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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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특집] 김치선 박사의 신학과 목회철학(4)
    4.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 사실상 김치선 박사와 대신교단은 깊은 관계가 없다. 교단 형성의 기초를 제공하신 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 국가의 시책인 한 교단에 한 신학교를 원칙으로 운영하라는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ICCC와 관계하여 성경장로회의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교단을 탈퇴하기를 원치 아니했다. 여러 선교 단체에서 유혹의 손길을 내 밀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교회의 목사로 남기를 원했다. 그러나 대한신학교 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다시 반복되고 말았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신학교의 기득권은 필연적으로 교단의 전통으로부터 빗나가는 역사를 반복했다. 교회역사는 신학적 문제로 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정치적 문제로 신학교와 교단이 갈라지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 중에 한 가지 사건이 바로 김치선 박사를 정치적으로 몰아 교단을 떠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후에 대한신학교는 ICCC와 결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김치선 박사와 ICCC와의 선교적 방법론의 대립이었다. 김치선 박사는 대한신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신학교 중심으로 선교를 하려는 의도였으나 ICCC는 지방이나 개체적 단체를 통해 선교정책을 적용하려고 했다. 그런 와중에 1968년 김치선 박사는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 대한신학교를 중심하여 독자적으로 교단을 건설해 나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대신교단을 설립하기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만든 분이 김치선 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목사이시다. 당시 김세창 박사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대한신학교에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대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총회장이 되신 분은 최순직 목사이다. 1972년 4월 제 7차 총회에서 “성경장로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측”으로 명칭을 개정하고 최순직 목사께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본교단의 명칭과 사명” 이란 제하의 선언문을 신문지상에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는 교단직영신학교라는 경영체제에 강박관념화 되어 있을 정도의 교단신학에 집착되어 있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신학교가 교단의 정치제도아래 운영되는 교단직영 신학교 개념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구미에서는 신학교들이 교단의 배경을 두고 운영하기보다 신학에 기초를 둔 사설학교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교단들과 인준관계를 형성하여 교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리폼드(Reformed), 탈봇(Talbot), 카버넌트(Covenant), 그리고 비블리칼(Biblical) 신학교 등이 교단의 정치적 지배를 받지 않은 즉 사설 신학교들이다. 그 이유는 교단 정치에 의해 신학적 변질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과거에 보수주의를 지향했던 하버드,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 신학교들이 교단과 관계를 가지고 서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 왔었다. 그러나 교단 정치가 들어옴으로 정치적 술수에 의해 몰래 물밑작업을 통해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을 학교에서 몰아낼 수 없는 지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신학교는 교단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1920년대 메이첸(Machen) 박사는 프린스턴 신학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 싸웠으나 결국 교단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김치선 박사의 역사가 어쩌면 그와 비슷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김치선 박사는 신학교와 교단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시대를 앞서가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시간적으로 교단설립보다 바른 신학교 설립이 우선되어야 그에 따라오는 교단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대한신학교는 그러한 역사를 김치선 박사에 의해 수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던 대한신학교가 김치선 박사의 아들 대에 이르러 벧엘 기도원 땅을 판 대가를 가지고 종합대학을 세우려 하다가 오히려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어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에게 학교가 넘어가 버리고 이제는 타 종교의 재단에 학교를 인수 하느냐? 마느냐? 의 수치스러운 현상에 처해 있다. 대한신학교를 거쳐 온 사람으로서 대신출신이라는 신학의 명암을 내놓기가 부끄러운 형편이 되어버렸다. 1970년대 이후 대신교단은 장족의 발전을 하여 한국에서 장로교 교단으로서 5대 교단의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짧은 역사를 가진 교단이 이렇게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된 신학적 원인, 선교적 개척정신,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다시 대신교단이 여러 교단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문제는 차후에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오피니언
    • 특별기회
    2021-05-31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3)
