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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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편지] 필리핀 송성호 이광숙 선교사
    할렐루야! 2021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사랑의 후원을 해 주셔서 2020년 잘 선교사역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또 시작됩니다. 멈춤 없이 해야 할 사역이기에 이렇게 기도의 편지를 드리며 새 로운 비젼을 가져봅니다.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귀한 사역 위에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어려움 끝, 곧 승리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1. 주일 설교하다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이송된 롤리목사님이(로드리게스비젼교회) 심장고통을 호소했는데 혈관확장수술을 잘 마치고 조금씩 회복중에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 니다. 2. 워드오브라이트교회(미츔목사님)가 해가 다르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현재 1층 건물로는 공간이 부족해 2층으로 증축을 필요로 합니다. 15년전에 어려운 형편속에 건축해서 낡 고 협소한데 속히 증축되어 더 부흥하는 선교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3. 사랑의 후원속 쌀과 마스크를 구입하여 나눔을 하고 한국에서도 마스크와 구호품을 보내주셔 서 성도와 전도용으로 잘 배분하였습니다. 후원해 주신 교회와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일거리가 없는 선교지 현지가정 가정이 많이 힘든 가운데 무엇이든 보내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일에 요즘 선교사가 이곳 저곳 부탁 드리며 도움을 청하 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를 드리며 계속해서 사랑 을 부탁드립니다. 변함없이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매달선교헌금 또는 특별 헌금으로 후원해 주시 는 교회와 성도님들, 성탄선물과 편지로 격려해 주시는 단체 그리고 동영상으로 선교사를 위로 해 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유아부 어린이들,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귀한 잠옷등 의복을 보내주셨는데 한국상황이 어려워 사업을 접으며 물건을 보내주신것을 받았을때는 마음이 무거운 선물이 되었습니다. 기도합니다. 동역자님들이 계시기에 새로운 힘을 가지고 또 한 해를 더해 필리핀 30년차 선교사역 2021년을 시작합니다. 아 멘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송성호 이광숙 드림 연락처: 630song@hanmail.net 카톡ID: 630song 인터넷폰: 070-7548-2529 선교후원: 국민은행 211-21-0428-421 (송성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 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 Mission
    2021-03-21
  • 총회 실행위원회 및 신년하례회 개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회장 강대석 목사)는 3월2일 청운교회에서 실행위원회 및 신년하례회를 개최했다. 1부 개회예배는 부총회장 김의철 목사의 인도로 서기 김종우 목사의 기도, 부서기 이성재 목사의 성경봉독후 총회장 강대석 목사가 ‘믿음이 없이는’이란 제하로 설교했다. 설교후 특별기도 시간을 통해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코로나19 종식과 회복을 위해’, ‘대한민국 교회의 사역의 회복과 역할을 위해’, ‘총회와 지교회의 부흥을 위해’ 합심기도했다. 이어진 예배는 교단총무 정덕화 목사의 광고후 명예총회장 박근상 목사의 축도 순으로 마무리됐다. 2부 실행위원회 회의는 이단대책위원장 정철옥 목사의 개회기도, 상정된 안건 토의후 규칙부장 이윤호 목사의 기도로 마쳤다. 3부 신년하례회는 강대석 총회장과 전국 노회장 일동이 케익 절단으로 시작됐으며 총무 정덕화 목사가 임원과 상비부서 및 노회장 소개후 증경총회장 박기수 목사, 원로목사 안홍기 목사, 공로목사 장현종 목사, 공로목사 조석행 목사 수능로 참석자들에게 덕담을 전했다. 이날 행사는 정치부장 박선원 목사의 마무리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2021-03-21
  • [설교]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제목 :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본문 : 요한복음 18장 1절~12절
    • Mission
    • 설교강단
    2021-03-21
  • [간증] 김의철 목사의 '목회는 영권이다'(1)
    목회는 고난의 연속이다. 많은 목회자가 바윗덩이처럼 묵직한 고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주저앉는다.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잘못을 성도나 외부 탓으로 돌린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원수를 갚으려 하면 목회는 더욱 어렵게 된다. 지난 35년간 목회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험난한 가시밭길에서 길어 올린 진리는, 고난의 압력을 이겨낼 힘은 오직 무릎 꿇고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목회자가 영권(靈權)을 가지려면 인본주의를 멀리하고 자신의 야망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2009년 인천 송도에 교회를 개척한 지 10년 만에 2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였다. 11차례 ‘50일의 기적’ 기도회를 진행하며 전국 중소형교회에 영적 활력을 불어넣고 목회 희망을 제시하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1960년 경남 거제도 송진포리에서 태어나 7남 2녀, 9남매 중 일곱째로 자랐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보건소장을 지냈다. 