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친목회 회원이 된다거나 새로운 취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규적으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리 설교를 들어 보아도 그것은 무익할 뿐이다.

 

 아무리 설교가 훌륭하더라도, 따분하고 화나게 하며, 혼란스럽고 외면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말씀이 말씀이 결코 달고 오묘하지 않다. 바울이 이 점을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바울은 같은 장에서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것을 받을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죄로 가득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완전히 무지하고 불감한 상태이 때문에 설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니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서 외면해 버리고 만다. 필자는 고1학년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친척집에 있었는데 그 집이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따라 다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시간은 설교시간이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도 없도 교감도 없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에는 창세기 1:1절부터 다 믿어질 뿐 아니라 어느 말씀을 들어도 꿀송이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에 끌려 나온 사람의 처지가 그러할 것이다. 사회적인 또는 사업상의 이유로 자주 교회에 출석하고 얼핏 보기에 진실 된 것처럼 보이는 신앙고백을 한다 하더라도, 진지하고 성경적인 설교에 대하여 약간의 관심을 갖거나 아니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눈에 띄지 않게 잘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거스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설교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선입견은 항상 말씀으로 소통하는 것을 방해한다.

 

 소망교회 원로 목사이신 곽선희 목사님은 듣지 않으려는 사람과 행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의뢰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다면 설교에서 유익을 얻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교에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기 위해서 듣는 자는 먼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의 등급이 아니고 성령을 모신 사람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하셨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 : 9, 10, 15, 16).

  

이미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듯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없이는 진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성령은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시고 삶의 모든 거승ㄹ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주신다. 성령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을 갖게 해주신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났는가 하는 증거 가운데 하나는 말씀의 선포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 본다면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복된 소식을 선포하도록 어디에나 설교자들을 보내셨다.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당장 성경을 진실 되게 전파하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씨가 뿌려지고 나면 모든 것이 땅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밭에 관한 비유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씨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문제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4:2). 

 

 설교가 단순히 고막을 때리는 파장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믿음으로 합해져야 한다. 좋은 씨가 좋은 밭에 뿌려지기 전에 먼저 좋은 밭을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곡식을 잘 가꾸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비유에 따르면 좋은 밭이라도 서로 다른 소출을 낸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13:8).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영혼에 풍작을 거두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15:8).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과실을 많이 맺는 신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씨를 뿌리시고 과실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매우 방법이다.

 

 설교는 이미 심겨진 곡식에 물과 거름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들고 지친 영혼이 힘을 얻고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말씀의 역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영혼에 쌓인 딱딱한 흙 덩어리들을 뒤엎고 잡초들을 뽑아냄으로 좋은 씨앗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 준비와 선포하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거기에 못지 않게 듣는 사람도 잘 준비를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준비도 설교자의 준비 만큼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면, 설교자의 준비는 헛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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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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