    왜 하나님께서는 유능한 설교가만을 목사로 부르시지 않으실까? 혹 유능한 설교가에게 설교를 들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받아야 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요나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기에 문제의 선지자로 생각한다. 이 문제의 선지자가 니느웨라는 대도시에서 설교를 했다. 당시 니느웨는 세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도시였고, 또한 우상의 도시이며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40일 후에 무너지게 되어 있을 만큼 강퍅한 곳이었다. 이러한 곳으로 일반적으로 이러한 곳에서는 설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요나는 니느웨가 모두 회개하여 구원을 받는 큰 은혜를 끼치는 설교를 했다. 심지어 강대국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지닌 왕도 회개했다. 그렇다면 단번에 니느웨 성을 회개시킨 선지자 요나는 설교를 잘하는 선지자로 평가되어야 하지 않는가? 진정 니느웨 성에서 요나가 한 설교는 잘한 설교였을까? 그리고 잘하는 설교만이 이러한 권능이 있는 것인가? 요나의 니느웨 성에서의 설교가 훌륭했다고 볼 수 없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향했다. 다시스는 지리상 발견 이전인 당시로서는 땅끝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요나는 땅끝으로 도망을 한 것이다. 그는 니느웨를 피해서 가장 먼 곳,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으로 향했다. 만약 다시스 보다 더 먼 곳이 있었다면 요나는 그리로 도망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니느웨가 싫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잔인한 점령국가로서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했다기보다는 니느웨를 피한 것이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들의 믿음과 헌신은 열정적이었으며 진실했다. 요나도 마찬가지였다. 요나가 원래부터 불순종의 사람은 아니었다. 요나는 단지 니느웨가 싫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니느웨가 회개하지 않으면 곧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요나는 오히려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될 것을 기대하였다. 요나는 반 니느웨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들만이 특별하다는 특수주의(Particularism)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자인 요나는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쳐들어가서라도 니느웨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사람이다. 회개만 하지 않으면 멸망을 하신다는 메시지는 요나에게는 복음이었다. 이 기회야말로 원수의 나라를 제거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자신이 니느웨로 가기만 하면 어쩌면 니느웨가 구원받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더 멀리 도망을 치려한 것이다. 요나가 선택한 다시스는 땅끝이었을 것이다. 그가 바란 것은 하나님을 피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오로지 니느웨의 멸망하기를 바란 것이다. 도망치던 요나는 엄청난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제비에 뽑힌 요나의 모습을 보면 선지자다운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풍랑은 "나로 인한 연고이니 나를 바다로 던지라" 그러면 풍랑이 잔잔해져 배가 무사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요나의 죽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돌이켜 니느웨로 가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나가 죽음의 결단을 한 것은 니느웨를 멸망과 자신의 목숨을 바꾸려는 의도일 수 있다. 배 안의 사람들을 구원코자 바다에 던져지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니느웨의 멸망을 끝까지 원한 것을 아니었을까? 이후에 니느웨 성의 멸망이 지나간 후에, 요나는 니느웨 성이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 분하였다. 그럴 줄 알고 빨리 도망했었노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한다.(욘4:1,2).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원통해서 죽는 것이 나으니 죽여 달라고 몸부림친다. 그후에 요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니느웨의 멸망을 기다리며 성의 동편에 초막을 치고 머물렀다. 요나가 니느웨의 구원을 꿈꾸며 은혜로운 선포를 하였을까?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해서 말씀을 준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지자이기전에 자신의 몸을 던져서 니느웨를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설교자는 아니었다. 오직 멸망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구원 보다는 멸망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니느웨 성 사람들은 그런 요나의 메시지에 은혜를 받았다. 선지자라고 하면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였을 것이다. 오늘 성도들은 능력있는 훌륭한 설교자를 원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인정하신 선지자들이 다 뛰어난 설교자는 아니었다.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아주 불쾌하게 하는 만들었을 뿐 아니라 분노를 가지게 했다. 예레미야의 40년 사역은 그의 간절함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하였고 죽이려고 했다. 특히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은 반정부 운동가의 리스트 1위에 예레미야를 올렸다. 성도들은 자신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설교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은혜받는데 설교는 매우 중요하다. 설교자는 마땅히 은혜로운 설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무시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접 말씀하셔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가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법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받기는커녕 오히려 분을 냈고,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서 좋은 선지자들을 계속하여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섬겼고 그들이 살던 땅에서 쫒겨나야만 했다. 신자가 바울과 같은 설교가의 설교를 듣는 것은 복일 것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훌륭한 설교에도 은혜를 받지 못하였으며, 니느웨 성 사람들은 유능한 설교가 아니라도 생명의 은혜를 받았다. 