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교회의 긴장관계 속에서
글/박근상 목사 (신석장로교회)
본 회퍼가 반 나치 운동을 하고 있을 때에 미국의 친구 폴 레만에게 제안을 받는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패망할 때까지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 와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에 자신이 미국에 잘못 왔음을 깨닫고 그의 심정을 기록하였다.
“나는 유니온 신학교의 학장인 코빈 박사의 집 정원에 앉아서 기도하는 중에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았다. 내가 미국에 온 것은 잘못이었다.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있을 이때에 나는 독일의 그리스도인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이때에 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받지 않는다면 전후에 나는 독일 재건에 참여할 권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본 회퍼는 히틀러 제거 운동에 가담하다가 1943년 게슈타포에게 채포 되었고 1945년 4월 9일 교수형을 받았다. 그때 나이가 39세였다. 목사로서 사람을 제거하는 일에 가담한 것에 대하여 묻는 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친 사람이 큰 도로로 차를 몰고 나간다고 하자. 내가 목사로서 그 차에 희생당한 사람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차에 뛰어 올라 미친 사람의 손에서 핸들을 빼앗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기독교가 개인의 고상한 윤리와 개인의 구원만으로 모든 책임을 다 한다고 볼 수 없다. 진정으로 거룩한 윤리는 개인 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제 종교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많은데 이 세상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고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결단은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신앙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개인적인 문제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지 세상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말한다. 기독교가 개인의 윤리만 주장하고 교회가 속한 사회나 나라에 대하여 무관하다고 여긴다면 기독교는 개인윤리로 울타리를 벗나지 못할 것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12:17)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로마 황제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성전에 신성모독하는 주화를 바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지 않으셨다면 이 세상을 일찌감치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의와 공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의와 공의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을 때 신자들이 고요한 중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기독교가 시작 될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위협을 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왕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다른 왕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교회에 대하여 세상의 왕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왕정시대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교회가 개인구원에 몰두하고 현실 정치에 무관한 존재가 되어주기를 원한다.
권력은 온갖 악을 저지르면서 교회에게 약간의 선의를 베풀어 주며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 원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권력은 자기 입맛에 맞는 쪽으로 교회를 조종하고 길들이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위치는 권력자의 그늘 아래 놓이게 되고 세상을 향하여 양심과 공의를 외치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영의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권이나 정치나 국가가 하는 일과는 무관하게 존재해야 말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외딴 섬에 있는 외로운 등대나 길가에 버려진 한 줌과 티끌 같은 종교가 되고 말 것이다.
기독교 국가였던 나라들이 사회주의가 되었던 이유는 그 시대의 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큰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차 대전을 일으켰던 제국주의 선동과 속임수에 대하여 교회(천주교도 포함)가 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