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4.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

 

사실상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은 깊은 관계가 없다. 교단 형성의 기초를 제공하신 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 국가의 시책인 한 교단에 한 신학교를 원칙으로 운영하라는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ICCC와 관계하여 성경장로회의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교단을 탈퇴하기를 원치 아니했다. 여러 선교 단체에서 유혹의 손길을 내 밀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교회의 목사로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대한신학교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다시 반복되고 말았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신학교의 기득권은 필연적으로 교단의 전통으로부터 빗나가는 역사를 반복했다.

 

교회역사는 신학적 문제로 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정치적 문제로 신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중에 한 가지 사건이 바로 김치선 박사를 정치적으로 몰아 교단을 떠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후에 대한신학교는 ICCC와 결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치선 박사와 ICCC와의 선교적 방법론의 대립이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신학교 중심으로 선교를 하려는 의도였으나 ICCC는 지방이나 개체적 단체를 통해 선교정책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1968년 김치선 박사는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 대한신학교를 중심하여 독자적으로 교단을 건설해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대신교단을 설립하기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만든 분이 김치선 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목사이시다. 당시 김세창 박사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대한신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대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총회장이 되신 분은 최순직 목사이다. 19724월 제 7차 총회에서 성경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측으로 명칭을 개정하고 최순직 목사께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본교단의 명칭과 사명이란 제하의 선언문을 신문지상에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는 교단직영신학교라는 경영체제에 강박관념화 되어 있을 정도의 교단신학에 집착되어 있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신학교가 교단의 정치제도아래 운영되는 교단직영 신학교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구미에서는 신학교들이 교단의 배경을 두고 운영하기보다 신학에 기초를 둔 사설학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교단들과 인준관계를 형성하여 교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리폼드(Reformed), 탈봇(Talbot), 카버넌트(Covenant), 그리고 비블리칼(Biblical) 신학교 등이 교단의 정치적 지배를 받지 않은 즉 사설 신학교들이다. 그 이유는 교단 정치에 의해 신학적 변질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과거에 보수주의를 지향했던 하버드,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들이 교단과 관계를 가지고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 왔었다. 그러나 교단 정치가 들어옴으로 정치적 술수에 의해 몰래 물밑작업을 통해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을 학교에서 몰아낼 수 없는 지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신학교는 교단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1920년대 메이첸(Machen)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으나 결국 교단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의 역사가 어쩌면 그와 비슷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김치선 박사는 신학교와 교단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시대를 앞서가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시간적으로 교단설립보다 바른 신학교 설립이 우선되어야 그에 따라오는 교단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대한신학교는 그러한 역사를 김치선 박사에 의해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던 대한신학교가 김치선 박사의 아들 대에 이르러 벧엘 기도원 땅을 판 대가를 가지고 종합대학을 세우려 하다가 오히려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어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에게 학교가 넘어가 버리고 이제는 타 종교의 재단에 학교를 인수 하느냐? 마느냐? 의 수치스러운 현상에 처해 있다. 대한신학교를 거쳐 온 사람으로서 대신출신이라는 신학의 명암을 내놓기가 부끄러운 형편이 되어버렸다.

 

1970년대 이후 대신교단은 장족의 발전을 하여 한국에서 장로교 교단으로서 5대 교단의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짧은 역사를 가진 교단이 이렇게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 신학적 원인, 선교적 개척정신,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다시 대신교단이 여러 교단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문제는 차후에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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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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