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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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자네 요즘 어떤가?
    자네 요즘 어떤가? 결제를 기다리며 앞에 서있는 사원에게 사장이 물었다. 자네 요즘 어떤가?그는 즉시 대답했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사장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쉰 여덟입니다. 사장은 계산을 마치더니 “음… 자네는 벌써 2만 1천 170일을 살았군. 그런데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에게 사장이 따져 물었다. 자네는 결혼하던 날은? 설마 오늘보다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겠지? 그는 대답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결혼하던 그날을 기억할 겁니다. 첫아이가 태어나던 순간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자 사장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 보라고. 결혼이나 첫 아이 출산만큼 행복한 날이 어디 있어? 사원이 말했다. “수많은 아름다운 날들도 기억합니다. 그 행복했던 날들이 모두 모여서 오늘을 만들어준 것이니,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제야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자네를 오늘부터 영업담당 이사로 특별 승진시키기로 했네. 축하하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 하루 하루가 쌓인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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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1
  • [옹달샘] 명현반응
    명현 반응(瞑眩 反應) 한의학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투약하여 치유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세가 심해지거나 다른 증세가 유발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완쾌되는 것을 일컬어 명현 반응, 또는 호전 반응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도 이런 명현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을 때가 왔고,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난 것은 더 극심한 부역과 고난이었다.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들을 할 때 명현 반응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마귀의 공격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럴 때 믿음으로 오히려 더 감사하며 확고한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 마귀에 대한 승리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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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9
  • [옹달샘]주실이유를 찾으신다.
    주실 이유를 찾으신다. 남편이 신문을 읽다보니까 아주 괜찮은 글귀를 보았다. 부인에게 문자로 보냈다. '여보 세상에 가장 귀한 금이 세 개가 있다는데 뭔지 알아? 첫째는 황금이고 둘째는 소금이고 셋째는 지금이야.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얼마 후에 부인에게서 문자 응답이 왔다. '여보! 현금 입금 지금' 현금을 지금 입금해 달라 알았지?‘ 남편은 얼굴이 흑 빛이 됐다. 잠시 후에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방금 쪼금 입금 완료' 그날 남편은 본전도 못 찾았다. 하나님이시라면 어느 정도 입금했을까?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이시다. 안 주려고 이유를 대시는 분이 아니다. 나에게 줄 이유를 찾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시다. 그 이유가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쉬지 않고 응답하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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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옹달샘] 졸면 어떻게 되나
    졸면 어떻게 되나 전국 고속도로에 졸음운전 방지 경고판이 2,700개가 된다. 내용도 다양하다.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많지만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있다면, 졸음운전이다. 교통사고 원인의 1위가 졸음운전이라고 한다. 졸음운전을 하게 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졸음운전은 운전자가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발의 감각을 둔화시켜 속도조절도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꾸벅꾸벅 졸아가면서 인생운전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술이나 마약에 취하는 것도 정신이 몽롱해진다는 점에서는 졸음운전과 같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에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자동차를 항상 또렷한 정신으로 몰아야 하듯이 인생도 한 순간 한 순간을 똑똑한 정신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운전에서는 인생의 지혜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교훈도 많이 발견한다. 한 번 구원받았다며 안심하고 졸다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자들도 적은 수가 아니다. 가자 정신 차리고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손을 꽉 붙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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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5
  • [옹달샘] 믿음남과 회의남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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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9
  • [가정예배]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찬송: 570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요한복음 10:4-5절 제목: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또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자이시고 우리는 양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목자의 역할은 양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꼴을 먹이시고, 외부에 위험적인 요소를 제거해서 보호해주시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양들이 살찌우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이 목자의 임무지요. 반대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자의 보호 아래 거하는 것이지요. 목자의 음성을 분별력 있게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기억해야 하고,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하며,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음성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야지요. 행복할 수 있는 음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만의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기억하지 못하고 타인의 음성을 기억하여 나의 목자인 줄 알고 따라면 큰일 나는 겁니다. 나의 목자가 인간이냐 아니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냐에 따라서 그 인도하는 방법도 다른 것이고 그 보호하는 방법도 다르며 지키시는 방법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지요.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우리를 해칠 수가 없도록 지켜 주십니다. 현혹하고 착각하여 사이비 이단을 따라가는 순간 그 삶은 그때부터는 보장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고로 나도 불안전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의지해요? 인간이 목자여요?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똑같지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사람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도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능력도 없는 그런 사람을 목자로 앞장세워 따라간다, 이건 굉장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차라리 목자가 없는게 났습니다. 그러니 교주의 목소리에 현혹되지 마세요! 그 목소리는 우리를 보장할 수 없는 목소리요, 그 목소리로 나의 재산과 나의 생명이 담보할 수 없는 음성입니다. 삯꾼 목자입니다. (요10:12)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음성은 나를 감동케 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범사가 잘되게 하시는 음성입니다. 이건 완전한 보장입니다. 이건 완전한 확정된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우리 가정들은 마음에 새기고 인간이 나의 목자다.라고 하면 여러분들 자신이 한심한 거예요. 아니 여러분도 인간이고 그런데 인제 목자까지 인간으로 삼겠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지요. 생각해 보세요. 나는 인간이고 나는 불안전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데 미래도 볼 줄 모르는 인간에게 내 미래를 맡깁니까? 지금 복 받자는 거에요, 삶을 포기하자는 거에요?!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분을 나의 목자로 내가 의지하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분은 미래를 볼 수 있고 사막길과 광야 길도 옥토 길로 만들 수 있으며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도 초원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의 예수님을 우리가 목자로 삼는 것이 복이지요?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 외 음성은 듣지도 말고 현혹되지도 맙시다. 다윗왕은 부족함이 없는 왕으로 살았습니다. 왕이기에 그랬던 건 아닙니다.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주시니, 어쩌면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로 섬기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시23:1)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올 때 수많은 가축을 몰고 왔습니다. 집을 떠날 때는 양 새끼 한 마리도 없이 갔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엄청난 가축이 생긴 것입니다. (창30:37-39) 우리 가정이 살길은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전 우리의 상태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5)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왔으니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무릎에 기대어 그분의 음성을 듣는 행복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목자가 될 때 나의 삶이 보장되고, 우리 가정의 재산과 생명이 보호를 받아 미래가 밝아지는 삶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시고 그분의 음성만 내 마음에 새기고 내 귀에 새겨서 예수님의 음성인지, 인간의 음성인지을 잘 구분하여 가정마다 형통하사기를 소망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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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26
  • [가정예배] 밭을 보라
    ▲찬송: 496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요한복음4:35절 ▲제목: 밭을 보라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냅시다. 지금 보는 세상은 우리의 육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자연의 순환에 의해서 변화된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 절기를 따라서 절기가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 절기를 보니 이제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고, 이런 것은 세상이 늘 톱니바퀴처럼 돌아왔던 세상입니다. 해마다 그렇게 절기가 똑같고, 계절이 똑같고, 그래서 그러한 것을 보고 3월이 되니 꽃이 피겠구나! 뭐 이렇게 예측을 하듯이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항상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돌고 도는 세상입니다. 그런 의미로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지금이 추수할 때라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경험적이고 상식적인 것과 통념적인 것을 뛰어넘어버린 말씀이지요? 지금은 추수할 때가 아닌데 아직 넉 달이 더 남아 있는데 예수님은 지금이 추수할 때라고 눈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막11:13절을 보시면 이와 유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주님은 열매를 얻기 위해 아직 때가 아니거늘 열매도 없는 그 무화과를 향에 가셨을까요? 이 말씀도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과 주님이 보시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찾으시는 시기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생각하는 시기와는 다르다 할지라도 내가 정한 때가 아닌 주님이 원하는 때가 정해진 시기입니다. 내가 보는 계절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계절입니다. 주님이 원하실 때 언제든지 주님의 생각으로 내놓을 수 있는 이런 것을 우리 주님의 지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지혜로운 열 처녀와 같이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고 신랑 되신 주님의 시간에 맞춰 등불과 기름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25:6-7절) 주님은 우리의 경험적이고 상식적인 것을 뛰어넘는 초연적인 것들을 원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주님이 그러시는 것 같아요. “너도 이제 밭을 보라!” 그 보라 하신 주님은 육적인 눈으로 보라는 것일까요? 보라 하신 주님은 영적 눈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복 받을 시기가 아닌 것 같은데 주님이 보여 주시니 내 삶에 복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그때를, 복 있는 때를, 주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때를 언제 정하시고 언제 보여 주시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이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루어 지면 복 받을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적으로 보는 계절은 넉 달이 남았지만, 하나님은 추운 혹한에서도 꽃이 피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눈을 들어서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러지요. “너는 아직 멀었어.” “너는 아직 때가 아니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이 말에 우리도 수긍합니다. “아! 나는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도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복 받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까? 아무 근거도 없는 소리입니다. 복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너는 아직 때가 아니야 내가 봐도 나는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 여러분들이 복을 창조했습니까? 여러분들 주변 사람들이 복을 만들어 냅니까?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복을 만들 때가 따로 있다는 건가요? 말이 안 되는 소리지요! 그러니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복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왜? 보라고 하셨을까요? 너 아직 때가 멀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한 번 봐라!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니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셨을 때는 곡식을 거둘 수 있는 그때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열매와 곡식을 맺는데 지금 눈을 들어 봐야 뭐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제 때가 됐다! 복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신 우리 주님이 복 받을 때가 됐다는 거예요. 이제 추수할 때가 되었으니 넉 달이 남았다고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의 삶에 복의 때가 무르익게 하시는 이가 보라고 할 때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내가 육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아직 계절이 아닌데 아직 때가 아닌데 우리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그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니 정말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 있는 것을 보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만 특별히 보여 주시는 복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 없는 육적인 눈으로는 아직 때가 일러요. 그러나 믿음이 있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내가 복 받을 때가 됐구나 하고 믿으세요. 가정예배로 그때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복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때를 주셨습니다. 곡식을 거둘 때, 복을 받을 때, 이때를 우리에게 주시고 오늘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주님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혹 아직 때가 아닙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주신 복의 때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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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19
  • [가정예배]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삽시다
