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14(월)
 

부총회장 김의철.jpg

김의철목사(송도가나안교회)


제목 :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성경 : 요 13:12-20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등의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서 보면 어떤 이는 부와 명예를 쫒아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섬김과 봉사를 통한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어떤 이는 병 때문에 가난 때문에 문제 때문에 아니면 출세하려고 주님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마11장에서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을 보시고 너희는 무엇을 보러 왔느냐? 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나온 우리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교회를 나왔느냐고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어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의 세계 속에도 질투와 경쟁심과 욕심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로부터 등을 돌리고 마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도 많지만 과거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사익을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교회 앞에 보이는 충성은 잘 하는데 보이지 않는 충성은 하지 않습니다. 말을 화려한데 행동은 뒷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명예와 칭찬을 받기 위한 거짓 충성 인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단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신학을 하고, 같은 길을 걸어 오던 공동체가 사분오열되어 버렸습니다. 신앙과 이념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였습니다. 그 속에는 그 그룹의 헤드들의 탐심과 그 작은 기득권의 대한 집착 때문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보다 교회가 더, 교회보다 노회가 더, 노회보다 총회가 더 아름답고 구별되어야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총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보실 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대로 계속 가면 총회도 교회도 무너질 것이 뻔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바른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와 진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섬김과 봉사 위에 축복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직 교회와 선교에만 심혈을 기울이며 걸어왔습니다. 교단이 이렇게 무너지니 저같은 사람도 교단을 세우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테지 아니하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원하지 않았지만 임원에 동참할 때 두 가지 마음을 다짐했습니다. 첫째 총회가 든든히 세워져도 그 어떤 이익을 구하지 아니할 것이다. 둘째 맑고 아름다운 총회가 세워지면 곧바로 떠나 나와 선교하는 일에 마지막을 바칠 것이다. 저가 스스로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은 총회를 아름답게 세우고자 하는 소망과 우리 모두가 이런 다짐으로 총회를 다시 세우는데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데 있어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과 기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 줄 때 가룟 유다는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강제적으로 넣어 준 것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과 우리의 마음의 동의가 결합 될 때 결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든 악과 죄는 나쁜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생각을 누가 줍니까? 그것은 마귀입니다. 문제는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마4장에서 유혹 받았을 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귀의 생각은 언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 그리고 마치 나를 위해 주는 것처럼 하고 다가옵니다. 마귀는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며 다가옵니다. 그때 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이기려면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냐?를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중 하나는 어떤 것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그 집사님은 기도가 끝날 즈음 무작위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성경말씀을 그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 


집사님은 그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을 키워갔고 힘을 얻어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연 일도 잘 되었고 삶에 기쁨도 주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 기쁨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흉내내어 자기도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확 들어온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유다가 스스로 목 매어 죽은지라” 기분이 이상해서 또 다른 곳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해석하거나 판단하면 아니됩니다. 언제나 사회와 교회 앞에 유익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누구나 방황합니다. 좋은 직장을 가진자도 방황하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다 방황합니다. 방황이란 무엇입니까? 길을 모를 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길이 어디 있습니까? 궁극적로 인생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돈도 지식도 명예도 소용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이 죽음 앞에서 멸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영생의 길로 갈 것인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입니다. 


권력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돈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학문을 쫒아 산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이 오면 그 모든 것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허망함만 남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아온 어제를 탄식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화려한 옷을 입고 살진 않았을지라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산 삶이라면 그 죽음의 시간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죽음의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시작을 행복함으로 시작하려면 우리는 욕심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려 했을 때 베드로는 거부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겸손한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베드로가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과 용서 그리고 축복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허물을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내가 발을 씻겨 주지 아니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끈으로 묶여 있습니다. 


언제나 나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하는 생각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며, 확신이 아니라 자만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저주가 오고 죄 때문에 질병과 가난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난한자가 부해지고, 약한자가 강해지며, 실패한자가 성공의 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과 미래가 자신에게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 입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시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된 것뿐입니다. 성경은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고 예수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터득한 진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교회 나오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만 우리의 삶은 가뭄에 말라 죽는 곡식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빗줄기를 맞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저는 2009년 송도에 와서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참으로 도시의 차가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내 힘을 넘어 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가 송도에 올 때 꾸었던 꿈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가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은혜 입을 수 있을까요?를 고민하다고 생각난게 필리핀코피노였습니다. 그래서 상가에서 월세를 내면서 코피노 고안원을 세우기 위하여 계약금도 없이 땅보러 세부로 건너 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계약하고 땅을 매입하고 난 후 하나님의 지금의 성전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도 부흥 시켜 주셨고, 고아원 건물도 짖고 지금은 코피노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는 고아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 했고, 그 결과 저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냉엄하고 차가고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은혜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 딛을 수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따스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은혜만을 구하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섬김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3대 테너가수가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같은 무대에 오른적이 많은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카레라스는 마드리드 태생인 도밍고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일로 다퉜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1983년 카레라스는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수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라스는 백혈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그 단체의 도움으로 부단히 치료를 받으면서 병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카레라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 자선단체가 너무 고마워서 누가 설립한 기관인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가 원수같이 생각했던 플라시도 도밍고 였습니다. 도밍고는 자기와 적대시 하며 지내는 카레라스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투입해서 자선 기관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1987년 어느 날 카레라스는 파바로티와 도밍고와 함께 큰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네. 나를 용서해 주게.” 도밍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친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세. 자네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타고난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네” 그 후 서로 지난 모든 감정을 털어 버리고 그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승화되어 파바로티와 함께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면 으슥한 산골짜기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신앙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그를 돕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 치료소에 데리고 가서 치료 비용까지 챙겨주면서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마리아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는 덜 종교적이었는데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돌보아 줄 비용까지 내면서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려 했을때 그들이 당황하게 된 것은 가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조는 힘 있는 자가 굴림하고 억압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는 것을 가치로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굴림하려고 힘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기기 위하여 힘을 구합니다.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힘을 구하지만, 교회는 약한 자를 도우려고 힘을 구합니다. 우리가 왜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잘 먹고 자기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열방을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잘난 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사람조차 자기 우월주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되고 부흥에 목말라 하는  섬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높아지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전한 목표는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을 배우는 곳이고, 섬김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그 섬김의 정상에는 목사가 잇습니다. 목사가 섬겨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니다. 믿음의 삶, 신앙의 모법을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목사가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성도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직 만삭되지 못한 사람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행한 일을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들으면 자랑이 될까봐 미리 배수진을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솔직한 고백을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하여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현실도 힘들었습니다. 예배가 자유롭지 못하니 성도들도 잘 나오지 못하고 그 결과 헌금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연건평 4천평에 달하는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막막했고, 지금도 막막합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팬드믹의 책임이 교회로 전가되고, 그 결과 교회가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보고 아직도 교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건축으로 인하여 비록 재정이 팍팍 하지만 작년에 두 차례에 걸처서 공공기관에 불우이웃돕기 선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물론 마땅히 해야 하고, 지속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진짜 이유는 교회 욕 좀 그만하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참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교회가 어떻게 섬기느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을 가진신 분이신데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호주머니를 털어야 교회가 세워져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섬기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이고 섬기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 그리고 교회가 잘 되려면 우리는 사익을 취하려 하지 말고 공익을 위하여 섬기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하게 섬기면 축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맑은 마음으로 섬기는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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