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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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 건강상식과 의료선교
    목회자 건강상식과 의료선교 최초의 목회자 건강 보고서 저자 서광수 출판 쿰란출판사 페이지수 404 사이즈 152*223mm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질병이 걸렸을 때 대부분 기도하고 믿음으로 고치려고 하고 병원을 다니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비쳐지는 선입견 때문에 공개적으로 치료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목회자들은 병원을 찾는 것을 더더욱 꺼려 왔다. 이 책은 그동안 선교회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치료해 오면서 의학적인 기본 상식만 알아도 예방할 수 있었던 질병들에 대한 정보와 관리치료 방법, 건강 상식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스스로 건강을 체크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병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목차 추천사_ 아름다운 교회 김의철 목사 산성교회 이천수 목사 책을 내면서 A. 가정의학, 내과적 상식 B. 노화 방지 클리닉 C. 정형외과적 상식 D. 목회자의 건강 관리 부록 1. 의료 선교와 병원 전도 2. 예수님 보혈의 의학적인 고찰
    • 오피니언
    • 건강상식
    2021-03-20
  • 강대석 총회장 신년대담 ‘2만8천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
    - 장소: 총회장실 - 진행: 편집장 ▲편집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총회 산하 전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인사를 드리셨지만, 지면을 통해 한 번 더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교단의 많은 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목회현장이 위기에 직면해 있고, 많은 교회가 존폐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총회는 미래전략위원회를 조직하여 위기를 넘어서 한국교회의 사역의 회복을 이루고, 그 시작으로 지역별 세미나를 통해 총회의 중점사업을 설명하여 총회안에 회복을 위한 소통과 공감의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편집장: 새해가 시작되면서 총회장께서 준비하신 중점사업 중의 참신한 것이 있는데요. “정오의 기도회” 목적과 진행 상황을 소개해주시고 이를 통해 얻게 될 기대는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십시오.
    2021-03-20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1)
    서 언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와 대신교단의 원조가 되신 분이다. 그분의 역사를 탐구하고 되새겨 보는 일은 앞으로 대신의 역사를 가름하는 중대한 지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는 시공간의 사건에 기반을 두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주권적 해석이 적용될 때 올바른 역사관을 소유하게 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재산이 된다. 일방적 자기주장을 단편적으로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교회가 걸어온 역사에는 교리적 배경이 시대적으로 나열되어 왔다. 그것이 교회사적 신학이다. 교회사를 뒤돌아보면 역사의 아이러니(Irony)가 지속되어 온 것처럼 느껴진다. 대신의 역사를 되새겨 볼 때 교회사의 한 단편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진다. 교단의 역사는 교회사적 신학에 기초한 교리교육이라는 반석 위에 정치적 제도를 튼튼하게 세워갈 때 지속적으로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게 된다. 그것이 교회사가 증명한 역사였다. 대신교단이 그 교리교육에 기초하여 교단을 형성해 왔는가? 김치선 박사의 노고를 뒤돌아보고, 당시의 역사를 가감 없이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대신의 역사를 정립하는 작업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절대 단편적으로 그분의 애국운동과 그분의 보수적 신학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신구약의 교회사적 기준을 통해 당시의 역사를 해석하고 미래 지향적인 신학적 그리고 정치적 역사관을 형성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1. 김치선 박사의 생애 김치선 박사는 1899년 8월 10일 김영준씨와 최현숙 여사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 그를 가르쳐 준 김응보 선생이 영수로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 선생으로부터 전도를 받았고 또한 같은 서당에 다니던 영특한 이홍순이라는 여자 학생 역시 전도를 받고 함께 성경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치선 학생은 후에 이홍순 학생과 결혼하게 되었다. 김치선의 부친 김영준씨는 어업을 경영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나 그 가족에 고난의 회오리가 닥친 것은 배가 풍랑을 만나 좌초되고 부터였다. 40여척의 배와 함께 배에 탄 어부들은 폭풍으로 말미암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치선의 할아버지는 생명을 잃은 가족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김치선의 가족들을 오막살이 집에 남겨놓고, 영흥으로 돈벌이를 위해 떠났다. 그러나 그는 3년 후 극심한 고생으로 세상을 떠나고 치선의 아버지 영준씨는 1916년 온 가족과 함께 함경도 장진의 화전민으로 들어가 산지를 일구며 겨우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함흥에 카나다장로교 선교사 영재영(L. L. Young) 목사가 화전민들이 살고 있는 서호리에 복음을 전하려 왔다. 영재영 선교사는 영특한 소년 김치선을 보고 자신이 데리고 가서 키우겠다고 말했다.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치선을 데리고 와서 가정의 일을 시키며 학교를 다니게 했다. 당시 카나다 선교사들은 다수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독일의 문서설을 지지하는 신학을 함경도에 거점을 두고 전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어 김치선에게 전파된 복음은 보수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정통주의 신학이었다. 그것은 김치선을 미국에서 보수주의 신학을 공부하도록 주선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영 선교사는 후에 김치선에게 공부할 신학교를 추천할 때 개혁파 신학을 추구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추천해 준 것을 보면 그의 신학적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치선은 1933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치선 박사가 영생중학교를 다닐 때, 지금의 학제로 고등학교 3학년 나이에, 1919년 3.1 운동일 일어났다. 그도 그 운동에 가담하여 일본경찰에 체포당했다. 