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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3.기독론(基督論)
    3. 기독론(基督論) △주성 : 기독론이 무엇인가요? ▲필자 :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단다. △주성 : 이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우리나라 만 해도 1000만명 이상이 기독교 인인데 다들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않을까요? ▲필자 : 흠 ~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에 대하여 대충 머리로 아는 것과, 전 인격적으 로 예수님 자체를 아는 것은 다르단다. 참된 신앙은 단순히 머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드려 신앙 의 대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어야 되는 거야. 그래서 상대주의가 충만한 이 혼탁한 시대에는 더더욱 올바른 기독론 정립 이 중요한 거란다. 참! 예수님에 대한 너의 신앙심과 가치관은 어떤지 모르겠구나. △주성 : 글쎄요, 지금은 그리 큰 문제의식 없이 교회당에 출입하며 신앙 생활하지만 예수믿음 때문에 큰 위기를 만나면 잘 모르겠어요. ▲필자 : 그러니 잘 들어 보거라. 사실상 기독론은 교회사상 가장 큰 논쟁거리였고 사탄의 공격이 극심했던 분야란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 고자 노력했던 것이고 말이야. 너에게 예수님에 관한 두 가지 문제를 내마. 첫 번째는 과연 나사렛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 당사자가 맞는다고 생각 하니? 두 번째는 과연 나사렛 예수님께서 구속(속죄)의 사역을 온전하게 완성하셨 다고 생각하니? △주성 : 아멘! 저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필자 ; 역시 신학생다운 대답이구나. 네 말이 정답이란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대표적 이단인 니골라 당을 시초로 하여, 현대까지의 모든 이단들은 한결같이 영지주의 사상을 토대로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사 역의 완성을 부인해 왔단다. 하나님의 영이 평범한 청년 예수에게 임하여 구속 사역을 이루려 했는데, 중도에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실패했다고 주장한단다. 너무나 허무맹랑한 주장이지. 그러나 이들의 파급효과가 의외로 크다는 거야. 특히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논리와 합리를 강조하는 21세기엔 더욱더 그렇 단다. △주성 : 맞아요. 교회가 세속화 될수록 교회당의 규모와 교회 예식은 화려해지나 예수님의 정체성은 희미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통합운동이 급물살을 타고 있쟎아요. ▲필자 : 너는 종교 통합을 위한 실질적 기구가 WCC라는 국제적 단체임을 알고 있지? 그런데 문제는 종교통합이 현실적으로 실현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정체성 이 부인되어져야 한다는 거야. △주성 : 어떻게 지난 2천년간 절대적 진리로 당연시되었던, 예수님의 신성과 구속성 이 부인 될 수가 있는 거지요? ▲필자 : 다행스럽게도 넌 아직도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간 2천년간 유지되어오던 모든 절대적인 진리들이 의심되고 공격받아 무너지고 있다는 거야. 이런 시대적 사조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한단다. 이미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조차도 사탄의 최대전략인 상대주의(가장 강력한 세속주의)에 물들어, 예수님의 절대성을 의심하거나 부인하기 시작했단다. △주성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부인되면 이미 기독교가 아닌 것을요. ▲필자 : 그렇지. 그래서 지금 종말의 교회는 기독교역사상 최고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겉모양은 완벽한 소금이지만, 이미 맛을 잃어 버린거야. 초대교회는 로마의 공권력으로 육체적 박해를 받았다며는, 21세기 종말 교 회는 인본적인 자유주의 사상(종교다원주의)으로 정신적으로 미혹되어 무력 화 된다고 할 수 있지. △주성 : 이런 기독교의 세속화 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까요? ▲필자 : 글쎄다. 내 생각으로는 인위적으로는 불가능할 듯 싶구나. 하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은밀하게 역사하시어서, 끝까지 인내하며 충성하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익은 열매를 만드시고 추수 하실 것이라 믿는단다. △주성 : 제 생각인데요, 이렇게 기독교가 세속화되는 데는 교회 강단의 타협하는 인본적인 설교가 원인이 아닐까 싶어서요. 요사이 강단의 흔한 설교가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복음)을 강조하지 않고 기적과 이사, 세계의 평화, 부유한 삶과 장수, 윤리도덕적인 삶, 가정의 행 복과 형통만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말이에요, ▲필자 : 예리한 지적 같구나. 네 말대로 강단의 설교가 세속화되면, 결국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지. 결국 교회마저 예수님이 설 곳이 없어지는 거란다. 명심 하거라. 복음적 설교만이 심령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란다. 구원받은 모든 설교자는 반드시 예수님과 십자가만을 집중적으로 증거 해야 할 권리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교회의 강단 설교는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을 증거 할 방편으로만 활용 되 어야해.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수많은 대중을 울고 웃기며 감동시키는 명 설교라 하더라도, 이미 주님과 상관없는 공허한 외침이라는 거야. △주성 : 결국 예수와 십자가 빠진 설교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은 거군요. ▲필자 : 너는 영계의 모든 천사들과 악령들 그리고 물질계의 인간들과 동식물들과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주성 : 흠~~~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 아닌가요? ▲필자 : 정확히 맞단다. 그러니까 예수님만이 하나님이라는 의미는 곧 천상천하를 존재케 한 근원적인 창조주라는 뜻이야. △주성 : 아하~~ 이제야 확신이 들어요. 예수님은 단순히 기독교만의 지엽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만물의 총 체적인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이예요. 이런 진실이 있기에 예수님을 기독교의 교주로만 폄하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할 수가 없는 거군요. ▲필자 : 너에게 그런 깨달음이 있다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꼭 명심 하거라. 기독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만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과 유일무이한 속죄 주라는 것을 말이다. 좀 어려운 말 같지만 예수님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인간으로 성육 신할 수 밖에 없는 근본 이유가 바로‘속죄제사의 완성’때문이라는 거야. △주성 : 예수님의 신성이 속죄제사의 완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구요? ▲필자 ; 그렇구 말구. 잘 들어보렴.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에게 죄 사함을 위해 제시한 유일한 방법이 있어. 그것이 바로 속죄제사야. 