광복 후엔 미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통역을 했고 6·25전쟁 때는 야전병원 원장으로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아버지는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고향 거제도에 정착했지만 가정적이지 못했다. 신앙생활도 게을리 했다. 어머니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신 마산 문창교회에서 훈련받았다. 매일 밤을 기도로 지새우곤 했다. 어린 나는 매일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내가 출석한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거제 송진교회였다. 초등학생 때 밤이 되면 교회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과 별빛을 보며 세상을 비추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목중학교 2학년 다닐 때 갑자기 교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반주자가 도시로 떠난 것이다. “철아, 니가 반주해라.” 풍금을 만지고 놀던 나는 “예”하고 무조건 순종했다. 쉬운 찬송가 3곡을 골라 열심히 연습하니 기적같이 4부로 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주일날 발생했다. 어설프지만 연주가 가능한 3곡을 목사님께 드렸는데, 그만 다른 찬송을 부르시는 게 아닌가.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매일 풍금 연습을 했다. 1개월간 열심히 기도하며 연습했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찬송가를 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주일학교와 학생회 예배, 대예배 풍금연주를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외지로 나가시고 후임자로 당시 부산 고신대 신학생이었던 김철봉 전도사님이 주말마다 오셨다. 그분은 난생처음 보는 세계지도를 펼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철아, 니는 지금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 살고 있지만 봐라, 세상 넓데이. 저 바다를 건너면 큰 도시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다른 나라도 있데이. 너는 세계를 꿈꾸며 살아야 한데이.” 그때부터 나는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김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마친 뒤로는 거제도에 오시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청소년 시절 산과 바다밖에 없는 그곳에서 매일 밤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감 가운데 울며 기도했다. 그곳에선 중·고등학교를 마치면 어부나 농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19세가 될 때까지 거제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다. 공부를 마치면 산에 소를 풀어 놓고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 맘대로 영어설교를 한다고 외쳤다. 비가 오는 날엔 한 손에 소고삐와 우산을 잡고, 한 손엔 영어단어장을 들고 공부했다. 그러나 내게 신학교에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 어떻게 하면 신학교에 갈 수 있을까.’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면 풀밭에 주저앉아 주르르 눈물만 흘렸다. “하나님, 이 작은 자를 기억해 주이소. 목사가 되고 싶은데 길이 없다 아임미꺼.”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는데 나를 찾는 방송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오피니언
    2021-03-20
  • [특별기고]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선교사로 나가기 직전 한참 목회에 열중하고 있을 때 2천년대를 전후해 한국교회에 봄바람처럼 찾아온 열풍이 가정교회였다. 필자가 소속된 노회에서도 당시 가정교회에 대해 매우 권위있다고 자타로 부터 인정받는 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 했었다. 내 자신 그 때를 깃점으로 만 2년간 가정교회-목장교회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던중 그야말로 무엇엔가 이끌리듯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경험이 있다. 15년의 중국사역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산동성 칭다오에 있는 청도한인교회를 7년이상 출석을 했었다. 선교사 신분이다보니 소규모의 교회보다는 규모있는 교회라야 목회자에게 부담이 안된다고 판단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큰교회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2천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가정교회 바람이 2005년 부터는 중국의 한인교회에도 불어오게 되고 출석하던 교회도 2천년대 말부터 목장교회를 도입하였다. 사실 담임목사가 목장교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목회철학이 확실하다면 명칭이 가정이든 목장이든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회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청도한인교회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의 한인교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단체는 두날개였다. 두날개를 이끄는 대표는 청도한인 담임목사의 후배였는데, 아마도 후배가 이끄는 무브먼트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국 휴스턴한인교회 최영기목사의 가정교회에 교회 대표들을 보내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전 교회를 가정교회 체제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한인교회의 제직들은 대다수가 제조업체의 CEO아니면 무역회사 대표들이었는데, 전가족이 이주한 가정들도 있지만 30%정도는 남성만 사업차 현지에 상주하는 가정이었다. 