그리고 1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했다. 아마 김치선 박사의 강한 민족주의 애국운동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생을 12시 고동소리와 함께 기도하고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수시로 눈물을 흘린 삶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그의 심정이 어떠했느냐를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목회할 때 내선일체에 맞도록 한국말로 설교하지 말고 일본어로 설교해야 한다는 정책에 반항했다는 죄목으로 1940년 왜인들의 경찰에 체포되어 또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가끔 김치선 박사의 설교 녹음을 듣게 될 때 긴장되는 것은 그분의 한국민족을 향한 애절한 외침과 눈물이 언제 터져 나오느냐? 이었다. 그 같은 느낌이 들자마자 목소리가 높아지며 눈물로 호소하는 외침이 시작되었다. 설교가 시작되고 약 5분이 지나면 목이메인 외침이 시작되었다. 왜인들에게 당한 한국 민족의 한이 깃들어 있었던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아마 2만 8천여 동네에 우물을 파라고 제자들에게 호소하면서 국민의 11조 300 만 성도를 달라고 기도한 신념이 여기서부터 나온 것이다. 복음화 운동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분이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절친하게 지냈던 일도 미루어 보면 민족 사상이 깊이 깃들어 있었던 연고로 생각되어 진다. 손양원 목사와 300만 전도운동을 함께 한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비화를 언급할 것이 있다. 김치선 박사는 손양원 목사를 모시고 남대문 교회에서 부흥집회를 열게 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총살한 안00이라는 살인자를 아들로 삼아 부흥회에 데리고 오셨다. 남대문 교회 앞에 세계의 성자 손양원 목사 라는 포스터를 크게 써서 매달았다. 그때 손양원 목사는 그 포스터를 떼지 않으면 부흥회를 인도할 수 없다고 우겼다. 하는 수 없이 그 포스터를 걷어내고 부흥회를 열게 되었다. 지금도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인 여수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와 김치선 박사 두 분이 다정하게 앉아 찍은 사진이 붙어있다. 김치선 박사가 한국에서 활동한 거점은 남대문 교회와 대한신학교이다. 당시 남대문 교회는 교통이 원활한 서울역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장로교가 합동과 통합으로 갈라지기 전에 전국에서 영락교회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선생이 자주 출석하기도 했다. 1948년 8월에 야간에 공부하는 대한신학교를 남대문 교회에 창설하였다. 초대 원장에 윤필성 목사가 취임하였고 뒤이어 1년 후에 김치선 박사가 취임하였다. 북에서 남으로 넘어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신학교였다. 이 학교가 대신교단을 설립하는 모체가 된 것이다. 교단은 신학과 정치적 일치를 통해 형성된다. 그 신학을 형성하는 모체가 신학교이다. 신학교의 노선은 교단의 신학을 결정하는 뿌리이다. 구미의 역사가 그랬다. 신학교의 자유주의화는 교단의 멸망을 촉진하는 원인이다. 교회의 문제는 신학교의 문제로 연결된다. 신학교의 문제는 이사진과 교수들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사진과 교수들이 돈과 자신의 영예만을 위해 정치를 일삼을 때 신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럴 때 학생들은 성경에 기초한 신학을 배울 수 없다. 후에 그들이 남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정치에 매진하게 된다. 6.25 전쟁이 휴전됨에 따라 서울에 평화가 깃들고 대한신학교를 다시 개강하게 되자 학생들이 날로 늘어가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다시 재건하기에 이르렀다. 대한신학교 7회와 8회에 학생 수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때 졸업한 학생들이 졸업 후 교계의 각계각층에서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1954년 김치선 박사는 기도에 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원 자리를 찾아 나섰다. 지금의 서울대 자리에 벧엘 기도원을 세웠다. 당시 많은 대한신학교 학생들이 시간이 나는 대로 관악산 벧엘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에 몰두한 적이 수없이 많았다. 더불어 김치선 박사에게 닥친 환란은 겹치고 또 겹친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것은 대한신학교 건물과 한양교회(창동교회를 개명)의 화재로 전소된 사건,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수양회에 가서 7명이나 익사한 사건, 그리고 대한신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법적 다툼 등이었다. 6.25 남침으로 인하여 피난 중에 남대문 교회는 다른 목사가 와서 목회하게 되자 김치선 박사는 한양교회를 새로 설립하고 남산 2,500평의 땅위에 세워진 일제 때의 신사(神社) 건물을 매입하여 교회와 학교로 사용하던 중 1956년 어느 날 새벽에 신학교와 한양교회가 전소된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로 김치선 박사는 충격을 받아 병중에 눕게 되었다.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건물은 전소되고 땅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폐허된 땅에 임시로 대형 콘세트를 세워 신학교와 교회를 함께 사용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속적으로 일어난 마찰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부가 대한신학교와 한양교회가 사용하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결과 벌어진 소송과 더불어 정부의 시책이 발표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의 신학교는 하나의 교단을 배경으로 하여 운영하라는” 것이었다. 대한신학교는 1952년 4년제 각종 대학교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의 교단과 관계를 가져야 할 형편이었다. 당시 대한신학교는 합동측 총회의 야간 신학교로 운영을 해 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단독 교단을 만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김치선 박사는 당시 근본주의의 선두주자였던 ICCC(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의 총재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와 연관을 맺고 1960년 성경장로회라는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1966년 김치선 박사는 암스텔담에서 열린 ICCC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연설을 했다. 그것이 국제대회에서의 마지막 강단이었다. 잠시 미국에 들러 필라델피아 페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쉬고 귀국하려던 참이었다. 거기서 갑자기 쓰러져 전신을 쓰지 못한다는 통보가 한국으로 날아들었다. 언어도 쉽게 구사할 수 없었고 대소변도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에 혹이 생겨 미국에서 8시간이란 긴 수술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져 갔다.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던 최순직 목사를 귀국하도록 하여 신학교를 돕게 하였다. 최목사는 어느 정도 학교의 급한 일을 수습한 후에 다시 학업을 마치기 위해 일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급하게 25세의 젊은 나이로 김치선 박사의 외아들 김세창 박사가 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1967년 12월 21일 이사 최용찬 장로와 김세창 교장을 불러 마지막 회의를 주관했다. 1968년 2월 24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김치선 박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쉼을 누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3-19
