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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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 강대석 목사

 

우리 교단은 자생적 교단이다. 설립하신 김치선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신학정신이 한국교회 교계 속에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남겨진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든 틀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세워나가기를 소원한다.

 

1. 개척정신: 가서 우물을 파라

 

김치선 박사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게 ‘28천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에 있는 교회 수는 3,000 교회가 안 되었다. 더욱이 한 교단에 하나씩만 신학교를 허용했기 때문에 총회에서는 떳떳한 총회신학교가 있다며 대한신학교를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해도 마땅히 사역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김치선박사는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에게 일할 수 있는 교회가 없으면 도리어 전국 방방곡곡에 나아가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라고 가르쳤다. 전국 28천 동네에 교회를 세워 이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는 이 민족의 십 분의 일이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고 결심하여 삼백만 부흥전도회를 결성하였다. 70인의 전도목사들을 전국에 파송하여 큰 역사를 시작하셨는데 그 중에는 박재봉목사, 이성봉목사, 손양원목사등이 있었다. 이 운동은 6·25전쟁이 일어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렇듯 구령의 열정 그리고 개척과 도전정신으로 대신 교단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교단 등이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그 이전에 있던 교회들의 분열을 통하여 교단이 구성되었던 반면에 교단은 순전히 졸업생들이 개척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 설립하고 그 교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의 힘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진 자생교단이다.

이러한 개척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 편한 길을 쫓는 시대적 상황을 따를 것이 아니라 주님 부르신 그곳이라면 영적 야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대신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발자취를 보여주었던 믿음의 선배들과 달리 현재 교회들마다 믿음의 야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을 때가 있다. 무엇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야성을 사라지게 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영혼구원에 대한 무관심이 신앙의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고 본다. 영혼구원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우리의 관심과 생각을 변질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과 생각이 주님과 멀어지고 있다.

 

교회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영혼을 향한 갈망이 있는가? 외적 풍요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내적으로는 빈곤함을 호소하는 주변의 영혼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외적 자유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내적으로는 결박된 채로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주변의 영혼들의 영적 상태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교회의 본질은 영혼구원에 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교회의 비전이며 목적이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영혼구원이라는 목적에 기반 되어져야 한다.

 

희망도 소망도 없던 이 땅 가운데 구령의 열정과 개척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하여 우리 교단은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지금 우리를 통하여 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고대한다. 다시 우리 대신인의 중심 가운데 ‘28천 동리에 가서 우물을 파라는 간절한 구령의 열정과 개척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이 샘솟기를 바란다. 믿음의 야성을 가지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데에 앞장서는 교단이 되기를 고대한다.

 

2. 애국정신: 한국의 예레미야

 

김치선박사는 당시 한국의 예레미야로 불리셨다. 설교와 강의 때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항상 눈물로 호소하셨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나라와 민족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나라가 망해서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앞장섰다. 21살에 학생대표로 함흥의 영생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3·1운동을 준비하다 일본경찰에 구속되어 서대문형무소에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유학을 마치고 일본 동경에서 신숙중앙교회 사역을 할 때에 일본이 조선인을 내선일체라 하면서 조선인교회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조선사람도 내선일체이니 교회에서는 일본말로 설교해야한다는 것이었는데, 교회의 중직자중 한사람이 김치선박사가 조선말로 설교했다고 신고를 하여 수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남대문교회로 부임하셨을 때에 그 무섭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매일 새벽마다 강단에 엎드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없이 우셨다. 그리고 해방되었을 때에 신앙의 자유로 인하여 강단에 설 때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는 일제하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서러움으로 우셨고 해방 후에는 기뻐서 우셨고 망해가는 심령을 위해서 우셨다. 그는 새벽마다 해방의 기쁨과 우리 민족을 향한 구원의 문제, 특히 한국이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부르짖었다.

 

그는 민족과 나라 사랑의 길은 복음전파를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한국을 복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3천만명이었는데 우리 민족의 십 분의 일인 3백만명을 하나님께 바치자는,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기 위하여 28천동네에 교회를 세워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셨다.

 

김치선 박사가 보여주었던 들끓는 나라 사랑은 우리 대신인들이 품어야 할 고귀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이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때로는 적극적인 신앙고백을 통하여 나아가야 한다.

 

정교(政敎)분리라는 용어의 왜곡은 거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무관심이 곧 경건이라는 등식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정교분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원칙은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신대륙으로 건너가 국가를 세운 청교도들이 이런 종교 박해가 신대륙에서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원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상당수의 교회와 교단들이 민족과 나라 문제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너무나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비난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경에도 끊임없이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통치자들에게 그 시대 시대마다 영적지도자들이 통치자와 권세자,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을 보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이 올바른 통치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한다. 하지만, 목사에게는 제사장직도 있지만 선지자직도 있는 것이다. 선지자는 시대적 상황을 읽으며 때로는 하나님 주권을 훼손하려는 본격적인 움직임들에 대해서는 기도를 넘어서 신앙고백을 통하여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제강점기 영적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만 하지 않았다. 학생대표로서 참여했던 김치선박사 뿐만 아니라 3.1운동을 주도한 지도자의 상당수가 목사였으며, 그리스도인이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일제의 만행에 맞선 분명한 목소리와 구별된 믿음의 행동을 보였다.

 

그런데 그 비슷한 시기 독일 내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나라를 향하여 그 어떤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독일의 그리스도인들과 영적지도자들은 히틀러의 만행 앞에 침묵했다. 그들이 분명 기도했을지 모르지만, 기도에 따른 분명한 목소리와 구별된 믿음의 행동 등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한 역사를 남겼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의 한구석 구석에서 빛을 내고 맛을 내어야 한다. 사회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신앙고백을 통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의 위험성에 대하여 알려줄 사명이 있다. 세상 가운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라고 한다면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명이다.