성경을 보면 망할 청중이 있고, 은혜 받을 청중이 있다. 그러므로 청중은 말씀을 잘 듣는 능력이 필요하다. 신자들은 잘 짜여진 설교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말씀으로 공감을 한다든지 좋은 감정을 갖는다고 하여서 은혜를 받고 능력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에 뜨거운 감동과 은혜가 있었다고 그것이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도들은 은혜 받는 것을 매우 귀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은혜 받았다는 감사의 말도 건네는 것이다. 은혜를 끼치는 설교자를 존경하고 귀히 여기고 크게 여긴다. 그렇지만 감동되고 감정상에 시원함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능력을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뛰어난 설교자에게만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설교자에게서 설교를 들을 수 없는 청중은 결코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꼭 기억할 것은 지금 나의 앞에 세우신 설교자는 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하여 설교자를 잘못 부르시는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셨지만 실패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어느 설교자를 세우시든지 듣는 일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항상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만 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중요한 때에 요나와 같은 선지자가 말씀을 가지고 올 때도 있다. 훌륭한 설교만 훌륭한 신앙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설교자는 예레미야 같고 바울과 같아야 할 것이지만, 듣는 이들은 니느웨 성 사람들 같아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2021-05-31
  • [간증/목회는 영권이다(2)] 주님만 의지하고 따른다는 믿음으로 역경 버텨
    "철아, 서울 사는 이모라 카더라. 30분 뒤에 전화가 올 끼다. 늦지 않게 오그라." 마을 이장댁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모가 서울로 올라오라 했다. 그렇게 1978년 난생처음 거제도를 벗어나 배를 타고 마산까지 간 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철아, 서울 가면 사람들이 코 베어 간다 카더라. 조심해라이." "예, 알겠습니더."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정말 사람들이 다가오면 코부터 잡았다. 서울에서의 삶은 모든 게 생소했다. 밤이 되니 자동차와 냉장고 소리가 났다. 신기했다. 창동 근처 하평교회에 출석했는데 청년 중 신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신 교단 소속 직영신학교인 한양신학교에 나를 소개했다.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등록금으로 쓰라며 돈을 부쳐주셨다.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만든 돈이었기에 쓸 수 없었다. 돈을 돌려보내며 편지를 썼다. "어머니, 저는 목사님이 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보내셔서 엘리야를 먹이셨듯 학비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독학이 시작됐다. 당시 신학교 교무처장인 김갑수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지금 당장은 등록금이 없습니다. 일단 입학을 시켜주시면 갚겠습니다. 주님께서 불러 주셨으니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과연 선지학교였다. 피아노와 영어가 가능했던 나는 김 목사님이 사역하던 성북교회 교육전도사로 특채됐다. 신학교 옆에 기숙사도 있었다. 주변의 사랑의 손길로 생활했다. 한양신학교 2학년 때 입대를 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연대 군종병으로 밤낮없이 복음전파에 힘썼다. 제대 직전 결혼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고 어머니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서울에 온 상황이었다. 요즘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지만, 당시는 3년 단독목회를 하면 가능했다. 졸업하자 의정부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회자 청빙이 들어왔지만 개척을 선택했다. 1986년 개척지를 찾기 위해 서울 변두리를 걷고 또 걸었다. 버스 탈 돈도 없었다. 당시엔 ‘교회 개척을 하려면 100군데 이상은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돌다가 상계동 들판까지 갔다. 낡은 옛집이 즐비했다. 쓰레기장 같은 빈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터를 아주 싸게 빌렸다. 추운 겨울 눈을 맞아가며 보름간 쓰레기를 치웠다. 문제는 천막이었다. 기도 중 선배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 와서 간증하라고 했다. 간증을 마쳤더니 5000원을 주시면서 교회개척에 보태라고 했다. 그 돈으로 천막을 샀다. 그리고 손수 천막을 치고 세계선교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입당하는 날 목사님들이 오셔서 "세계선교교회가 아니라 빈민교회라고 해야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1년간 고생하면서 목회하는데 상계동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결국 철거됐다. 그때 교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상가로 갈 전세금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상가를 계약했다. 하지만 그는 돈을 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돈도 없으면서 자기를 과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계약은 파기됐고 빌려서 충당한 계약금마저 갚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전세금을 뺐다. 신혼살림은 상계동 길바닥에 내놨다. 아내는 처가로 가고 나는 거리를 헤매는 신세가 됐다. 정말 사는 게 힘들었다. 그렇게 교회 문을 닫고 나니 돈 걱정 안 하는 목회를 하고 싶었다. 1987년 목회지를 수원으로 옮겼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6만원 하는 지하 33㎡(10평) 공간을 빌려 예배를 시작했지만, 주님만 믿고 따라가야 한다는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자립할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교회가 있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목사님, 생활비를 신경 써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주님만 믿고 한번 살아보겠습니다." 간이의자 10개를 놓고 시작한 교회에 1년 만에 10여명이 모였다. 2년 차엔 그 옆 새로운 건물 132㎡(40평)로 옮겨갔고, 3년 차엔 50명이 모였다. 개척 5년 차엔 전세 7000만원 하는 2층 공간을 단독으로 쓰게 됐다. 그러나 더 큰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Mission