  • [선교칼럼] 중국동포 그리고 직업윤리
    내자신 중국에서 만15년 이상을 거주하는 동안 수많은 중국동포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경험이 있다. 처음 정착한 연변에서는 2년간 컴퓨터관련 교육과 사역을 했기에 그곳 거주기간 2년간 접촉한 현지인은 대다수가 조선족이었다. 한국에서는 특정한 계층을 표현할 때 뒤에 "족"이라는 표기를 한다. 대표적 경우가 얄미운 사람들을 비하적으로 표현할 때 "얌체족". 그래서 처음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중국동포에게 가급적 조선족이라는 공식표기보다는 "교포"라 호칭한다. 하지만 중국동포라는 표기는 맞지만 교포라는 표기는 맞지않다. 더러 의식있는 재중동포는 항의하기를 "왜 미국에 사는 한인에게는 미국교포라고 하면서 우리는 조선족이라 하느냐"항의한다. 재중동포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정체성이다. 미국에사는 교포라 불리는 한인들은 주로 이민1세대에 해당한다. 현지에서 출생한 2세대 들에게는 교포라는 호칭보다 한인2세라 부른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대한민국에 둔다면 교포가 맞다. 미국거주 동포들중에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유리할 때는 "교포~동포"라 하지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나는 미국인"이라고 딱 잘라 표현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다.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지역의 동포들은 민주주의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중국은 철저한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념에 세뇌된 세대들이다. 더군다나 중국거주 동포들에게는 두개의 모국이 존재하는 셈이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하기전까지 조선족들의 모국은 원하든 원치않든 조선인민공화국이었다. 북한은 조선족학교의 교사들을 1년에 한번씩 초대해 평양에서 연수교육을 하였다고 한다. 만일 한국에서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계획이 실현되기에는 많은 장벽이 있다. 바로 중국정부의 민감함이다. 중국은 외자유치 때문에 한국과 수교를 한 것이지 한국이 좋아서 수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중국의 공산주의-사회주의는 공유에 강하다. 모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해 식구수에 맞춰 분배하고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공산주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주의 정신은 결국 모든 인민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어서 덩샤오핑에 의해 "수정주의노선"이 채택돼 개혁개방 정책으로 오늘의 안정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 이라고 평가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과감히 규제를 타파한다. 자본주의국가를 능가할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공유에 대한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민주주의 처럼 "내것과 네것에 대한 경계"가 확실치 않다. 수십만명의 중국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결코 대한민국을 사랑하여 찾아온 사람은 아니다. 탈북자가 한국을 사랑하여 찾아온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탈북자에게 한국행은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지만 조선족의 한국행은 "철저한 돈벌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에 정착한 대다수의 조선족들은 중국과 한국에 번듯한 부동산들을 소유한 중산층이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내 한국행의 꿈을 실현했지만 그랬기에 닥치는대로 돈을 벌어 코리안드림을 실현했다. 물론 낙오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본인의 일탈이니 본인 책임이다. 모친은 생시에 2년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셨는데, 마지막 3개월간 수고한 분이 공교롭게도 조선족 여성이었다. 수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요양보호사 교육을 이수하고 요양보호사로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요양병원도 조선족 요양사가 없으면 운영이 안될정도라고 한다. 요양보호사라는 업무 자체가 기피업종이고 극한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업주로서는 최저임금만 줘도되니 외국국적자가 편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요양보호사는 단순 돈벌이 이전에 거동이 불편해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보살피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복지업무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다면 모두에게 불행하다. 마지막 3개월을 보살펴준 요양보호사는 혼자사시는 모친집에서 엄청난 분량을 수돗물을 사용했다. 기본료 밖에 안나오던 수도요금이 7배나 늘어나 깜짝놀라 누수를 점검했지만 전혀 누수는 없었다. 모친이 요양병원으로 옮겨간 후 부터는 수도사용량 제로였다. 입원하신 요양병원에 모친을 돌보는 간병인 역시 조선족이었다. 저혈당쇼크로 쓰러져 응급실을 거쳐 임시 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건강은 최악이었고 식사도 호스로 연명하는 상황이지만 간병인은 모친의 간식용으로 이것 저것을 사오라고 요청해 그대로 들어줬고 필요한 물품목록을 제시해 역시 모두 구입해 전달해 줬다. 사용할 상황이 안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들어줬다. 입원후 3주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가 2개월만에 별세를 하고 사용하시던 유품을 인수받았는데, 상당수가 빠져있었다. 탐나보이는 물품들은 모두 사라져있었다. 금액으로는 얼마 안되는 물품들이다. 문제는 직업정신이다. 자신들은 응분의 댓가를 받고 근무하는 것이지 결코 봉사가 아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런 기본적인 직업윤리는 궂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안다. 하지만 중국동포들은 그런 부분에서 구분이 잘 안되는가 보다. 공유경제가 몸에벤 탓일까? 당사자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을 고용하는 업체측이 필요한 교육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 Mission