속죄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속죄 제물인데, 그 조건이 흠이 전혀 없는 남자 이어야 한다는 거야. 넌‘흠이 전혀 없는 남자’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니? △주성 : 레위기 16장에 보니까 속죄 제물로 흠이 전혀 없는 수컷 염소로 속죄제물을 삼았는데 ~~ 그것은 모형인 것 같구요. 실제는 흠이 없는 거란 죄(죄악성+ 자범죄)가 전혀 없다는 것 아닐까요? ▲필자 : 옳지! 네가 정답을 이야기 했구나. 흠이 전혀 없는 숫염소라는 것은 모형적 상징이고, 실제적 의미는 죄악성이 전혀 없는 남성을 의미하는 거란다. △주성 : 죄악성이 전혀 없는 남성이 속죄제물이 된다구요? 저는 아담의 타락이후에 죄악성은 유전이 되기에, 죄악성 없이 태어난 사람 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배웠거든요. ▲필자 ; 그렇지. 그 말은 곧 죄악성을 가진 인간 중에는 속죄제물이 될 만한 자격을 가진 의인이 없다는 거야. △주성 : 어휴~~~ 그럼 속죄제물이 없어서 속죄제사가 불가능한 거쟎아요! 결국 죄 사함을 받고 생명과를 먹어 천국에 들어갈 길이 영원히 막히는 건가요? ▲필자 : 허허! 그렇다면 기독교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겠지. 기독교는 죄 사함을 받고, 생명과를 먹어 영생하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복음 을 가지고 탄생했기 때문이란다. △주성 ;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겠지요? ▲필자 : 맞단다. 그 말은 곧 예수님 자신이 속죄제물이 되셔서 속죄 제사를 완성했 다는 의미란다. △주성 : 예수님은 죄악성을 가진 우리와 같은 단순한 인간은 아니 실테고~~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아하! 이제 알겠어요. 예수님 자신이 죄악성이 전혀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쟎아요. ▲필자 : 성령의 감동이로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에게 죄악성이 전혀 없는 제물을 요구하신 분명 한 이유가 있단다. 그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시겠 다는 역설적 선포란다. 속죄제사의 시행명령은 인간에게 주어진 무거운 율 법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따스하신 은혜라는 거야. 곧 죄악된 인간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속죄 제사를 드려 주 시겠다는 거야. △주성 :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친히 남성인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것이군요. ▲필자 : 맞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악성의 유전을 피하시려고 성령으로 잉태되 셨고, 숫컷인 속죄제물의 조건을 충족시키시려고 남성으로 태어나신 거란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속죄제물이 되시려고, 죄악성이 전혀 없는 인간으로 태어 나신 날을 기념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려고, 성탄절이라는 절기가 있는 거란 다. △주성 : 그렇다면 성탄절에는 인간의 평안과 행복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 성이 반드시 강조 되어야 겠네요! 안타깝게도 성탄절이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것 같아서요. 그런데요 성경에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 하는 내용이 있나요? ▲필자 : 당연히 있지. 먼저 스가랴서14장 4절-5절에 보면 “ 여호와의 날(대환란)에 여호와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라고 증거 한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환란 막바지에 이스라엘 감람산에 휴거된 거룩한 의인들 과 함께 재림하신다는 거야. 이 말씀의 짝이 되는 성경의 구절이 바로 요한계시록 19장 11절부터 14절이야. “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르더라” 이 말씀은 7년간의 대환란 막바지 때, 즉 4차 세계대전인 아마겟돈 전쟁이 절정에 이를 즈음에 예수님께서 휴거된 이긴 자들과 함께 지상으로 재림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야. △주성 : 와~~ 놀랍네요. 구약과 신약의 두 말씀이 짝이 정확히 맞쟎아요. 정말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과 재림하는 예수님을 동일화시키고 있네요. ▲필자 : 그렇구 말고. 성경은 명확하게 예수님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당사자임을 증거하고 있다구. △주성 : 그동안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확신은 없었던 거 같아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신 신적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 확신이 없다면, 예수님을 반쪽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눈뜬장님 같은 것이죠. ▲필자 :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또 다른 증거들이 있단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믿지(I am that I am = 내가 여호와인줄)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으리라”라고 증거하고, 같은 28절에는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내가 그인줄(여호와 하나님 인줄) 알 것이다”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단다. 나사렛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당사자가 맞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거야. △주성 ; 아하! 바로 그 고백 때문에 ‘신성 모독죄’로 죽게 된 것이로군요. ▲필자 ; 맞단다. 유대인의‘노아의 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 이라고 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시켜야 된다고 나오거든.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선포하는 이 고백이 결정적으로, 서기관이나 바 리새인 들의 분노를 폭발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거란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성경의 심장과도 같은 요한 계시록의 증거는 더 명확하단다. 요한계시록 1장8절에 보면 “주 하나님(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이 가라사대 나는 장차 재림할 자요 전능한 자니라” 라고 증거하고, 요한계시록 4장8절에도 보면, 3층천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4생물의 노래가 나온단다. 잘 들어 보거라. “ 거룩하다 주 하나님(보좌에 좌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이분은 장차 재림하실 분(예수그리스도)이시라.” 분명히 네 생물도 3층천 보좌에 앉아계신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재림하실 분 이라고 고백하고 있어. 너도 알다시피 재림하실 분은 예수님이쟎니. 반대로 말하면 재림하실 예수님이 바로 보좌에 앉아계시니,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거야.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사도요한의 증거는 더욱더 단호해. 