    찬송: 455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빌립보서 3장 13-14절 제목: 부름의 상을 위하여 삽시다. 오늘 아침도 희망찬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있으면서 썼던 옥중 서신서입니다. 다메섹 이후 사도 바울의 남은 생을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에 바칩니다. 사도 바울이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도했던 것은 그의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믿음과 확신으로 복음을 증거함에는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 인생 결말이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가진 믿음과 어떤 신념과 의지, 이러한 것은 확고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삶이 힘들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죽음 앞에서 흔들린다면 그 믿음은 의미가 없지요. 내가 가진 믿음이 물질 앞에서 흔들린다면 그 믿음은 의미가 없지요. 내가 가진 믿음이 내가 살면서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우리가 가진 믿음은 그런 모든 것들을 초월해 버릴 수 있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이런 믿음을 우리 가정들이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제일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확고함은 그의 고백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에게도 이만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살아가는 지금 현 시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사는 이 시간…. 이런 삶 속에서 내가 가진 믿음을 점검합시다. 사도 바울은 나를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어디서 부르셨나요?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공간은 위에서 부르셨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에는 내게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부르심의 결과물은 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셨다는 것은 상을 받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통보를 받지요. 몇 월 며칠에 어디에 참석해 주세요. 왜요? “아 그때 상 받기로 돼 있습니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 하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상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럼 상이 뭐예요? 영원한 천국입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천국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 아니겠습니까? 이런 복을 준비해 놓고 나를 부르셨다고 하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다는 현재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그 상급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상을 준비하시고 부르신 지금이 더 유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상을 주신다는 그 확신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내 삶에 유익이라고 하는 소명과 믿음 말이죠. 우리도 과거에 연연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과거 것이 다시 살아서 돌아옵니까? 후회하고 회상한들 우리가 과거로 다시 회귀할 수 있으니까? 아니지요? 오늘부터 살아 갈 목적은 내가 이제 상 받기 위해서 살아야 하겠다는 믿음과 신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면 나는 상을 받는다는 확신과 믿음에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이 믿음이 확고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뜻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상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형통함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기 때문이고, 내가 범사가 잘 되는 비결은 그 부름의 뜻을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혹은 물질의 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환경적인 근심 걱정이 온다 할지라도, 부름의 상을 위한 믿음만큼은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그런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다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악조건이 물러가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결과물은 상급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믿음으로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남은 모든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에서 한 발짝도 뒤로 후퇴하지 마시고 앞으로 나가는 일에만 그 믿음이 확고해지시기를, 그래서 그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여 복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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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9
  • [옹달샘] 곡선이 아름답다
    • Mission
    • 옹달샘
    2021-07-14
  • [옹달샘] 일요일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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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7-12
  • [가정예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찬송: 510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히브리서11: 6절 제목: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살아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점은 엄청나지요. 믿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냥 인간의 본성대로, 여기서 본성이라고 하면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치란? 그 사람의 보화와 같은 것이지요. 삶의 가치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보람도 느끼고, 기쁨도 행복감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가치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란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그러나 보편적인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에 과중을 논할 때 다릅니다. 즉,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의 인간의 가치를 논할 때는 믿는 자는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악하게 사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을 잘 속였다.” “도적질 해서 아주 그냥 기분이 좋다.” 이런 것을 또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더러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무가치한 것, 뭐 가치에 넣지도 않지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여러 형태로 분류합니다. 가령 분량의 비유로 할 수도 있고, 또는 온도에 비유로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믿음이 충만하냐 믿음이 적으냐 그런 뜻입니다. 또 믿음이 미지근하냐, 뜨겁냐, 믿음이 차갑냐 하는 형태들입니다. 어찌 보면 더 나아가서는 믿음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이렇게 분류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있어도 전혀 행하지 않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은 전혀 가치가 없지요. 성도들에게 믿음은 최고의 가치여야 하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등급을 내릴 수가 없을 정도로 죽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이 적다는 것은 믿음이 많다 하는 것과 같이 결부해서 말씀을 드리면 믿음이 많은 사람은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있어도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다 하지요. 또 믿음을 분류할 때 믿음이 뜨겁다 하든지 믿음이 차갑다고 합니다. 믿음이 차갑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었을 때 그 가치가 영적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소리만 해도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그냥 그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왠지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영적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뜨거운 사람은 기도하면서 하나님 은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하고는 염려와 근심 걱정을 안 합니다. 그런데 차가운 사람은 믿었어요. 그런데도 느낌이 오지를 않아요. 마음으로 이게 와 닿질 않아요. 그 와 닿는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믿음을 논해도 즐거움이 없고 믿음을 논해도 감동이었고 그렇지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는 우리는 죽은 믿음, 미지근함 믿음, 식은 믿음, 적은 믿음, 이런 걸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그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살아있는 믿음, 이런 믿음을 오늘 우리가 소유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을 때 우리에게 어떤 생활에 방식이 달라지느냐? 달라지지요! 아벨을 보세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그랬어요. 무엇으로요? 믿음으로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어떤 믿음이죠? 가인보다 더 나은 믿음입니다. 더 나은 믿음은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다고 그러면은 그 믿음을 가지고 아벨처럼 사는 것입니다. 아벨처럼 살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또 믿음으로 노아를 보세요? 그 경고하던 시대에 아닙니까?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하는 자체가 악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잖아요? 살아있는 믿음으로 순종하니까 방주를 짓는 거예요. 믿음으로 받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소리도 노아는 현실적인 소리로 듣는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그냥 뭐 터무니없는 소리로 그렇게 치부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이방인들이니까 잘못을 따질 것도 없어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우습게 여기면 안 되지요. 그러나 노아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까 그 믿음으로 그 집만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러니까 충만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뜨거운 믿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니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잖아요? 우리는 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까지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지요. 그래서 약속의 땅을 언약으로 받습니다. 오늘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그냥 적은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미지근한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거의 반 죽어가는 믿음 가지고 “믿노라!”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능력이 있어 어떤 것도 쪼개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믿음, 충만한 믿음, 뜨거운 믿음,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지시고 더 많은 본을 받으시려거든 히브리서 11장에 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가정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족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최상의 가치로 삼으시고 그 최상의 가치인 믿음으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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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7-12
  • [옹달샘]만나가 지천에 깔려 있구나
    • Mission
    • 옹달샘
    2021-07-02
  • [옹달샘] 역경지수(AQ : Adversity Quot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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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6-26
  • [가정예배] 담대한 믿음으로 삽시다
    찬송: 535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고후 5:7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제목: 담대한 믿음으로 삽시다. 오늘은 사도 바울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께서는 비록 율법주의자이었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가진 후 그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가문으로 보나, 그의 학식으로 보나, 그의 신분으로 보나, 그 당시에 로마의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사도 바울은 그런 것과는 벗어난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후 고백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그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좋은 가문과 학식과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와 바꾼 것이지요. 이렇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담대할 수 있었던 그 비결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니 이전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당시 절대 권력의 로마 시민권도 예수님 안에서는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임을 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음으로 삶에 담대함이 생긴 것이지요. 지금 거처하고 있는 고린도는 사도 바울에게는 굉장히 힘든 시기입니다. 고린도는 겐그레항과 붙어 있는 지금의 그리스의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인데 그 당시에는 상업과 은행 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시작하던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상당히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육신적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 중 제일 첫 번째는 “나는 믿음으로 산다.”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 “나의 행함은 오직 믿음이다.” 그래서 담대한 믿음에 대한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장래에 천국을 향한 소망에서 나오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육신을 벗어버릴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 것인데 그때 나는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고 믿음에 행위로 살아감이 가장 고상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 통하여 담대함을 갖게 한 것입니다. 혹여 누군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할지라도 나는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릴 기회가 된다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죽음을 초월한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의 담대함은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만났어도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힘, 외로움과 육신의 고달픔, 이런 것들이 숱하게 밀려왔지만 그러한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겨 낼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믿음대로 행하니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천국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영원한 소망의 확신으로 믿음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행위가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한 불완전한 삶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납니다.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상당히 괴로움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더 좋은 곳을 예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행하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이런 것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1절로 6절까지 쭉 보면 사도 바울이 담대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이 말씀 속에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도 이런 믿음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본받아 세상을 능이 이길 수 있는 믿음, 세상 것에 온갖 근심과 걱정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면 우리도 오늘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웬만한 것에서는 조금도 흔들리거나 마음고생 하지 마시고 웬만한 것은 다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그 담대한 믿음을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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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22
  • [옹달샘] 지금이 가장 좋은 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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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6-22
  • [설교] "염려하지 말라!"