    2021-03-19
  • [가정예배]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 Mission
    • 가정예배
    2021-03-18
  • [설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김의철목사(송도가나안교회) 제목 :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성경 : 요 13:12-20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등의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서 보면 어떤 이는 부와 명예를 쫒아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섬김과 봉사를 통한 헌신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어떤 이는 병 때문에 가난 때문에 문제 때문에 아니면 출세하려고 주님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마11장에서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을 보시고 너희는 무엇을 보러 왔느냐? 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나온 우리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교회를 나왔느냐고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어야 할 예수님의 제자들의 세계 속에도 질투와 경쟁심과 욕심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모두 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십자가로부터 등을 돌리고 마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도 많지만 과거 유대종교지도자들처럼 사익을 위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교회 앞에 보이는 충성은 잘 하는데 보이지 않는 충성은 하지 않습니다. 말을 화려한데 행동은 뒷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명예와 칭찬을 받기 위한 거짓 충성 인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단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신학을 하고, 같은 길을 걸어 오던 공동체가 사분오열되어 버렸습니다. 신앙과 이념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였습니다. 그 속에는 그 그룹의 헤드들의 탐심과 그 작은 기득권의 대한 집착 때문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보다 교회가 더, 교회보다 노회가 더, 노회보다 총회가 더 아름답고 구별되어야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총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보실 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대로 계속 가면 총회도 교회도 무너질 것이 뻔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바른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와 진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섬김과 봉사 위에 축복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직 교회와 선교에만 심혈을 기울이며 걸어왔습니다. 교단이 이렇게 무너지니 저같은 사람도 교단을 세우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테지 아니하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원하지 않았지만 임원에 동참할 때 두 가지 마음을 다짐했습니다. 첫째 총회가 든든히 세워져도 그 어떤 이익을 구하지 아니할 것이다. 둘째 맑고 아름다운 총회가 세워지면 곧바로 떠나 나와 선교하는 일에 마지막을 바칠 것이다. 저가 스스로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은 총회를 아름답게 세우고자 하는 소망과 우리 모두가 이런 다짐으로 총회를 다시 세우는데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이 아름다운 꿈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데 있어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과 기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 줄 때 가룟 유다는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강제적으로 넣어 준 것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과 우리의 마음의 동의가 결합 될 때 결정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든 악과 죄는 나쁜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생각을 누가 줍니까? 그것은 마귀입니다. 문제는 마귀가 유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마4장에서 유혹 받았을 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마귀의 생각은 언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 그리고 마치 나를 위해 주는 것처럼 하고 다가옵니다. 마귀는 우리의 탐욕을 만족시키며 다가옵니다. 그때 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이기려면 나에게 얼마나 유익이냐?를 생각하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욕심을 부린다고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중 하나는 어떤 것을 판단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그 집사님은 기도가 끝날 즈음 무작위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성경말씀을 그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 집사님은 그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을 키워갔고 힘을 얻어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연 일도 잘 되었고 삶에 기쁨도 주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 기쁨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흉내내어 자기도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확 들어온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유다가 스스로 목 매어 죽은지라” 기분이 이상해서 또 다른 곳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해석하거나 판단하면 아니됩니다. 언제나 사회와 교회 앞에 유익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은 누구나 방황합니다. 좋은 직장을 가진자도 방황하고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다 방황합니다. 방황이란 무엇입니까? 길을 모를 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길이 어디 있습니까? 