요한일서 4장 2절에서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님이 성육신한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님이 하나님(삼위일체 여호와)임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모든 이는, 적그리스도의 영(악령)에 미혹된 자들 이라는 거야. △주성 ; 이단단체에 속한 이들은 당연한 듯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해 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미온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 네요. ▲필자 : 너도 그런 마음이구나. 나 역시 그렇단다. 한번 크게 외쳐 보거라. “ 예수님은 참 (여호와)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5:20. △주성 : 예수님은 참 여호와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 아멘. ▲필자 :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만을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유일한 속죄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순교적 각오로 이러한 예수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거란다. 아무리 외형이 화려하고 유명하다고 해도, 예수님의 신성과 속죄성을 부인 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결국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와도 같단 다. 깨어서 그들을 멀리하고 경계해야만 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10. 저자 / 박공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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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교리야 놀자
    2021-09-27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2. 신론(神觀)
    2. 신론(神觀) ▲필자 : 성경적 구원론에 대하여 공부했으니, 이제 신론에 대하여 알아볼까? △주성 : 신론이면 하나님에 대한 것 아닌가요? ▲필자 : 그렇지. 성경에서 증거 하는 하나님에 대한 거란다. △주성 : 하나님이란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는 거 아닌가요? ▲필자 : 그건 아니란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신(神)도 함께 한단다. 물론 진짜냐 가짜냐를 떠나서, 그들이 신이라고 믿는 대상이지만 말이야. 유일하게 만물 중에 인간만이 종교성을 가졌고, 신을 경배하고 섬기는 동물 이란다. 이것은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주성 : 맞아요. 저도 학교에서 인간의 역사는‘신을 찾고 경배하는 과정’이라 배웠어요. ▲필자 : 사실 세상 사람들은 증명되지 않는 수많은 신들을 믿고 경배하며 산단다. △주성 : 그렇다면 세상에는 소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이 많겠네요? ▲필자 : 많다 뿐이겠니? 지구상에 현존하는 공식적인 종교 수만 2천개가 넘는단다. 신을 섬기고 모방하는 비공식적인 종교까지 하면 세기가 힘 들 정도로 많 아. 인도의 힌두교에만도 3억 3천만의 신들이 있고, 일본에만도 8백만의 신들이 있다고 그래. 심지어 아프리카엔 동네마다 각기 다른 신들이 있을 정도니~~~ △주성 : 와우~~~ 전 신은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 한분 뿐 인줄 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많다니 놀랍네요. 당연히 모든 신이 다 진짜는 아니겠지요? 분명히 진짜는 하나일 텐데요. ▲필자 : 네 말이 맞단다. 진짜 신은 당연히 하나뿐이란다. 나머지 모든 신들은 짝퉁이라는 거지.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낸 아바타(Avatar)인 허상일 뿐이란다. △주성 : 그렇군요. 그럼 참된 신이 될 자격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필자 : 한국에만도 자칭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지만~~~ 우선적으로 신이 되려면 객관적인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거야.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신성을 주장한다고 신이 되는 것은 아니지. 우선 신이 되려면 완벽하며, 모든 것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며, 모든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체자가 되어야 하는 거란다. △주성 : 어떤 사람은 동물을, 어떤 사람은 강과 산을, 어떤 사람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을, 어떤 사람은 영웅적인 사람을 신이라고 섬기쟎아요. 도대체 현존하는 수억의 신들 중에 누가 참된 신일까요? ▲필자 : 참으로 합리적인 질문이구나. 잘 들어보렴. 일단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모든 증거를 진리라고 믿는단다. 그래서 성경에서 증거 하는 신관을 진리로 받아드리는 것이지. 그 누구도 신의 전부를 정확히 본 사람이 없고, 창조 시에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란다. 성경은 유일 신관을 증거 한단다. 다신론을 전하는 대부분의 이방종교와는 다른 점이지.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전인격적인 존재인 여호와 하나님한분만이 참 신이라고 단호하게 증거 한단다. 정통 기독교인은 이것을 당연시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유일신관은 다양한 신들을 주장하는 다신론과, 모든 피조물에 신이 내재되었 다고 증거 하는 범신론과는, 차별화 되는 성경적 사상이란다. △주성 ; 그런데 유일신관은 오직 기독교만 주장하는 신관인가요? ▲필자 : 그건 아니란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도 유일 신관을 가지고 있어. △주성 : 그럼 그들의 종교가 주장하는 신과, 기독교가 주장하는 신이 동일한가요? ▲필자 : 결코 아니란다. 그들의 신관은 기독교의 신관과는 큰 차이점이 있어. 기독교의 유일 신관은 대단히 독특하단다. 바로‘삼위일체 신관’이라는 거야. △주성 :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요? ▲필자 : 그렇지.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론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4차원적 진리란다. 우리 눈으로 볼 때는 분명히 한분이지만, 사실은 세 분이라는거야. 즉 하나님으로서의 동일한 본성과 권위를 가졌지만, 각각의 자유의지적인 인격을 가지고, 서로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한 몸 안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세분하나님께서(성부, 성자, 성령)거한다는 신비이거든. 분명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완벽한 인격 체를 가지고 존재하시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호 유기적인 완벽한 사랑의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몸으로 존재한다는 거야. 기독교의 가장 신비스런 교리라고 할 수 있단다. △주성 : 사실 저는 삼위일체의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아요. 한분이지만, 세 분이시쟎아요! 그런 존재가 세상에는 없으니 말이예요. 그렇다면 서로간의 상하 질서는 있을 거 아녀요? 예를 들면 성부하나님이 제일 높고, 그 다음엔 성자 예수님, 마지막으로 성 령처럼 말이에요. ▲필자 :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로구나. 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단다. 