카리스마가 강한 담임목사는 안수집사들을 모두 목자와 목녀로 세워 목장모임을 안수집사의 가정에서만 모이게 하였다. 문제는 매주 모임을 시작하기 전 전체 목원들이 모여 식사친교를 하는데 있었다. 보통 7~8명에서 많은 경우는 10명이상의 인원을 매주 식사대접 해야하는 안수집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담이었다. 목자를 맡고있는 안수집사회를 중심으로 목장모임에 대한 건의가 있었지만 담임목사는 자신의 넘치는 카리스마로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목장교회라는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만 끓이던 안수집사들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규정을 제정하는 규칙개정이었다. 통상 20년이상 연속으로 목회하고 은퇴를 할 때 결의를 통해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는다. 하지만 담임목사는 외국교회라는 점을 부각하여 15년이상 목회하고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추대해 줄 것을 요구했고, 평소 가정교회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절대반대"가 결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교회는 결국 그렇게 시험에 들어 1년이상을 목사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을 하게되고,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신자들도 한가정 두가정 교회를 떠나기 시작해 교회는 반토막나고 말았다. 가정교회-목장교회가 지향하는 목회는 "공동체결속"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재현하는 목회운동이다. 어쩌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꿈같은 목회방식이다. 중국 공산정권이 1949년 부터 1972년 까지 채택한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그들을 가난으로 부터 구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채택한 방식이 토지분배 정책이었다. 식구수대로 토지를 분배하여 마치 임대료를 지불하듯 일정액을 토지세로 납부하고 모두 자신들이 소유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장교회-가정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돌아보아 형편을 살피며 기도하자는 것이다. "서로 돌아본다"는 목회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지체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합심기도이다. "두세 사람이"마음을 모아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중국의 한인교회들 중에는 지역에 따라 중국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교회예배를 중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동기가 목회하는 광저우한인교회의 경우 거의 반년 가까이 예배모임이 중단된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목장교회가 정착된 덕분에 교회는 흔들림없이 목장별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교회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중국정부는 중국 전체에서 겨우 몇개의 한인교회에게만 모임을 허락해주고 그외의 교회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8일 모친상을 당했다. 코로나 시국이니 대다수는 계좌이체 부의금으로 문상하는 문화가 장착되다시피한 상황이다. 노회에서도 조위금으로 문상을 대체하고 있다. 더군다나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이다보니 문상객은 가까운 극소수의 친인척으로 한정되게 된다. 추천을 받은 근로복지 인천병원 장례식장에는 3개의 분향실이 있는데, 같은날 시차를 두고 안치하여 발인도 같은날 오전 6시반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을 하였다. 1층은 목회자 가정이라 각지의 목회자들이 동참해 거창한 발인을 하였고 우리 옆방도 외동딸 가정임에도 출석하는 교회가 주도하여 결코 외롭지않은 발인을 하였다. 문제는 바로 우리 모친이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하나에 손자하나! 결국 셋이서 조촐한 발인예배를 드렸고, 운구할 사람도 모자라 장례식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화장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신을 영구차에서 시신보관소에 안치한 후 순번이 왔을 때 다시 소각로로 이동하기 위한 운구에서도 화장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이보다 처량한 장례식도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공동체는 위대하다. 제아무리 코로나의 힘이 막대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공동체는 이기지 못한다. 문제는 담임목사의 공동체에 대한 목회철학이다. 공동체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과거처럼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동체라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초상집 문상을 꺼리는 사회관습 마저도 뛰어넘을 만큼의 결집력으로 뭉쳐진 공동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용회선교사> - 대신35회 - 1986-2003 경안노회 중부교회 담임 - 1997 경안노회 3대 노회장역임 - 2003년 4월 주중선교사로 파송(만15년 사역)
    • 오피니언
    2021-03-20