궁극적로 인생이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돈도 지식도 명예도 소용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이 죽음 앞에서 멸망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영생의 길로 갈 것인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입니다. 권력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돈을 쫒아 산 사람도 죽고 학문을 쫒아 산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이 오면 그 모든 것은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허망함만 남아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살아온 어제를 탄식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화려한 옷을 입고 살진 않았을지라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산 삶이라면 그 죽음의 시간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순간은 죽음의 순간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시작을 행복함으로 시작하려면 우리는 욕심을 좇아 살지 아니하고 진리의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려 했을 때 베드로는 거부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겸손한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베드로가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과 용서 그리고 축복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허물을 씻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내가 발을 씻겨 주지 아니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끈으로 묶여 있습니다. 언제나 나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하는 생각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며, 확신이 아니라 자만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죄 때문에 저주가 오고 죄 때문에 질병과 가난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난한자가 부해지고, 약한자가 강해지며, 실패한자가 성공의 길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관련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과 미래가 자신에게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 입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시127: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된 것뿐입니다. 성경은 은혜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고 예수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니 터득한 진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교회 나오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만 우리의 삶은 가뭄에 말라 죽는 곡식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빗줄기를 맞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저는 2009년 송도에 와서 상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참으로 도시의 차가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내 힘을 넘어 설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가 송도에 올 때 꾸었던 꿈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가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은혜 입을 수 있을까요?를 고민하다고 생각난게 필리핀코피노였습니다. 그래서 상가에서 월세를 내면서 코피노 고안원을 세우기 위하여 계약금도 없이 땅보러 세부로 건너 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계약하고 땅을 매입하고 난 후 하나님의 지금의 성전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회도 부흥 시켜 주셨고, 고아원 건물도 짖고 지금은 코피노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는 고아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목말라 했고, 그 결과 저가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냉엄하고 차가고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따스한 은혜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내 딛을 수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따스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은혜만을 구하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섬김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3대 테너가수가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같은 무대에 오른적이 많은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카레라스는 마드리드 태생인 도밍고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일로 다퉜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1983년 카레라스는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수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라스는 백혈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그 단체의 도움으로 부단히 치료를 받으면서 병이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카레라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 자선단체가 너무 고마워서 누가 설립한 기관인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가 원수같이 생각했던 플라시도 도밍고 였습니다. 도밍고는 자기와 적대시 하며 지내는 카레라스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투입해서 자선 기관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1987년 어느 날 카레라스는 파바로티와 도밍고와 함께 큰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네. 나를 용서해 주게.” 도밍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친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세. 