세분의 하나님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서, 동일한 본성과 권위를 가지고 한 몸 안에 조화롭게 공생하신단다. △주성 : 수업시간에 어떤 교수님은 성부 하나님은 태양의 본체이고, 성자 예수님은 밝게 빛나는 빛이고, 성령 하나님은 뜨겁게 느껴지는 열이라고 주장하던데 요. 이것이 맞는 비유인가요? ▲필자 : 아니란다. 그것은 양태론이라는 학설이란다. 삼위일체 신관에 어긋나는 이단적 학설이라고 이미 판정된 거야. 진실이 아니라는 의미이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 모두가 각각 태양본체와 빛과 열 이 되신다는 거야. 결코 하나님은 조각퍼즐 식으로 나눌 수 없는 거란다. 하나님은 통합된 한 인격체이시면서, 또한 독립된 세 인격체라는 삼위일 체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성경적 진리라는 거란다. △주성 :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기독교적으로 성부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인가요? ▲필자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하더구나. 하지만 그것 또한 성경적 진리가 아니란다. 성경에서는 천지 만물(영계와 물질계)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표현하지. “태초에 하나님[엘로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그리고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구속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여호와’라고 표현하고 있단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성경에서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결코 독립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단다. 삼위일체 신관이 없는 유대인들은 소위 성부 하나님만을 여호와라고 믿고 있 지만, 사실 여호와는 어느 한분의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칭’인 것이란다. △주성 : 그러면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여호와 하나님, 성령 여호와 하나님이라 고 불러야 겠네요. ▲필자 : 바로 그거야. 우리 모두를 인간이라고 통칭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통칭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다. 요한복음에 보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여호와’ 라고 할뿐 아니라, 성부하나님과도 하나라고 고백하시거든. 물론 이런 주님의 주장 때문에 결국 삼위일체를 전혀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신성 모독죄로 핍박과 죽임을 당했지만 말이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내가 여호와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내가 여호와 인줄)을 알고”요8:28. “나와 아버지는 하나(삼위일체)이니라”요10;30. △주성 : 하나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니, 신기하고도 놀랍네요. 만물을 초월하시어 존재하시고, 또한 만물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시며 다스리시고, 인격적 사랑을 나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리는 영원한 신비일 것 같아요. ▲필자 : 그렇지. 어찌 인간의 이성과 지각으로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겠니? 하지만 우리에게 분명한 것이 있단다. 우리 인간들에게 성육신하여 보여 지고, 만져지고, 계시되어진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인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구원자 이시며, 유일한 숭배와 믿음의 대상이시라는 거야. “(예수 이외에)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저자 / 박공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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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교리야 놀자
    2021-07-24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1.구원론
    1. 구원론(救援論). △주성 : 구원론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필자 : 허허 그럴게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가난으로부터의 구원, 실패로부터의 구원등 말이야. 그런데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하단다. ‘죄로부터의 구원’이야. 즉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속죄인 성화(성결)에 이르는 것을 구원이 라고 한단다. △주성: 그런 상식은 저도 배워서 알아요. 그런데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 믿자마자 해결된 것 아닌 가요 ? 저는‘이신칭의’가 성경적 구원론이라고 배워서요. 믿기만 하면 다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로‘성도(聖徒)’ 라고 부르쟎아요 ▲필자 :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의 남용이란다. 우리가 올바른 구원론을 알기 위해서 종교개혁자 칼빈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구나. △주성 ; 칼빈은 개신교 최고의 신학자 아닌가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칼빈은 책상에서 교리를 정립한 지적인 이론가가 아니라는 거야. 칼빈은 일상에서의 경건한 영성적 삶으로 구원의 전 과정을 체험했 고, 그 바탕에서 성경적 신학을 정립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단다. 대부분 그를 차가운 지적 신학자로만 알고 있는데, 사실 그는 단순한 신학 자가 아니라 기독교 최고의 영성 인이요, 따스한 인격을 소유한 경건한 신 앙인이라는 거야. 넌 칼빈하면 뭐가 생각이나니? △주성 : 튤립(TULIP)교리요. ▲필자 : 그렇지. 그런데 튤립교리에 대하여 자세히 아니? △주성 : 사실 그 내용은 잘 몰라요. 쉽게 설명해 주세요. ▲필자 : 그래. 대부분 튤립교리가 장로교에만 한정된 지엽적 교리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은 성경적 구원론을 종합한 것으로, 기독교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거란다. 칼빈은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이신칭의’를 외친 루터보다 후시대 사람 이야. 루터가 ‘이신칭의’의 구원론으로 믿음과 은혜만을 강조하다보니,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어 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이원화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게 되었단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칼빈은 자신의 성경적 체험을 바탕으로 루터의‘이신 칭의’구원론을 성경적으로 수정 보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튤립교리야. 아들아! 종교개혁자들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 전체가 진리는 아니라는 거야. 그들의 주장 하나하나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맹신할 수는 없 어.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시금석이 되어야 한단다. 