으로 나오는 형을 이해시키고, 야곱의 마음과 정성을 보이면 형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형제애의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느낌대로 시도해 봅니다. (창32:4-5)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기에 감정을 푸는 일을 야곱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악화시키는 최악의 선택은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싶을 때 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야곱을 통해서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모세는 자기의 감정을 순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감정적으로 수행했을 때 감정적으로 처리한 일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욥을 보세요! 욥은 엄청난 고난을 겪습니다. 그 고난의 상황에서 위로한다고 친구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부인마저도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차라리 죽으라고 합니다. (욥2:9)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질 안 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께 자기의 감정적 언사를 사용하지 안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연속 속에서도 절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살지 않았고, 오직 은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단련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하루 아침에 다 망해버렸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고 나 죽겠네! 나 죽었네! 이제 나는 끝났네!” 뭐 이럴 수도 있잖아요? “요놈의 망할 놈의 세상 막 하면서….” 어쨌든 그런 별의별 원망의 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지만,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자의 복입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욥의 감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래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결국은 에서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에서가 더 긍휼히 여겨 입 맞추고, 껴안아 줍니다. 죽이려고 했던 감정을 껴안고 입 맞추는 사랑의 감정으로 만들어 버린 야곱! 물론 배후에는 간밤에 씨름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왔다 할지라도 나는 선으로 그 사람을 대하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상대편을 대하십시오.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감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때 한 번 더 참으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도와주실 믿고, 일이 좀 잘 안 풀리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사랑으로 이겨냅시다. 모든 사람을 감정대로 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면 우리 자신도 자존감이 높아져서 좋고 여러모로 좋은 것입니다. 얍복강의 죽음 앞에서도 야곱은 형의 감정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침착함.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과의 씨름하는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에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강점 억제력을 우리 가정도 야곱을 통해서 더불어 욥의 인내까지 함께 본받아서 절대로 감정대로 살지 마시고 극한 상황이 올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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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5-24
  • [가정예배]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 찬송: 309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한복음 2장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아멘 제목: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있었던 기적의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이제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친척 집에 혼인이 있어 그 전통 전례에 따라서 가족 친지 애경사에 참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혼인 잔치에 가셨지만, 혼인집에 큰 관심은 두시질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간청에 따라 가나 혼인집에 갈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냥 혼인 잔칫집이려니 하고 가셨지만, 마리아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가나에서의 혼인집과 마리아와의 관계는 상당히 특수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혼인 집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자기 일처럼, 또는 자기 집 일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관심을 가지셨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가운데에 이제 혼인은 진행이 되었고 또 잔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되어 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오셨기에 준비되었던 포도주가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마리아가 발견한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고 또 그 혼가에 있어서 어찌 보면 자존심이고 얼굴인데, 포도주가 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한창 무르익어가는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초대된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그렇게 준비성도 없는 가정이라고 하는 낙인이 걱정으로 밀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어디에서 준비해 올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때, 마리아는 해결책을 생각하고 그 즉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기치 않는 일을 만났을 때나 혹은 난처한 일들을 만났을 때,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잖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힘에 겨울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내가 풀려고 하면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찾아서 주님께 부탁하면 쉽게 해결이 되지요. 이런 경우를 우리가 경험적으로 나타날 때, “아! 이럴 때 주님이 내게 계셔서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시고 나로 순탄한 길을 가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하는 그 경험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힘든 시간은 길어지지요.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마리아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예수님을 찾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별 그렇게 반응이 없습니다. “아직 내 때가 아닌데 뭘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시는 반응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기에 하인들을 불러서 “너희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다짐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셨고, 하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기적의 현장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본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 상황대로만 된다면 오늘 이 혼인 잔치에 기적이 일어난다.!! 하는 그 믿음! 예수님을 보면서 그 기적을 내다본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내 삶에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내 삶이 변화되는 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을 때 한 가지 다짐은 오직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는데 주님을 찾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고, 하인들에게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지요? 마리아의 생각은 이게 잘 어우러지게 되면은 그다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나 혼인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그냥 채운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것은 더는 채울 수 없을 만큼 다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하인들 보세요! 이왕에 물을 채우라 하셨으니 가득 채워 버린 것이지요. 순종은 그렇게 통 크게 해야 큰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열심히 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보는 땅, 밟은 땅을 내가 다 너에게 줄 것이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밟았고 헤브론까지 올라가서 엄청나게 바라봤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한 발 더 앞서 이행을 해야 합니다. 가령 하인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어요. 그런데 반만 채웠다면 기적은 그 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충만하게 채웠을 때는 그 기적은 충만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적을 적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크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을 바에는 그 말씀을 따라서 충만하게 순종하세요. 충만하게 순종을 하시면 충만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 잔칫집을 통해서 본받는 교훈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혼인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혼인집에 초대됐던 사람들이 그 가정을 칭찬하고 그 가정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가정에도 이런 역사가,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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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5-17
  • [가정예배]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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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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