  • [큐티세미나] 큐티 묵상만으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렐루야~~유튜브 채널 시온성 복음방송 방송지기 시온성 교회 김연경 목사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힘든 저녁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열린 사역의 길에 매진하다가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기독교 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면서 노방 전도와 관계전도 그리고 부흥사로의 사역도 다 일시적인 휴식 기간에 골방에서 은둔 가운데 있었는데 일인 미디아 시대인 점을 감안하여 유투브 채널을 통해 복음 방송을 송출하라는 주님이 주신 지혜에 순종하여 유투브 채널에 시온성 복음 방송을 개설하고 화요일마다 큐티로 묵상한 강해 설교를 송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방송을 통해 전하고 있는 큐티 세미나를 지면을 통해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큐티 묵상만 제대로 해도 우리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재대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삶과 인생과 사건과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여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말씀이 내 발의 등이 되고 내 가는 길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반응하며 말씀에 길을 묻고 말씀에서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발견하고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함으로 말씀대로 기도할 때 기도의 힘과 능력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해결되고 열리고 뚫리며 순적함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큐티가 전부냐? 아니요 큐티가 전부가 아니라 말씀이 전부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말씀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으매 우리의 인생..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인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요 말씀이 네비가 되고 말씀이 이정표가 될 때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3] 여러분 먼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는 구절을 연구해 보기를 소망하는데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은혜가 마르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먼저 본문 서두의 그 잎사귀를 어떤 말로 적용해 보면 좋을까를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그 잎사귀를 고상한 말, 점잖은 말로 혹은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솔직히 우리 삶 속의 말로 나는 그 잎사귀를 나의 갈급한 것 지갑, 주머니로 통장의 잔고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적용해 보니 지갑이 마르지 않고 주머니가 마르지 않고 통장의 잔고가 마르지 않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망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개척 목회를 하다 보니 늘 재정의 문제로 고심했기에 그러나 그렇다고 재정이 마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본 적은 없는데... 재정의 어려움은 잠시뿐 곧 마르지 않게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데 내 뜻 내 생각 내 방향대로 이 궁리 저 궁리하며 구할 때는 잠시 마르다가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주여..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면 누구의 손을 통해서라도 마르지 않게 하시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후원을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 본 적도 없었고 또 할 줄도 모르는 게 저는 세상에 있을 때도 ‘꿈 질’을 할 줄 모르는 데 꾸자고 하다가 안 꿔주면 맘이 상하고 또 제대로 갚지 못하면 친구도 잃고 사람도 잃고 신용도 신뢰도 다 소멸되니까요 그래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더 이상 굶주리면 순교하지 뭐 이런 맘으로 하니까 물질의 고난은 잠시 뿐, 다 채워주시는 은혜가 있는데 한꺼번에 크게 주시지는 않고 딱 필요한 것만..채우시는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지 않게 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때도 상가 교회이고 10년 차인 지금도 상가 교회이지만 임대료는 한 번도 밀려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 반론을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혹은 잠시 머물다 떠날지라도 인도하고 채우시는 은혜로 마르지 않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19로 예배 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육의 그 마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음으로 지금도 목회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말씀이 마르지 않기를 소망하는 또 기도와 찬양이 마르지 않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굳건히 교회를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이 못난 목사의 곁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도 은혜의 마르지 아니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마르지 않는 잎사귀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여기서 ‘그는..’은 누구일까요 그래서 그는..이 누구인가를 본문 전체로 돌아가 보니까 이 전체 본문의 주제와 주어가 복 있는 사람이니 여기서 ‘그는..’을 복 있는 사람으로 적용해 봅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심은’의 문자적 의미는 옮겨 심겨 진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지로 옮겨 심겨졌나요? 