    '헛쉘 포드' 목사의 '물새와 참새의 대화'라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말합니다. '참새야, 저 아래 땅위에서 허덕거리며 걸어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아라.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참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세상 모든 짐을 지고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을 바라보며 나누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국 대도시에 가면 JC Penny라는 백화점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백화점의 설립자는 J. C. 페니 (James Cash Penney)라는 사람인데, 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육류사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사업을 더 확장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호텔 등 큰 업체에 납품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들에게 술이나 뇌물을 바쳐야 헸습니다. 그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결국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심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그의 걱정과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이 최고로 악화되면서 페니는 미시간주 배틀크릭에 있는 격리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지치고 낙심한 그에게 바람을 타고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소리나는 곳을 간신히 찾아갔더니 어떤 작은 건물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뒷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은 그의 마음속에 가득찬 염려를 몰아내었고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는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제 지쳤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그 후에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히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 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막노동부터 시작하여 편의점을 열었습니다. 그는 고객들의 작은 불편함까지 살피면서 꼼꼼히 살폈고, 어떤 물건이든 고객이 반품하는 것은 받아주었으며, 수익성이 높은 물건이 아니라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직원 5만명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켰고 대백화점왕이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그를 “돈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에 돈을 수단으로 삼았다”며 극찬하였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의 소유를 선교를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이씨 페니 그의 이름의 JC는 Jesus Christ의 약자이며 Penny는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페니를 인도했듯, 모습과 방법은 다르지만 오늘도 하나님은 똑같은 사랑으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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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만나
    2021-06-19
  • [옹달샘] 주일에 어디에 계십니까
    • Mission
    • 옹달샘
    2021-06-17
  • [가정예배] 내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찬송: 418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잠언 19:8절 제목: 내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지 또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사는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나 됨을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사랑스럽고 내가 나여서 참 좋다! 내가 나에게 레질리언스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내가 나이어야 되고 내가 제일 소중해야 하며 내가 나이여서 감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내가 나였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줄 아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정리하자면 내가 나를 위해서 잘 되게끔 어떻게 살아왔는가! 진정으로 나 자신이 잘되기를 위해서 내가 무슨 노력을 했는가! 이런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에 대해서 답을 주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내가 내 영혼을 사랑할진대 그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잠언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지요.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잠언 19:8) 지혜를 얻는 자가 자기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역순으로 말하면 내 영혼을 사랑한다면 내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 영혼에 지혜를 줘라! 이런 말씀이죠? 내 영혼에 지혜를 주어야 내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 자신이 잘 되는 것이 최고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도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잘 돼서 성공하는 것도 좋아요, 다 기쁜 일이지요. 그런데 내가 나 자신이 잘되는 것의 우선적인 노력과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사랑한다고 하면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넣어 줘라!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를 내 영혼을 진짜 사랑한다면 내 영혼이 잘되도록 심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지혜구나!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이렇게 이해를 해야죠? 내 영혼이 너무 사랑스럽고, 내 영혼이 정말 고맙고, 내 영혼이 너무 잘 되기를 바라기를 원한다면 그냥 생각으로 끝나지 마시고 내 영혼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급해 있는데 말로만 “내 영혼아 잘 돼라.” 이러면 내 영혼이 궁핍하잖아요? 여러분들 자신이 궁핍한 거예요! 지금 타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잘 되게 하려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지혜를 얻어라! 나 자신이 범사가 잘되고 나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나 자신이 복을 받는 비결이 뭐에요? 오늘 잠언이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 말씀은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했어요.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받는다! 복이 내 것이 된다.! 복이 온다.! 그런 말씀이잖아요. 난 지금도 복이 없는데…. 명철을 지키니 복을 얻었어요. 하나님이 복을 주셨어요. 명철을 지키니 주셨어요! 그럼 명절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영혼을 사랑하는 비결이 뭐라고 그랬어요? 지혜를 얻는 것이…. 지혜를 얻으면 내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내 영혼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은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죠? 우리 영혼은 제일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채워 주면 내 영혼이 좋아합니다. 내 영혼을 좋아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스러운 거잖아요? 내 영혼이 좋아하는 것이 뭐라고요?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거라고요? 걱정을 심어주는 거라고요? 이것은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주는 것이 내 영혼이 제일 좋아하는 거라 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채웠을 때 내 영혼이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내 영혼이 그냥 자기만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내가 이제 지혜의 말씀을 들었고 나는 내가 지혜의 말씀으로 채웠으니 이 지혜의 말씀이 내 마음에 풍부하구나!” 하고 그 지혜의 말씀들이 반응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는 “나를 복되게 만들어 줘야 하겠다.” “내가 나를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채웠으니 이제 내가 나를 복되게 해 줘야 하겠다.” 그래서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명철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누가요? 지혜가! 지혜가 들어와서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기쁘게 한 지혜가 내 마음속에서 막 명철을 만들어 내는 거에요. 명철을 왜 만들어 냅니까? 나를 복 받게 하려고 그렇습니다. 그럼 명철이 뭐예요? 내 영혼에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니 “오! 그래” “아! 그래!” “말씀대로 살면 그렇게 되는 거야!” 그 지혜의 말씀을 깨달아서 그렇게 살고 싶어지도록 해 주는 것이 명절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사기 치는 지혜를 막 갔다가 부어 줬어 봐요? 그러면은 내 마음이 그 사기 치는 지혜를 얻어서 무엇을 드러냅니까? 사기 칠 수 있도록 명철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사기꾼이 되지요. 그러면 그게 영혼을 사랑한 거예요? 사기 치는 지혜를 막 집어넣어 준 것이 내 영혼을 잘되게 하는 거예요? 영혼은 무엇을 갔다가 채워 주었느냐, 어떤 말씀을 들려주었냐에 따라서 그 말씀을 명철로 바꿔 버린다는 말입니다. 시방 이해가 갑니까? 그러니 못된 말을 많이 들으면 못되게 살아야 하겠구나 하고 못된 놈으로 만들지요. 그 못되게 하는 것으로 명철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못된 놈이지요? 내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려주고 그 말씀을 들었던 내 영혼이 “아! 그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아! 야곱이 그렇게 살아서 복을 받았구나!”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깨닫고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것이 명철입니다.!“ 그래서 그 들었던 지혜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여 주는 것이 명철이에요. “아! 맞아!“ ”하나님의 말씀이 맞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은 이유가 아! 여기에 있어서.“ 이렇게 하고 그 말씀을 딱! 깨닫는 것이 명철입니다. 그 명철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입니다. 왜요? 그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결론으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칩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내 영혼에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채워 주세요. 나를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심비에 새겨졌을 때 거기에서 얻어지는 중요한 결론은 명철입니다. 명절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내 영혼이 말하기를 나를 사랑했으니 내가 나를 위해서 복 받는 것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도록 영혼에게 명철을 만들어 주자는 원리입니다. 그 명철로 지켜 살면 복을 얻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가정들이 기억하시고 오늘부터 내 영혼에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고 그 채워진 것들이 결국은 명철로 나타나서 복을 얻어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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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7
  • [옹달샘] 설거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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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6-14
