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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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회 선교사 

선교사로 나가기 직전 한참 목회에 열중하고 있을 때 2천년대를 전후해 한국교회에 봄바람처럼 찾아온 열풍이 가정교회였다. 필자가 소속된 노회에서도 당시 가정교회에 대해 매우 권위있다고 자타로 부터 인정받는 강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 했었다. 내 자신 그 때를 깃점으로 만 2년간 가정교회-목장교회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하던중 그야말로 무엇엔가 이끌리듯 중국으로 떠나게 된 경험이 있다.

 

15년의 중국사역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산동성 칭다오에 있는 청도한인교회를 7년이상 출석을 했었다. 선교사 신분이다보니 소규모의 교회보다는 규모있는 교회라야 목회자에게 부담이 안된다고 판단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큰교회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에서 2천년대 초부터 불어닥친 가정교회 바람이 2005년 부터는 중국의 한인교회에도 불어오게 되고 출석하던 교회도 2천년대 말부터 목장교회를 도입하였다. 사실 담임목사가 목장교회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한 목회철학이 확실하다면 명칭이 가정이든 목장이든 공동체를 지향하는 목회는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청도한인교회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의 한인교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단체는 두날개였다. 두날개를 이끄는 대표는 청도한인 담임목사의 후배였는데, 아마도 후배가 이끄는 무브먼트라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국 휴스턴한인교회 최영기목사의 가정교회에 교회 대표들을 보내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전 교회를 가정교회 체제로 개편을 하였다.

 

당시 한인교회의 제직들은 대다수가 제조업체의 CEO아니면 무역회사 대표들이었는데, 전가족이 이주한 가정들도 있지만 30%정도는 남성만 사업차 현지에 상주하는 가정이었다. 카리스마가 강한 담임목사는 안수집사들을 모두 목자와 목녀로 세워 목장모임을 안수집사의 가정에서만 모이게 하였다.

 

문제는 매주 모임을 시작하기 전 전체 목원들이 모여 식사친교를 하는데 있었다. 보통 7~8명에서 많은 경우는 10명이상의 인원을 매주 식사대접 해야하는 안수집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담이었다. 목자를 맡고있는 안수집사회를 중심으로 목장모임에 대한 건의가 있었지만 담임목사는 자신의 넘치는 카리스마로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연히 목장교회라는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만 끓이던 안수집사들에게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원로목사에 대한 예우규정을 제정하는 규칙개정이었다.

 

통상 20년이상 연속으로 목회하고 은퇴를 할 때 결의를 통해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는다. 하지만 담임목사는 외국교회라는 점을 부각하여 15년이상 목회하고 은퇴하면 원로목사로 추대해 줄 것을 요구했고, 평소 가정교회 문제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절대반대"가 결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교회는 결국 그렇게 시험에 들어 1년이상을 목사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첨예한 대결을 하게되고,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신자들도 한가정 두가정 교회를 떠나기 시작해 교회는 반토막나고 말았다.

 

가정교회-목장교회가 지향하는 목회는 "공동체결속"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재현하는 목회운동이다. 어쩌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원리와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꿈같은 목회방식이다. 중국 공산정권이 1949년 부터 1972년 까지 채택한 공동생산 공동분배는 그들을 가난으로 부터 구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채택한 방식이 토지분배 정책이었다. 식구수대로 토지를 분배하여 마치 임대료를 지불하듯 일정액을 토지세로 납부하고 모두 자신들이 소유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목장교회-가정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서로 돌아보아 형편을 살피며 기도하자는 것이다. "서로 돌아본다"는 목회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어려움에 처한 지체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합심기도이다. "두세 사람이"마음을 모아 기도를 할 때 우리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중국의 한인교회들 중에는 지역에 따라 중국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교회예배를 중지당하는 경우가 있다. 동기가 목회하는 광저우한인교회의 경우 거의 반년 가까이 예배모임이 중단된 때가 있었는데, 다행히 목장교회가 정착된 덕분에 교회는 흔들림없이 목장별 모임을 계속 이어가며 교회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중국정부는 중국 전체에서 겨우 몇개의 한인교회에게만 모임을 허락해주고 그외의 교회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8일 모친상을 당했다. 코로나 시국이니 대다수는 계좌이체 부의금으로 문상하는 문화가 장착되다시피한 상황이다. 노회에서도 조위금으로 문상을 대체하고 있다. 더군다나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이다보니 문상객은 가까운 극소수의 친인척으로 한정되게 된다. 추천을 받은 근로복지 인천병원 장례식장에는 3개의 분향실이 있는데, 같은날 시차를 두고 안치하여 발인도 같은날 오전 6시반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을 하였다. 1층은 목회자 가정이라 각지의 목회자들이 동참해 거창한 발인을 하였고 우리 옆방도 외동딸 가정임에도 출석하는 교회가 주도하여 결코 외롭지않은 발인을 하였다.

 

문제는 바로 우리 모친이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하나에 손자하나! 결국 셋이서 조촐한 발인예배를 드렸고, 운구할 사람도 모자라 장례식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화장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신을 영구차에서 시신보관소에 안치한 후 순번이 왔을 때 다시 소각로로 이동하기 위한 운구에서도 화장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이보다 처량한 장례식도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공동체는 위대하다. 제아무리 코로나의 힘이 막대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공동체는 이기지 못한다. 문제는 담임목사의 공동체에 대한 목회철학이다. 공동체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과거처럼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공동체라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초상집 문상을 꺼리는 사회관습 마저도 뛰어넘을 만큼의 결집력으로 뭉쳐진 공동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용희선교사.jpg

<김용회선교사>

- 대신35

- 1986-2003 경안노회 중부교회 담임

- 1997 경안노회 3대 노회장역임

- 20034월 주중선교사로 파송(15년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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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코로나보다 강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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