성경으로 충분히 검증하여 취사선택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오랜 세월동안 칼빈의 구원론을 신뢰하는 이유는 성경이 증거 하는 구원론과 일치하기 때문이야. 지금부터 칼빈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정립한 ‘5단계 구원론’을 설명하마. 1).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전적부패는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단코 회생 불가능할 정도 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거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 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 다.”롬3:10-13. 혹시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하여 아니? △주성 : 그럼요. 지구엔 중력이 있어서 지구상의 모든 물체에 작용하여 중심으로 잡 아 끈다는 이론 이쟎아요. 당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중력에서 자유롭지 않겠지요. ▲필자 ; 그래 잘 아는구나. 같은 이치로 우리 모든 인간에게도 이와 똑같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것이란다. △주성 : 중력의 법칙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필자 : 바로 ‘죄의 법’이란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롬7:23.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성령이 떠나갔고, 그 자리에 7가지 성질을 띤 죄악성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지.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7종 죄악성)이 있음이니라”잠26:25. 교만한 성질, 태만한 성질, 음란한 성질, 아집적인 성질, 질투하는 성질, 포악한 성질, 거짓된 성질 등 이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타락했다는 것은, 아담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악성이 유전되어, 그 죄의 강력한 법에 지배받는 다는 것이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 지라”롬7:11.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는 죄악성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의 탐욕만을 위한 품성으로 완전히 변질되었다는 것이야. △주성 :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생명과를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단순히 과일 먹는 것은 아니겠지요! ▲필자 : 당연히 일반적인 과일을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란다. 생명과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영생)으로,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한 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해와 같은 예수님으로 옷 입는다고도 표현하지. “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계12:1 반면에 선악과는 사탄 루시퍼의 생명(사망)으로, 먹는다는 것은 사탄과 연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지.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교만이요, 탐 욕 이란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최고최대의 헛된 망상이요, 오판이었지. 하지만 그 결과는 ‘전적 타락’일 뿐이야. 당연히 그 엄청난 책임을 우리 인간이 져야만 했단다. 사도 바울은 죄에 법에 지배받아 스스로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을 ‘곤고한 사람’‘사망의 몸’이라고 증거 했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주성 : 그런데 인간은 자력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철학과 종교와 윤리도 덕을 만들지 않았나요? ▲필자 : 그렇지. 하지만 그 어떤 철학자도, 종교인도, 도덕군자도 인간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거룩함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인간이 없다는 거야. 최고의 윤리와 도덕을 주장하며 실천해온 공자도 말년에 ‘내 안에 탐심을 막을 길이 없구나!’라고 탄식했고,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강조하며 하나님 의 존재성과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그리스도를 강력하게 부인해온 볼테르도 죽기직전에‘나는 하나님의 저주로 지옥에 떨어진다. 예수를 부인했으니 누 가 날 구원해주랴!’탄식하며, 발악을 했다고 하쟎아. △주성 : 결국은 역사가 인간의 전적타락을 증명해 주는 군요. ▲필자 : 그렇지. 전적 타락했다는 성경의 증거를 인류역사가 경험적으로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지.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주성 :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는 선한 사람들만 택하여 구원하시겠지요? ▲필자 :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당연히 그래야겠지.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질 않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갈1:15. 구원의 대상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이라는 거야. 칼빈은 성경과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깨닫고‘무조건적 선택’이라 고 정의한거야. △주성 : 흠~ 저는요!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도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돼요. 어떻게 살인자나 강간범들이~~~구원을! ▲필자 : 사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하지만 구원은 인간의 이해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임을 알아야해. 마음을 비우고 잘 들어 보거라. 구원론의 1단계가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주성 : 당연히 기억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무조건적 선택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필자 : 밀접한 관계가 있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을 피할 수가 없 다는 거야. 만약에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하여 선한 자유의지가 조금이라 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상관없이 인간이 구원을 결정짓겠지. 그러나 죄악성을 가지고 그 죄의 법에 지배당하며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선한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는 거야.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2. △주성 : 아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우리 모두가 악인이겠네요. 당연히 지옥 갈 운명이겠구요. ▲필자 : 그렇지.