척박하여 메마른 땅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오아시스가 있는 시냇가로 옮겨졌네요.. 그랬습니다. 제가 척박하고 메마른 세상과 세속에서 말씀의 시냇가로 진리와 충만한 은혜의 시냇가로 그동안 즐겨 찾던 쾌락의 땅에서 교회의 시냇가로 술‘주’자 주님에서 나의 구원주요 내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시냇가로 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의 시냇가로 그리고 성령의 시냇가로 옮겨 심어 졌네요. 할렐루야~~ 여러분..어때요..여러분도 이렇게 심은 나무가 되고 또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내 자녀와 골육지친들이 이렇게 옮겨 심겨지기를 소망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심은의 뜻이 옮겨 심겨진 것이라 했으니 피동형이네요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옮겨진 은혜가 있네요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임마누엘로, 이벤에셀로 여호와 이레로 또 라파 하시며 닛시로...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심령을 감찰하사 살피시며 돌아보시는 그래서 시편139편1~4의 은혜가 있는 예..시편 139편 1~4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아멘 정말 아멘입니다. 이렇게 옮겨 심어졌더니 철을 따라 즉 봄이면 봄 따라 여름이면 여름따라 가을이면 가을 따라 겨울이면 겨울 따라 철철이 열매가 열리는 데 풍성함으로 열리고 그 결과는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된다는 말씀으로 적용하고 나와 어려분의 목회 현장과 일터와 삶의 현장에서도 이런 형통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하네요..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그리고 형통이란 말을 잠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형통은 만사형통으로 만사 즉 만 가지의 일들이 다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뜻이냐가 중요하겠지요..그래서 먼저 신통하시기를 권면드립니다. 누구하고 통하자고요? 하나님의 신과 통하는 것이 신통이지요..그러니 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신통하면 신과 통하는 것인데 가짜신 말, 못하는 우상 신과 통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과 통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신과 통하기 위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이 무엇입니까 Quiet-Time 즉 조용한 시간에 큐티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통했으면 그 다음은요..하나님은 관계로 일하시니 하나님과 통한 후에 사람과 통해야지요 그래서 인통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하나님은 관계로 일하시는데 모든 섭리 또한 하나님의 작정하게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통하니 신통하고 사람과 통하니 인통하면 물질과도 통하여 물통하게 되는데 저는 이를 말하여 십시일반의 축복이라 적용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욥기입니다.. 욥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아멘 그렇습니다.. 욥이 하나님과 통하여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눈으로 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휼하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시 화합과 조화로움으로 모아져 십시일반의 축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삼통의 축복 혹은 삼권..즉 영권, 인권, 물권의 축복이라 합니다..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욥이 모든 고난의 끝에 이제 다시 물질이 마르지 아니함과 같이 되어 잘 먹고 잘 살다가 오랜 장수 끝에 잘 죽었다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적용하시렵니까? 무엇으로 반응하고 적용함으로 결다하고 순종하시렵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으니..우리 오늘부터 이 지면을 통하여 전해드리는 큐티 세미나에 푸~욱 빠져 보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할렐루야
    • Mission
    2021-03-20
  • 한기총, 제3차 마스크 나눔 행사 진행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직무대행 김현성)가 지난해 성탄과 설에 이어, 세 번째로 코로나 극복을 기원하는 마스크 나눔에 나섰다. 한기총은 지난 5일 한기총 사무실에서 제3차 코로나 극복 기원 마스크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대행 김현성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집단면역 형성을 위한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인 상황”이라며 “특히 2021년 봄 새학기 개학을 맞아 사회적으로 사랑의 손길이 절실한 장애 학생들을 중심으로 3차 마스크 나눔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또 “스스로 방어능력이 없고 생활을 영위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과 아동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정도가 바로 그 공동체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된다”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했다. 이번 나눔은 주로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기총은 WK뉴딜국민그룹(총재:박항진)으로부터 기부 받은 마스크 10만장을 한빛맹학교, 성동발달장애평생교육센터, (사)한국장애인사회복지회, 노인주야간보호센터, 발달장애인주간보호센터(실로암보호센터, 아름다운집, 그루터기, 안다미, 부천사랑터, 라온제나) 등에 각각 전달했다.