    2021-05-30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4) / 잘 듣기 위한 준비
    충분한 잠 설교에 대해 빈번히 쏟아지는 비난 가운데 하나는 "설교자들이 졸리게 만듭니다"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듣는 사람이 스스로 잠에 빠진다. 그 전날 충분히 잠을 잔 사람들은 주일에 거의 조는 법이 없다. 예수님은 깨어 있는 것과 같은 아주 단순한 문제들에 몹시 신경을 쓰셨다. 그분은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경계하라" 문자적으로는 "깨어 있으라"이다. (마24:42, 25:13 등)고 말씀하셨다. 깨어 있는 것은 중요하다. 구약 식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이 세상이 창조될 때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었다(창1:5). 창조의 일주일이 모두 동일했다. 이 측정법에 따르면 하루는 저녁에 시작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해질 무렵부터 안식일을 지킨다. 우리도 그와 같이 주일을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토요일 저녁을 외식하는 시간, 밤 늦은 시간까지 영상을 보는 시간으로 여기기보다는, 주님의 날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저녁부터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토요일 저녁은 주말의 여가를 정리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편히 쉬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가 아무리 유익하고 도전적이었을지라도 수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은 졸 수 밖에 없다. 토요일 밤 잠자리에 늦게 드는 것만큼 졸음이 가까이 찾아온다. 농부, 건축 노동자, 그리고 일주일 내내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문제에 약하다. 좁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쉽게 나른해지고 졸리게 된다. 이 현상은 불가에 있으면 나른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이 타면서산소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잠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정된 장소에서 졸음에 빠져들기 쉽다. 아침을 먹은 후 향기가 좋고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조금 도움이 될것이다. 언젠가 너무 졸려서 설교하다가 깜박 존 적도 있다. 한 주일 내내 매일 밤 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여러 곳을 방문했다. 설교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결론을 어디에 맺어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차 운전 도중에 깜박 졸다가 깨보니 차가 도로를 벗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공포의 순간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설교자가 졸면서 설교할 수 있다면, 듣는 청중들은 더 그러하였을 것이다. 충분히 잠을 자두라. 그렇지 않으면 형편없는 청중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제 시간에 교회 가기 허둥대며 허겁지겁 교회에 간다면 설교를 들을 마음 자세가 갖추어질 리가 없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 예배 직전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다면 가족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없음은 너무나 뻔한 이치이다. 게다가 누가 꾸물거렸다느니 누구 때문에 늦게 되었다느니 하면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 다투고 나면, 그날 예배를 망칠 수 있는 밖에 없게 된다. 남편은 화가 치밀어서 식구들보다 앞서 차로 간다. 그리고 가족들이 나타날 때까지 경적을 울려댐으로써 사방팔방에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린다. 꾸물거리다가 늦게 출발하니까 교회까지 거의 자동차 경주를 하듯이 달려 온적이 있지 않는가. 부부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버릇을 길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다음날 조금 더 일찍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일 아침 식사를 손도 덜 가고 먹는 데도 시간이 덜 걸리는 가벼운 것으로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집어 말하자면 시리얼(cercal)이나 토스트 같은 것으로 말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챙겨 줄 수 있다. 아내는 미리미리 준비하고 노력할 수 있다. 출발 직전까지 허겁지겁 해야 할 잔 일들은 토요일 밤에 다 처리해 놓아야 한다. 교회에 입고 갈 옷들도토요일 밤에 미리 다 손질해 놓을 수 있다. 그리고 큰 아이들은 동생들을 준비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충분한 아침 식사 필자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주일 아침조반을 준비하는 수고를 과감히 철회해야 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먹는 것이 이롭다. 빈 속, 혹은 거의 빈속으로 교회에 오게 되면 괜스레 짜증과 조바심만 날 뿐이다. 독자는 집에 달려가서 무얼 좀 먹으려고 얼른 예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배고픈 청중은 형편없는 청중이다. 짜증이나 조바심 등 그 어느 것도 온전하게 듣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특히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유의해야 한다. 아마 주일 아침만큼은 꼭 챙겨 먹고 넉넉한 기분으로 교회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오피니언
    2021-05-28
  • [목회칼럼] 설교 잘 듣기(5)