지금 우리는 유럽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게 된다. 그 나라 안에 하나님 주권이 완전히 무너지고 국민 주권의 목소리가 대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성경적 가치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유럽 대다수의 국가들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할 때 교회지도자들은 아무런 반대도 할 수 없었고 지지해버렸다. 그로 인해 유럽에서는 부부가 아이에게 동성애가 잘못되었다는 교육을 했다가 양육권을 박탈당하거나, 노방전도를 했다고 고발당해 체포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할 가슴 아픈 일들이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가고 있음에도 그 누구 하나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각 영역에서 신앙고백을 통한 정치참여를 반드시 해야 한다. 국가가 본래의 목적인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선한 도구가 되도록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은 성경이다. 이 성경을 통해 나의 생각,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정치에 참여하는 태도 등이 결정되어야 한다. 작은 부분부터 민감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기준은 성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와 신앙이 이원론적이라는데 있다. 우리 안에 신앙과 정치를 각각 개별적으로 가져가려는 모순점이 있다. 올바른 성경해석을 통한 기독교 세계관과 그 관점으로 해석된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영향받은 가정, 지역, 학연 등에서 파생된 생각들로 여전히 정치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지향하는 정당의 목소리 가운데 분명 성경적이지 않은 목소리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함에도 신앙과 별개로 무조건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지지하는 일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명백히 금하고 있는 낙태, 간음, 동성애, 무신론, 유물론 등을 지지하거나 정책적으로 실행하려는 정당과 정치인은,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했던 자라고 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세울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평소에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라고 해도 그가 명백하게 성경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면 무조건 그 정당과 정치인을 따를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도리어 그에게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비판적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목회자는 때로는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줄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해도 그것이 성경적 가르침에 부합한다면 바른 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소신 있게 성경적 가르침을 분명히 말씀해주는 목회자가 목회자지, 사람의 눈치를 보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바른 것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목회자이겠는가?

 

정치는 중요하다. 내가 선택하고 다수가 선택한 통치자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한쪽으로만 편향된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통치자들을 끊임없이 예의주시하여 그들의 하고자 하는 정책들과 방향들이 하나님 주권과 상충된다면 때로는 한 목소리를 내어서 하나님의 눈치는 보지 않을지언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교회 공동체의 눈치라도 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대신인이 가져야 할 나라와 민족을 향한 애국정신이라 하겠다.

 

3. 기도운동: 이 민족 삼천만

 

김치선목사는 남대문교회에 부임하면서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는데 기도 때마다 이 민족 삼천만이라고 외치면서 민족을 향한 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남대문교회로부터 시작한 이 새벽기도의 물결은 전국교회로 확산하게 되었고, 새벽기도가 한국교회의 독특한 예배양식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전쟁 후 삼각산에 기도원만 있던 시절에 성도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기도원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현재 서울대 기숙사 자리에 벧엘기도원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대형천막을 치고 집회를 하다가 산을 깎고 기도원에 올라온 모든 사람들이 강에서 돌을 운반하여 하나하나 쌓아 올려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예배당 건축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모였고, 많은 성도들이 밤을 새면서 기도함으로 산에는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밤새 울려 퍼졌다. 그 기도의 흐름이 우리 신학교 다닐때도 주경야독하며 매주 목요일 저녁 강의가 끝나면 가짜 제일교회에서 내어준 버스를 타고 삼각산에 올라가 밤새워 기도하지 않았던가!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물려주었던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등의 기도에 힘쓰던 모습들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알리었던 모습들이 상당부분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도 시대가 바뀌었는데 꼭 그렇게 티 나고 유별나게 기도에 힘쓸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들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조용하고 고상하게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는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보이게는 과도하다고 생각이 드는 그 행위들이 시대의 한 획을 그었던 위대한 믿음의 액션들이 되었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기도에 힘썼던 과도하고도 무모한 그 행위가 교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많은 영혼을 건지는 한 획을 그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풍요로운 삶과 달리 빈곤한 기도로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할 때에 다시 기도의 풍요가 우리 교단을 통하여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치선박사가 나라와 민족을 살리고 세우기 위하여 눈물 흘렸던 그 기도가 바로 우리를 통하여 다시 시작되기를 바란다.

 

4. 대신이 나아갈 길: 회복과 화합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기독교인들이 밀려오고 있었고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신학생들도 있었다. 이 때에 김치선박사는 신학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게 되고 1948년 남대문교회에서 야간 신학교를 세우게 된다. 대한신학교의 전신이다.

그 후 장로교 총회신학교에 파벌싸움이 일기 시작할 때에 1961년 김치선박사는 세계 기독교 보수계인 I.C.C.C의 메킨 타이어와 손을 잡고 성경장로회를 조직하여, 대한신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대신 교단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러던 중 1968년 김치선박사가 소천 후 신학교운영문제와 성경장로회가 분리되어 나가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남은 40여개 교회를 필두로 대신교단은 도약하게 되었다.

 

그랬던 우리 교단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분열과 반목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예장백석과 추진했던 통합이 끝없는 갈등 속에 실패로 돌아간 이후 현재 대신수호측, 백석대신측, 예장대신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자랑스런 자생교단으로서 대신교단이 가졌던 정체성과 가치들이 훼손되는 시점에 와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다시 우리 교단은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잘못되었던 병폐와 폐단을 회복하고 변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대신이라는 이름보다 김치선목사님의 목회철학과 신학정신이 한국교회 교계 속에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남겨진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모든 틀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세워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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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단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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