자네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타고난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네” 그 후 서로 지난 모든 감정을 털어 버리고 그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승화되어 파바로티와 함께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면 으슥한 산골짜기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신앙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그를 돕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 치료소에 데리고 가서 치료 비용까지 챙겨주면서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마리아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는 덜 종교적이었는데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돌보아 줄 비용까지 내면서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려 했을때 그들이 당황하게 된 것은 가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구조는 힘 있는 자가 굴림하고 억압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기는 것을 가치로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굴림하려고 힘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섬기기 위하여 힘을 구합니다.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힘을 구하지만, 교회는 약한 자를 도우려고 힘을 구합니다. 우리가 왜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잘 먹고 자기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열방을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작은 것을 가지고도 잘난 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사람조차 자기 우월주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남을 위해 사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되고 부흥에 목말라 하는 섬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높아지고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전한 목표는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을 배우는 곳이고, 섬김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그 섬김의 정상에는 목사가 잇습니다. 목사가 섬겨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만 하는 것이 아니니다. 믿음의 삶, 신앙의 모법을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목사가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성도들은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아직 만삭되지 못한 사람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가 행한 일을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들으면 자랑이 될까봐 미리 배수진을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솔직한 고백을 드리고자 합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하여 정말 힘들었습니다. 마음도 힘들고 현실도 힘들었습니다. 예배가 자유롭지 못하니 성도들도 잘 나오지 못하고 그 결과 헌금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희 교회가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하여 연건평 4천평에 달하는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막막했고, 지금도 막막합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팬드믹의 책임이 교회로 전가되고, 그 결과 교회가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보고 아직도 교회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서 건축으로 인하여 비록 재정이 팍팍 하지만 작년에 두 차례에 걸처서 공공기관에 불우이웃돕기 선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물론 마땅히 해야 하고, 지속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진짜 이유는 교회 욕 좀 그만하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참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교회가 어떻게 섬기느냐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모든 것을 가진신 분이신데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호주머니를 털어야 교회가 세워져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섬기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섬기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으로 세워지는 나라이고 섬기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교단 그리고 교회가 잘 되려면 우리는 사익을 취하려 하지 말고 공익을 위하여 섬기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분이십니다. 깨끗하게 섬기면 축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맑은 마음으로 섬기는자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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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6
  • 할 수 있습니다.
    ▲ 찬송: 364장 ▲ 기도: 가족중에서 ▲ 성경: 요15: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제목: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과 세상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결론을 내려버리면 참 절망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내가 하려고 그래도 그렇게 되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면 세상을 사는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삶은 내가 내 방식대로 살아왔던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내 방식에 의해서 내 삶을 만들었던 그 방식에 의해서 노력했던 것에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항상 절망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힘이 있습니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희망, 정말 할 수 없는가? 하는 그 절망에 대한 반전, 우린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이 오늘 우리가 찾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소리와 할 수 있다고 하는 분을 찾아내는 것이 희망이죠. 