    기도하기 설교자나 청중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 토요일 밤에 이런 기도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설교와 관련된 구절들을 미리 공부하는 시간에 해도 좋을 것이다. 청중은 설교자가 설교 자료를 모으는 일주일 내내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 설교를 위한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주일 아침, 저녁에 그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하나의 강좌를 베푸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와 비교될 수 없다. 설교는 아주 독특하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자를 통해서 그분의 말씀으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방법으로 거기 모인사람들 가운데 임하시며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 모인 청중들이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구하기를 원하신다. 설교자와 회중을 위한 기도가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설교와 따분한 설교를 구별 짓는다. 1859년 웨일즈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 설교자가 친구 목사를 방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존스턴(Johnston)목사, 요즘 목사들이 예전에 비해 설교를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네." 그러자 존스턴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설교를 잘 듣는게지" 그러자 그 설교자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설교자들이 훨씬 더 설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왜 그리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모두 목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거든." 이 두 사람은 모두 옳은 말이다. 하나님께서 청중과 설교자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설교자는 더 잘 설교할 수 있고 청중은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다. 오늘 교회에 이런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럴 때에 설교자가 더 잘 설교하게 되고 청중이 더 잘 들으므로 교회를 엄청난 변화와 부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듣기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눅4:16).교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하여 빠짐없이 설교를 들을 때에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청중들이 들쭉날쭉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 때마다 교회도 설교자에 대해서도 어색하다면 은혜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예배 드리기 전에 벌써 불안한 마음이 생기고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익숙하지 않는 음식을 먹는 느낌으로 설교를 들게 될 것이다. 교회에 가면서 이미 걱정하기를 "사람들은 그 동안 어디 갔다 왔는지 물을까“라고 물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설교가 귀에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또 설교자가 강해설교나 주제별이나 교리들을 연속적으로 설교할 경우에, 나오다 말다 하게 되면 연속성이 깨져 잘 들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계속 연결되어지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듣지 못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교회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예배 참석이 들쭉날쭉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다.(히10:25)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규칙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다 찾아야 한다.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기본적인 것을 기억하면서 이행하려고 힘쓰신다면 반드시 영적인 충만함과 특벽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듣을 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의 설교가 들을 것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물에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기를 원한다면 깨끗하고 빈 물동이를 가지고 가야 한다. 대장균이 우글거리는 액체가 담긴 물동이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우물 물을 하나 가득히 담았다면 오염된 물밖에는 얻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견해, 혹은 그 설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교회에 간다면,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흠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설교를통하여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부어버린 것이다. 또한 그런 마음에 설교를 받아들인다 해도 오염된 것을 얻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청중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설교자를 인정하라. 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받아 쓰려고 펜을 들고 있을 때에 쓰지 말고 받아먹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에 씹어서 삼킬 때에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통째로 비우거나 머리에 편견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다 조금씩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말씀을 듣는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청중은 설교자를 있는 모습대로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자(使者)로 대해야 한다. 바울이 표현한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그분으로부터 온) 사람"(딤후3:17)이었다. 바울은 "그의 사명" 때문에 자신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다.(살전5:12-13 참조)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그의 사명에 대하여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탁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를 경멸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이를 경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사람들이 설교자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소행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청중의 의무는 하나님의 위임받은 심부름꾼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다. 