    • 교계소식
    2021-03-20
  • C.M.C 선교문화재단과의 M.O.U 체결
    추위를 녹여주는 훈흔한 소식이다. 2020년 12월 7일 11시 재단법인 평화(C.M.C)문화선교재단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헙무 제휴협약식이 있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는 추진위원장인 오세종목사와 김종엽목사, 총회장 강대석목사와 김종덕이사장과 사무총장 정덕화목사가 참석하였다. 앞으로의 발전되고 미래 세대에게 꿈을 주는 발전되어가는 관계를 형성해 나가자고 입을 모았고 잘될 것 같다는 다짐과 웃음으로 귀한 협약식을 축복했다.
    2021-03-20
  • [논평] 서울광장에서의 동성애 퀴어 행사는 중단되어야 한다
    서울시공무원 17인, 4.7 서울시장 후보자 입장 밝히라 성명 서울광장은 서울시민 모두의 것이며, 이를 사용함에는 서울광장 사용의 규칙에 반하여 논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2015년부터(당시 박원순 시장) 동성애 퀴어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 퀴어 행사를 하도록 꾸준히 장소 사용을 허락하였다. 이에 시민들의 공복(公僕)인 서울시 공무원 17인은 지난 2019년 5월 서울광장에서의 퀴어 행사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하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공직 사회에서 공직자로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데도 의견을 냈다는 점, 또 하나는 시민들의 마음을 담아서 분명한 공직자의 목소리를 낸 점이다. 그런데 2020년 4월 서울시 인권담당관 산하의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이하 서울시 인권위)에서는 의견을 낸 공직자들을 ‘성소수자의 인격과 존엄을 훼손하고 성소수자를 예외적 존재로 취급하도록 해서 차별·혐오 표현을 한 것으로 판단 한다’는 엉뚱한 결정을 내리고, 서울시장에게 <서울특별시 공무원 복무 조례>까지 개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해당 공무원들은 이 결정에 대하여 서울시장과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청구한 상태이다. 이들은 누구를 혐오하고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퀴어 행사는 음란한 행위였고, 이런 모습은 서울광장 사용의 규칙에 위반된다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 인권위가 이들을 혐오와 차별자로 몰아간 것은 언어도단이다. 한마디로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압력이다. 서울시에서 일어나는 것을 현장에서 가장 잘 알고, 그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이런 식으로 차별과 혐오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 인권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을 위한다기보다 이미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시민들의 보편적인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차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이다. 그러함에도 서울시 인권위가 이런 결정과 압력을 넣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본다. 행정소송에 대한 변론기일은 4월 1일로 잡혀 있는데, 이번 결정에 따라 공직자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이 제대로 반영되느냐, 아니면 차별에 관한 법률도 없는데, 우격다짐 식으로 동성애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들 17인의 공직자들은 이번 4.7 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이 될 후보자들도 객관적, 보편적, 건전성이 떨어져 논란이 많은 동성애 퀴어 행사를 서울광장에서 행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고, 악한 문화 권력들이 선량하고 건전한 것을 원하는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관을 몰아내고 있는 고약한 형국이다. 차기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지, 국민들의 정서와 가치관에 맞는 시정(市政)을 펼쳐야 한다. 직전의 고 박원순 시장처럼, 대다수 시민들이 원하지도 않는 동성애 퀴어 행사를 허락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 오피니언
    2021-03-20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2)
    2. 김치선 박사의 신학적 배경 김치선 박사의 신학을 정의하는 여러 목소리들을 감지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객관적 배경을 무시하고 상당히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첸 박사의 수제자, 정통 개혁파 신학자,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신학의 근본주의자. 등등의 평가이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신학적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분은 1970년대 대한신학교의 개혁파 신학의 흐름을 주도한 김치선 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교수와 그의 아들 김세창 박사의 견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분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김치선 박사를 모셨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김치선 박사가 근본주의 신학을 표방하였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개혁파 신학을 부분 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두 분들이 그러한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또 다른 갈등의 요소를 표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무조건 부친의 근본주의 신학을 수용하려는 김세창 박사와 교회사적 개혁파 신학을 수용해야 지속적이며 객관적인 신학을 수립할 수 있다는 최순직 교수와의 신학적 갈등이 저변에 숨어 있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중요한 언급이 있다. 