  • [간증/목회는 영권이다(4)] 교회도 돈도 빼앗기고 절망뿐이던 눈물의 2년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한 재정 집사가 나 몰래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는 잔금을 내게 주지 않고 재정 집사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게 훗날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교회 담보대출로 수표를 받고 등기 이전을 해주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등기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넘긴 뒤 수표를 받았는데 교회를 매입한 목회자가 입을 열었다. "수표 좀 볼 수 있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보여줬는데, 그만 수표를 받아 채더니 문 앞에 대기시켜 놓은 차를 타고 도망쳐 버렸다. '아니, 목회자라는 사람이 지금 무슨 해괴한 짓을 한 거야.' 법무사 사무실의 등기 이전 절차를 중단했다. 그리고 서류를 가져왔다. 이런 사실을 노회에 보고했다. "김 목사, 당장 고소를 하시오." 며칠 후 수표를 뺏어간 목사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수표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노회도 문제를 잘 풀어보자며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빌려주지 않아 불만을 품은 재정 집사를 접촉한 것이다. 그 후부터 수표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노회도 중재한다고 했지만, 재산 욕심 때문인지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노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목사, 교회를 매입한 목사와 이야기가 다 됐소. 수표와 교회 이전 서류를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 테니 수원 모 대학 주차장으로 오시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니 법무사 사무실이나 은행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허, 그러면 일 처리가 복잡해져요. 나만 믿고 나오시오." "그럼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갈 테니 뺏어간 수표를 꼭 가져오라고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서류와 열쇠만 가져오시오." 주차장에 도착하니 노회 임원들이 한쪽에 서 있었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다가왔다. "교회 열쇠와 서류를 가져왔소?" "네, 여기 있습니다. 이제 뺏어간 수표를 주십시오." 하지만 그는 돈은 주지 않고 숲 쪽으로 갔다. 또다시 당할 순 없었다. "다 드렸으니 돈을 주셔야 할 게 아닙니까. 세상에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내게 돈을 요구했던 재정 집사와 불만을 품고 교회를 이탈한 몇몇 신도가 뛰쳐 나왔다.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가 돈을 꺼냈다. "자, 김 목사. 돈 여기 있소." 재정 집사가 나를 향해 돌을 들고 위협하더니 돈을 낚아챘다. 그리고 교회를 넘겨받은 목사도, 재정 집사도 황급히 사라졌다. 혼자 나오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다리가 풀렸다. '아, 도대체 이게 무슨 망조란 말인가. 교회 건물과 열쇠는 저 사람에게 넘어갔고 돈은 재정 집사가 가져갔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목사가 됐다.' 수치스러웠다. 죽고 싶었다. 그때부터 빈털터리 상태에서 2년간 눈물 흘리며 경찰서와 검찰청을 오갔다. 속이 타들어 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돈을 사랑하며 안정된 삶을 위해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말이다. 내 잘못을 절대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주님께 항의했다. "주님, 왜 제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제가 잘못한 게 있단 말입니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정말 제게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어둠의 터널이 계속됐다. 한 달이면 끝나겠지 하며 보낸 시간이 2년이나 흘렀다. 내가 경멸스러웠다. 사방이 온통 어두움뿐이었다. 모든 게 싫었다. 빨리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광야에 던져진 존재처럼 모든 희망을 잃은 상황에서 마음 한구석에서 그럴싸한 생각이 떠올랐다. '2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죽자.' 경기도 수원 칠보산기도원으로 들어갔다. 정말 죽으려고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마음의 분노 때문에 기도는 뒷전이었다. 혓바닥이 갈라지더니 기력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몸이 축 처졌다. 금식 17일째 되던 날이었다. 얼굴을 찡그린 채 힘없이 소나무길을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김 목사, 네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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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2
  • [옹달샘] 너는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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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달샘
    2021-06-11
  • [옹달샘] 세 종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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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0
  • [가정예배]귀한열매를 보고 참읍시다
    찬송: 549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야고보서 5:7-8절 제목: 귀한 열매 오늘의 말씀은 주의 강림을 준비하며 읽겠습니다. 바라보라! 그리고 참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바라봐야 할 것은 주님의 강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아야 할 것은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과정에서 혹여 소망을 잃어버릴 수 있고 또 주님이 강림하실 때 재림의 잔치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안 되잖아요? 범죄와 타락이 세상에 넘치더라도 유혹에 빠지지 말고 참아라! 참는 것이 사실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참아내는 것에 대한 충분한 가치와 보상은 있습니다. 참아야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말씀이죠. 우리가 뭘 하더라도 주의 강림을 바라보고 그날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니 조금 세상의 욕심과 유혹이 와도 참으면 영원한 기쁨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참아야 할 그 가치와 인내를 해야 할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은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보상 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경쟁할 것도 없고, 애통할 것도 없고, 욕심부릴 것도 없으며 유혹에 빠질 일도 없는 완전한 곳을 보상받습니다. 슬픔도, 질병도, 죽음도, 없는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한 가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참는 자의 엄청난 축복이 준비되어 있고 그 축복을 받을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축복 받을 날이 뭐예요? 주님이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이 가까이 왔으니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귀한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이 농부를 비유로 했습니다. 농부가 오래 참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은 귀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는 중에 힘든 고비가 많이 찾아옵니다. 힘든 고비가 찾아올 때 “에라! 나 일 안 해” “옆집 개똥이는 부모 잘 만나 일도 안 하고 그냥 놀고먹고 저렇게 신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죽어라고 일만 해야 해” 그래서 개똥이처럼 그냥 놀아 버렸다. 밭에 씨를 뿌려 놓고 관리도 안 했다. 씨를 뿌려 놓고는 고생한다고 하는 것이 억울해서 “내가 고생하면서 사네! 아 억울하네!” 이래서 일을 놓아 버렸다면, 가을에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기대할 수 없지요. 우리가 밭에서 귀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내 수고와 노력이 거기에 개입이 되었기 때문에 열매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영원한 삶이 보장된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면 이후로는 고생하라고 해도 고생할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고 눈물 흘리라고 해도 눈물 흘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쁘고 즐겁게 때문입니다. 일 열심히 하면 복 받는다는 것도 통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할 일거리도 없고, 특별히 소망하는 것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 자체가 모든 복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그 들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셨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르셨고, 성령으로 인처 주셨는데 좀 더 참지 못하고 막살다가 귀한 천국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서죄짓는 것이 더 편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더 즐겁고, 신앙생활 슬렁슬렁하는 것이 더 편한 것 같거든요. 우리 생각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봄에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일종에 유혹이고 죄지요? 그런 상황이 올 때, 그때 참아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서 금덩이가 반짝여도 금덩이 보지 마시고 주님 바라보세요. 마귀가 돌덩이로 떡이 되게 해 준다 해도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일 한 번 지키지 못한다 해서 괜찮겠지 하는 유혹에서 참으세요.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서 참아라! 참으라! 그리하면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원한 복을 받습니다. 명예와 부와 귀천이 귀한 열매는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잠깐 보기에는 엄청 화려하고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죠. 근데 그런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때도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금덩이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권력 보고 산다고 내 것이 됩니까? 아니지요? 길이 참고 바라보면 내 것이 되는 것이 있어요. 주님 강림 때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의 삶의 복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됩니다. 근데 주님 바라보는 걸 싫어하고 주님 바라봄을 포기하면 복 받을 입구까지 왔다가 그 한 발자국 앞에서 그냥 복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가버립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귀한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이 귀한 열매를 바라보라고 그랬습니다. 그 귀한 열매를 바라보면서 길이 참으라고 했습니다. 잠깐만 참아라 가 아니고 길이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 주면 반드시 귀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 귀한 열매가 예수님이고, 영원한 천국입니다. 세상에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달하고 내 생명하고 바꾸자! 그렇다고 “오! 달! 저 달이 내 것이네!” 그렇다고 달이 내 것이 됩니까? 달과 내 생명을 바꾸는 순간 나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옥 갔어요. 그달이 지옥까지 따라와요? 지옥에서 달이 내 것이라 우길 수 있어요? 세상 이치가 똑같습니다. 그런 게 유혹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것을 말이 되게끔 꾸미는 것을 유혹이라 합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강림하시기를 바라보고 참으면 때가 이르매 귀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봄에 장애물이 없도록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시고 길이 참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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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6-09
  • [가정예배] 감정대로 살지 맙시다.