바로 그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시고,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죠? 심지어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분이시고 바람과 바다도잖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한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능력이 무한하신 그분이 못하실 것이 없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희망적인 말씀이죠. 나는 할 수 있다.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했지마는 얻어지는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수고했어도 지금까지 참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삶인데 내 삶이 변화될 수 있고, 내 삶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내 삶이 복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가 그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방식대로 고생하면서 살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고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할 수 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이렇게 희망적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말씀이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면 절망이 희망이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정말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이 다 복이 되는 그런 삶으로 바뀐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는데 예수님 안에 거한 삶이 아니었던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님의 뜻을 생각했습니까? 기도하셨습니까?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결정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예수님 밖에서 결론을 내리고, 예수님 밖에서 이해하고, 예수님 밖에서 사람과 손잡고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결론을 내린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기회를 얻은 게 아니잖아요? 예수님 안에서 한다고 하는 것이 뭐예요? 예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혜를 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늘 귀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주님께 묻지도 않고,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결론은 우리가 다 내리고 잘 되면 내가 다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면서 그리고도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밖으로 나가잖아요? 기도한 게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오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일들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경험적으로 중대한 일을 만났을 때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멀리 계시지 않잖아요? 내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결정을 내리시는 대로 예수님이 지혜를 주시는 대로 예수님이 응답을 하시는 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아가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밖에서 고생고생하지 마시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여 문제를 쉽게 풀어 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 오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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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6
  • [창간 축사] 김동주 원장 (호서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무엇보다 그 명칭이 참으로 멋있습니다. ‘기독연합신보’ 얼마나 좋습니까? 1915년 한국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합력하여 펴내었던 한국교회사 최초 초교파 연합신문이 바로 『긔독신보』(The Christian Messenger; 기독신보)였습니다. 이 신문은 1937년에 일제의 혹독한 억압 속에 마감되어야 할 때까지 가장 수명이 길었던 교회신문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백년이 지나 이 놀라운 신문의 영광스런 재현을 보는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독연합신보 창간을 축하합니다. 기독연합신보의 그 명칭이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아멘!”해야 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동거하여 연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133:1). “연합”(Union)의 이름은 한국 최초의 교회 이름(유니온 교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고 미덕이고 목표입니다. 1915년의 첫 초교파 교회 신문 ‘기독신보’처럼 기독연합신보는 분열된 한국교회를 다시 소통시키는 사역을 풍성히 해낼 것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연합” 단어가 등장한 것은 창29:34에 레아가 아들 ‘레위’를 낳고 그 이름을 지은 곳입니다. 그 뜻이 ‘연합’입니다. 신문의 명칭이 성취되어 우리들이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총화의 회로 연합하고,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초교파 교회 등이 함께 연합하는 열매를 기대합니다. 기독연합신보의 풍성한 사역을 기대합니다. 필진들과 섬기는 분들을 축복하며 그 능력에 큰 기대가 됩니다. 시대에 맞게 세우신 인물들이시기에 그 사명을 진실로 잘 감당하실 것입니다. 1915년의 기독신보의 집필진은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던 김필수 목사와 감리교회의 저명 인사 박동완 목사였습니다. 편집장 박동완(朴東完)은 33인 민족대표 중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 징역을 받았던 분입니다. 한 세기 전에 세계 교회의 산고의 태아로 출생한 한국교회는 이제 한 세기가 지나 세계 교회를 잉태하는 여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총회장님과 총무님, 편집장님, 기자님들, 실무진들 모두 이 시대의 새로운 지도력을 영광스럽게 발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와 복음을 체험하는 진리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그리스도에게 있고 그리스도의 충만이 신자에게 있어 이 충만의 충만을 매일 경험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나 전하는 자 없이 어찌 듣겠습니까? 기독연합신보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의 많은 소식을 들려주며 영원한 생명을 교통해주길 진실로 소망합니다. 세상의 말이 아니라 신국의 말을 담는 신론지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와 연합적 사랑의 형제 기관으로서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은 각 교회들과 기독연합신보의 발전을 적극 응원하고 합력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귀한 도구들을 놀랍고 영광스럽게 사용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2021-03-16