안양대학의 신학적 변질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1975년 최순직 교수가 연구차 미국에 들렀을 때를 이용하여 김세창 박사는 비개혁파 교직원들을 대한신학교에 배치하여 버렸다. 그 후로 신학교 내에서의 갈등은 심화되어 각 주장하는 부류마다 자기들만 옳다 하여 잠잠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김세창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한국 최고의 종합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원대한 꿈을 외치고 다녔다. 어느 국가이든 또는 단체이든 내부에서 혼란스런 일이 발생할 때는 힘을 발휘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게 되어있다. 그 힘의 원천은 사람들의 조직, 경제적 실권, 그리고 정치적 우위 등이다. 결국 대한신학교는 경제적 힘과 교육부의 배경을 바탕으로 종합대학이 되어 안양대학으로 변해 버렸고 보수주의 신학은 자취를 감추어 가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어떤 분은 개혁파 신학도 근본주의 신학도 보수주의 신학인데 서로가 공통분포를 형성할 수 없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두 부류의 신학은 보수주의 신학으로 명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적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주의 신학은 너무나 단순하고 지엽적인 신학에 한정되어 있다. 그 신학의 주제는 성경의 무오성,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적 부활, 그리고 육체적 재림이다. 이 5가지 신학의 주제는 19세기 유럽의 고등비평주의와 종교혼합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교리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다섯 가지를 따로 분류하여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신학적으로 절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혁파 신학이 주장하는 신론, 인간론, 교회론, 그리고 종말론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지엽적인 신학을 강조하게 될 때 그 신학이 불원간에 주관화 되어 자유주의로 기울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세기 초엽 근본주의 운동의 뿌리가 되었던 5가지 교리는 1930년대 들어와 절정을 이룬 후 1950년대에 들어와 신근본주의(Neo Fundamentalism) 운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신근본주의 운동이란 강한 주관적인 입장과 더불어 성경의 문자주의를 내세우며 분리주의에 열을 올리는 운동이었다. 근본주의의 극단적인 주관주의 신학운동은 1948년에 WCC를 강력 대항하기 위해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를 중심으로 ICCC를 조직함으로 시작되었다. WCC를 대항하는 운동은 잘 한 일이나 ICCC 단체 이외의 어떤 보수주의 신학은 물론 개혁파 신학까지도 정죄해 버리는 분리적인 일에만 피켓을 들고 나온 운동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들의 지엽적인 신학 운동은 결국 신복음주의로 떨어져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학계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근본주의의 두 가지 신학적 문제점을 발췌해 보면세대주의적 요소와 일반은총론의 배격이다. 세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달비(John Darby)와 20세기 초 스코필드(Cyrus Scofield)에 의해 시한부적 전천년주의를 강하게 강조하는 역사적 종말론의 신학이다. 계시록 20장의 천년 기간을 문자적으로 보고 일반 역사와 구별된 획기적인 기간으로 인정하는 신학적 입장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신학적 입장은 일반은총의 배격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그리고 과학 분야를 세상의 일로 취급하고 죄악시 하는 경향성을 드러내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 사상이다. 즉 만물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을 대립적인 관계로만 취급한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탄의 영역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응용하시는 허용적 섭리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1920년대 당시의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웨슬리안적 보수주의, 개혁파적 보수주의, 그리고 기타 복음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총 집합체를 형성하여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그 대항의 원인은 자유주의자들이 제공했다. 그 자유주의자들은 당시 말도 되지 않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고 나왔다. 