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셨 다는 거란다. “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슥13:8. 우리 모두가 다 지옥에 갈 운명이기 때문에 누구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 절대적인 은혜’라는 거야. 인간이 부분적으로 타락해서 구원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거야. 하지만 전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의 여지 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구 원하신다는 거야. 이제 이해되지? △주성 : 네!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왜 모두를 선택하지 않고, 일부분만 선택하여 구원하시는지 무척 궁금해요? ▲필자 : 글쎄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을 외면하시고, 이스라엘만 선 택하여 구원하셨는지~~~ 아쉽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피조물이자 죄인인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 니듯 싶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그 깊으신 섭리를 알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선택 받았고, 구원의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거란다. 어찌 보면 구원은 철저히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거란다. 부모가 구원받았다고 자식도 더불어 구원되고, 아내가 구원받았다고 남편도 더불어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 3) 제한적 속죄(Limited Atonement) △주성 : 예수님은 만인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오셨겠지요? ▲필자 : 아니란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오신 거란다. 그것이 성경의 증거이고, 칼빈은 그것을 ‘제한적 속죄’라고 정의 했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 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3:2.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 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레16:19. △주성 : 주님의 대속 범위가 한정되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되요.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떤 사람은 구원에 대한 열망이 있어도 거절 된 다는 것이쟎아요. ▲필자 : 이 문제 역시 구원론의 1단계인 ‘인간의 전적 타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 단다. 사실 속죄의 은혜라는 것은, 선택받아 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거란다. 선택도 받지 않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죄 사함이 무슨 의미가 있 겠는지 생각해 보거라. 그것은 초대장도 받지 않고, 새 양복 입고 예식장에 들어가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거라구. 이렇듯이 천국 입성의 조건인 거룩함은 선택받은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은 구약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고, 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인 거야. △주성 : 그렇다면 누가 선택받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필자 : 그것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증거 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선택받을 사람들의 적정 규모를 밝히고 있지.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의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에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 이 시험할 것이라”슥13:8-9.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으로 아담 때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태어난 사 람들 중에서 삼분의 일만을 선택하여 구원하신다는 거야.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같은 광야 여정을 통하여 연단하여, 속죄 은총을 적용시켜 거룩 케 한다는 거란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바울은 ‘십자가의 도’라고 증거 했단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십자가의 도는 무조건적 선택과, 선택한 백성들만을 위한 제한적 속죄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원리란다. △주성 : 그렇다면 선택받지 못한 불신자들의 그 어떤 영웅적 선행과 극기고행으로도 속죄되어 거룩케 될 수는 없겠네요? ▲필자 : 당연하지. 예수님의 속죄은총이 적용될 때만이 전적 부패한 인간의 죄악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고 거룩해 질 수 있는 거야. 성경에서는 예수님이외에 그 어떤 구원자도 선택하지 않았음을 알아야해.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각종 종교 나 철학이나 윤리 도덕으로는, 전적 타락한 인간이 죄 사함 받아 천국에 들 어갈 수 없는 이유란다.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주성 : 불가항력적인 은혜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 같은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필자 : 이것의 의미를 알기 전에 질문하나 하자꾸나. 넌 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주성 : 은혜란 좋은 것 아닌가요? 병 낳고, 건강해지고, 기도응답 받아 형통해지고, 귀신도 쫒겨 나가서 평안 해지는 거구요. 대부분 은혜를 육신적으로 축복받는 것이라고 알쟎아요. ▲필자 : 사실상 네가 말한 것은 정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은혜야.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증거 하는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단다. “이것(고난, 시련)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5: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에서 겪는‘일상의 모든 고난이 참된 은 혜’라고 증거하고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와 전혀 다른 개념이지. 다시 한번 질문해볼게.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생활하면서, 기름진 땅 애굽에서 누리게 되 는 쾌락적 문화와 산해진미 같은 음식들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아니면 자유 인이 되어 척박한 땅 광야에서 더위와 추위 속에서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도움을 받으며 율법을 지키는 공동체 훈련을 받고, 매일 천상의 음식인 만 나를 먹는 삶이 은혜라고 생각하니? △주성 : 흠 ~~ 저는 힘들더라도 광야의 삶이 은혜라고 생각해요. ▲필자 ; 왜 애굽의 정욕적인 삶보다, 힘들고 인내해야 하는 광야의 삶이 은혜일까? △주성 : 애굽에서는 아무리 고기와 술을 먹고, 춤과 오락이 있어도, 자유가 없고 소망이 없쟎아요. 