  • 2021년도 총회 강도사고시 응시요강
    2021년도 총회 강도사고시 응시요강 1. 응시자격 -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자 - 호서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자 - 본 교단의 총회 직영신학교 졸업자 - 본 교단이 인정하는 타 신학대학 및 신학대학원 졸업자 2. 제출서류 ① 청원서(사진부착) 및 추천서 (소정양식) <2부> ② 별도사진(여권용) <1매> (* 청원서부착분 제외) ③ 이력서(소정양식) <2부> ④ 졸업증명서 <2부> ⑤ 최종학력 성적증명서 <2부> ⑥ 주민등록등본 <2부> ⑦ 가족관계증명서 <2부> ⑧ 본 교단 소속노회에서 목사후보생으로 교육확인서 ⑨ 소속교회 당회장과 노회장의 추천서 ⑩ 자질조사서 (노회, 당회에서 총회로 등기우편 직접 발송) : 당회 자질조사서는 배부원서에 포함, 노회 자질조사서는 총회에서 노회로 별도 발송(원서포함X) ※ 모든 증명서류는 원본으로 3개월 이내 분 ※ 3. 원서대 및 고시료 - 원서대 / 50,000원, - 고시료 / 150,000원, (재시는 과목당 30,000원) - 예비교육비/ 100,000원 ※ 접수 시, “고시료+예비교육비” 납입(카드불가) ※ 4. 고시방법 및 과제 - 고시과목 / 필기 - 조직신학, 역사신학, 헌법, 성경 (21년 고시에는 주경, 논문은 없습니다) 실기 - 설교 (실기는 고시당일에 고시부원 입회하에 진행 함.) 면접 - 성경읽기와 이해에 대한 집중 면접 함. - 과목별 지침 / 조직신학, 역사신학, 헌법, 성경 - 설 교 / *두 본문의 말씀으로 설교문 두편 작성 할 것(A4 3매 : A4 11P-160) *작성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낼 것. (설교 실기는 위 두편 중 한편만 고시당일에 실시함) *보낼 곳 dspc61@naver.com으로 보낼 것(문의: 정덕화 목사 010-9484-9191) ※ 설교 원고는 e메일로 2021년 4월 16일(월) 오전 9시까지 시간 엄수하여 담당자에게 보낼 것. ※ - 성 경 / 1. 예제집 참고할 것 <예비교육 일시 및 장소> * 일 시 / 2021년 4월 26일(월) 오전 10시 ~ 오후 5시까지 * 장 소 / 청운교회 5. 고시일시 및 장소 - 일시 / 2021년 5월 17일(월) 오전 9시 ~ 오후 5시 - 장소 / 호서대학교(장소변경 시 추후통보) -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호서대길 12 전화) 041-560-8114 6. 원서교부 및 접수 - 원서교부기간 / 2021년 3월 9일(화) 오전 10시 - 3월 31일(수) 오후 5시 - 원서접수기간 / 2021년 4월 1일(목) 오전 10시 - 4월 16일(금) 오후 5시까지 접수 - 교부 및 접수처 / 총회사무국 강도사고시 담당자(전화 032-552-1961, 010-9484-9191) 주소 : 인천광역시 계양구 향교로28번길 10 총회사무국 2층 - 방문접수 요망 (우편접수 시, 미비사항 있으면 서류 반송합니다. 꼼꼼한 작성 부탁드립니다.) 7. 합격자 발표/ 5월24일(월) 총회규칙에 한함 8. 문의처 - 고시부 부장 / 오세종 목사(010-5395-1401) 고시부서기 / 염범재 목사(010-7310-0688) - 총 무 / 정덕화 목사(010-9484-9191) 9. 편목(강도사) 고시실시 - 응시자격 / 현재 본 교단소속 목사 (서류 및 면접) - 제출서류 / 청원서(사진부착) 및 소속노회 노회장 추천서 <2부> (소정양식) 편목이수 증명서 <1부>, 별도 사진 <1매>(청원서부착분 제외) - 원서대 및 고시료 / 원서대 20,000원, 고시료 150,000원 - 예비교육비 / 100,000원 - 학과 고시 및 면접 - 고시일시 및 장소 / 일반 강도사 고시와 같은 날, 같은 장소(별도 교실) - 편목고시 응시자는 예비교육에 반드시 참석바랍니다. 10. 참고사항 - 강도사고시 합격 후 소속노회에서 인허를 받고 목사 고시를 거쳐 목사안수 받음. - 군목(국방부장관 발행 군종장교 합격증 소지자), 해외 선교사(소속노회장과 대신세계선교회장의 추천을 받은 자), 특수기관목회(총회유관기관의 기관장의 추천을 받은 자)의 해당자에게 특별강도사고시를 실시함. - 재시자는 불합격한 과목에 대하여 응시할 것(합격과목 4년간 유효) - 강도사 고시 응시자는 예비교육에 반드시 참석하여야 함. - 목사후보생 자질조사서는 소속교회와 노회에서 작성하여 총회사무국 접수처에 3월 11일(수)까지 도착되도록 등기로 우송할 것. - 각 노회에서는 응시원서의 목사후보생 소속기관과 후보생 교육을 확인 기록하고 노회직인과 노회장 의 실인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접수된 서류는 일체 반환하지 않으며 궁금한 사항은 문의처로 문의할 것. 11. 미주노회, 대뉴욕노회, 미주남부노회 강도사 고시 - 별도 발표 2021년 3월 5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 회 장 강 대 석 목사 고시부 부 장 오 세 종 목사 서 기 염 범 재 목사
    2021-03-16
  • [총회장 목회서신] “기도를 선포합니다”
    2021년 신축년에는 COVID19가 소멸되고 여러분의 삶터에 평온한 일상의 삶이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우한에서 시작된 COVID19라는 역사적인 재난으로 인해 삶과 사회의 모든 것이 멈춰 엉망이 되고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활동이 중단되어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사회로부터 신뢰 상실과 교세 감소의 아픔도 겪었습니다. 특히 우리 교단은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한 어려움을 견디며 왔습니다. 이제 우리 교단은 이 위기를 넘어서 회복과 부흥을 향해 매진할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교단의 동역자 목사님과 온 성도는 회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달려갑시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합시다. 반드시 하나님은 회복과 부흥의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대신 교단을 세우신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정오에 모든 일정을 미루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만 팔천 동리에 우물을 파 민족 복음화에 대한 열정과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고, 복음으로 세워 영적 부흥을 이루는 일들을 이제는 우리가 이어가야 합니다. 본 교단은 ”주여! 우리를 회복시켜 주옵소서!“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기도를 선포합니다. 총회 산하 모든 노회와 교회는 매일 정오 시간에 모든 일손을 놓고 5분간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제목 코로나19의 소멸과 예배와 사역회복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총회 및 노회와 교회의 역할 감당을 위해 감사드립니다. 2021. 1. 25 총회장 강대석 목사
    • 오피니언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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