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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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그대로 행복 하라(2)
    1억을 간절히 바라던 사람에게 정말 1억이 생기면 정말 그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게 될까? 소망하던 1억을 갖게 된 사람은 그 후로 항상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일이 이루어진다고 현실이 꿈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꿈은 이루어져도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사람이 기대하는 꿈은 아무런 부작용과 변칙적인 상황 없는 희망이지만, 꿈을 이룬 현실은 희망에 포함 되지 않은 변수와 부작용으로 가득 차있다. 1억을 바라던 사람이 1억을 얻은 후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결코 1억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액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1억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1억을 가진 후에 10억을 바랄 것이고, 10억을 가진 후엔 100억을 바랄 것이다. 사람을 행복 하게 하는 것은 1억도, 100억도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단 돈 만원 이라면 그 만원으로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중학교를 나온 사람이, 중학교를 나온 사람보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대학원을 나온 사람이 더 행복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듯하다. 자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반듯이 명문대학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부모, 판사나 검사, 의사나 교수 정도는 돼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행복은 많이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만 행복할 특권을 가지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철학가나 농부나 타고난 가치는 동일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가치는 세상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의 가치이다. 경찰이나 도둑이나, 판사나 죄인이나, 박사나 바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살면서 아주 조금 더 가치를 추가하게 된다. 세상에서 얻는 후천적 가치는 타고난 생명의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갈 때는 살면서 얻은 모든 가치를 남겨두고 떠나게 된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가지고 태어난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 할 수 있고, 불행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하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후천적 습득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누구처럼 돼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잘나고 똑똑해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언제라도 행복 할 수 없다. 오늘 지금 그대로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도 행복 할 수 없다. 무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난 가족이 달콤한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이 막힐지도 모르기에 아버지는 새벽에 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전날 저녁에 미리 짐을 챙겨서 가방에 넣었고, 새벽에 잠이 깨면 대충 아침을 때운 후에 바로 출발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었다. 다음 날 일찍 깬 아버지는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곤히 잠든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고 일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운전 하는 동안 차에서 더 잘 수 있으니 빨리 일어나서 소지품을 챙기라고 하였다. 아빠가 전날 정리한 짐을 차에 싣고 있는 동안 끝나가는 휴가가 아쉬운 지 아이들은 호숫가로 달려 나갔다. 짐을 다 옮기고 간단한 아침을 먹기 위해 엄마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아빠는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호숫가로 나갔다. 풀잎에는 보석처럼 이슬이 맺혀있고 백사장의 모래는 아침햇살을 받아 유리알처럼 반짝였으며 호수는 물안개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아이들은 천사처럼 반짝이는 백사장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 아빠의 눈에 휴가 내내 발견하지 못했던 호숫가의 아름다운 정경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이미 휴가는 끝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피곤하지 않은 일상생활의 리듬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숫가를 그림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향해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를 치려는 순간 아빠의 가슴 속에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저렇게 행복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을 지금 불러들여야만 하나?” / “인생의 행복은 바로 이런 순간인데 막히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 당장 떠나야만 하나?” / “행복의 한 가운데 빠져 있는 아이들을 냉정한 현실로 끌어 올려야만 하나?” / “새벽에 떠나야 한다고 누가 결정한 것인가?” / “정말 새벽에 떠나야만 하나?” / “지금 이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데.” 호숫가를 달리며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를 향해 아이들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아빠는 아침을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대신 아이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어린 천사들 사이에서 함께 뛰는 어른 천사가 되었다. 물가를 한참 뛰고 있는 사이 아침 준비를 마친 엄마가 아이들과 아빠를 부르기 위해 호숫가로 나왔다. 엄마를 발견한 아빠는 달려와서 아침은 천천히 먹고 호숫가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였고, 온 가족은 아침을 식탁위에 차려놓은 채 호숫가에서 휴가의 마지막을 장식 하였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 온 가족들은 그 후로 오랫동안 아니, 평생 동안 호숫가의 행복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도 행복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물고 싶은 자리에서 무언가를 위해 일어서야 하는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떠나야만 하는가?” <김홍식 목사> -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 14권 출판. - 부부행복학교 대표. www.booboohappy.co.kr. - 시온LED 대표. http://m.onejin.kr.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 오피니언
    • 목회칼럼
    2021-06-21
  • [칼럼] 지금 그대로 행복 하라(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한 순간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국회의원? 회의장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한 사람들이 주먹을 휘두를 리는 없으니까? 대통령?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대통령은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장면은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도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꼭대기에 오른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할까? 많은 사람들이 소박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기 위해 평범한 삶을 조명하고 일상 속의 행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는 슬픔과 불행도 함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순간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항상 행복한 사람이란 없다. 어떠한 위치에 있든 사람은 행복과 불행 사이를 왕래하는 존재이다. 행복했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행복해진다. 사람은 왜 이렇게 행복과 불행 사이를 방황하는 것일까? 외적인 조건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어느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불행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와 상황을 거부할 때는 불행하게 된다. 행복은 사람이 처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그 위치를 즐겁게 생각하지 못하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 중에“대통령 못 해먹겠다!”라고 말한 분이 있다. 그 분의 일상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성공한 후에도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사람은 어떤 자리에 오를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즐기지 못하면 불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위치, 신분과 역할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10년만 젊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가끔씩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한다. “내가 몇 년 만 젊었어도!” 하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탄식한다. 이런 사람들이 10년 젊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젊어진다고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나이든 사람은 불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늙은 사람은 불행한가?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행복에 대한 개념은 차이가 없다. 젊어서 행복한 것도 늙어서 불행 한 것도 아니다. 젊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젊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늙어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국한 된 특권이 아니다. 