상식 이하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신학을 주장하며 성경을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극단적인 성경 배타주의를 역공하기 위해 미국의 복음적 요소를 소유하고 있는 교회들이 하나의 집합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응전략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신학적 입장인데 하나는, 종말론에 대한 강렬한 신학적 입장과 또 하나는, 합리적이며 과학적 입장을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반은총에 대한 배격이 발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많은 신학자들과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이었다. 너구나 이러한 근본주의 사상이 가장 활발하게 성행하였던 1930년대 김치선 박사께서 미국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하나의 비화를 소개하면 김치선 박사는 그분의 딸이 교회 행사에 참여하여 율동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너는 잡년이다.” 라는 말을 하셨다는 사건은 그분이 얼마나 일반은총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김치선 박사가 병중에 눕게 되어 오래 동안 침대의 신제를 면치 못하게 되었을 때 온 가족들에게도 TV를 시청하지 못하게 하시다가 너무 무료한 나머지 TV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일화는 그분의 신학적 입장을 대변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이 저술한 구약사기(The History of the Old Testament)를 살펴보면 구약 역사의 시대적 분류법이 언약론이나 하나님의 주권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 세대주의적인 요소가 깊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나타난 구약의 인물들과 사건들의 발췌는 구약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신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물론 처음 신앙의 세계에 들어온 초 신자라도 그 깊이와 넓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유효한 저서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시대의 아들임을 벗어날 수 없다. 1920년대 이후 당시 미국에서는 개혁파 신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자들은 물론 웨슬리안주의적 복음주의 자들까지 합세하여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교리적 전쟁을 하는 시기였다. 5가지 신학적 이슈(성경의 오류 주장, 동정녀 탄생 부정, 대속적 죽음 부정, 부활 부정, 그리고 육체적 재림 부정)를 들고 나온 자유주의자들과 교리적 전쟁을 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이 때 김치선 박사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당시의 사상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 1914년 이후 30년 어간에 세계 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치렀던 세계는 온통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피안을 세계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천년왕국설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특히 당시 한국교회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거의 근본주의적 천년설을 주장하는 분들이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사경회에 참석하면 거의 모든 강사들이 역사적 종말론에 있어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를 설파하는 설교를 들었다. 오늘날의 신학적 입장을 고려해 볼 때 보수주의 영역 안에서 역사적 전천년주의, 후천년주의적 육체적 재림론, 그리고 무천년주의적 재림론 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시대적 아들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교회론에 있어 당시의 로마 캐톨릭과 제왕들의 관계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정교하게 정립된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대입해 보면 너무나 원시적인 신학의 피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칼빈의 신학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 당시 엄두도 낼 수 없는 정교분리를 주창하고 나선 일은 그 천재성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그가 남김 업적은 너무나 지대하다. 당시의 근본주의 운동과 한국의 정세로 볼 때 하나님을 신앙하는 민족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실행하는 운동이었다. 매 맞고, 투옥되고, 그리고 가족이 흩어짐을 당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운동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치선 박사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개혁파 신학의 정통성을 유지해야 미래의 후손들에게 올바른 신앙적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성장에 있어 월등한 방법론이나 특별한 사회적 이슈를 적용하면 일시적 부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순교자들이 남겨놓은 교회사적 신앙고백의 노선을 버리게 되면 언제인가는 교회가 타락의 길을 면지 못하다는 것이 역사의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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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회
    202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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