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목회 초년생때 목회자 수련회에 당시 지명도가 높던 박조준 목사가 강사로 참여하여 후배들을 위해 교회 성장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과 견해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질문 시간에 선배 목사 한 분이 매우 돌발적인 질문으로 강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질문의 요지는 수용시설에 비해 참석자가 너무 많아 예배 횟수를 여러 번 나눠드리는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 선배는 "목사님! 당장 교회를 쪼개세요. 그리고 근방의 어려운 개척 교회에 교인들을 보내주세요!"

 

순간 참석자 일동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적막 강산을 경험하게 되었다. 목회 초년생인 내 가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정말 놀라운 용기요, 훌륭한 정신이다. 왜 교회들 그리고 유명 목회자들은 그렇게 못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자신의 교회가 숫자가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려 하는 것일까?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써있을까? 나도 성경을 수십 독 했다마는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없다.

 

대형교회가 형성되는 이유는 첫째는 목회자의 능력일 것이다. 다른 목회자와 비교하여 그에게만 있는 특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의 교회를 선호하게 된다. 구원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보다는 기왕이면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보다 더 탁월한" 지도자를 선호하게 되다보니 어쩔수 없이 교회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날수 밖에 없다.

 

특히 신도시에 설립된 교회들의 경우 발전을 위해서는 때때로 눈살찌푸리는 현상에 노출되기도 한다.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하여 그냥 지나치려 한다. 교회가 부흥을 하기 위해서이니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고 위안을 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러한 행태를 용납하실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 교회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닌, 이미 설립된 교회의 후임 목회자로 부임하는 분들의 경우는 입장이 다르다. 목회자의 결원이 생겨 새로운 담임을 청빙할 때 후보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교회의 새로운 담임이 되고자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단 담임으로 청빙이 된다면 그들은 개척 교회의 목회자들처럼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기존 교회를 잘 유지하고 경영하면 된다.

 

개척교회의 목회자는 교회의 발전을 위해 전심전력 한다면 기존 교회의 후임자로 부임한 목회자는 계속적인 발전과 안정이라는 현상 유지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 비록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다 보니 자수성가한 목회자에 비해 재량권은 제한적일 지라도 기도와 연구라는 본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니 매우 이상적인 목회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기존 교회에 부임해 넉넉해진 재정과 시간적인 여유를 남용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주로 지인들과의 교류에 많은 시간을 할당한다던지, 목회 이외의 주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 한다. 목회자가 골프를 즐기는 것은 건강을 위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회적인 주제의 모임을 결성하고 그 모임의 일원이 되어 "목사인지, 시민 단체 지도자인지"구분이 모호해 진다면 이 또한 정도가 아니다. 이들은 열렬히 기존 교회가 잘못됐다고 비판을 하려 든다.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현상이다. 진정으로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기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지라도 일정한 범위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야말로 "죽기 살기"식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자신들의 목소리가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보수가 저토록 지리멸렬하는 이유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17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해 지상파 방송을 이용한 토론회에서 상대의 약점을 들춰낸 덕분이다. 방송을 통해 외부로 노출된 상대의 약점은 대통령 퇴임 이후 뒤바뀐 정권에 의해 사법처벌을 받는 신세가 되었고 오늘날과 같은 정치적 혼란 상태를 야기하고 말았다. 마찬가지이다. 교회에 잘못이 있다고 기존 언론을 통해 까발리는 그들의 행태는 결국 한국사회로부터 교회가 멀어지는 부작용을 발생시켰으니 그야말로 자업자득인 셈이다.

 

개혁주의 신학 노선을 지향하는 보수 교단의 신학자와 목회자 일부 중에서도 좌파가 존재한다는 것은 현재의 정치 세력과 코드를 같이 해서라기보다는 기존 한국교회가 너무나 부패하고 잘못됐으니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몸만 개혁주의 노선을 선호하고 몸만 보수 교단에 속해 있는 이중인격자들도 적지 않다.

 

25년전 호남 지역에서 개최된 영성 집회에 참석해 충격적인 경험을 한 것은 영성 집회에 참석한 지역목회자들의 정치적 성향이었다. 영성 집회에 참석한 목회자의 입에서 굳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은 필요치 않다. 참석 본연의 목적인 영성 수련에 올인하면 된다. 그토록 정치에 관심 많은 목회자들이 영성집회에 참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울의 신유 능력을 본 무당이 "돈을 줄테니 가 능력을 내게도 전수해 달라"는 요청과 다르지 않다.

 

아쉽게도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 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목사라는 직업은 "해 볼만한 직업"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더 이상 기도나 묵상은 필요치 않다. 그들은 지금의 펜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현상에 너무나 쾌재를 부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현상이 계속 지속되기를 간절히 간구할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관점의 차이가 부르는 비극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행정 당국의 명령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리고 행정당국의 지시를 거부하고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목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태그

BEST 뉴스

전체댓글 0

  • 2351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좌파를 선택한 목사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