삶의 모든 시기에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자신의 현재를 인생의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행복은 가치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50대 끝을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젊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침착해진 지금이 좋고, 철없을 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에 대한 깨우침, 청년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세상을 보는 시각, 사람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여유 만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정말 좋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철없고 소심 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도리어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지금의 내가 너무 마음에 들고 나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행복 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오늘의 내 모습이 가장 멋진 모습이다. 지나간 날의 추억에 빠지지 말라. 그러면 오늘이 불행하게 된다. 오늘을 버리고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미래에 매달리지도 말라.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내일도 불행할 확률이 높다. 행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오늘이 행복이다. 지금 나의 모습 이대로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모습이다. 김홍식 목사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 14권 출판. 부부행복학교 대표. www.booboohappy.co.kr. 시온LED 대표. http://m.onejin.kr.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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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칼럼
    2021-05-25
  • [칼럼] 설교 100배로 잘 듣기
    교회가 되려면 두가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 설교자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설교를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가 있어야 한다. 교회로서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설교자, 설교자의 말은 사람의 말로 듣는 청중이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 : 9)고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각 말미에서 반복하신 것(2-3장)은, 자기 백성들이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기대하신다. 말씀을 들으므로 "복있도다"라고 확신시켜 주신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반대로 그분의 말씀 전하는 설교자를 배척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짓이다. "전파하는 자가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왜 설교를 듣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써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듣지 않는다거나 그 말씀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불경건이다. 인류를 죄와 비참에 떨어지게 한 것도 말씀을 구체적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 대신 사탄의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면 사탄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과가 결정된다. 회개와 믿음 그리고 순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다.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아니었다. 듣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8).절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좇아 자기 길을 걸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든지 완악하게 하든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모든 사람은 말씀이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주목하게 하고자 하실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신5:1; 6:4; 9:1)고 외치셨다. 죄인들은 듣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설교자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가 자기는 설교하는 은사를 받았지만 회중들은 듣는 은사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한 말은 사실이다. 설교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큼 중요하다면, 설교를 가볍게 생각하고 경멸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신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기를 배우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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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0
  • 지금 그대로 행복 하라 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한 순간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국회의원? 회의장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한 사람들이 주먹을 휘두를 리는 없으니까? 대통령?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대통령은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장면은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도 모든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꼭대기에 오른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할까? 많은 사람들이 소박한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기 위해 평범한 삶을 조명하고 일상 속의 행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상 속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는 슬픔과 불행도 함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한 순간도 불행하지 않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항상 행복한 사람이란 없다. 어떠한 위치에 있든 사람은 행복과 불행 사이를 왕래하는 존재이다. 행복했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행복해진다. 사람은 왜 이렇게 행복과 불행 사이를 방황하는 것일까? 외적인 조건은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어느 날은 행복하고 어떤 날은 불행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사람이 행복을 느낄 때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와 상황을 거부할 때는 불행하게 된다. 행복은 사람이 처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그 위치를 즐겁게 생각하지 못하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 중에“대통령 못 해먹겠다!”라고 말한 분이 있다. 그 분의 일상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성공한 후에도 슬프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사람은 어떤 자리에 오를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즐기지 못하면 불행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위치, 신분과 역할을 최대한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찾아내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다. <10년만 젊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가끔씩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한다. “내가 몇 년 만 젊었어도!” 하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탄식한다. 이런 사람들이 10년 젊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젊어진다고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나이든 사람은 불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젊은 사람은 행복하고 늙은 사람은 불행한가?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행복에 대한 개념은 차이가 없다. 젊어서 행복한 것도 늙어서 불행 한 것도 아니다. 젊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젊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 한 사람은 늙어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국한 된 특권이 아니다. 삶의 모든 시기에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다만 자신의 현재를 인생의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행복은 가치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50대 끝을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젊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침착해진 지금이 좋고, 철없을 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인생에 대한 깨우침, 청년 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 세상을 보는 시각, 사람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생각을 여유 만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정말 좋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철없고 소심 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싫다. 도리어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지금의 내가 너무 마음에 들고 나의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행복 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즐겁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오늘의 내 모습이 가장 멋진 모습이다. 지나간 날의 추억에 빠지지 말라. 그러면 오늘이 불행하게 된다. 오늘을 버리고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미래에 매달리지도 말라.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내일도 불행할 확률이 높다. 행복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오늘이 행복이다. 지금 나의 모습 이대로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모습이다. <글/김홍식> - 베스트셀러 작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외 14권 출판. - 부부행복학교 대표. www.booboohappy.co.kr. - 시온LED 대표. http://m.onejin.kr. -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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