    찬송: 301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창세기 32:20절 코로나가 언제 극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극복은 된다는 희망적인 환경들이 많이 조성된 것 같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야곱이 하란의 외삼촌 라반 집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있어 연단과 훈련으로 지내다가 때가 이르매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말씀대로 다 이루어 아버지 집으로 그 많은 재물을 가지고 축복의 땅으로 봅니다. 얍복강만 건너면 고향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곱을 죽이겠다고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과 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은 야곱을 죽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형의 모습을 야곱은 어떻게 잘 대처했을까요? 형 에서는 어찌 보면 20여년 전에 자신을 속인 야곱이 장자권과 아버지로부터 모든 축복을 다 뺏어 갔다는 피해의식으로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한이 맺히게 살아왔을 형 에서는 감정이 복받쳐 야곱을 죽이려고 얍복강에서 기다립니다. 물론 팥죽 사건과 양을 잡아다가 이삭으로부터 싹쓸이 축복을 받았던 사건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특별히 형의 눈으로 보면 사기일 수도 있고, 속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와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자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에서의 행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잖아요? 이방 여인과 결혼도 하고, 부모의 마음에 근심까지 끼칩니다. (창26:34, 27:46, 28:6-9)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브가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둘째 아이를 큰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창25:22-23) 리브가에게 야곱의 축복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통하여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게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어쨌든 에서로써는 억울한 일입니다.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며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이제 얍복강에서 금이한양 하는 야곱을 죽이려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수도 있지요. “나를 20년 동안 그렇게 훈련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고 고향으로 오게 하시더니 고향 문 앞까지 와서 결정적으로 나를 죽이십니까?” 이렇게 원망 할 수도 있을 텐데 야곱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형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형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솟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형의 감정만 달래면 이 상황은 그냥 끝날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죽일 만큼 군사를 이끌고는 왔지만 내가 형의 감정을 진정시키면 감정적으로 나오는 형을 이해시키고, 야곱의 마음과 정성을 보이면 형은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형제애의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느낌대로 시도해 봅니다. (창32:4-5) 이것은 감정의 문제이기에 감정을 푸는 일을 야곱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악화시키는 최악의 선택은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싶을 때 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야곱을 통해서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모세를 생각해 보세요! 모세는 자기의 감정을 순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감정적으로 수행했을 때 감정적으로 처리한 일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욥을 보세요! 욥은 엄청난 고난을 겪습니다. 그 고난의 상황에서 위로한다고 친구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 부인마저도 감정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차라리 죽으라고 합니다. (욥2:9)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질 안 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께 자기의 감정적 언사를 사용하지 안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연속 속에서도 절대로 자기의 감정대로 살지 않았고, 오직 은혜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단련시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하루 아침에 다 망해버렸어요. 그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고 나 죽겠네! 나 죽었네! 이제 나는 끝났네!” 뭐 이럴 수도 있잖아요? “요놈의 망할 놈의 세상 막 하면서….” 어쨌든 그런 별의별 원망의 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지만,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자의 복입니다.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욥의 감정을 배워야 합니다. 이래야 처음보다 나중이 더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도 결국은 에서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에서가 더 긍휼히 여겨 입 맞추고, 껴안아 줍니다. 죽이려고 했던 감정을 껴안고 입 맞추는 사랑의 감정으로 만들어 버린 야곱! 물론 배후에는 간밤에 씨름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왔다 할지라도 나는 선으로 그 사람을 대하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상대편을 대하십시오. 화를 낼 수밖에 없고 감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때 한 번 더 참으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도와주실 믿고, 일이 좀 잘 안 풀리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사랑으로 이겨냅시다. 모든 사람을 감정대로 대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면 우리 자신도 자존감이 높아져서 좋고 여러모로 좋은 것입니다. 얍복강의 죽음 앞에서도 야곱은 형의 감정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침착함.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과의 씨름하는 이런 모습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에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강점 억제력을 우리 가정도 야곱을 통해서 더불어 욥의 인내까지 함께 본받아서 절대로 감정대로 살지 마시고 극한 상황이 올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사모하고 참고 인내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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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예배
    2021-05-24
  • [가정예배]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 찬송: 309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한복음 2장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아멘 제목: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있었던 기적의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이제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친척 집에 혼인이 있어 그 전통 전례에 따라서 가족 친지 애경사에 참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혼인 잔치에 가셨지만, 혼인집에 큰 관심은 두시질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간청에 따라 가나 혼인집에 갈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냥 혼인 잔칫집이려니 하고 가셨지만, 마리아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가나에서의 혼인집과 마리아와의 관계는 상당히 특수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혼인 집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자기 일처럼, 또는 자기 집 일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관심을 가지셨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가운데에 이제 혼인은 진행이 되었고 또 잔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되어 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오셨기에 준비되었던 포도주가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마리아가 발견한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고 또 그 혼가에 있어서 어찌 보면 자존심이고 얼굴인데, 포도주가 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한창 무르익어가는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초대된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그렇게 준비성도 없는 가정이라고 하는 낙인이 걱정으로 밀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어디에서 준비해 올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때, 마리아는 해결책을 생각하고 그 즉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기치 않는 일을 만났을 때나 혹은 난처한 일들을 만났을 때,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잖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힘에 겨울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내가 풀려고 하면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찾아서 주님께 부탁하면 쉽게 해결이 되지요. 이런 경우를 우리가 경험적으로 나타날 때, “아! 이럴 때 주님이 내게 계셔서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시고 나로 순탄한 길을 가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하는 그 경험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힘든 시간은 길어지지요.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마리아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예수님을 찾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별 그렇게 반응이 없습니다. “아직 내 때가 아닌데 뭘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시는 반응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기에 하인들을 불러서 “너희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다짐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셨고, 하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기적의 현장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본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 상황대로만 된다면 오늘 이 혼인 잔치에 기적이 일어난다.!! 하는 그 믿음! 예수님을 보면서 그 기적을 내다본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내 삶에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내 삶이 변화되는 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을 때 한 가지 다짐은 오직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는데 주님을 찾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고, 하인들에게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지요? 마리아의 생각은 이게 잘 어우러지게 되면은 그다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나 혼인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그냥 채운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것은 더는 채울 수 없을 만큼 다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하인들 보세요! 이왕에 물을 채우라 하셨으니 가득 채워 버린 것이지요. 순종은 그렇게 통 크게 해야 큰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열심히 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보는 땅, 밟은 땅을 내가 다 너에게 줄 것이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밟았고 헤브론까지 올라가서 엄청나게 바라봤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한 발 더 앞서 이행을 해야 합니다. 가령 하인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어요. 그런데 반만 채웠다면 기적은 그 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충만하게 채웠을 때는 그 기적은 충만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적을 적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크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을 바에는 그 말씀을 따라서 충만하게 순종하세요. 충만하게 순종을 하시면 충만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 잔칫집을 통해서 본받는 교훈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혼인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혼인집에 초대됐던 사람들이 그 가정을 칭찬하고 그 가정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가정에도 이런 역사가,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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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7
  • [선교편지] 필리핀 송성호 이광숙 선교사
    할렐루야! 2021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사랑의 후원을 해 주셔서 2020년 잘 선교사역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또 시작됩니다. 멈춤 없이 해야 할 사역이기에 이렇게 기도의 편지를 드리며 새 로운 비젼을 가져봅니다.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귀한 사역 위에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어려움 끝, 곧 승리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1. 주일 설교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이송된 롤리목사님이(로드리게스비젼교회) 심장고통을 호소했는데 혈관확장수술을 잘 마치고 조금씩 회복중에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 니다. 2. 워드오브라이트교회(미츔목사님)가 해가 다르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 1층 건물로는 공간이 부족해 2층으로 증축을 필요로 합니다. 15년전에 어려운 형편속에 건축해서 낡 고 협소한데 속히 증축되어 더 부흥하는 선교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3. 사랑의 후원속 쌀과 마스크를 구입하여 나눔을 하고 한국에서도 마스크와 구호품을 보내주셔 서 성도와 전도용으로 잘 배분하였습니다. 후원해 주신 교회와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일거리가 없는 선교지 현지가정 가정이 많이 힘든 가운데 무엇이든 보내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일에 요즘 선교사가 이곳 저곳 부탁 드리며 도움을 청하 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를 드리며 계속해서 사랑 을 부탁드립니다. 변함없이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매달선교헌금 또는 특별 헌금으로 후원해 주시 는 교회와 성도님들, 성탄선물과 편지로 격려해 주시는 단체 그리고 동영상으로 선교사를 위로 해 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유아부 어린이들,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귀한 잠옷등 의복을 보내주셨는데 한국상황이 어려워 사업을 접으며 물건을 보내주신것을 받았을때는 마음이 무거운 선물이 되었습니다. 기도합니다. 동역자님들이 계시기에 새로운 힘을 가지고 또 한 해를 더해 필리핀 30년차 선교사역 2021년을 시작합니다. 아 멘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송성호 이광숙 드림 연락처: 630song@hanmail.net 카톡ID: 630song 인터넷폰: 070-7548-2529 선교후원: 국민은행 211-21-0428-421 (송성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 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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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1