청중은 하나님과 그분의 심부름꾼이 전하는 말씀에 대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메시지에 다가가야 한다. 그럼 그 심부름꾼이 형편없는 설교자일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경우에는 귀를 돌려도 괜찮은가?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고, 그 예배의 중요한 한 부분이 설교를 듣는 시간이다. 만일 당신에게 보낸 대통령의 특사의 말을 듣고 있다떤 그의 말에 있는 힘껏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설사 그 특사가 매우 어눌하다 할지라도 그가 하려는 말에 귀를 세워 들을 것이다. 특사가 어떤 사람이든 대통령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볍게 들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하나님이 사자가 아침에 찾아온 다면 어쩌겠는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최고로 조심스럽게 듣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의 직임 때문에 그를 존경할 것이고, 따라서 그가 보낸 특사에게도 그렇게 대할 것이다. 그분에게 불만이 있을지라도 진지한 마음으로 경청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와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부름꾼에 대한 편견이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편견으로 연결시키지 말라. 만일 당신이 설교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씀을 들을 때에는 그런 감정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설교자와 그의 가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꾼 너머에 있는 메시지를 보며 나에게 그 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설교자의 말은 참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설교자의 책임에 대해서 대해 말하고 있지 않겠다. 설교자는 거룩한 삶으로써 복음을 돋보이게 해야 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설교에게서 무엇인가 꺼림칙한 것이 있으면 집중하여 설교를 들을 수 없다. 청중은 설교자가 심부름꾼이 아닌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자임을 시억해야 한다.
    • 오피니언
    2021-05-28
  • [연재] 기독교에서 효란?
    기독교에서 효란? 기록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나타난 효를 가르치는 개념이다. - 기독교의 효의 정의 성경에 나타난 효의 계명에 시발점은 창세기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하나님은 창조 6째 날에 사람을 창조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복을 주시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 하시어 행복한 가정을 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시며 서로 사랑으로 가정에 효의 계명을 주셨다. 즉 하나님을 닮고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효”의 계명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 이전에 창조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뜻대로)모든 것이 되어 진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 만족 하시고 기뻐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성육신하여 오셔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 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장29절) 즉“효”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말씀하시고 그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효도하는 것이요 예수님은 본을 보여주시는 삶을 통하여 효를 실천하셨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할 때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孝)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셨다. “조금 나아가자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며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장39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효심을 가지고 늘 공생애 사역을 하신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심과 함께 효심은 항상 동전 양면과 같아서 뛸래야 뛸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별개가 아니고 같은 것이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다”(요14장31절) 효(孝)는 마음속에서부터 사랑으로 공경하는 것이 효심이고 효행은 곧 주신 말씀(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孝)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14장23절) < 신앙과 효심은 바늘과 실과 같다 > 기독교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직접 성경을 쓰신 것이 아니다.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선지자나 제자 등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다. 그런데 성경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친히 기록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하나님께서 친히 직접 쓰셨을까? 여기서 십계명 중 제5계명인 “네 부모들 공경 하라”는 명령의 신앙적 중요성을 가늠해 볼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효란 무엇인가? 위의 내용들은 간략하게 요약하면 성경적 효(孝)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대인관계에서 의 계명은 즉, 십계명 전체 중에서 “부모공경” 계명만을 가리키며 광의의 성경적 효(孝)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아버지 섬기고 부모를 공경하며 나아가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공동체에서 신앙심과 효심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며...
    • 오피니언
    • 성경의효
    2021-05-27
  • [설교영상]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 됩시다 l 김의철 목사(송도가나안교회) l 2021-05-23 주일설교
    ◼ 설교제목: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 됩시다 ◼ 설교본문: 마가복음 11장 20~25절 ◼ 설 교 자: 김의철 담임목사 ◼ 설교날짜: 2021. 05. 23.