하지만 광야에서는 단순한 음식 만나와 단조로운 일상만 있지만, 자유가 있고 가나안땅에 들어간다는 소망이 있쟎아요. 그러니 그것이 참된 은혜인 것이지요. ▲필자 : 옳거니. 바로 그거야. 이런 이유로 출애굽 즉시,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갔던 광야가 은혜라고 하 는 거란다. 광야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 은혜인지, 대표적인 성경인 모세오경의 대부분 이 광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거야. △주성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다면, 광야를 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나요? ▲필자 : 당연히 있지. 얼마든지 해안가로 가면, 광야를 거치지 않고도 가나안 땅에 쉽게 들어갈 수도 있었지. 하지만 광야 길로 들어가는 것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뜻이었다는 거야. 지도자였던 모세도 자신이 직접 광야에서 40년간 살면서 ‘광야의 영적 효 과’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기에,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 로 인도했던 것이란다. 광야의 좁은 길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거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광야(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14:22.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직후에 들어가는 광야의 삶은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거야. △주성 : 아하! 그렇다면 영적 선민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애굽 땅과도 같은 죄악 세상을 떠나자마자, 영적 광야로 들어가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겠네 요? ▲필자 : 당연하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는 광야라는 것을 명심해야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즉시로 겪게 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 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등으로 의아해하며, 신앙 적 회의감을 갖곤 하지. 이것은 예수 믿으면서, 모든 환경이 가나안땅처럼 평화롭고 풍성하게 바뀌길 소망했기 때문이야. 복음의 왜곡이지.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한단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벧전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광야의 시련)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약1:2.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광야 여정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불가항력 적인 은혜이니 크게 기뻐하라는 거야. △주성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척박한 땅 광야에 대하여 잘 모르는데, 광야 과정 이 꼭 필요한 건가요? ▲필자 : 성경은 분명하게 광야가 은혜라고 증거 한다고 했지? 그 말은 곧 광야를 통하여 엄청난 복이 주어진다는 거야. 그게 바로 ‘연단’을 통하여 생명과를 먹는 거란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약1;3-4. 광야의 연단은 우리의 나약한 자유의지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강하게 하고, 죄 악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는 효과가 있다는 거야. “이는 큰 환난(영적광야)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연단 받음)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고난의 광야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을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속죄함의 결과로 받는 영생이 없다)”요6:53. △주성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광야의 실재를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광야와 같은 궁핍과 질병의 거친 환경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폄하하 고, 죄악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정죄하구요. ▲필자 : 맞단다. 특히 한국교회는 기복적인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환란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는 성향이 강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인본 적이고 정욕적인 사상을 경계해야 해.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이르지 아니하리 라(광야 과정을 면제 받으리라) 하는 모든 죄인(거짓 선지자)은 칼에 죽으 리라”암9:10.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영적 광야과정인 대환란이 없다고)하는 선지자들 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라”렘14:15. 복음에서 십자가를 뺄 수 없듯이, 구원의 여정에서 광야를 뺄 수 없는 거란 다. 광야란 이 땅에서 천국으로 연결된 유일한 사닥다리야. 자 이제 간단하게 종합해볼게. ‘구원 그 이후’에 있게 되는 십자가의 고난 과정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산물이라는 거란다. 즉 애굽 → 광야→ 가나안땅은 구원의 절대적인 설계도란다. 암! 광야를 빼고 우리의 구원을 논할 수는 없지. 광야의 도는 성경의 핵심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개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해.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주성 : 성도의 견인 교리는 소위‘절대 예정론’아닌가요?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된다는 학설이요. ▲필자 ; 맞단다. 이 교리에서‘예정론’이 나온 거란다. △주성 : 그럼 예수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도 결코 타락하지 않고, 구원이 보장되는 거란 말이지요? ▲필자 : 아쉽지만 그건 아니란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이단세력인 니골라 당도 너와 같은 주장을 했단다. 한번 은혜로 구원받으면 영원히 그 구원이 보장되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 도 상관없이 은혜로 다 해결된다는 달콤한 교리였지. 하지만 주님은 이런 주장을 하며, 정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니골라 당을 대 단히 싫어 하셨어.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주성 : 그렇다면 이 교리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필자 : 먼저 칼빈의 5단계 구원론은 수평적으로 보지 말고, 수직적으로 보아야 해. 즉 튤립 교리는 ‘영적 성장의 측면에서 증거 된 경험적 진리’라는 거야. 성도의 견인은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보적 교인이 아닌, 광야연단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 죄의 문제를 해결한 장성한 성도(Saint)에게만 적 용되는 한정적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해. 