  • [설교]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제목 :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본문 : 요한복음 18장 1절~12절
    • Mission
    • 설교강단
    2021-03-21
  • [큐티세미나] 큐티 묵상만으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렐루야~~유튜브 채널 시온성 복음방송 방송지기 시온성 교회 김연경 목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힘든 저녁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열린 사역의 길에 매진하다가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기독교 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면서 노방 전도와 관계전도 그리고 부흥사로의 사역도 다 일시적인 휴식 기간에 골방에서 은둔 가운데 있었는데 일인 미디아 시대인 점을 감안하여 유투브 채널을 통해 복음 방송을 송출하라는 주님이 주신 지혜에 순종하여 유투브 채널에 시온성 복음 방송을 개설하고 화요일마다 큐티로 묵상한 강해 설교를 송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는 큐티 세미나를 지면을 통해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큐티 묵상만 제대로 해도 우리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재대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삶과 인생과 사건과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여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말씀이 내 발의 등이 되고 내 가는 길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반응하며 말씀에 길을 묻고 말씀에서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발견하고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함으로 말씀대로 기도할 때 기도의 힘과 능력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해결되고 열리고 뚫리며 순적함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큐티가 전부냐? 아니요 큐티가 전부가 아니라 말씀이 전부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말씀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으매 우리의 인생..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인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요 말씀이 네비가 되고 말씀이 이정표가 될 때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3] 여러분 먼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는 구절을 연구해 보기를 소망하는데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은혜가 마르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먼저 본문 서두의 그 잎사귀를 어떤 말로 적용해 보면 좋을까를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그 잎사귀를 고상한 말, 점잖은 말로 혹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솔직히 우리 삶 속의 말로 나는 그 잎사귀를 나의 갈급한 것 지갑, 주머니로 통장의 잔고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적용해 보니 지갑이 마르지 않고 주머니가 마르지 않고 통장의 잔고가 마르지 않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망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개척 목회를 하다 보니 늘 재정의 문제로 고심했기에 그러나 그렇다고 재정이 마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본 적은 없는데... 재정의 어려움은 잠시뿐 곧 마르지 않게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데 내 뜻 내 생각 내 방향대로 이 궁리 저 궁리하며 구할 때는 잠시 마르다가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주여..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면 누구의 손을 통해서라도 마르지 않게 하시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후원을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 본 적도 없었고 또 할 줄도 모르는 게 저는 세상에 있을 때도 ‘꿈 질’을 할 줄 모르는 데 꾸자고 하다가 안 꿔주면 맘이 상하고 또 제대로 갚지 못하면 친구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용도 신뢰도 다 소멸되니까요 그래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더 이상 굶주리면 순교하지 뭐 이런 맘으로 하니까 물질의 고난은 잠시 뿐, 다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데 한꺼번에 크게 주시지는 않고 딱 필요한 것만..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지 않게 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때도 상가 교회이고 10년 차인 지금도 상가 교회이지만 임대료는 한 번도 밀려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반론을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혹은 잠시 머물다 떠날지라도 인도하고 채우시는 은혜로 마르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예배 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육의 그 마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으로 지금도 목회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말씀이 마르지 않기를 소망하는 또 기도와 찬양이 마르지 않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굳건히 교회를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이 못난 목사의 곁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은혜의 마르지 아니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마르지 않는 잎사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여기서 ‘그는..’은 누구일까요 그래서 그는..이 누구인가를 본문 전체로 돌아가 보니까 이 전체 본문의 주제와 주어가 복 있는 사람이니 여기서 ‘그는..’을 복 있는 사람으로 적용해 봅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심은’의 문자적 의미는 옮겨 심겨 진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지로 옮겨 심겨졌나요? 척박하여 메마른 땅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오아시스가 있는 시냇가로 옮겨졌네요.. 그랬습니다. 제가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과 세속에서 말씀의 시냇가로 진리와 충만한 은혜의 시냇가로 그동안 즐겨 찾던 쾌락의 땅에서 교회의 시냇가로 술‘주’자 주님에서 나의 구원주요 내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시냇가로 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의 시냇가로 그리고 성령의 시냇가로 옮겨 심어 졌네요. 할렐루야~~ 여러분..어때요..여러분도 이렇게 심은 나무가 되고 또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내 자녀와 골육지친들이 이렇게 옮겨 심겨지기를 소망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심은의 뜻이 옮겨 심겨진 것이라 했으니 피동형이네요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옮겨진 은혜가 있네요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임마누엘로, 이벤에셀로 여호와 이레로 또 라파 하시며 닛시로...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심령을 감찰하사 살피시며 돌아보시는 그래서 시편139편1~4의 은혜가 있는 예..시편 139편 1~4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아멘 정말 아멘입니다. 이렇게 옮겨 심어졌더니 철을 따라 즉 봄이면 봄 따라 여름이면 여름따라 가을이면 가을 따라 겨울이면 겨울 따라 철철이 열매가 열리는 데 풍성함으로 열리고 그 결과는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된다는 말씀으로 적용하고 나와 어려분의 목회 현장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도 이런 형통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하네요..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그리고 형통이란 말을 잠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형통은 만사형통으로 만사 즉 만 가지의 일들이 다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뜻이냐가 중요하겠지요..그래서 먼저 신통하시기를 권면드립니다. 누구하고 통하자고요? 하나님의 신과 통하는 것이 신통이지요..그러니 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신통하면 신과 통하는 것인데 가짜신 말, 못하는 우상 신과 통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과 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신과 통하기 위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이 무엇입니까 Quiet-Time 즉 조용한 시간에 큐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통했으면 그 다음은요..하나님은 관계로 일하시니 하나님과 통한 후에 사람과 통해야지요 그래서 인통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하나님은 관계로 일하시는데 모든 섭리 또한 하나님의 작정하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통하니 신통하고 사람과 통하니 인통하면 물질과도 통하여 물통하게 되는데 저는 이를 말하여 십시일반의 축복이라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욥기입니다.. 욥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아멘 그렇습니다.. 욥이 하나님과 통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휼하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시 화합과 조화로움으로 모아져 십시일반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삼통의 축복 혹은 삼권..즉 영권, 인권, 물권의 축복이라 합니다..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욥이 모든 고난의 끝에 이제 다시 물질이 마르지 아니함과 같이 되어 잘 먹고 잘 살다가 오랜 장수 끝에 잘 죽었다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적용하시렵니까? 무엇으로 반응하고 적용함으로 결다하고 순종하시렵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으니..우리 오늘부터 이 지면을 통하여 전해드리는 큐티 세미나에 푸~욱 빠져 보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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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0
  • 가나 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찬송: 309장 기도: 가족중에서 성경: 요한복음 2장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아멘 제목: 가나혼인집에서 있었던 기적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있었던 기적의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이제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친척 집에 혼인이 있어 그 전통 전례에 따라서 가족 친지 애경사에 참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혼인 잔치에 가셨지만, 혼인집에 큰 관심은 두시질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간청에 따라 가나 혼인집에 갈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냥 혼인 잔칫집이려니 하고 가셨지만, 마리아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가나에서의 혼인집과 마리아와의 관계는 상당히 특수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혼인 집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자기 일처럼, 또는 자기 집 일처럼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관심을 가지셨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살피는 가운데에 이제 혼인은 진행이 되었고 또 잔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되어 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오셨기에 준비되었던 포도주가 금방 바닥이 났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마리아가 발견한 것입니다. 손님들에게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고 또 그 혼가에 있어서 어찌 보면 자존심이고 얼굴인데, 포도주가 중간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한창 무르익어가는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초대된 손님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또 그렇게 준비성도 없는 가정이라고 하는 낙인이 걱정으로 밀려온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포도주를 어디에서 준비해 올수도 없는 것이고 이런 때, 마리아는 해결책을 생각하고 그 즉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기치 않는 일을 만났을 때나 혹은 난처한 일들을 만났을 때,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는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잖습니까? 그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힘에 겨울 때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내가 풀려고 하면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찾아서 주님께 부탁하면 쉽게 해결이 되지요. 이런 경우를 우리가 경험적으로 나타날 때, “아! 이럴 때 주님이 내게 계셔서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시고 나로 순탄한 길을 가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하는 그 경험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힘든 시간은 길어지지요.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마리아는 그런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예수님을 찾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별 그렇게 반응이 없습니다. “아직 내 때가 아닌데 뭘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시는 반응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기에 하인들을 불러서 “너희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다짐의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님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셨고, 하인들에게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기적의 현장으로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영적인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본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본 상황대로만 된다면 오늘 이 혼인 잔치에 기적이 일어난다.!! 하는 그 믿음! 예수님을 보면서 그 기적을 내다본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내 삶에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야 내 삶이 변화되는 걸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을 때 한 가지 다짐은 오직 그분이 내게 말씀하시면 나는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는데 주님을 찾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고, 하인들에게는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시지요? 마리아의 생각은 이게 잘 어우러지게 되면은 그다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는 믿음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가나 혼인 잔칫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웠습니다. 하인들은 그냥 채운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해서 아귀까지 채웠습니다. 이것은 더는 채울 수 없을 만큼 다 채웠다는 의미입니다. 하인들 보세요! 이왕에 물을 채우라 하셨으니 가득 채워 버린 것이지요. 순종은 그렇게 통 크게 해야 큰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열심히 갔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보는 땅, 밟은 땅을 내가 다 너에게 줄 것이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밟았고 헤브론까지 올라가서 엄청나게 바라봤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그 말씀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한 발 더 앞서 이행을 해야 합니다. 가령 하인들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했어요. 그런데 반만 채웠다면 기적은 그 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충만하게 채웠을 때는 그 기적은 충만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적을 적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크게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을 바에는 그 말씀을 따라서 충만하게 순종하세요. 충만하게 순종을 하시면 충만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혼인 잔칫집을 통해서 본받는 교훈입니다. 문제 앞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혼인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혼인집에 초대됐던 사람들이 그 가정을 칭찬하고 그 가정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가정에도 이런 역사가,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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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0