    2021-05-26
  • [박근상목사 매일성경]신석장로교회 주일설교 I 계시록2:1-7 I 다시 불타오르게 하리라
    [박근상목사 매일성경]신석장로교회 주일설교 I 계시록2:1-7 I 다시 불타오르게 하리라
    • Mission
    • 이달의설교
    2021-05-26
  • [설교영상] 인천청운교회 강대석목사ㅣ행복한 부부의 삶 - 2021년 5월 23일 주일 낮 예배 설교
    2021년 5월 23일 인천청운교회 주일 낮 예배 설교 영상 제목 : 행복한 부부의 삶 본문 : 창세기 2장 18-25절 설교자 : 강대석 담임목사
    2021-05-26
  • [간증/목회는 영권이다(1)] 중2 때 “세계 다니며 선교하는 목사가 되겠다”
    중2 때 “세계 다니며 선교하는 목사가 되겠다” 목회는 고난의 연속이다. 많은 목회자가 바윗덩이처럼 묵직한 고난의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주저앉는다. 문제를 합리화하거나 잘못을 성도나 외부 탓으로 돌린다. 미워하고 증오하며 원수를 갚으려 하면 목회는 더욱 어렵게 된다. 지난 35년간 목회에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험난한 가시밭길에서 길어 올린 진리는, 고난의 압력을 이겨낼 힘은 오직 무릎 꿇고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목회자가 영권(靈權)을 가지려면 인본주의를 멀리하고 자신의 야망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2009년 인천 송도에 교회를 개척한 지 10년 만에 20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였다. 11차례 ‘50일의 기적’ 기도회를 진행하며 전국 중소형교회에 영적 활력을 불어넣고 목회 희망을 제시하게 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1960년 경남 거제도 송진포리에서 태어나 7남 2녀, 9남매 중 일곱째로 자랐다. 아버지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보건소장을 지냈다. 광복 후엔 미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의 통역을 했고 6·25전쟁 때는 야전병원 원장으로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아버지는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고향 거제도에 정착했지만 가정적이지 못했다. 신앙생활도 게을리 했다. 어머니는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신 마산 문창교회에서 훈련받았다. 매일 밤을 기도로 지새우곤 했다. 어린 나는 매일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내가 출석한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거제 송진교회였다. 초등학생 때 밤이 되면 교회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과 별빛을 보며 세상을 비추는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장목중학교 2학년 다닐 때 갑자기 교회에서 반주를 맡았다. 반주자가 도시로 떠난 것이다. “철아, 니가 반주해라.” 풍금을 만지고 놀던 나는 “예”하고 무조건 순종했다. 쉬운 찬송가 3곡을 골라 열심히 연습하니 기적같이 4부로 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주일날 발생했다. 어설프지만 연주가 가능한 3곡을 목사님께 드렸는데, 그만 다른 찬송을 부르시는 게 아닌가.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매일 풍금 연습을 했다. 1개월간 열심히 기도하며 연습했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찬송가를 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주일학교와 학생회 예배, 대예배 풍금연주를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이 외지로 나가시고 후임자로 당시 부산 고신대 신학생이었던 김철봉 전도사님이 주말마다 오셨다. 그분은 난생처음 보는 세계지도를 펼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철아, 니는 지금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 살고 있지만 봐라, 세상 넓데이. 저 바다를 건너면 큰 도시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다른 나라도 있데이. 너는 세계를 꿈꾸며 살아야 한데이.” 그때부터 나는 세계를 다니며 선교하는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김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마친 뒤로는 거제도에 오시지 않았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청소년 시절 산과 바다밖에 없는 그곳에서 매일 밤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감 가운데 울며 기도했다. 그곳에선 중·고등학교를 마치면 어부나 농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 19세가 될 때까지 거제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낙후된 마을이었다. 공부를 마치면 산에 소를 풀어 놓고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 맘대로 영어설교를 한다고 외쳤다. 비가 오는 날엔 한 손에 소고삐와 우산을 잡고, 한 손엔 영어단어장을 들고 공부했다. 그러나 내게 신학교에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 어떻게 하면 신학교에 갈 수 있을까.’ 나무를 하러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면 풀밭에 주저앉아 주르르 눈물만 흘렸다. “하나님, 이 작은 자를 기억해 주이소. 목사가 되고 싶은데 길이 없다 아임미꺼.” 그렇게 한참을 기도하는데 나를 찾는 방송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Mission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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