그래서 성도의 견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다. “이기는 자(광야 연단과정을 마친자]는 이와 같이 흰 옷(생명과)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리라.(이긴자가 된 성도는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도록 견인하리라)”계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성도의 견인)”계3:12. △주성 :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견인되기 전, 광야 여정 중에는 얼마든지 타락하여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겠네요? ▲필자 : 그렇지. 성경의 증거는 아주 단호하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고 말이야.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출32:32-33.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시69:28. 성경에서는 구원받아 광야에 들어갔지만, 그 여정 중에 정욕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여 음행한 이들을‘가라지, 음녀, 적그리스도, 불법을 행한 자’라고 증거 한단다. 소위 이단 교주들인 니골라 당의 니골라,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유다, 예수님 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 천부교의 박태선, 통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등이 그런 자들이란다. △주성 : 아! 이제 알겠어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견인교리는 광야 여정중의 익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광야 연단 과정을 마치고 다 익어져 성화된 성도(Saint)만 영원히 구원이 보장(견인)된다는 것이잖아요. 이제야 예정론의 성경적 진실을 알 것 같아요. 저자 / 박공서 목사
    • 오피니언
    • [연재]교리야 놀자
    2021-07-17
  • [연재] 성경적 세계관으로 쉽게 쓴 교리야 놀자 - 서론
    필자는 신학교에 다닐 때, 조직신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배웠다. 배우면서 느낀 것이지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왜 조직신학처럼 어려운 학문을 하는지 의문이 갔다. 성경과 가까이 하게 도와줄 신학이 도리어 성경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었다. 왜 기독교를 분명하게 대변할 조직신학이, 인본 적이고 생명력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실 시중에 나온 많은 종류의 조직신학 책들이 학문적으로 연구하기엔 적합할지 모르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적용하기엔 다소 어렵고 문제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쉽게 접하기에는 대단히 방대한 책이다. 백화점처럼 종류별로 잘 정돈되어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장구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시가서와 사도들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엄청난 성경의 땅에 산발적으로 묻혀진 신론, 기독론, 교회론, 성령론, 종말론등을 찾아내어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돈해야만 한다. 그것이 조직신학이 태동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마땅히 조직신학은 쉬워야 하고, 성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활력을 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누가 조직신학이라는 책을 읽는가?신학생들이다.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잘 읽질 않는다. 읽어야 할 문제의식조차 없다. 하지만 신학생들은 리포트를 써야하기에, 논문을 써야 하기에 학문적 연구용으로 읽는다. 이것은 넌센스이다. 조직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중요한 분야이다. 특정인에게만 국한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알게 해야만 한다. 중세 때 성경이 어려운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어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부들만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성경이 일반 대중들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책이 되어 버렸다. 광야 훈련매뉴얼인 성경이 정작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게 된 것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심각성을 느낀 마르틴 루터는,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보급했다. 쉬운 독일어로 성경을 읽은 대중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케톨릭의 종교적 의식으로 화석화 되었던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획기적인 개혁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을 통한 진정한 종교개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귀족들의 정치적 개혁이 아닌, 일반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개혁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현대시대에도 화석화된 그리스도인의 일상에 성경을 통한 개혁이 절실하다. 성경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고, 사랑하게 해줄 수 있는 일상 적용형 생활 조직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글이 쓰여 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글이 그런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이글은 학문을 위해 쓰여진 논문이 아니다. 일종의 담화식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편하게 읽고 삶에 적용하여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쓰여 졌다. 필자는 신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기독교적 교리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아 늘상 질문을 한다. 본 글은 아들의 질문과 필자의 답변을 쉽게 정리한 것이다. 먼저 이 글을 쓰는 내내 영감을 주신 주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직한 아들들에게 감사한다. 또한 초심을 잃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그 외의 모든 분들과 새부천 교회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저자 / 박공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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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교리야 놀자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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