  • [선교칼럼] 중국동포 그리고 직업윤리
    내자신 중국에서 만15년 이상을 거주하는 동안 수많은 중국동포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경험이 있다. 처음 정착한 연변에서는 2년간 컴퓨터관련 교육과 사역을 했기에 그곳 거주기간 2년간 접촉한 현지인은 대다수가 조선족이었다. 한국에서는 특정한 계층을 표현할 때 뒤에 "족"이라는 표기를 한다. 대표적 경우가 얄미운 사람들을 비하적으로 표현할 때 "얌체족". 그래서 처음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중국동포에게 가급적 조선족이라는 공식표기보다는 "교포"라 호칭한다. 하지만 중국동포라는 표기는 맞지만 교포라는 표기는 맞지않다. 더러 의식있는 재중동포는 항의하기를 "왜 미국에 사는 한인에게는 미국교포라고 하면서 우리는 조선족이라 하느냐"항의한다. 재중동포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정체성이다. 미국에사는 교포라 불리는 한인들은 주로 이민1세대에 해당한다. 현지에서 출생한 2세대 들에게는 교포라는 호칭보다 한인2세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대한민국에 둔다면 교포가 맞다. 미국거주 동포들중에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유리할 때는 "교포~동포"라 하지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나는 미국인"이라고 딱 잘라 표현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다.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지역의 동포들은 민주주의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중국은 철저한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에 세뇌된 세대들이다. 더군다나 중국거주 동포들에게는 두개의 모국이 존재하는 셈이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하기전까지 조선족들의 모국은 원하든 원치않든 조선인민공화국이었다. 북한은 조선족학교의 교사들을 1년에 한번씩 초대해 평양에서 연수교육을 하였다고 한다. 만일 한국에서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계획이 실현되기에는 많은 장벽이 있다. 바로 중국정부의 민감함이다. 중국은 외자유치 때문에 한국과 수교를 한 것이지 한국이 좋아서 수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중국의 공산주의-사회주의는 공유에 강하다. 모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해 식구수에 맞춰 분배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공산주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주의 정신은 결국 모든 인민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서 덩샤오핑에 의해 "수정주의노선"이 채택돼 개혁개방 정책으로 오늘의 안정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 이라고 평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과감히 규제를 타파한다. 자본주의국가를 능가할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공유에 대한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민주주의 처럼 "내것과 네것에 대한 경계"가 확실치 않다. 수십만명의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결코 대한민국을 사랑하여 찾아온 사람은 아니다. 탈북자가 한국을 사랑하여 찾아온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탈북자에게 한국행은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지만 조선족의 한국행은 "철저한 돈벌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에 정착한 대다수의 조선족들은 중국과 한국에 번듯한 부동산들을 소유한 중산층이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내 한국행의 꿈을 실현했지만 그랬기에 닥치는대로 돈을 벌어 코리안드림을 실현했다. 물론 낙오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본인의 일탈이니 본인 책임이다. 모친은 생시에 2년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셨는데, 마지막 3개월간 수고한 분이 공교롭게도 조선족 여성이었다.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요양보호사 교육을 이수하고 요양보호사로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요양병원도 조선족 요양사가 없으면 운영이 안될정도라고 한다. 요양보호사라는 업무 자체가 기피업종이고 극한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업주로서는 최저임금만 줘도되니 외국국적자가 편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요양보호사는 단순 돈벌이 이전에 거동이 불편해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보살피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복지업무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모두에게 불행하다. 마지막 3개월을 보살펴준 요양보호사는 혼자사시는 모친집에서 엄청난 분량을 수돗물을 사용했다. 기본료 밖에 안나오던 수도요금이 7배나 늘어나 깜짝놀라 누수를 점검했지만 전혀 누수는 없었다. 모친이 요양병원으로 옮겨간 후 부터는 수도사용량 제로였다. 입원하신 요양병원에 모친을 돌보는 간병인 역시 조선족이었다. 저혈당쇼크로 쓰러져 응급실을 거쳐 임시 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건강은 최악이었고 식사도 호스로 연명하는 상황이지만 간병인은 모친의 간식용으로 이것 저것을 사오라고 요청해 그대로 들어줬고 필요한 물품목록을 제시해 역시 모두 구입해 전달해 줬다. 사용할 상황이 안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들어줬다. 입원후 3주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가 2개월만에 별세를 하고 사용하시던 유품을 인수받았는데, 상당수가 빠져있었다. 탐나보이는 물품들은 모두 사라져있었다. 금액으로는 얼마 안되는 물품들이다. 문제는 직업정신이다. 자신들은 응분의 댓가를 받고 근무하는 것이지 결코 봉사가 아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런 기본적인 직업윤리는 궂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안다. 하지만 중국동포들은 그런 부분에서 구분이 잘 안되는가 보다. 공유경제가 몸에벤 탓일까? 당사자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을 고용하는 업체측이 필요한 교육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Mission
    2021-03-19
  • [가정예배]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 Mission
    • 가정예배
    2021-03-18
  • [설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김의철목사(송도가나안교회) 제목 :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성경 : 요 13:12-20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등의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서 보면 어떤 이는 부와 명예를 쫒아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섬김과 봉사를 통한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어떤 이는 병 때문에 가난 때문에 문제 때문에 아니면 출세하려고 주님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마11장에서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을 보시고 너희는 무엇을 보러 왔느냐? 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나온 우리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교회를 나왔느냐고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어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의 세계 속에도 질투와 경쟁심과 욕심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로부터 등을 돌리고 마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도 많지만 과거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사익을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교회 앞에 보이는 충성은 잘 하는데 보이지 않는 충성은 하지 않습니다. 말을 화려한데 행동은 뒷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명예와 칭찬을 받기 위한 거짓 충성 인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단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신학을 하고, 같은 길을 걸어 오던 공동체가 사분오열되어 버렸습니다. 신앙과 이념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였습니다. 그 속에는 그 그룹의 헤드들의 탐심과 그 작은 기득권의 대한 집착 때문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보다 교회가 더, 교회보다 노회가 더, 노회보다 총회가 더 아름답고 구별되어야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총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보실 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대로 계속 가면 총회도 교회도 무너질 것이 뻔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바른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와 진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섬김과 봉사 위에 축복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직 교회와 선교에만 심혈을 기울이며 걸어왔습니다. 교단이 이렇게 무너지니 저같은 사람도 교단을 세우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테지 아니하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원하지 않았지만 임원에 동참할 때 두 가지 마음을 다짐했습니다. 첫째 총회가 든든히 세워져도 그 어떤 이익을 구하지 아니할 것이다. 둘째 맑고 아름다운 총회가 세워지면 곧바로 떠나 나와 선교하는 일에 마지막을 바칠 것이다. 저가 스스로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은 총회를 아름답게 세우고자 하는 소망과 우리 모두가 이런 다짐으로 총회를 다시 세우는데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데 있어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과 기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 줄 때 가룟 유다는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강제적으로 넣어 준 것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과 우리의 마음의 동의가 결합 될 때 결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든 악과 죄는 나쁜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생각을 누가 줍니까? 그것은 마귀입니다. 문제는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마4장에서 유혹 받았을 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귀의 생각은 언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 그리고 마치 나를 위해 주는 것처럼 하고 다가옵니다. 마귀는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며 다가옵니다. 그때 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이기려면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냐?를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중 하나는 어떤 것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그 집사님은 기도가 끝날 즈음 무작위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성경말씀을 그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 집사님은 그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을 키워갔고 힘을 얻어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연 일도 잘 되었고 삶에 기쁨도 주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 기쁨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흉내내어 자기도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확 들어온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유다가 스스로 목 매어 죽은지라” 기분이 이상해서 또 다른 곳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해석하거나 판단하면 아니됩니다. 언제나 사회와 교회 앞에 유익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누구나 방황합니다. 좋은 직장을 가진자도 방황하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다 방황합니다. 방황이란 무엇입니까? 길을 모를 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길이 어디 있습니까? 궁극적로 인생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돈도 지식도 명예도 소용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이 죽음 앞에서 멸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영생의 길로 갈 것인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입니다. 권력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돈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학문을 쫒아 산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이 오면 그 모든 것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허망함만 남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아온 어제를 탄식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화려한 옷을 입고 살진 않았을지라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산 삶이라면 그 죽음의 시간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죽음의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시작을 행복함으로 시작하려면 우리는 욕심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려 했을 때 베드로는 거부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겸손한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베드로가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과 용서 그리고 축복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허물을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내가 발을 씻겨 주지 아니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끈으로 묶여 있습니다. 언제나 나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하는 생각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며, 확신이 아니라 자만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저주가 오고 죄 때문에 질병과 가난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난한자가 부해지고, 약한자가 강해지며, 실패한자가 성공의 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과 미래가 자신에게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 입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시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된 것뿐입니다. 성경은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고 예수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터득한 진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교회 나오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만 우리의 삶은 가뭄에 말라 죽는 곡식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빗줄기를 맞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저는 2009년 송도에 와서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참으로 도시의 차가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내 힘을 넘어 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가 송도에 올 때 꾸었던 꿈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가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은혜 입을 수 있을까요?를 고민하다고 생각난게 필리핀코피노였습니다. 그래서 상가에서 월세를 내면서 코피노 고안원을 세우기 위하여 계약금도 없이 땅보러 세부로 건너 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계약하고 땅을 매입하고 난 후 하나님의 지금의 성전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도 부흥 시켜 주셨고, 고아원 건물도 짖고 지금은 코피노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는 고아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 했고, 그 결과 저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냉엄하고 차가고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은혜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 딛을 수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따스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은혜만을 구하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섬김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3대 테너가수가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같은 무대에 오른적이 많은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카레라스는 마드리드 태생인 도밍고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일로 다퉜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1983년 카레라스는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수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라스는 백혈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그 단체의 도움으로 부단히 치료를 받으면서 병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카레라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 자선단체가 너무 고마워서 누가 설립한 기관인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가 원수같이 생각했던 플라시도 도밍고 였습니다. 도밍고는 자기와 적대시 하며 지내는 카레라스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투입해서 자선 기관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1987년 어느 날 카레라스는 파바로티와 도밍고와 함께 큰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네. 나를 용서해 주게.” 도밍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친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세. 자네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타고난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네” 그 후 서로 지난 모든 감정을 털어 버리고 그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승화되어 파바로티와 함께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면 으슥한 산골짜기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신앙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그를 돕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 치료소에 데리고 가서 치료 비용까지 챙겨주면서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마리아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는 덜 종교적이었는데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돌보아 줄 비용까지 내면서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려 했을때 그들이 당황하게 된 것은 가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조는 힘 있는 자가 굴림하고 억압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는 것을 가치로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굴림하려고 힘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기기 위하여 힘을 구합니다.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힘을 구하지만, 교회는 약한 자를 도우려고 힘을 구합니다. 우리가 왜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잘 먹고 자기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열방을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잘난 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사람조차 자기 우월주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되고 부흥에 목말라 하는 섬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높아지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전한 목표는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을 배우는 곳이고, 섬김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그 섬김의 정상에는 목사가 잇습니다. 목사가 섬겨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니다. 믿음의 삶, 신앙의 모법을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목사가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성도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직 만삭되지 못한 사람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행한 일을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들으면 자랑이 될까봐 미리 배수진을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솔직한 고백을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하여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현실도 힘들었습니다. 예배가 자유롭지 못하니 성도들도 잘 나오지 못하고 그 결과 헌금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연건평 4천평에 달하는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막막했고, 지금도 막막합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팬드믹의 책임이 교회로 전가되고, 그 결과 교회가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보고 아직도 교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건축으로 인하여 비록 재정이 팍팍 하지만 작년에 두 차례에 걸처서 공공기관에 불우이웃돕기 선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물론 마땅히 해야 하고, 지속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진짜 이유는 교회 욕 좀 그만하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참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교회가 어떻게 섬기느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을 가진신 분이신데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호주머니를 털어야 교회가 세워져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섬기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이고 섬기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 그리고 교회가 잘 되려면 우리는 사익을 취하려 하지 말고 공익을 위하여 섬기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하게 섬기면 축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맑은 마음으로 섬기는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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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6
  • 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오세종 목사
    • Mission
    2021-03-16
  • 남 달라서(민수기 14:24)
    설교제목 : 남 달라서 설교본문 : 민수기 14:24 따라서 “남과 같아서는 절대 남보다 앞 설 수 없다.” N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니드 바이러스를 줄인 말인데요. N바이러스를 설명한 글을 보니까 모든 조직을 보면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망해가는 조직을 보면 그 안에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안 된다. 희망이 없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해지면 이 부정적인 조직이 건강한 조직까지 감염시켜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직이 망하고, 기업이 망하고, 국가가 망하는 것은 부정적인 바이러스 때문이랍니다. 반면에 우리는 희망이 있다. 지금은 어렵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힘을 합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생각들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N바이러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나 암울하고, 우리 마음도 어둡습니다. 사람과 계층간에 골은 점점 깊어가고, 여기저기서 부정적인 모습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N바이러스를 퍼트려 우리 노회와 교단, 이 시대와 민족을 살리는 길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영향력이라고 합니다. 남다른 능력입니다. 본문 14장 24절 “달라서” 밑줄 치시고 하나님은 본문에서 갈렙이 다르다고 하십니다. 갈렙은 N바이러스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뭐가 달라도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갈렙은 세 가지가 달랐습니다. 1. 보는 눈이 달랐다. 시각이 달랐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똑같은 눈으로/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봤을 때/ 10명은 환경과 형편을 봄으로 스스로를 메뚜기로 본거예요. 그러나 똑같은 여리고성을 보고 왔지만 갈렙은 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저들은 우리들의 밥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봤던 갈렙은 여리고를 정복을 했고/ 벌벌 떨며 봤던 이들은 광야에서 다 업어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기 전에 바라보게 만드셨습니다. 헤브론 산꼭대기에서 동서남북을 쳐다보게 하셨고, 하늘의 뭇 별과 바닷가 모래알을 보여주며, 네 자손이 이같이 되리라. 아직 자식도 없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고 하십니다. 현실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출구가 안 보여도/ 믿음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보입니까? 베드로도 예수를 바라볼 때 물 위를 걸었지만 풍랑을 바라보는 순간 물에 빠졌습니다.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원망과 불평만 하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장대 높이 세운 구리뱀을 바라보는 자는 모두 다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안 쳐다보며 고집 피우다 죽어갑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소원합니다. 2. 갈렙은 말이 달랐습니다. 많은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든 안 받든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처럼요. “사람을 삼키는 땅, 장대한 아낙 자손이 살고/ 난공불락의 성, 대단한 군사가 있어/ 우리는 게임이 안 된다. 가면 죽는다.“ 그렇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사람들을 한숨을 쉬게하고/ 원망 불평을 하고,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결국은 광야에서 다 업어져 죽었습니다. 하지만 갈렙의 말은 달랐습니다. 그 땅에 산물인 열매를 따가지고 와서 보여주며 말을 합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한 그 땅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저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백성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살아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입술에서 고백하는 대로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멘/ 예배를 드렸어요. 헌금도 했어요. 기도도하고 찬송도 했어요. 그리고 나가서 입술로 부정적으로 말해요. 그러면 헛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헛 지꺼리 하지 맙시다.” 입술의 말을 바꿉시다. 그러면 반드시 잘 됩니다. 3.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갈렙은 85세 였지만 생각은 청년이었습니다. 45년전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포기한/ 거대한 아낙 자손이 사는 성, 헤브론이지만 나는 정복할 수 있다/ 생각이 달라요. 수 14:10-14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하나님은 갈렙만 칭찬합니다. “오직 내 종 갈렙”이라고 그랬습니다. “생각이 다르다” 그랬습니다. 생각을 바꿉시다. 잠언에 보니까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 그 생각대로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 생각하면 할 수 없습니다. 늙었다 생각하면 늙은이가 되는거고/ 젊다 생각하면 젊은이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늙으면 늙은 사람이고/ 생각이 젊으면 젊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이 모이면 젊은 노회가 되는 것입니다. 늙은 사람이 모이면 늙은 노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젊은 노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우리 갈렙처럼 보는눈, 하는 말, 맘의 생각이 달라져서 금년 한해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엄청난 하나님의 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Mission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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